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화
돌아오는 마차 안은 적막과 고요, 침묵 그 자체였다. 차라리 무슨 말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무표정한 에드먼드의 얼굴은 속뜻을 읽기 어려웠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폭탄 발언을 한 거지?’
제국 내 누구보다 막대한 영향력을 가졌으나 랜돌프는 과시하는 걸 즐기지 않았다.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피에 미친 살인귀’라는 오명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늘 몸을 낮추고 경계했다. 그런 그가 단원들을 이끌고 전면전에 나섰다?
‘이건 그냥 다 조진단 거지.’
“저기…….”
어색한 분위기를 환기하려 입을 열던 찰나였다. 줄곧 침묵하던 에드먼드가 말미를 자르곤 제 할 말을 던졌다.
“혹시라도 오해할까 하는 말인데, 당신 때문은 아니야.”
갑자기?
나는 두 눈을 깜박이며 맞은편을 바라봤다. 허공에 얽힌 시선과 함께 에드먼드가 “흠흠.” 마른 목을 긁었다.
“순전히 나와 내 기사단의 명예를 위해 제안했을 뿐이지, 당신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해야 할 것 같아서.”
굳이 안 해도 될 이야기를 먼저 하는 걸 보아,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삶의 지혜는 오늘도 일맥상통이었다.
‘하여간 귀엽기는.’
나는 눈살을 가늘게 접으며 샐쭉 미소 지었다. 그러곤 재빨리 남편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덥석! 두툼한 팔뚝을 망설임 없이 붙들자, 에드먼드의 동공이 허공을 향했다. 꽉 물린 아래턱은 어쩐지 금욕적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질투가 났어요? 대뜸 한판 뜨자고 이야기할 만큼?”
“질투는 무슨. 당신이 이럴 것 같아 미리 얘기한 것뿐이야.”
“그렇다기엔 여보 눈빛이 너무 진심이었는데요?”
“내 눈빛이 왜. 평소랑 같았는걸? 다를 거 없었어.”
이어진 내 말에 에드먼드가 무심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냉담한 반응과 달리, 아닌 척 힐끔거리는 시선이 피부 위로 고스란히 느껴졌다.
“네네. 그렇다고 치자고요. 나는 또 저~ 멀리 있던 사람이 성난 물소라도 된 것처럼, 달려오길래 나 때문인 줄 알았죠.”
놀리는 듯한 내 말에 에드먼드가 소리 없이 으르렁댔다. 그러고는 새초롬한 고양이처럼 보이지 않는 선을 그었다.
“결론은 이건 오롯이 내 결정이고, 내 기사단의 문제이니 당신은 신경 쓸 필요 없단 거야.”
“글쎄요. 거기 있던 사람들도 같은 생각일는지 모르겠네. 적어도 나는 당신 진심을 봐 버렸는데 어쩌죠? 이렇게 듬직한 남편이 있으니 클로엔 랜돌프, 이정도면 성공한 인생 아닌가?”
나는 눈치 없음을 자처하며 부러 모르는 척, 에드먼드의 옆에 찰싹 들러붙었다. 조그만 머리통을 드넓은 어깨에 비비적거리던 찰나.
“클로엔.”
엄한 목소리와 함께 길쭉한 손가락이 이마에 닿았다. 뭉뚝한 손끝을 꾹 누르며 밀어내려 했으나,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까는 잘만 있었잖아요. 조금만 이러고 있을래요. 내내 긴장해서인지 힘들었단 말이에요. 몸이 천근만근이라고요.”
“잠깐만이야.”
그럴싸한 핑계였는지, 에드먼드가 낮게 한숨 쉬며 자세를 바로 했다. 가까워진 거리만큼이나 온기가 돌았다.
‘왜 잠이 오냐…….’
전에 없던 안정감 때문인지 눈꺼풀이 무거웠다. 또렷하던 시야는 물에 푼 듯 흐릿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닿은 팔 위로 무게감이 더해졌다. 얄밉게 조잘대던 조금 전이 무색하게 클로엔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힐끔, 곁눈질하던 에드먼드가 조금씩 흔들리는 작은 몸을 제품에 고정했다. 한결 편해진 자세에 “흠냐……” 클로엔의 입에서 기분 좋은 신음성이 나왔다.
“깨면 시끄러우니까.”
괜한 민망함에 에드먼드는 아무도 듣지 않는 변명 같은 이유를 중얼거렸다. 말과 달리 미세하게 올라간 입꼬리는 기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지만 말이다.
* * *
‘급히 살펴야 할 문건이 있으니 오늘은 본래 방으로 가서 자는 게 좋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