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알겠어, 알겠다고! 만들어 주면 되잖아. 달……! 후, 달팽이 농장 그거 만들어 줄게.”
“……정말요?”
나는 코끝을 훌쩍이며 악어의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니까 울지 마. 갑자기 당신이 울면…… 내가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아, 미쳤나 봐. 심장 폭행. 이 정도면 상해 치사 아니냐고.
에드먼드식 상남자 화법에 나는 뛰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절로 넓어지는 코 평수를 줄이려 노력했으나 무리였다.
이대로 저 널찍한 가슴팍에 뛰어들어 볼까, 고민하는 사이.
“야간 훈련이 있어서 가 봐야겠군.”
에드먼드는 그럴싸한 핑계를 던져 놓곤 도망치듯 식당을 벗어났다. 역시 완급 조절이 확실한 선수 중의 선수였다.
* * *
이튿날 새벽.
연일 이어지는 강행군에도 단원들은 지칠 줄을 몰랐다. 몇몇은 정해진 훈련 시간이 아님에도 개인 단련에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다.
“다들 모였나?”
일찍이 모습을 비춘 에드먼드가 단원들을 불러 모았다. 오늘은 어떤 극악무도한 훈련을 이어 갈는지, 모여든 단원들의 얼굴에 긴장이 서렸다.
“오늘 훈련은 페트로 산맥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30분의 개인 정비 시간을 가지고, 다시 이곳으로 모이도록.”
이어진 에드먼드의 말에 단원 중 일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페트로라면 산세가 좀 낮지 않나? 뭐 잡을 것도 없고, 간간이 불곰이랑 그 침 질질 흘리는 달팽이가 전부잖아?”
“이참에 바깥바람도 쏘이고 좋지. 우리 대장께서 허투루 뭘 하시던가? 괜히 시간 죽이지 말고 짐이나 챙기러 가세. 간만에 불곰 사냥이나 해 보자고.”
가만히 대화 내용을 듣던 멜빈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이내 도전적인 걸음으로 에드먼드 앞에 섰다.
“공작님.”
“왜?”
“갑자기 페트로 산맥은 왜 가시는 겁니까? 거기라면 얼마 전에 저희 쓸어 놓고 왔잖아요.”
“할 일이 있어.”
“그러니까 무슨 할 일이요. 단원들은 불곰 사냥하러 간다고 신이 났는데, 저희가 씨를 말려 놨잖습니까?”
이어진 물음에 에드먼드가 정비 중이던 장검을 내려놓았다. 화염을 닮은 붉은 동공이 오롯이 멜빈을 향했다.
에드먼드가 말했다.
“죽이지 않는 연습.”
“죽이지 않는 연습이라뇨? 그게 무슨……?”
“이번 경합에서만큼은 피로 대결하지 않을 거다. 패배했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게 되는 건, 전쟁터만으로 충분해.”
“그럼 훈련 방식은요? 계획이 따로 있으신 겁니까?”
“내가 계획 없이 움직이는 거 봤나?”
“제가 알던 랜돌프 공작께서는 그렇지 않으셨다만, 요즘 에드먼드 경께서는 그런 경향이 없지 않아 있으셨죠.”
“까불지.”
“그렇다고 제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잖습니까? 부쩍 이상하십니다. 의아할 정도로 충동적이시라고요. 부인과 계실 때는 더더욱 그러시고요.”
“멜빈.”
이어진 항변에 에드먼드가 낮게 호명하며 두 눈을 번뜩였다.
“부쩍 말이 많아진 걸 보면 요즘 좀 한가한 모양이야. 아무래도 훈련량을 더 늘……!”
“아차차! 제가 석궁을 챙긴다는 게 깜박했지 뭡니까?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훅 끼친, 검은 아우라에 멜빈은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여기서 훈련량을 더 늘렸다간 경합을 치르기도 전에 송장이 될 게 분명했다.
* * *
약 2주 만에 오른 페트로 언덕은 끈적한 점액질로 가득했다. 그사이 몸을 키운 달팽이 무리는 지천으로 널렸고, 먹성을 자랑하듯 푸르렀던 나무 덤불은 가지만 남긴 상태였다.
“하여간 자이언트 놈들. 지저분한 건 세계 최강이라니까.”
“누가 이 잡것들 싹 잡아가 주면 좋겠구먼, 매번 숲이 더러워지니 고역이야.”
모여 있던 기사단 단원들이 흐물거리는 거대 생물체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따금 들려오는 “미유웅!” 소리는 숙련된 단원들도 소름 돋게 했다.
“적어도 열 마리는 되겠군.”
북적이는 단원들과 달리, 전방에선 랜돌프 공작이 가만히 수를 헤아렸다. 무리 생활을 하는 자이언트 달팽이의 특성 덕분에 일이 수월하게 됐다.
“제발, 에드먼드……!”
자연스러운 제 행동에 에드먼드는 자책하며 이마를 짚었다. 대체 왜 이런 생고생을 하려는지 스스로조차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하지만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되돌리기에는 늦었다.
‘음…… 최소 백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