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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편과의 이혼을 거부합니다 (81)화 (81/107)

제81화

나는 씁, 입소리를 내며 서랍 깊숙이 모셔 뒀던 ‘백옥의 비밀’을 하나둘 꺼냈다. 미우나 고우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샤샤 하나뿐이니 내가 굽힐 수밖에.

“세 개 받고, 입 다무는 조건으로 여기에 세 개 더 줄게. 이거 너 돈 주고도 못 구하는 거야, 알지?”

부러 인심 쓰듯, 생색내 보았으나 상대는 생각보다 강력했다.

“에이, 그래도 안 돼요. 케이크 한두 조각은 몰라도 심부름 다녀온 걸 속일 수는 없어요. 랜돌프 공작님께서 얼마나 눈치가 빠르신데요.”

샤샤는 테이블 위에 놓인 크림 통을 멀찍이 밀어내며 거리를 뒀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난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네 개 받고 네 개 더. 나도 더는 못 줘. 이거 다 팔아야 하는 건데 특별히 주는 거라고. 이거 받고 입 싹 닫던지, 아니면 가뭄 든 논밭처럼 계속 쩍쩍 갈라지던지.”

“네 개는 조금 약하고 다섯 개. 저도 위험 부담이라는 게 있는데 네 개는 무리죠.”

옛말에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협상가도 울고 갈 흥정 능력에 실로 감탄했다. 나는 서랍에 있던 크림 통을 두어 개 더 얹으며 입을 잠그는 시늉을 했다.

“자, 그럼 다음 안건. 아까 말하다 끊긴 올라운더는?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

“글쎄요. 범위가 너무 넓은데요. 돈만 주면 뭐든 한다……. 정확히 뭘 원하시는 건데요?”

“엄, 굳이 꼽자면 특별히 공부 같은 걸 좀 잘하면 좋겠는데. 예를 들면 화학 같은 거. 영재라거나, 수재라거나……!”

“쉽게 말해 아카데미 수석 정도는 됐으면 좋겠다, 이 말씀인 거죠?”

“이야, 많이 늘었어. 이제 척하면 척하고 나와. 그렇지, 엄청나게 똑똑해서 뭐든 뚝딱뚝딱 만드는 그런 사람이 필요해.”

“이야기를 듣다 보니, 떠오르는 분이 하나 있기는 한데 과연 돈이 필요하실지는…….”

“일단 말이나 해 보자는 거지. 돈이 필요 없으면 다른 걸 주면 되지. 내가 명색에 공작 부인인데 안 될 건 뭐야.”

“근데 이분은 부인께서 싫어하실 것 같은데…….”

지금껏 잘만 떠들어대던 샤샤가 힐끔, 눈치를 살피곤 뒷말을 흐렸다.

“누군데 그렇게 뜸을 들여. 뭐라 안 할 테니까 말이나 해 봐.”

“그러니까, 그게 말이죠…….”

이어진 회유에도 샤샤는 빙빙 대답을 돌렸다. 이러다 폭탄이 아니라, 내 속이 터져 죽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울 지경이었다.

“샤샤? 잘 알겠지만 내 인내심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아요.”

“멜리사 아가씨요! 같이 아카데미 공동 수석 하셨었잖아요. 오랜 친구 사이니까 잘 말해 보면 뭐든 해 주시지 않……!”

“나가.”

“힝, 그러기에 제가 말 안 한다고 했잖아요. 분명 뭐라고 안 하신다면서요.”

억울한 듯 샤샤가 입을 삐죽이며 항변했다. 나는 반쯤 풀린 눈으로 샤샤를 응시했다.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나가라고 했다.”

“정말 이상하세요. 멜리사 아가씨 얘기만 나오면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시는지…….”

나는 구겨진 미간을 바로 잡으며 아래에 있던 달팽이용 화살을 들었다. 목표물을 선정한 나는 시위를 천천히 잡아당겼다.

“나, 나가요! 나간다고요!”

얼마 지나지 않아, 위기를 느낀 샤샤가 뒤꽁무니를 빼며 달아났다.

* * *

모두가 잠든 새벽.

몸져누워 있던 나는 소리를 죽이고 침대 아래로 내려왔다.

“이대로 속 편하게 자고 있을 때가 아니야.”

나는 어기적거리며 침대 밑에 숨겨 둔 고서적을 꺼냈다. 책장을 열자,

[너의 영원한 반려

요제프 헤슈턴으로부터]

썩 보기 불편한 이름 석 자가 눈에 보였다.

“젠장, 잘못 열었네. 애초에 보질 말았어야 했어. 빌어먹을, 요제프.”

나는 곧장 책을 돌려 앞으로 넘겼다. 저 짧은 글에 담긴 진심을 생각하자니 괜스레 숨이 막혀 온다는 게 그 이유였다.

“분명 놓친 게 있을 텐데…….”

오래된 책장을 넘기며 행여 놓친 게 있진 않을까 꼼꼼히 살폈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활활 타오르던 양초는 빠르게 심지를 줄였다.

“불 피울 거 없나.”

나는 침침한 눈을 비비며 꺼진 벽난로로 향했다. 때마침 들려온 인기척은 오금을 저리게 했다. 이상함을 느낀 나는 우뚝, 자리에 멈췄다.

“사람이면 나오지 말고, 귀신이면 더더욱 나오지 말아라.”

“쀼!”

뒤이은 울음소리에 나는 새된 신음을 흘렸다. 케이지에 찰싹 붙은 검은 눈동자는 허공을 향해 있었다.

“쀼? 너 안 자고 뭐 하고 있어. 순간 놀랐네. 언니 공부해야 하니까 방해하지 말고 빨리 자.”

“쀼?”

조그만 밤송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선을 맞췄다.

“언니가 지금 아주 중요한 일을 해야 해요. 너니까 말해 주는 건데 내가 지금 남에 몸에 얹혀사는 처지거든. 나야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지만, 적어도 이 몸 주인이 왔을 때 죽어 있지는 않아야 할 거 아냐.”

나는 그동안 꼭꼭 숨겨 왔던 속내를 조금씩 털어놨다. 대상이 동물이기는 했으나, 속에 든 말을 하고 나니 한시름 가벼웠다.

“그래서 이 언니의 어깨가 조금 무거워요. 남편은 대뜸 폭탄을 만든다고 하지를 않나, 하나 있는 친구는 자꾸만 나를 똥 밭에 부르지를 않나. 이 여자는 대체 무슨 업보를 졌길래 이렇게 인생이 스펙타클한가 몰라. 애꿎은 나만 생고생이지.”

“쀼?”

순간 날 보는 쀼의 시선이 파르르 흔들렸으나 금세 자리를 찾았다.

“아무튼! 나는 모두가 살길을 찾아야 해. 이게 바로 전지적 독자 시점이랄까? 아, 근데 이놈의 손바닥은 아까부터 왜 이렇게 간지럽니?”

화끈거리는 손바닥을 만지작대던 그때, 묘한 기시감이 온몸을 감쌌다.

잠깐, 이거……?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 벽난로 속 꺼진 불씨를 바라봤다. 그러곤 무의식적으로 두 팔을 들어 화로와 높이를 맞췄다.

“한,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해 보는 거야. 아니면 말지 뭐. 오히려 좋잖아? 마법 쓰면 잡혀간다는 데 끈 떨어진 게 되레 안전하지. 안 그래?”

괜한 긴장감에 손끝이 달달 떨리며 후끈댔다. 나는 마른 입술을 축이며 다음 말을 망설였다.

후, 낮은 호흡과 함께,

“이그니션.”

주문을 외웠다.

곧이어 화르르, 마법처럼 꺼진 불씨가 살아났다.

쿠르릉! 쾅!

종잡을 수 없는 미친 전개는 그 후로도 계속됐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기 시작하더니,

촤라락, 촤라라락!

테이블 위 고서적이 미친 듯이 펄럭였다. 나는 엉금엉금 기어가 쀼가 든 케이지를 붙들었다.

“쀼, 언니가 지켜줄게. 걱정하지 마.”

때아닌 돌풍에 백금색 머리칼이 이리저리 흩날렸다. 그저 불붙이는 마법 한 번 썼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난리가 날 일인가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

“이런 미친 원작,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그 순간, 덜컹! 책꽂이에 있던 책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반으로 펼쳐진 책 위에는 눈을 번쩍이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속성 : 쉽고 빠르게 배우는 폭죽 제조법]

이런다고?

주변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로웠다. 반쯤 넋이 나간 나와 달리 아래에 있던 밤송이는 태연히 우리 속으로 들어갔다.

“세상을 구하라는 하늘의 계시인 건가……? 영웅의 탄생, 뭐 그런 거야? 뭐가 이렇게 쓸데없이 웅장하고 고퀄리틴데.”

어이없는 상황에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나는 고요한 주변을 경계하며 펼쳐진 책 위로 손을 뻗었다.

[야생에 핀 봅핍플라워를 발견한 당신! 해결책이 궁금하신가요? 단 3일이면 만들 수 있는 폭죽 3종 세트를 알려드릴게요.]

내용을 확인한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책 이곳저곳을 살폈다. 관리 부실로 제목조차 흐릿한 앞면은 신빙성을 떨어뜨렸다.

“어디서 사짜 냄새가 나는데……. 그래도 없느니만 낫겠지. 일단 봐 보자.”

나는 코를 슥, 훑으며 책장을 넘겼다. 다음 장엔 폭죽 제조에 필요한 준비물과 시간, 간략한 유의 사항 따위가 적혀 있었다.

[별빛 폭죽 만들기]

#검은 하늘 위 별빛처럼 로맨틱한 순간을 원한다면.

제조시간 : 40hr.

준비물 : 갓 수확한 폭탄 열매(봅핍플라워 열매) 1알, 곱게 간 별빛 열매 가루 300g…… 꽃 기름 2스푼.

1. 갓 수확한 폭탄 열매를 준비해 주세요.

2. 열매에 묻은 흙은 마른 거즈로 깨끗하게 닦아 줍니다.

※열매에 물이 닿으면 곧장 터져 버릴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2번 유의 사항을 확인한 순간, 내 얼굴은 파리하게 질렸다.

‘물을 많이 주면…… 본래의 특성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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