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뭐냐, 이 음습하고 어두운 기운은. 사람 묻기 딱 좋겠는데.’
괜한 기시감에 나는 목을 쭉 빼며 주변을 살폈다. 달리던 마차가 멈춘 곳은, 깊은 산 중턱 어디쯤이었다.
“내리지.”
불안한 내 시선을 보기라도 한 듯, 에드먼드가 운을 띄웠다. 마차 문이 열리고, 커다란 그림자가 아래로 향했다.
“줘.”
말과 동시에 투박한 에드먼드의 손이 시야에 들어왔다. 수줍게 미소 지으며 손을 내밀려던 찰나, 에드먼드가 옆에 있던 바구니를 빠르게 잡아챘다.
‘나 잡아 주는 게 아니었어?’
매정한 태도에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부러 산처럼 부풀린 드레스 자락을 붙든 채, 뒤뚱거리며 내려왔다.
“어휴, 바닥 축축해서 귀한 옷이 엉망이 되게 생겼네.”
“그러길래 차림을 편하게 하랬잖아. 멋 부린다고 꾸물대더니.”
“누가 이런 데 올 줄 알았나요! 나는 어? 전처럼 부티크도 가고 디저트도 한 접시하고 그럴 줄 알았지. 이게 다 뭐야?”
나는 툴툴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하늘 높이 우거진 수풀 때문인지, 더웠던 기운이 한풀 꺾였다.
그래도 시원하기는 하네.
잠시 생각하던 난 어느새 멀어진 에드먼드의 발자취를 좇았다. 작은 오솔길을 따라가자 아담한 통나무집 하나가 보였다.
쾅쾅!
에드먼드는 곧장 문을 두드렸다. 때아닌 소란에 안에서 인기척이 일었다.
“정기 휴일에 대체 누구야!”
벼락같은 호통과 함께 닫힌 문이 열렸다. 곧이어 벌어진 문 틈새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마르스?”
반가운 마음에 나는 한 발짝 가까이 가 알은체를 해 보였다. 물론, 꼭 같은 마음은 아닌 것 같았지만 말이다.
“랜, 랜돌프 공작 부부께서 여기까지는 어떻게……?”
“사람은 물론 동물에도 조예가 깊다고?”
“예, 예. 뭐, 그렇기는 합니다만 두 분이 무슨 일로…….”
“의사를 찾을 일이 진료 말고 또 있나? 일단 안으로 들지.”
당연한 말을 묻냐는 듯 에드먼드가 심드렁히 대꾸했다. 동시에 싸늘하게 식은 붉은 동공이 마르스를 향했다. 집요한 시선에 마르스는 마지 못해 길을 터줬다.
“어머, 여기 너무 아기자기하다. 닥터 마르스께서 취향이 보기와는 다르게 소녀 같으시네요.”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진한 공작 부인은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부인의 검진을 담당한 이후, 마르스는 대상 없는 악몽에 시달렸다.
행여 포악한 랜돌프 공작이 제 진단에 악의를 품어 꽥하고 죽여 버리지는 않을까, 뭐 그런 걱정 때문에 말이다.
“생각보다 잘 꾸며 놨군. 근데 왜 이리 변두리로 왔지? 찾는 데 오래 걸렸어.”
별것 아닌 말들이 마르스에게는 살인 예고로 들렸다. 왜 사람 번거롭게 꽁꽁 숨어들었냐며 당장에라도 제 멱살을 잡지는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 그게…… 도심 생활이 조금 질려서 말입니다. 하하.”
“좋은 실력을 이런 데서 썩히는 건 퍽 아까운 일이야.”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닥터 마르스가 속에 든 말을 숨기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런데 정말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십니까? 부인께 필요한 약들은 인편으로 빠짐없이 보냈던 것 같은데, 하하.”
“건강 검진을 좀 받으려고.”
“건강 검진이요? 두 분 중 어느 분께서……?”
되묻는 질문에 에드먼드는 조용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사뭇 웃는 낯짝이 저리도 무서울 수 있구나, 마르스는 생각했다.
“진찰해. 하나도 빠짐없이. 할 수 있는 건 모두.”
말과 동시에 에드먼드가 들고 있던 케이지를 올려놓았다. 입구를 열자 가시가 삐죽 솟은 괴생물체가 도도도, 기어 나왔다.
“쀼?”
테이블 위에 놓인 정체불명의 괴생물체를 보며 마르스는 고민에 빠졌다. 대뜸 건강 검진을 받으러 왔다는 것도 황당한데, 영물이라며 가시가 삐죽 솟은 쥐새끼를 데려왔다.
“흠…….”
무언가 이상한지, 유심히 살피던 마르스가 목을 긁었다.
“왜요? 뭐가 이상해요?”
“그게, 음…….”
이어진 클로엔의 물음에 마르스는 쉬이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저 말없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미간에 힘을 주었다.
“아, 거참 답답하네. 뭐가 문젠데요. 말을 해야 알지, 사람 궁금하게 정말.”
“아무래도 조금 이상합니다.”
아리송한 답변에 나는 두 눈을 끔벅이며 다음 말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마르스는 뜸을 들였다.
‘이러다 숨넘어가겠네.’
나는 얼굴을 왈칵 구기며, 답답한 가슴을 팡팡 쳤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남아 있는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를 때쯤, 마르스가 말문을 열었다.
“제 추측입니다만…… 아무래도 사람 말을 알아듣는 것 같습니다.”
무심하던 에드먼드의 동공 위로 이채가 서렸다. 곧장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굳은 표정으로 성큼 다가오던 그때였다.
“에?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고요? 와! 이거는 서커스에 나와야 하는데. 동물이 사람 말을, 사람 말을 알아듣는 게, 이게 말이 되나? 그리고 또? 그리고 또 뭐 있어요?”
꾸밈 하나 없는 단순한 반응에 에드먼드는 헛웃음이 나왔다. 삽시간에 가까워진 거리에 닥터 마르스가 뒷걸음치며 하던 말을 이었다.
“무척 예민합니다. 아주 날카롭기가 살쾡이 저리 가라예요.”
그 순간, 마른침을 꿀꺽 삼킨 마르스가 에드먼드를 힐끗거렸다는 건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음~ 그렇구나. 성별은? 성별은 뭐예요?”
“암컷입니다. 얼마나 사나운지 배를 까뒤집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물어 버리더군요, 쯧.”
이어진 물음에 마르스가 진절머리 난다는 듯 대답했다. 그러곤 물린 자국으로 넝마가 된 제 손가락을 보며 미간을 구부렸다.
아래에선 사나운 밤송이가 연신 “쀼쀼!”거리며 상한 기분을 토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에드먼드가 품에 있던 금화 주머니를 무심히 내려놨다.
“상태는 어떻지? 전염병이라던지, 마법의 흔적이라던지.”
“흠흠, 다행히도 그런 것들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걸리는 게 있긴 합니다만…… 이거는 뭐, 너무 사소한 문제라.”
마르스가 놓인 금화 자루를 힐끔 살피며 은은히 미소 지었다. 그러곤 쐐기를 박듯, 다음 말을 더했다.
“확실한 건, 틀림없는 영물입니다.”
* * *
돌아오는 마차 안은 실로 평화로웠다. 케이지 안에 든 시끄러운 밤송이. 그 밤송이와 두런두런 시간을 보내는 클로엔, 그리고 그 모습은 개탄스럽게 바라보는 한 남자.
‘어서 오십시오, 찾으시는 게 있으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