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화
“으음…… 개운해.”
잠에서 깬 나는 몽롱한 시야를 비비적댔다. 유달리 개운한 몸은 지난밤, 내 계획이 산산이 조각났음을 알려 줬다.
분명 두어 시간만 잘 생각이었다. 귀를 울리는 산새 소리는 무척이나 평화로웠고, 바지런히 움직이는 작은 실루엣은 이미 아침이 밝았음을 일깨워졌다.
“샤샤, 지금 몇 시니?”
“곧 점심시간이에요.”
“왜 날 깨우지 않았니……. 깨웠어야지! 깨웠어야지!”
망연자실한 나는 널브러져 있던 이불을 붙들며 늘어졌다. 이마저 익숙한 듯, 샤샤는 태연히 걸레질을 이어 갔다.
“모디카는?”
“공작님이 아니라 모디카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샤샤가 하던 일을 멈추고 되물었다. 동그란 눈은 ‘그걸 네가 왜 묻냐?’라고 말하는 듯했다.
“응. 모디카, 돌아왔어? 지금 어디 있어?”
“엄…… 아침 일찍 왔으니까 아마 지금쯤이면 후원 정리 중일 거예요.”
대답을 들은 난 조용히 입술을 물었다. 모디카가 돌아온 지금, 폭탄 열매를 빼내 올 방법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래, 여차여차 후원까지는 별 의심 없이 진입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다음은?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곤 매일같이 봅핍플라워 주변을 맴도는 모디카의 눈을 피해, 백 송이가 넘는 폭탄 열매를 구슬로 바꾸는 게 과연 가능이나 할까?
“어둡다, 어두워…….”
“해가 중천인데 무슨 소리세요. 오늘 볕이 좋아서 빨래도 잘 마를 것 같은데.”
“날씨 말고 내 미래가……. 순간 봤어. 저기 황실 앞에 걸린 내 머리통.”
나는 모든 걸 해탈한 표정으로 선선히 웃었다. 그런 내 모습이 소름 돋는 듯, 샤샤가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집, 집사장님을 불러올까요? 아무래도 증세가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집사? 데릭?
이어진 샤샤의 말에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집사라면! 아니, 데릭이라면 무조건 나를 도울 거다. 한평생 지극정성으로 모신 귀한 아가씨의 부탁인데, 거절할 리가.
“샤샤, 너는 진짜! 하…… 이리 와. 한 번 안아 보자.”
깨달음을 얻은 난 감격한 표정으로 양팔을 뻗었다. 그러곤 가까워진 샤샤를 향해 조용히 속삭였다.
* * *
‘부인께서 집사장님을 찾으세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오시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