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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편과의 이혼을 거부합니다 (70)화 (70/107)

제70화

무거운 정적과 함께 멍한 샤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옆에선 “쀼쀼!” 언제 깬 지 모를 밤송이가 케이지에 붙어 알은체를 해 왔다.

“그……러니까 내 말은, 꽃이 죽는다고. 꽃이.”

“아~ 저는 또 뭐라고. 놀랐잖아요, 부인. 갑자기 다 죽는다니요. 그런 무서운 소리를.”

“하하하, 나도 놀랐지 뭐야. 네가 그걸 꺾어 버린다길래 머리통이 날아가는 줄 알았어. 아, 물론 꽃이.”

나는 억지웃음을 지어 가며 상황을 무마시켰다. 잠시 잠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으나 곧 멎었다.

힐끔, 샤샤의 눈치를 살핀 나는 진공 흡입기라도 된 것처럼 음식을 빨아들였다. 저 눈치 없이 일만 잘하는 시녀보다 발 빨리 후원에 가야만 했다.

“부인, 천천히 드세요! 그러다 체하세요.”

“아냐, 아냐! 배고파서 그래. 빨리 먹고 꽃도 따야 하고, 필요한 것들도 좀 만들어야 하고 내가 좀 바빠.”

“에이, 파티 준비는 제가 해도 괜찮아요. 맡겨만 주시면 빈틈없이……!”

“아니! 그냥 내가 다 할 테니까 넌 절대 신경 쓰지 마. 아예 후원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마. 그래, 빨래! 그거 해, 그거. 빨래하면 되겠네.”

나는 두 뺨을 바르르 떨어 가며 손사래 쳤다. 행여 후원에 간 샤샤가 폭탄 꽃을 잘못 만졌다간 온 저택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그래 주시면 정말 감사하지만…… 그랬다가는 공작님께 크게 혼나지 않을까요? 아무리 그래도 그런 허드렛일은 제가 하는 게 마음도 편하고 또…….”

“아니, 내가 가! 내가! 내가!”

나는 애꿎은 식탁을 팡팡 두드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강경한 클로엔의 반응에 샤샤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 * *

“헉헉, 매일 수락산 등반을 하는 기분이야.”

식사를 마친 나는 곧장 길을 나섰다. 잇따른 오르막에 거친 숨을 쉬었으나,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후원 입구를 열자, 옅은 화약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아찔한 상상에 멀찍이 떨어진 꽃밭을 향해 재빨리 내달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냄새의 근원들은 멀쩡히 꽃을 틔우고 있었다. 다른 게 있다면, 어제보다 새로 피운 꽃봉오리가 배는 늘어 있었다.

“쀼쀼! 쀼!”

달라진 냄새 때문인지, 케이지에선 연신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울렸다.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케이지를 내려놓았다.

“하…… 진짜 심란하네.”

나는 미간을 좁히며 눈앞의 원흉들을 다시 한번 살폈다. 오색찬란한 무지개색 꽃잎은 폭탄 제조용이라는 사실을 무색하게 했다.

“이것들을 진짜 어쩌지? 그냥 미친 척하고 다 뽑아 버릴까.”

이대로 끝까지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뗄까 싶었으나 아무래도 불안했다. 행여 샤샤를 비롯한 사용인 중 누군가가 이 꽃들에 손을 댄다면?

“불바다가 되겠지.”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하지만 아무도 건드리지 않고 평화를 유지한다고 한들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만에 하나 에드먼드가 남몰래 반역을 준비하고 있다면? 그리고 이 빌어먹을 꽃이 그 과정 중 하나라면?

“어휴, 내일 아침 황실 기둥에 내 머리통이 달려 있을지도.”

이쪽도 아찔하기는 매한가지였다. 훅 끼친 화약 냄새에 나는 몸을 발발 떨며 멀찍이 떨어졌다. 이대로 생을 마감하기엔 그간의 노력이 너무도 아까웠다.

자리를 옮긴 난 야외용 테이블에 철퍼덕 엎어졌다. 잠시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케이지에 있던 쀼를 조심스레 꺼냈다.

오랜만에 나온 외출이 마음에 드는지, 예민한 밤송이는 “쀼쀼~”거리며 기분 좋게 울었다.

“하…… 정말 어떻게 하냐. 이참에 후원을 다 밀어 버려? 그럼 저 음침한 나무도 한번에 처리할 수 있을 텐데.”

나는 마른 풀잎을 질겅거리며 요정나무를 힐끔거렸다. 그러곤 휴, 낮게 한숨 쉬며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네가 생각해도 너무 현실성이 없지? 저 큰 걸 자르다니.”

“쀼?”

높아진 고도 때문인지 쀼는 까만 눈망울을 연신 끔벅였다.

* * *

방으로 돌아온 나는 곧장 책상 위를 뒤적였다. 이유인즉, 한동안 소원했던 [식물대도감]을 살필 생각이었다.

“그래도 꽃은 꽃인데, 뭐라도 적혀 있지 않겠어?”

홀로 중얼거린 나는 빠르게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문제의 ‘폭탄 꽃’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정식 명칭은 봅핍플라워. 무지개색 꽃잎과 방울을 닮은 겉모습이 특징이다. 열매에 담긴 화약 성분은 강력한 폭발력을 자랑하며…….”

가볍게 읽어 나가던 처음과 달리 글자를 짚던 손끝이 달달 떨려왔다.

“개체 대부분이 사냥터나 군사 시설에서 관리 중이며, 혹 야생에서 봅핍플라워를 마주한다면 반드시 무시할 것을 강조한다. 예쁜 외관에 홀려 정원에 심는 실수를 범했다간 집을 모조리 날리는 불상사를…….”

내용을 살피던 난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낱장을 넘겼다.

곧이어,

“뫄아악!”

나는 정돈된 머리칼을 잡아 뜯으며 포효했다. 엉망으로 찢긴 다음 장은 종이가 있었다는 흔적만을 남겨 놓을 뿐.

망했어, 망했다고.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침대로 향했다.

덜컹, 다이빙하듯 침대로 몸을 던진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복잡한 심경을 해소했다. 그러곤 조금 전 보았던 구절 중 일부를 되새겼다.

“재배지가 사냥터나 군사 시설이면 목적이 너무 확실한 거 아니냐고……! 이건 그냥 죄다 터뜨려 버린다는 말이지.”

일순 머릿속이 파바박 튀기며 과거에 보았던 웹툰 장면 중 일부가 떠올랐다. 텅 빈 에드먼드의 시선은 어느 때보다 서늘했다.

[내 너 같은 족속을 애초에 믿는 것이 아니었는데……! 감히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근위병, 근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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