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화
떠오른 달빛 아래로 날이 선 장검이 반짝였다.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에드먼드는 지친 기색이 없었다.
피에 미친 살인귀, 전쟁광이라는 오명에 걸맞게 공작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배부른 사자가 먹잇감을 가지고 놀 듯, 에드먼드는 요제프를 손바닥 위에 두고 이리저리 굴렸다. 충분히 급소를 찌를 수 있음에도 빗겼고, 좀 더 몰아붙일 수 있음에도 긴장을 풀었다.
“내게 호기롭게 덤비던 패기는 어디로 갔지? 벌써 지친 건가?”
여유로운 그와 달리 요제프는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에 부쳤다. 스치듯 찔린 어깨에선 붉은 자국이 조금씩 범위를 넓혔다.
“모욕을 줄 바엔 그냥 죽여라.”
요제프의 대항에 에드먼드는 소리 없이 조소했다. 오늘에야말로 저 건방진 헤슈턴의 장자를 없앨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만 된다면 매일같이 헤슈턴의 서신을 손수 태우는 일도, 클로엔을 향한 알 수 없는 불안감도 해소될 거다.
제국법상 경합 중 발생한 사망 사고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 기사로서 누릴 수 있는 명예로운 죽음이자, 스스로 선택한 싸움인 만큼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는다.
“날 원망하지 마라.”
에드먼드가 낮게 읊조리며 손에 쥔 장검을 천천히 움직였다. 차가운 쇠붙이가 목 언저리에 닿자 죽음을 예견한 듯, 요제프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 * *
“이거 놔, 샤샤.”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대를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클로엔 랜돌프, 아내였다.
클로엔이 잡힌 손목을 뿌리치며 결투장 중앙으로 향했다. 들려온 발소리에 에드먼드의 동공이 느리게 굴렀다.
“멈, 멈춰요.”
어느새 주변까지 온 클로엔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발 죽이지 말아요.”
순간 두 남자의 얼굴에 희비가 교차했다. 아득 문 입매가 발발 떨렸다. 지금껏 그림자 한 줌 보이지 않던 아내가 대뜸 나타나 제게 애원하고 있다.
옛 약혼자의 목숨을 구걸하며.
‘그렇게 말하면 내가 정말 볼모로 잡혀 있는 것 같잖아요’
‘나는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는데.’
‘오늘 경합, 날 위해서라도 꼭 이겨 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