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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편과의 이혼을 거부합니다 (51)화 (51/107)

제51화

나는 미간을 구부리며 입술을 툭툭 두드렸다.

“어떤 게 걸리시는데요? 제가 볼 때는 저희 계획에 가장 적합하신 분들 같은데요!”

“봐 봐, 리하프랑 릴리스는 하루에 파티를 세 탕씩 뛰어대는 체력 광이지만, 저분들은…… 사교계에서도 그 명성이 옛날 같지 않으시니, 무턱대고 줄을 대기에는 불안하다는 말이지. 전략적으로.”

“그런 거라면 괜한 걱정이세요. 그래도 구관이 명관이라고, 아직 두 분을 능가할 만한 귀부인은 없으시거든요.”

그사이 자리에서 일어난 테리샤 부인과 모리 부인이 한데 모였다. 심드렁한 나와 달리 샤샤는 두 눈을 반짝이며 호언장담했다.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놀라운 일이 벌어질 테니.”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부인을 기점으로 흩어져 있던 귀부인들이 하나둘 결집했다. 그 모습은 마치 여왕벌을 따르는 일벌과 같았다.

그 모습을 본 난, 본능적으로 느꼈다. 샤샤의 말마따나 저기야말로 진정한 블루오션임을.

“샤샤, 가서 물건 꺼내 와.”

곧이어 오만했던 입술이 틈을 벌렸다.

모여든 귀부인들을 보며 나는 어깨를 옹송그린 채 염탐했다. 중앙에 놓인 테이블을 기점으로 왼쪽에는 테리샤 부인이, 오른쪽에는 모리 부인이 앉았다.

착석과 동시에 모여 있던 귀부인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정확히 반으로 갈라졌다.

‘모세의 기적이 여기 있었네.’

놀라운 단합력에 나는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각자 자리를 정비하고, 추종자로 보이는 이들이 하나둘 목소리를 높였다.

“어머, 테리샤 부인! 이번에 후작님과 온천으로 여행 다녀오셨다더니 피부 좋아지신 거 보세요. 아기라고 해도 믿겠어요.”

“오늘 차고 오신 목걸이도 못 보던 것 같은데, 어쩜 이리 테리샤 부인께 잘 어울릴까요~.”

이에 질세라 오른편에 있던 귀부인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모리 부인을 추켜세웠다.

“피부라면 저희 모리 부인을 빼놓으시면 안 되죠. 살결이 어쩜 이리 고우신지. 진주가 따로 없으시다니까요.”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화제의 주인공들은 새초롬히 미소 지으며 찻물을 홀짝였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을 찬찬히 훑으며 고민했다. 입으로는 웃고들 있으나 묘하게 싸늘해진 공기가 예민한 촉을 자극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상황을 살폈다. 이어지는 대화들도 대체로 비슷한 루틴을 반복하는 걸 보아, 엄밀한 견제였다.

이거 딱 전쟁 발발 전인데?

나는 곧장 옆에 있던 샤샤를 불렀다. 

“샤샤, 저 둘이 진짜 친한 게 맞아?”

“그럼요. 30년 우정을 나눈 오랜 친구 사이신걸요.”

“그렇다기엔 네가 보기에도 저 웃음이 가짜 같지 않니?”

“그렇게 말씀하시니 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잘 봐 봐. 묘하게 상대를 칭찬하면 눈살이 구겨진다니까?”

“설마, 그것 때문일까요?!”

샤샤가 무언가 생각난 듯 눈을 반짝였다. 그러고는 재빨리 주변을 경계하며 귓가에 속삭였다.

“2년쯤이었나, 바르헨 후작과 모리 부인이 젊었을 때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 소문이 잠시 돌았거든요. 나중에 오해라고는 했는데, 그것 때문인지 한동안 두 분 사이가 소원했었죠. 그래도 나중에는 두 분이 잘 화해하셨다던데.”

“보는 눈이 있으니, 그런 척은 했는데 서로 앙심이 남아 있다…….”

나는 대립 중인 두 부인을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언제가 타이밍이려나…….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하는데.”

짧게 읊조린 난 일부러 몸을 낮추며 잠입 시기를 노렸으나, 분위기는 더욱 심각해졌다.

‘이러다간 혼자 독박 쓰기 딱 좋겠어.’

살벌해진 공기에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뒷걸음질 쳤다. 상황을 보아 오늘은 날이 아닌 게 분명했다.

“잠시만요~. 음식 지나갑니다.”

그렇게 조금씩 무리와 멀어지던 찰나, 등 뒤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내 음식을 잔뜩 실은 철제 트롤리가 클로엔의 허리를 가격했다.

“뫄아악!”

“부, 부인!!”

우스꽝스러운 괴성과 함께 무리의 정중앙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정말이지 재앙이었다.

예기치 않은 침입자의 등장에 모여 있던 귀부인들의 시선이 날카롭게 변했다. 이따금 손에 들린 부채 뒤로는 불쾌한 표정이 깃들기도 했다.

“짜…… 짜잔.”

쏟아진 이목에 나는 양팔을 벌려가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 많고 많은 말 중에 하필 왜 ‘짜잔’ 인지 스스로 묻고 싶었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계속됐다. 이미 체념한 듯, 샤샤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랜돌프 부인이 아니던가요?”

이 무슨 천사의 하모니인가, 조금 전까지 설전을 펼치던 모리 부인이 먼저 알은척을 해 왔다. 나는 최대한 밝게 미소 지으며 부인과 시선을 맞췄다.

“아하하, 모, 모리 부인. 안녕하셨어요. 제가 너무 느닷없이 들이닥쳤죠? 뒤에서 누가 저를 미는 바람에.”

“으음, 변명치곤 참 성의가 없네요. 사람이 조금 변했다는 말은 들었는데. 역시나 그 인성이 어디 가지는 않죠.”

무슨 말이냐는 듯,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깜박였다. 눈치를 보아 이 파멸의 주둥이가 또 업을 쌓아 놨던 모양이다.

모리 부인이 말했다.

“머리 빈 귀족이랑은 말 한마디도 섞고 싶지 않다며, 내 남동생에게 말하던 패기는 어디로 가고, 여긴 무슨 일이실까요?”

왜 불길한 예감은 빗겨 나가지를 않는 걸까? 절망의 연속에 나는 정말이지 울고 싶었다.

클로엔 랜돌프, 이 한결같은 계집애는 안팎으로 적을 만들지 않고는 배기지를 못했나 보다. 어쩜 이렇게 여기저기 업보를 만들어 뒀는지.

“하하하, 제가 한때 그랬었죠. 하지만 다 철모르는 어린 치기였답니다. 이제 와 나이가 하나둘 들어가니 조화와 공생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깨달았달까요……? 저는 정말이지, 평화를 사랑한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떠들어 댔으나, 돌아온 건 멸시뿐이었다.

‘그래…… 나도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허허, 헛웃음을 지었다. 이내 마지막 키를 꺼내 들어야 할 때라며 스스로 다짐하던 그때, 또 한 번의 구세주가 등장했다.

“어린 치기에 그럴 수 있죠. 누구나 실수는 하는 거니까. 그릇된 행동을 반복하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거죠. 안 그런가요, 랜돌프 부인?”

매정한 모리 부인을 나무라듯 테리샤 부인은 인자한 미소와 함께 차를 건넸다.

‘남편 바람기도 용서했다더니, 진정한 성인군자시구나.’

하해와 같은 테리샤 부인의 인심을 느끼며 무릉도원이 있다면 이곳이 아닐까, 잠시 생각했다. 발걸음은 자연스레 왼편을 향했다.

“그 말씀이 다 옳으세요. 제가 참 많이 부족했죠. 이제라도 상처받으신 분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려고요.”

나는 부러 두 눈을 글썽이며 악어의 눈물을 훌쩍였다. 이따금 젖은 눈가를 손등으로 찍어 낼 때면 테리샤 부인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주억이기도 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제가 여러분께 보여드리려고 아주 귀한 걸 가져왔는데…… 한번 보시겠어요?”

달라진 분위기에 쐐기를 박듯, 나는 회심의 일격을 가했다. 그러곤 짝짝! 마른 손뼉을 두드리며 샤샤에게 눈짓했다.

“쀼쀼!”

미약한 울음소리와 함께 천에 쌓인 케이지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행여 답답하지는 않을까, 최대한 얇은 천을 덧대 놓았으나 그 속이 보이지는 않았다.

“소리가 나는 걸 보니, 안에 뭐가 있는 것…… 같은데?”

“랜돌프 부인이 우릴 놀리려는 건 아니겠죠?”

“설마 두 분을 모시고 그런 장난질을 칠까 봐요. 귀한 것이랬으니 응당 그렇겠죠.”

정체불명의 소음에 주변에 있던 귀부인들의 시선이 기대 반, 긴장 반으로 물들었다.

“혹시 여러분들 고슴도치라는 걸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네요. 아주 귀한 영물이거든요.”

부러 흘러내린 백금색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 가며 새초롬히 미소 지었다. 곧이어 옆에 있던 테리샤 부인이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고슴도치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군요. 그런데 이 조그만 공간에 들어 있는 건가요? 영물치고는 아주 작은 모양이죠?”

“그렇답니다. 직접 보시면 정말 깜짝 놀라실 거예요. 너무 앙증맞거든요.”

나는 고개를 선선히 끄덕이며 가린 천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내, 망설임 없이 흰 천을 걷어 냈다.

“세상에, 저 쥐새끼는 뭐예요?”

“그냥 쥐새끼도 아니고 등 뒤에 가시가 돋았는데요?!”

놀란 부인들이 소리를 낮추며 말을 전했으나 들리지 않았다.

“오구, 우리 쀼. 안에서 많이 힘들었쪄요. 언니가 미안해.”

위로와 달리 기분이 상한 모양인지, 손톱만 한 손바닥이 케이지 창살을 잡고 섰다. 그러고는 “쀼!!” 앙칼진 울음소리와 함께 삐죽 가시를 세웠다.

그 모습이 마치 지옥에서 건너온 사천왕을 닮아 있었음을 클로엔은 이번에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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