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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편과의 이혼을 거부합니다 (50)화 (50/107)

제50화

“에드……먼드?”

어쩐지 꼬여 버린 상황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뒷걸음질 쳤다. 그리곤 제 결백을 증명하듯 에드먼드의 옆에 찰싹 붙었다.

‘나는 오징어랑 바람이 날 생각이 추호도 없어.’

나는 에드먼드의 허리를 양팔로 감싸 안으며 각오를 다졌다. 평소라면 질색을 하며 떨어지라 말했겠지만, 오늘만큼은 그 반응이 달랐다.

“말도 없이 먼저 가면 어떡하지? 없어진 줄 알고 한참을 찾았잖아. 걱정되게.”

다정한 말과 함께 에드먼드의 입술이 작은 손등에 닿았다. 간질거리는 감각에 클로엔의 양 볼이 터질 듯 달아올랐다.

달콤한 기운을 내뿜는 랜돌프 부부와 달리, 요제프의 시선은 싸늘하게 굳었다. 이따금 이를 아득 물며 화를 삭이기도 했다.

“세상에, 랜돌프 내외의 사이가 썩 좋아 보이는걸요?”

“아무래도 요제프 경께서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것 같네요.”

주변 귀족들이 수군거리며 세 사람의 대치를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요제프는 분한 얼굴로 에드먼드를 응시했다. 주최자와 참석자라는 신분임에도 흔한 인사치레 하나 오가지 않았다.

경직된 요제프와 달리 에드먼드의 얼굴에는 여유가 흘렀다. 그는 부러 허리에 두른 손을 옥죄며 부부 사이를 과시했다.

‘오늘 꿈이 좋더라니…… 이러려고 그랬구나.’

오만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허리 두르기도 모자라 손등 키스라니 후진 없는 에드먼드식 표현법에 온몸이 흐물거렸다.

‘이런 횡재가 언제 또 올지 몰라. 지금 충분히 즐겨 두자.’

다다른 결론은 명쾌했다. 나는 부러 에드먼드의 탄탄한 어깨에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당신도 참~ 사람 많은 데서 이러면 곤란하다구용.”

검은 속내와 달리 부끄러운 척, 넓은 가슴팍을 콩콩 두드리며 애교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마. 불안하니까.”

그에 화답하듯, 에드먼드는 헝클어진 백금색 머리칼을 손수 정리해 주며 다정히 바라봤다.

‘늑대가 아니라, 백 년 묵은 폭스 녀석인 게 분명해.’

나는 그리 생각하며 두 눈을 가볍게 내렸다. 사랑 넘치는 부부의 모습에 몰려든 구경꾼들의 입에서는 새된 비명이 흘러나왔다.

“파티가 아주 멋집니다. 요제프. 헤슈턴 후작께서 공을 많이 들인 게 보입니다. 장자로서 고생이 많았겠군요.”

에드먼드는 부러 요제프를 하대하며 자극했다. 여유롭게 올라간 입꼬리는 이곳의 진정한 승자가 누구인지 상기시켰다.

“…….”

말아 쥔 요제프의 두 주먹이 모멸감에 떨려 왔다. 오랜 친우이자, 약혼자였던 제 연인을 강탈해 간 것도 모자라, 그 앞에서 모욕까지 줬다.

당장에라도 저 건방진 반쪽짜리 귀족을 벌하고 싶었으나, 보는 눈이 많았다. 살육에 빠진 미치광이와 치정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요제프에게는 퍽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평소보다 약소하다며 원성을 들었는데 다행입니다. 공작께서는 이런 파티에 참석한 적이 많지 않으시니, 되레…… 특별하게 느껴지신 모양입니다. 저로선 다행이랄까요.”

‘저 새끼가. 누가 귀족 아니랄까 봐 웃으면서 엿을 먹이네?’

이어진 대답에 감긴 눈을 부릅뜨며 항변하려던 그때였다. 가소롭다는 듯, 에드먼드가 소리 없이 조소했다.

“누구처럼 남의 돈으로 놀고먹는 일에는 흥미가 없어서.”

“우선순위의 문제겠죠. 주변을 살피느냐, 아니면 휘두르냐.”

고작 몇 마디뿐임에도 두 남자의 신경전이 팽팽했다. 퍽 재밌는 구경에 다수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표정을 보아 멀찍이 서 있는 귀부인께서는 팝콘을 들고 올 기세였다.

“불필요한 이야기가 길었군요. 그럼 전 다른 귀빈들을 살펴야 해서.”

시선을 의식한 듯, 요제프가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대화를 갈무리했다. 그러곤 가볍게 묵례하며 걸음을 내디뎠다.

“우리 아직…… 해야 할 이야기가 남아 있잖아.”

그대로 멈춤 없이 나아갈 거라는 예상과 달리 요제프는 굳이 한 박자 쉬어가며 귓속말을 속삭였다. 손끝을 스친 낯선 온기에 곧장 이마가 구겨졌다.

‘저걸 그냥 주먹을 날려 버려?’

고민하는 사이, 요제프는 저 멀리 모습을 감췄다.

* * *

“음, 이 집이 음식을 잘하네.”

클로엔이 준비된 핑거푸드를 입에 가득 넣은 채 오물거렸다. 한바탕 신나게 춤을 추고 나니 허기가 진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렇게나 맛있으세요?”

그 모습을 조마조마하게 바라보던 샤샤가 말을 붙였다. 맵시가 흐트러진다는 이유로 쫄쫄 굶는 다른 귀부인들과 달리 클로엔은 먹어도 너무 잘 먹었기 때문이다.

“샤샤, 원래 저기압일 때는 고기 앞으로 가야 하는 법이야.”

그런 샤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클로엔은 오늘도 얼토당토않은 말들을 해 대며 샐쭉 미소 지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멜빈이 안 보이네요?”

“화장실에 간 모양이군.”

“그거 오래 앉아 있으면 되레 더 안 좋은데.”

나는 심드렁히 말하며 들고 있던 꼬치에 집중했다. 배불리 식사를 이어가는 나와 달리 에드먼드는 어딘지 불편해 보였다.

빈 음료 잔을 만지작거리며 지그시 입술을 깨무는 모습이 퍽 낯설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수줍게 미소 지으며 에드먼드의 옆구리를 툭, 하고 쳤다.

그러고는 재빨리 옆으로 붙어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는 괜찮으니까 빨리 다녀와요.”

일순 에드먼드의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 퍽 쑥스러운 모양인지, 마주한 시선에는 짙은 경계심이 서리기도 했다.

“……이미 알고 있던 건가?”

잠시 고민하던 그가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어딘지 그 모습이 비장하기까지 했다.

“아까부터 그렇게 티나게 있는데 어떻게 몰라요. 모르는 척하는 것도 정도가 있죠.”

“어디부터 어디까지 알고 있지?”

훅 들어온 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내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남편의 전신을 훑었다.

“음…… 글쎄요. 어디부터 어디까지라고 해야 할까요. 큰 건 아닌 것 같고…… 작은 거?”

답을 들은 에드먼드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는 듯, 남편의 짙은 눈썹이 삐뚜름히 기울었다.

“아까부터 화장실 가고 싶은 거 아니에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저쪽만 보고 있잖아요.”

“뭐, 뭐?”

“에이, 부부 사이에 뭘 그런 걸 부끄러워하고 그래요.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인데. 고민하지 말고 시원~하게 다녀와요.”

나는 일부러 손짓을 더해 가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런 내 적극성과 달리 에드먼드는 아직 내외하는 모양이었다.

“정말 괜찮대도 그러네. 여기 딱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요. 혹시…… 큰 거예요?”

여전히 갈등하는 그를 향해 나는 조심스레 질문을 더 했다. 그런 내 노력이 다다른 건지 에드먼드는 긴 고민 끝에 들고 있던 음료 잔을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오래 걸릴 것 같아.”

* * *

“늦는다더니 진짜 오래 걸리네. 거기도 변빈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연회장 한편에 놓인 휴식용 의자에 앉았다.

“잠깐,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주린 배를 달래고, 몸을 편히 하고 나니 그제야 이곳에 온 궁극적인 목표가 떠올랐다. 이내 손뼉을 가볍게 두드리며 샤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배도 부르고 남편도 없겠다. 슬슬 낚으러 가 보자, 샤샤.”

이어진 내 말에 샤샤가 곧장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러곤 기다렸다는 듯, 품에 있던 작은 수첩을 꺼내 들었다.

“그럼 2차 브리핑 시작하겠습니다. 정면에서 한 시 방향, 테리샤 후작 부인과 가주이신 바르헨 후작님이십니다.”

나는 시선을 돌려 후작 부부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부부 사이가 썩 좋지만은 않나 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교계에서 최고의 입김을 자랑하셨는데, 바르헨 후작의 바람기 때문에 그 명성이 반 토막 났어요.”

“저런. 바람이랑 도박은 손을 잘라도 막을 수가 없는 건데.”

“사교계의 꽃이셨던 분이 남편 덕에 망신살을 뻗치셨으니 얼마나 수치스럽고 분하시겠어요. 그래도 마음을 다잡으시고 후세를 도모하려 노력은 하시는데…… 그게 또 잘 안 되시는 모양이에요.”

“이런, 동병상련이네. 그 마음 내가 또 잘 알지.”

나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선선히 끄덕였다. 이제는 익숙한 반응에 샤샤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제 할 말을 이었다.

“오른쪽에는 모리 백작 부인, 재작년 백작과 사별하시고 큰 우울증을 앓고 계세요. 유일한 즐거움이 있다면 돈 쓰는 거라는데 요즘에는 그마저도 재미가 없으신가 봐요. 듣기로는 최근 재혼에 관심이 많으시대요. 아직 젊으시니, 점점 외로우신 게죠.”

“정리하자면, 이쪽도 저쪽도 관심사는 이성이다.”

“뭐 그런 셈이죠. 인간의 본능을 어디 막을 수 있나요. 전쟁통에서도 싹트는 게 사랑인걸요.”

“다 좋은데 하나가 걸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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