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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편과의 이혼을 거부합니다 (98)화 (98/107)

제98화

“부인, 부인!!”

“으음…….”

호들갑스러운 목소리에 나는 졸린 눈을 비비적댔다. 그러곤 습관적으로 옆자리를 쓸었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걸 보아, 아홉 시 남짓인 모양이다.

“……아침부터 왜?”

나는 기지개를 쭉 켜며 찌뿌둥한 몸을 풀었다. 요 며칠 과로 아닌 과로를 해서인지,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지금 주무실 때가 아니라고요! 어서 일어나세요, 어서!”

“아으, 뭔데 그래? 나 진짜 피곤하다고…….”

“일단 이것부터 쭉, 들이켜시고 잠부터 깨세요.”

그런 나와 달리 샤샤는 활력이 넘쳤다. 들고 온 물잔을 내게 건네고 재빨리 앞치마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러곤 번쩍! 양손을 들었다.

“짜잔! 이게 다 뭔 줄 아세요? 자그마치……!”

“응, 초대장.”

나는 입에 든 얼음을 와작거리며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에 따라 잔뜩 신나 있던 샤샤의 입꼬리가 수확기 벼처럼 축 처졌다.

“치, 너무 한 번에 맞추시는 거 아니에요? 시시해요.”

“너무 당연해서 모르는 척하기도 민망해.”

나는 손을 휘휘 저으며 봉투를 건네받았다. 과연 하루치 서신이 맞는 건지, 한 손에 다 잡지 못할 만큼 방대한 양이었다.

“폭죽 효과가 엄청났나 봐요! 대체 어떻게 구한 거냐고 문의가 빗발친대요. 남는 게 있으면 사고 싶다는 분들도 줄을 섰고요! 그 폭죽 부인께서 만드신 거 맞죠? 아무래도 저희 진짜 돈방석에 앉으신 것 같다고요!”

팔짝대는 샤샤와 달리 머릿속에서 벼락이 쳤다. 그간의 안락에 취해 아주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던 것이다.

와, 미쳤네……. 어떻게 이걸 깜박하냐. 일 났네. 일 났어.

경합이 끝난 지 이틀. 그동안 후원을 파헤쳐 봤다면, 아니 한 번이라도 집사를 불러 봤다면, 폭죽의 출처가 어디인지 알고도 남을 시간이다.

“그이 지금 어디에 있어?”

“공작님이야 당연히 집무실에 계시죠. 한참 업무 보실 시간이잖아요. 오늘도 서류가 엄청나게 쌓여 있던데요.”

“집사는, 집사는 무사하고? 설마 뭐 갑자기 어디를 갔다거나 아니면 어디를 갈 예정이라거나 그러지는 않지?”

“예? 집사님이야…… 당연히 무사하시죠. 아까도 우편물 정리 중이시던데요.”

“모, 모디카는?”

“모디카는…… 아마 지금쯤 농장에 가 있지 않을까요? 근데 그건 갑자기 왜요? 왜 그러세요, 불안하게?”

순간 샤샤의 낯빛이 파리하게 질렸다. 나는 불안한 동공을 이리저리 굴리며 곰곰 생각했다.

일이 터져도 골백번은 터졌을 지금, 주변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하다.

설마 폭탄 열매의 부재를 아직 모르는 건가?

“아니지. 전부 바보도 아니고 모를 리가 없지.”

이어진 혼잣말에 옆에 있던 샤샤가 후, 낮게 한숨 쉬며 물음을 던졌다.

“대체 뭘 말씀하시는 건데요? 알아야 답을 하죠.”

“설마 진짜 모르는 건가? 그게 아니고야 이렇게 평온할 리가 없는데. 아니 근데 이게 말이 돼?”

“그러니까 뭘요! 속 시원하게 말씀을 좀 해 보세요. 그래야 제가 도움을 드리죠.”

“아니…… 그 폭죽 말이야. 그거 내가 만든 건 맞는데, 주인이 내가 아니야.”

“네?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세요.”

“그러니까 거기 들어가는 주재료를 내가 훔쳤거든.”

“예에?! 훔치다니요?”

“어…… 그러니까 그게, 내가 뭔지는 정확히 이야기할 수는 없고 아무튼, 그이 물건을 좀 훔쳤어.”

“그이……! 공, 공작님 걸 훔치셨다고요?!”

순간 샤샤의 발걸음이 멀찍이 떨어졌다. 그러곤 양손을 위로 올리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근데 들어 봐. 이건 모두를 위한 선택이었다니까? 내가 그렇게 안 했으면 오늘 내 머리가 온전히 여기 안 달려 있었을 수도 있다고.”

“지금 제 머리가 날아가게 생겼다고요! 어쩌자고 공작님 물건에 손을 대셨어요!”

이야기를 듣던 샤샤가 방방 뛰며 물었다.

“아냐,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는 것 같아. 없어진 걸 모르는 눈치라니까?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

순간 유독 자주 보이던 올리브 열매가 떠올랐다. 까만 열매를 접시에 덜어 주며 많이 먹으라, 격려하던 남편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울렸다.

‘설마 내가 언제쯤 말하나 벼르고 있던 거야?’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나는 소리 없이 절규했다. 한차례 절망을 맛본 나는 벌어진 입술을 의식적으로 닫았다.

그러곤 까딱, 샤샤를 향해 가까이 오라 손짓했다.

“그이 지금 집무실에 있다고 했던가?”

“네. 아마도요?”

“가자……. 석고대죄하러.”

나는 모든 걸 해탈한 표정으로 서글피 말했다. 아무래도 남편의 인내심이 남아 있는 지금, 재빨리 비는 편이 현명할 것 같다.

* * *

“후…… 이너피스.”

나는 떨리는 숨을 가다듬으며 집무실 앞에 섰다.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조곤조곤 이야기해 볼 심산이었으나, 긴장감에 손에 쥔 찻잔이 달달 떨렸다.

“침착해. 할 수 있어.”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똑똑!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그와 동시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괜한 불안감에 나는 입술을 달싹이며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한 발짝 걸음을 떼자,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허공에 울렸다.

“놓고 가.”

서류 검토에 한창인 그는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짧게 말했다. 아무래도 비서관이나 사용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살금살금, 기척을 죽이고 가까이 다가섰다. 그러곤 조심스레 가져온 찻잔을 내려놓았다.

“로즈메리예요. 집중하는 데에 도움이 될 거예요.”

동시에 휙, 공작의 시선이 허공을 갈랐다.

“클로엔?”

“하하, 놀랐죠?”

당황한 그를 보며 나는 살포시 오른손을 흔들었다. 이내 에드먼드의 한쪽 입꼬리가 느른하게 올라갔다.

“아침 일찍 무슨 일이야? 지금쯤 곤히 자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좀…… 여보가 보고 싶어서 일찍 깼나 봐요. 많이 바빠요?”

“응, 조금.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아뇨, 뭐. 할 말은 무슨. 그냥 보고 싶어서 왔죠. 아침에 없길래. 하하.”

나는 두 손을 비비적대며 어색하게 말했다. 머리로는 당장 사과해야 한다, 다짐했으나 못난 입은 빙빙 화제를 돌렸다.

“그래? 그럼 조금만 기다려. 이것만 금방 처리할 테니까.”

옅게 미소 지은 그가 다소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집무실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방 안에는 사각거리는 만년필 소리가 전부였다. 이따금 살핀 에드먼드의 표정이 처음과 달리 어두웠다.

“저기…… 후, 후원에 산책 가지 않을래요?”

후, 작게 심호흡한 나는 에드먼드를 향해 용기 내 말 했다. 이대로 어물쩍대다간 엄한 시간만 축낼 게 뻔하다.

이어진 내 말에 에드먼드가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그러곤 벌떡,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지.”

간단히 주변을 정리한 그가 어느새 옆에 섰다. 그러곤 손을 뻗어 허리를 감쌌다.

“헙……!”

갑작스러운 접촉에 나는 아랫입술을 말아 물었다. 당황한 나와 달리 에드먼드는 자연스럽게 걸음을 돌렸다.

넓은 복도를 지나, 층계를 내려갔다. 식당 뒤 쪽문을 열고, 좁은 오솔길을 지나 마침내 목적지가 보였다.

‘드디어 올 때가 왔구나.’

나는 긴장한 얼굴로 문을 열었다. 그러곤 뚜벅뚜벅 걸어가 열매를 강탈당한 봅핍플라워 앞에 섰다.

“당, 당신한테 고백할 게 있어요!”

나는 눈을 꾹 감은 채, 우렁차게 말했다. 그러쥔 두 주먹이 볼품없이 떨렸으나 나는 용기 내, 다음 말을 이었다.

“여기 있던 폭탄 열매! 사, 사실은 내가 훔쳤어요. 얼마 전 경합에서 썼던 폭죽, 이것들로 만든 거예요. 진짜 미안해요.”

“…….”

“그렇지만 난, 다시 돌아가더라도 같은 행동을 할 거예요. 미안한 건 사실이지만, 결단코 후회하지는 않아요.”

계속된 침묵에 나는 조용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마주 본 남편의 얼굴은 그 생각을 읽기 어려웠다. 언뜻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당, 당신이 그것들로 뭘 하려고 했는지 대충은 알고 있어요. 그래서 더더욱 훔칠 수밖에 없고요. 나는 당신이 위험해지는 게 싫고, 또 미움받는 게 싫어요. 나는 다른 어떤 것보다 여보가 너무 소중해요. 그래서 날 미워하고 원망하게 되더라도 당신이 안전하길 바랐……!”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내 나름의 피력을 더해 가던 그때였다. 커다란 두 팔이 내 몸을 세게 억죄었다. 행여 놓칠세라 빈틈없이 조여 온 그로 인해 나는 할 말을 잃고 허둥댔다.

“당신이 이러면 내가 화를 낼 수가 없잖아. 이럴까 봐 모르는 척한 건데, 이렇게 또 선수를 치나?”

“여보…….”

“모두 다 나를 위한 거라는데, 나 까짓 게 뭐라고 미움받을 각오까지 했다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을 탓하지?”

“…….”

“아무래도 난 틀린 것 같아.”

피식, 듣기 좋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집요한 눈동자가 젖은 입술을 훑었다.

흡!

달아오른 숨결이 빠르게 공백을 메웠다. 먹힌 입술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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