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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편과의 이혼을 거부합니다 (40)화 (40/107)

제40화

밤새 내린 비는 그치고, 우중충하던 하늘은 맑게 갰다. 잠자기는 글렀다던 예상과 달리 온몸이 개운했다.

“흠~ 잘 잤다.”

기분 좋은 신음성과 함께 나는 두 팔을 하늘로 쭉 뻗었다. 시원하게 기지개까지 켜고 나니 만족스러움은 배가 됐다.

‘아차, 그이랑 같이 있었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나는 몸을 둥글게 말며 힐끔, 옆자리를 살폈다. 이불 아래가 불룩한 걸 보아 아직 자는 모양이었다.

해가 중천인데 의외네.

“에드먼드?”

나는 부러 콧소리를 섞으며 애교스럽게 불렀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주변은 고요했다. 흔한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자, 괜스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여보?”

다시 한번 불러보았지만,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두툼한 이불을 휙, 하고 젖혔다.

“에라이, 없잖아? 괜히 쫄았네.”

텅 빈 옆자리를 보며 잇몸을 드러냈다. 그사이 침대 아래에 있던 쀼가 울음소리와 함께 기척을 냈다.

“오구오구, 깼쪄요?”

나는 곧장 침대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곤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조그마한 밤송이는 뭉툭한 주둥이를 킁킁거리며 경계했다.

“너도 많이 낯설지? 나도 여기 와서 좀 낯설었는데 그럭저럭 지낼 만하더라고. 더운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그래도 안구 복지가 좋아서 썩 괜찮아.”

당장 저 귀여운 녀석을 번쩍 들고 싶었으나, 나는 여유를 가지고 충분히 기다렸다.

“어제 잠은 잘 잤어? 나는 오랜만에 꿀잠을 잤더니 너무 개운한 거 있지. 비록 목적 달성은 못 했지만 그래도 처음치고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찰나,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작은 발바닥이 느리게 움직였다. 미세한 움직임에 가늘게 접혀 있던 보라색 동공이 커다랗게 변했다.

“옳지, 언니한테 와.”

손바닥 위로 전에 없던 무게감이 느껴졌다. 말랑한 발바닥이 피부에 닿을 때면 절로 엄마 미소가 나왔다.

“배고프지? 조금만 기다려~ 빨리 밥 줄게.”

“쀼?”

내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 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동그란 눈을 끔벅거렸다. 나는 시선을 내려 삐죽 솟은 주둥이를 바라봤다.

“응? 이게 뭐야?”

입가에는 푸릇한 과일 물이 잔뜩 묻어 있었다. 아직 촉촉한 걸 보아 식사를 마친 지 얼마 안 된 듯 보였다.

‘샤샤가 챙겨 준 건가?’

막연한 생각을 이어 가던 찰나,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낭랑한 샤샤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인, 어서 일어나셔요. 벌써 해가 중천에 떴다고요.”

“너도 참 양반은 못 돼.”

“네? 양반? 그건 또 뭐예요?”

제법 익숙해졌는지, 불쑥 튀어나오는 내 헛소리에도 샤샤는 질문으로 응수했다. 그러더니 가져온 짐 바구니를 뒤적거리며 하던 말을 이었다.

“아 참! 제가 어제 공작님 말씀을 듣고 이것저것 챙겨 와 봤거든요. 아직 먹이 안 주셨죠?”

“응? 샤샤 네가 챙겨 준 게 아니었어?”

“네? 뭘요?”

샤샤가 동그란 눈을 깜박이며 새초롬하게 물었다. 말간 표정을 보아 그 말에 거짓이 없는 듯 보였다. 멈춰 있던 보라색 동공이 도르르, 굴러 텅 빈 침대 위를 바라봤다.

* * *

그 시각 에드먼드의 집무실.

원래도 우중충했지만 유독 낮아진 기류에 보좌관 멜빈은 긴장했다. 힐끔, 살핀 제 상관의 얼굴은 말 그대로 아수라판이었다.

“공작님, 많이 피곤해 보이십니다.”

고민 끝에 말을 붙여 보았으나, 랜돌프 공작은 답이 없었다. 그저 피로에 찌든 두 눈을 끔벅이며 에드먼드는 보던 서류에 집중했다.

“부인께서 밤새 괴롭히셨습니까? 혹 일이 틀어지기라도……?”

“고작 같은 방에서 잠만 잤을 뿐인데, 틀어질 일이란 게 있긴 하나.”

“하하. 그, 그렇죠.”

뾰족한 반응에 멜빈이 얼굴을 긁적이며 말을 줄였다. 널찍한 등 뒤로 검은 아우라가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멜빈은 안다. 이럴 때,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는 불똥이 튀고 만다는 걸.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에드먼드가 보던 서류를 옆으로 치우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예? 뭘 말입니까?”

“아니, 그 빌어먹을 밤송이 말이야. 영물이라더니 지능이 보통이 아니야.”

무슨 말이냐는 듯, 멜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침묵했다. 에드먼드가 이를 아득 갈며 두 눈을 번뜩였다.

“내가 그 밤톨 때문에 밤새 잠 한숨을 못 잤다고.”

‘쀼쀼! 쀼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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