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화
‘아까부터 왜 저래 진짜?’
무슨 일에선지, 에드먼드는 줄곧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굴었다. 매서운 시선은 변함이 없었으나, 그 안에 든 심경을 퍽 복잡해 보였다.
“오늘은 안 바쁜 모양이에요?”
“응.”
“어디 갈 곳도 없는 모양이고요?”
“응.”
짧은 대화를 끝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런데 말이야…….”
줄곧 침묵하던 에드먼드가 운을 띄우려던 그 순간, 바구니 안에 있던 고슴도치가 “쀼쀼!” 소리를 내며 앙칼지게 울었다.
“어허, 쀼. 공작님께 그러면 안 되지. 비록 널 버리려 했지만 네 밥도 챙겨 준 은인인데.”
아이를 어르듯, 나는 퍽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인간의 말은 통하지 않는지, 쀼는 보란 듯이 가시를 세웠다.
“쀼쀼!”
에드먼드는 굳은 표정으로 쀼와 눈을 맞췄다. 험악한 분위기에도 쀼는 물러서지 않았다. 울음소리가 거세질수록 날카로운 에드먼드의 시선이 한결 더 사납게 올라갔다.
‘누가 보면 앙숙인 줄 알겠네.’
고작 말 못 하는 소동물과 잡아먹을 듯 신경전 하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나는 입술을 사리물며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괜히 서로 힘 빼지 말고, 이만 돌아가요.”
“아까부터 왜 그렇게 날 보내지 못해 안달이지? 전에는 같이 있자고 노래를 부르더니?”
매서운 그의 시선이 진득하게 달라붙었다. 묘한 기시감에 나는 남몰래 어깨를 떨었다.
‘저거 지금 딱 사감 선생이었는데.’
에드먼드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어디 너 한번 걸려 봐라,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부러 멋쩍게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아니~ 바쁜 사람 붙들어 놓는 것 같아서 그렇죠. 그리고 나도 볼일이라는 게 있고.”
“볼일?”
어서 빨리 말해 보라는 듯, 에드먼드의 눈썹이 사선으로 꺾였다. 낮게 이글대는 붉은 동공 속엔 전에 없던 광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뭐지, 점심을 잘못 먹었나?’
잠시 생각하던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을 이었다.
“뭐 별건 아니고…… 후원에 좀 다녀오려고요. 보시다시피 쀼 집이 너무 허술하잖아요. 비가 이렇게 쏟아지니 어디 나가서 사 올 수도 없고.”
커다란 눈망울이 창밖을 바라봤다. 그녀의 말만 따라 하늘은 온통 비구름이었다. 구멍이라도 난 건지, 빗방울은 점점 거세져 억수같이 쏟아졌다.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 이참에 산책도 할 겸, 겸사겸사 나뭇가지라도 주워 올 생각이죠.”
“나도 같이 가지.”
“엥? 당신이요?”
“그래, 나도. 나도 같이 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버리라고 난리 칠 때는 언제고, 갑자기?”
“당신이 좋아하니까. 정 붙여 보려고.”
들려온 말속엔 영혼이 없었다. 곧장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성큼성큼 입구로 향했다. 어쩐지 달라진 것 같은 포지션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고슴도치는 온도에 예민하다더군. 못 쓰는 담요를 깔고 그 위에 나뭇잎을 층층이 쌓으면 한결 지내기 좋을 것 같아.”
우려와 달리 에드먼드는 제법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작은 라탄 바구니 대신, 이번에는 좀 더 커다랗고 단단한 보금자리를 가져왔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예민한 편이니, 우리가 있더라도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게 좋다더군. 나뭇가지로 덤불 같은 걸 만들어 주면 좋겠어.”
에드먼드는 동물대백과사전이라도 된 것처럼 고슴도치에 대해 줄줄 읊어댔다.
“그 짧은 시간에 이 많은 걸 다 알아본 거예요? 그래 봤자 두 시간 남짓인데?”
“별거 아냐.”
덤덤히 말한 그가 바쁜 손을 연신 움직였다.
‘잘생겼는데 명석하기까지 하면 유죄 아니냐고. 이러는데 어떻게 안 반해? 외쳐! 갓 에디!’
완벽한 남편의 자태에 절로 미소가 새어 나왔다. 나는 부러 옆으로 다가서며 두 눈을 깜박였다.
“와, 나 좀 감동받으려 하는데요? 가뜩이나 멋있는데, 이렇게까지 하면 내가 여보한테서 헤어 나올 수가 없잖아요.”
이어진 내 말에 에드먼드는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반응을 보일수록 더욱 날뛴다는 걸 경험으로 습득한 것이다.
에드먼드는 제법 세심한 손길로 안을 꾸몄다. 투박한 손가락이 후원에서 주워 온 나뭇가지와 나뭇잎 따위를 정성스레 정리했다.
“다 됐군. 이제 옮기면 돼.”
그 말에 난, 들뜬 표정을 바로 잡으며 쀼를 새로운 보금자리에 넣었다. 제법 마음에 드는 모양인지, 연신 가시를 세우며 경계하던 녀석이 “쀼!”하고 울며 그 속에 파고들었다.
내심 뿌듯하기라도 한 걸까? 조각 같던 에드먼드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휘어졌다. 물론 얼마 가지 않아, 빠르게 사라졌지만 말이다.
‘근데…… 멋있는 건 멋있는 거고, 아무래도 이상한데.’
이쯤 되니 에드먼드의 진짜 속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본성이 나쁜 놈이 아니란 건 알았으나, 이렇게 전 뒤집듯 태세를 전환한 건 아무래도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나는 부러 눈을 얕게 뜨며 몸을 붙였다. 물론 가까워진 거리만큼이나 에드먼드가 뒤로 물러서기는 했지만.
“나한테 무슨 할 말 있죠?”
“그런 거 없어.”
훅 들어 온 질문에 에드먼드의 입매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어허, 부부 사이에는 진솔한 대화가 필요한 법이라고 했죠. 어서 솔직히 말해 봐요. 용건도 없는 사람이 굳이 여기까지 와서 나랑 나뭇잎을 주워요?”
이어진 물음에 에드먼드는 쉽사리 답을 내놓지 못했다. 나는 부러 포위망을 좁혀 가며 에드먼드를 압박했다.
“대체 뭔데 그렇게 말도 못 하고 혼자 빙빙 헤매고 있냐고요. 아직도 내가 못 미더워요? 이참에 멜리사가 보낸 편지까지 다 씹어 먹었어야 했나.”
“제발 그런 끔찍한 소릴,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 마.”
“진심인데.”
“그러니까. 진짜 다 씹어먹을 것 같으니까 하지 말라고.”
“당신이 이렇게 답답하게 구니까 내가 그러는 거 아니에요. 오죽하면 종이를 먹었을까. 됐고, 하고 싶은 말이 뭔데요?”
일순 에드먼드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휴, 낮게 신음하던 그가 마침내 결심한 듯 입술을 꾹 다물었다.
“오늘부터 함께 있지.”
“지금도 같이 있어요.”
뚱딴지같은 말에 나는 고작 그거냐는 듯, 심드렁히 말했다.
“계속 같이 있자니까?”
“지금도 같이 있는데 뭘 더 같이 있어요, 당신 아까 점심쯤 와서 벌써 몇 시간째 여기 있는지 알아요? 덕분에 나는 낮잠도 못 자고 맛있는 디저트 타임도 포기했다고요. 오늘 레틴이 컵케이크 해 준다고 했는데…….”
놓쳐 버린 디저트 타임을 되새기자니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무료한 이곳에서도 제 나름의 계획이 있었거늘. 때아닌 불청객의 등장에 모든 게 엉망이었다.
‘이게 다 멜리사 그 계집애 때문이야. 여태 가만히 있다 갑자기 찾아오길 왜 찾아오냐고. 꿈에라도 마주치지 말아야지.’
그리 생각한 난, 말없이 미간을 구겼다. 동시에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에드먼드의 잇새에서 하, 어이없는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러니까 내 말은 신경이 쓰인다고.”
퍽 다정한 말임에도 에드먼드는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무심히 말했다.
“이번에야 고슴도치로 끝났지만, 당신한테 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아.”
“음…… 아무래도 그렇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무작정 경비병을 늘리는 것보단 내가 곁에 있는 게 당신한테도 더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말과 동시에 클로엔의 두 눈이 빠르게 번뜩였다. 넝쿨째 굴러들어 온 호박을 이대로 놓칠 수는 없었다.
비록 매몰차게 거절당할지언정, 제 의견을 확실히 피력해야 하는 시점임이 분명했다.
“그럼 이참에 우리 침대 합치는 건 어때요? 내가 생각보다 엄청 가녀리거든요. 밤마다 무서워서 화장실도 못 가고 또 갑자기 일어나면 어지럼증이 돌기도 하고.”
“그래. 그렇게 하지.”
“그리고 또 몽유병도 조금 있어서 언제 밖으로 뛰어나갈지 몰……! 잠깐, 뭐라고요? 뭘 그렇게 하자고요?”
놀란 두 눈이 에드먼드를 향했다. 가뜩이나 커다란 눈망울이 연신 범위를 넓혀갔다.
“그, 그러니까 지금 당신이 나랑 같이 침대를, 살을……!”
혹여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다시 한번 물었다. 그리고 마침내 인고의 시간이 끝났다.
“하자고, 합방.”
“지금 합, 합방이라고 한 거예요? 남자랑 여자랑 이렇게, 이렇게 막 하는 그 합방!?”
말과 동시에 가녀린 두 다리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볼을 꼬집어 보기도 했지만.
“뭐야…… 꿈 아니잖아?”
멍한 시선이 에드먼드에게 꽂혔다. 덤덤히 말하던 조금 전과 달리 성큼,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입구로 향했다.
“오늘 밤부터야.”
짧은 울림과 함께 에드먼드가 빠르게 멀어졌다. 무심히 들어 올린 한쪽 입꼬리가 퍽 자극적이었다.
오, 주여…….
믿을 수 없는 상황에 가녀린 두 다리가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러곤 은인을 찾듯, 떨리는 보랏빛 동공이 아래로 향했다.
“자식 운을 준다더니, 정말이구나……? 세상에 이렇게 용할 수가 있나.”
환희에 찬 나와 달리, 조그마한 밤송이는 연신 “쀼쀼”거리며 가시를 삐죽 세웠다. 그 모습이 마치 흑과 백처럼 극명히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