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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편과의 이혼을 거부합니다 (75)화 (75/107)

제75화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모양인지, 옆에 있던 샤샤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설마 너도 나니?”

“네. 뭔가 꼬릿꼬릿한 게 처음 맡아 보는 냄새인데요?”

문밖에선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곧장 몸을 돌려 저택 입구로 향했다. 냄새의 원인을 찾는 것도 중요했으나, 일단 손님맞이가 우선이니 말이다.

“오랜만이군요, 클로엔. 그간 잘 지냈나요? 주인을 닮아서인지 집이 정말 예쁘군요.”

그사이 입구에 선 테리샤 부인이 알은체를 해 왔다.

“과찬이십니다, 테리샤 부인. 저희 시녀들이 솜씨가 참 좋답니다. 거기 계시지 말고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하여간 젊은 사람이 겸손하다니까. 아! 내가 오늘 다른 손님들도 초대를 좀 했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다들 영물에 관심이 많더라고.”

이어진 테리샤 부인의 말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고기가 많을수록 영업률은 배로 올라갈 테니 말이다.

“아휴, 물론이죠. 어련히 좋은 분들만 모셔 오셨겠어요. 저는 괜찮으니 어서 들어오세용.”

나는 부러 콧소리를 내 가며 손님들을 맞이했다. 그래 봐야 두어 명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잔뜩 치장한 귀부인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들어왔다.

“나는 안 보이는 모양이네요? 이렇게 대놓고 사람 무시할 거면 차라리 부르지를 말든지.”

그때 왼편에 있던 모리 부인이 퉁명스레 말했다. 나는 곧장 몸을 돌려 빠르게 스캔했다.

‘오늘 아주 날을 잡으셨구먼.’

강렬한 빨간색 입술과 빵처럼 부풀린 드레스는 오늘 밤 주인공은 나임을 여실히 말해 줬다.

“오셨군요, 모리 부인~! 세상에, 오늘 정말 예쁘세요. 헤어도 완벽하시고, 의상은 말할 것도 없고. 무슨 20대보다도 더 20대 같으시다니까요.”

“어머, 자기는 또 무슨 그런 말을 해? 빈말도 정말. 홍홍.”

내심 기분은 좋은지, 모리 부인의 강렬한 레드 립이 귓가에 걸렸다. 나는 부러 비위를 맞춰가며 모리 부인의 칭찬 포인트를 이 잡듯 골라냈다.

“모두 들어오셨으면, 연회장으로 가시죠. 저희 주방장이 아주 특별한 음식을 준비했답니다.”

성공적인 환영 인사를 마치고 나는 집사와 함께 귀부인들을 인도했다. 등 뒤로 “집이 너무 예쁘네요.”, “너무 기대되는군요.” 따위의 반응이 들려오기도 했다.

“어디서 매콤한 냄새가 나지 않나요? 입맛이 확 도는 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냄새가 무척이나 좋네요. 기대된달까?”

“모두가 만족할 만한 음식으로 충분히 준비했으니, 기대들 하세요. 저희 주방장은 랜돌프의 자랑 중 하나랍니다.”

이어진 말소리에 나는 부러 활짝 웃으며 능글맞게 굴었다. 연회장에 가까워질수록 후각을 강타하는 익숙한 냄새는 점점 짙어졌다.

* * *

연회장 출입과 함께 저 멀리 커다란 실루엣이 보였다. 빈 테이블 위, 상석에 떡하니 버티고 앉은 용감무쌍한 이는 몰려든 인파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누구냐, 넌.

나는 흐릿한 시야를 바로잡고 문제의 인물에게 집중했다. 마침내 얼굴을 확인했을 땐.

“뭐야, 연무장 갔다며. 저 인간이 왜 여기에 있어?”

힐끔, 뒤쪽을 살핀 난 부러 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샤샤 또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분명 아침에 나가셨는데……!”

“하……. 돌겠네, 정말.”

걸음을 내디딜수록, 입 안은 바짝바짝 말랐다. 불행히도 일말의 양심과 쪽팔림은 남아 있는 터라 에드먼드를 마주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왜, 어째서! 와이!

전혀 상관없는 이곳에 저리도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것인지, 그 저의가 궁금할 따름이었다.

“저기…… 누가 또 있는 것 같은데?”

“세상에! 랜돌프 공작 아니에요? 설마 공작께서도 오찬에 함께하시나요?!”

뒤이어 에드먼드를 발견한 귀부인들이 호들갑을 떨어댔다. 그사이 자리에서 일어난 에드먼드가 싱긋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저거 지금 나한테 하는 거?’

당황한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등 뒤로 소란스러운 말소리가 들려왔으나, 고장 난 뻐꾸기시계처럼 한참을 삐걱거렸다.

“왜 이리 늦었지? 기다렸잖아.”

그런 내게 쐐기를 박듯, 에드먼드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와 허리를 바짝 조였다.

이런다고?

두른 팔에 힘이 들어갈수록 현실감이 와닿았다. 느리게 일렁이는 붉은 동공과 시선을 맞출 때면 어제의 실수를 잊고 대롱대롱 매달릴 뻔했다.

“랜돌프 공작께서 부인을 아끼시는 모양이군요. 여인들끼리의 모임에까지 온 걸 보면.”

상황을 보던 테리샤 부인이 조용히 말을 보탰다. 부드러운 어투였으나 그 속엔 작은 불쾌함이 섞여 있었다.

“놀라셨다면 사과드리죠, 테리샤 부인. 이 사람이 없으면 제가 불안해서 말입니다.”

말을 증명하듯 에드먼드는 사랑스럽다는 얼굴로 내 뺨을 지분댔다.

대체 왜 이러는 건지, 정상적인 사고 판단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텅 빈 머릿속엔 물음표 500개가량이 둥둥 떠다녔고, 등 뒤엔 부러움 섞인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다.

* * *

주변은 빠르게 정돈됐다. 중앙에 앉은 우리 부부를 기준으로 왼편에는 테리샤 부인, 오른쪽에는 모리 부인이 앉았다.

때아닌 훼방꾼의 등장에 연회장은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힐끔, 눈치를 살핀 나는 애꿎은 찬물만 들이켰다.

“저…… 랜돌프 공작께서도 오늘 오찬에 함께하시는 건가요?”

무리 중 가장 어린 낸시 부인이 용기 내 말을 걸어왔다. 노력이 무색하게 에드먼드는 눈길 한번을 주지 않았다. 그저 “네.”하고 짧게 답하며 대화를 갈무리했다.

어제에 대한 복수를 이런 식으로 하는 걸까? 뒤이어 반대편에 있던 귀부인 중 하나가 말을 붙여 왔으나 반응은 비슷했다.

이 인간이 진짜.

참다못한 나는 에드먼드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연무장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여긴 또 왜 와 있는 거예요?”

“나한테 뭘 따질 만한 입장은 아닐 텐데.”

“아, 그래서 지금 복수라도 해 보겠다는 거예요?”

“복수? 그러기엔 좀 약하지. 대체 술을 얼마나 먹은 건지, 씻어도 씻어도 냄새가 나더군.”

“흠흠, 어제 일은 미안하게 됐어요. 근데 이런 식으로 내 비즈니스에 훼방 놓는 건 반칙이죠, 반칙. 오늘이 얼마나 중요한 자린데……!”

그사이 접시를 든 사용인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테이블 위로 은색 푸드 커버가 빠르게 놓였다. 에드먼드가 말했다.

“오늘 연회 음식은 기존과는 차별을 뒀습니다. 라비스텔에서는 통 먹기 힘든 음식이죠.”

궁금증 어린 귀부인들의 시선이 이어졌으나, 에드먼드는 한쪽 입꼬리를 늘어뜨릴 뿐 말이 없었다.

동시에 휙! 은색 푸드 커버가 걷혔다. 훅 끼친 열기에 잠시간 시야가 흐릿해졌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위가 트였다.

“이, 이건 대체 뭐죠……?”

“수프도 아니고, 탕도 아니고 난생처음 보는 음식인데요?”

내용물을 확인한 손님들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게 뭐냐는 듯한 귀부인들의 시선이 느껴졌으나, 나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말간 국물 위로 모습을 비춘 콩나물 대가리를 보자 등 뒤로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그뿐인가. 국물 옆에 송송 썰어 놓은 고추를 발견했을 땐 정말이지, 온몸의 전율이 일기도 했다.

‘로판에 콩나물, 그것도 모자라 국밥 레시피가 있다고?’

나는 황망한 얼굴로 에드먼드를 바라봤다. 때아닌 숙취에 콩나물국밥을 먹고 싶다 노래를 부르기는 했으나 정말로 마주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에드먼드가 말했다.

“페르티아 왕족이 즐기던 귀한 음식입니다. 아마 처음 보는 분들도 있고, 이미 접해 본 분들도 있을 겁니다. 모리 부인께선 후자입니까, 전자입니까?”

“당, 당연히 먹어 보았죠. 호호호. 오래전, 남편과의 페르티아 여행에서 맛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이름이 아마……!”

호명된 모리 부인이 어색한 미소와 함께 뒷말을 흐렸다. 동시에 에드먼드가 한쪽 입꼬리를 늘어뜨리며 답을 내놓았다.

“왕가의 눈물. 그만큼 완벽한 음식이란 뜻이죠.”

듣기 좋은 랜돌프 공작의 음색에 귀부인들은 눈을 반짝이며 집중했다. 그에 보답하듯 에드먼드는 앞서 말한 것 외에도 콩나물의 효능이라던지, ‘왕가의 눈물’의 유래 따위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리도 훌륭한 음식이라니 맛이 궁금하군요.”

테리샤 부인을 선두로 왼편에 있던 귀부인들 쭈뼛거리며 스푼을 들었다. 곧이어 “크…….” 맛을 본 이들의 입에서 개운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세상에……! 이토록 개운한 음식은 난생처음이에요.”

“어제 먹은 포도주가 싹, 가시는 게 일품 중의 일품인걸요?”

“가히 왕가의 눈물이라더니…… 맛의 깊이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네요.”

예상치 못한 반응에 나는 놀란 토끼처럼 두 눈을 끔벅였다. 부인들의 환호성이 높아질수록 머릿속은 점점 더 혼란스러웠다.

진짜 있는 거야, 뭐야.

냄새도 모양도 콩나물 국밥 그 자첸데 왕가의 음식이라고?

나는 애꿎은 콩나물 대가리를 툭툭 치며 불신의 메시지를 던졌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에드먼드가 미간을 구겼다.

“어서 먹지, 배고플 텐데.”

“여보, 내가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아까 그 말 진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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