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화
하찮은 울음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입구로 향하던 멜빈의 발걸음이 완전히 돌아섰다.
“잠깐, 무슨 소리가…….”
“그럴 리가요. 잘못 들었겠죠.”
곧장 대답했지만, 이미 상황은 벌어졌다. 예리한 멜빈의 눈동자가 응접실 곳곳을 살폈다.
“아닙니다. 분명 들었습니다. 분명, 쀼! 하는 소리가 났는데.”
느릿한 발걸음이 기어코 두 사람의 앞까지 다가왔다. 조금만 고개를 기울인다면, 등 뒤의 생물체가 발각될 게 분명했다.
“하하, 아니래도 그러시네.”
억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오리발을 내밀던 그 순간, 다시 한번 “쀼!” 미약한 울음이 등 뒤로 퍼졌다.
‘이번 생은 망했어. 망해도 아주 단단히 망했다고!’
머지않은 미래가 머릿속을 빠르게 스쳤다. 에드먼드 하나도 버거운데, 의심 종자가 둘이나 따라붙을 생각을 하자니 앞날이 절로 컴컴했다.
멜빈의 발걸음이 기어코 창가를 향했다.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나을 거다. 나는 아랫입술을 짓이기며 이마를 부여잡았다.
“그러니까 그게 말이죠. 이게 내가 데려온 게 아니라…….”
사태를 수습하려, 무거운 입술을 벌려 보았지만 별다른 변명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아랫입술만 잘근대던 그때였다.
“세상에나.”
소리의 주인공을 찾은 멜빈이 벌어진 입술을 유지한 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쩐지 날카롭던 그의 눈가가 감격에 젖은 듯했다면 착각일까?
나는 미간을 좁히며 창가를 응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토록 원리원칙주의자 같던 멜빈이 두 사람을 향해 울먹였다.
“고슴도치……! 이건 고슴도치가 아닙니까?”
고귀한 무언가를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멜빈이 두 눈을 반짝이며 코 평수를 넓혔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려 커다란 눈망울을 연신 깜박였지만, 도통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쪽은 하급 몬스터라며 당장에라도 죽일 것처럼 달려드는 반면, 다른 한쪽은 아주 소중하다는 듯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하는 간극을 벌이고 있으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난감한 노릇이었다.
힐끔 살펴본 에드먼드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했다. 그가 짙은 눈썹을 연신 씰룩이며 말문을 열었다.
“멜빈, 자네도 이 하급 몬스터를 알고 있는 모양이지?”
“공작님! 하급 몬스터라니요! 무슨 그런 소리를 하십니까.”
멜빈이 공작을 나무라며 서둘러 답했다. 단호하다 못해 칼 같은 보좌관의 반응은 굳어 있던 그의 얼굴을 더욱 단단히 만들었다.
“흠흠, 그럼 하급이 아니면 뭐지?”
민망한 듯 에드먼드가 마른 목을 가다듬으며 질문을 덧붙였다.
“영물입니다, 영물! 서식지인 서대륙에서도 찾기 힘든 영물 중 하나죠. 이 귀한 것을 살아생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멜빈이 두 눈을 반짝이며 벅찬 숨을 내쉬었다. 에드먼드의 적안이 빠르게 나를 향했다.
풀 죽은 입꼬리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그것 보라는 듯, 기고만장한 내 모습에 에드먼드가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럴 리가.”
그래, 그럴 리가 없었다. 이 요망한 밤송이가 영물이라니, 말도 안 되는 주장이 분명했다.
일평생 고슴도치라는 동물은 들어 본 적도 없을뿐더러, 온몸을 가시로 무장한 모습은 영물보다는 괴물에 가까웠다.
‘저 불길하고 위협적인 밤송이가 영물? 불법 마법단에서 불법으로 만든 마물이겠지.’
적의에 찬 공작의 눈동자가 클로엔을 지나 둥근 그림자로 향했다.
조금 전까지도 가시를 세우던 사나운 생물체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찔린 손바닥이 홧홧하게 달아오르며 아릿한 통증이 맴돌았다. 좁쌀만 한 검은 눈동자가 저를 향한 채 깜박였다. 순간 가지런하던 그의 미간이 보기 싫게 구겨졌다.
경계라도 하듯, 온몸의 가시를 세운 채로 “쀼쀼!” 기괴한 소리를 내는 밤송이의 모습은 정말이지 최악 중의 최악이었다.
당장 저 하찮은 생물체를 눈앞에서 치워 버리거나 영영 보이지 않게 없애 버리거나 둘 중 하나는 해야 마음이 후련해질 터.
“전혀 들어 본 적 없는 이야기인데? 근거 없는 뜬소문 아닌가?”
에드먼드가 내려진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서늘한 목소리가 멜빈을 향해 경고등을 울렸다.
하지만 신은 언제나 공평했다. 애석하게도 그의 보좌관 멜빈은 업무 처리 능력은 특출났지만, 융통성과 눈치 따위는 눈곱만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럴 리가요! 예로부터 고슴도치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영민한 동물입니다. 워낙에 개체 수가 적다 보니,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뿐더러, 일부의 기록에만 남겨져 있습니다. 공작께서도 이런 이유로 듣지 못하셨을 테죠.”
말과 동시에 클로엔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모든 상황이 나와 저 작은 밤톨을 위해 돌아가고 있었다.
영물이라니, 이 얼마나 훌륭하고도 그럴싸한 구실이란 말인가.
‘나도 살고, 쟤도 살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이런 게 일거양득이지,’
“어머나! 이 작은 손님께서 영물이시군요. 우리 보좌관께서는 정말 모르는 게 없으시네요.”
나는 커다란 눈망울을 가늘게 접어 가며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멜빈이 흐뭇한 입꼬리를 애써 부여잡으며 사무적인 목소리로 답했다.
“흠흠, 과찬이십니다. 물론 황실 아카데미에서 수석 졸업을 한 저이지만, 늘 부족한 학문을 쌓기 위해 노력……!”
길어지는 그의 말을 잘라 내며, 재빨리 질문을 덧붙였다.
“아, 그러면 영물인 고슴도치를 무척 귀하게 여겨야겠네요? 이를테면, 죽인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일 테고요?”
“죽이다니요, 말도 안 되는 소리죠. 누가 그런 무식한 행동을 한단 말입니까?”
동시에 에드먼드의 미간이 보기 싫게 구겨졌다. 보란 듯이 혀끝을 내밀어 보이는 클로엔의 모습에 울화가 치미는 그였다.
“어머 그렇구나, 그러면 제가 영물이신 고슴도치 님을 키워도 문제가 없겠네요?”
“당연히 키우셔야죠. 영물인데! 부인께서 그런 생각을 하신다니, 정말이지 훌륭하십니다.”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과 달리 에드먼드는 침묵하며 말을 아꼈다.
이성과 합리 따위 던져 버리기라도 한 것인지, 그가 솟구치는 짜증을 애써 찍어 누르며 입을 열었다.
“공작 부인과 보좌관이라는 사람들이 아주 죽이 잘도 맞는군? 출처도 확인되지 않은 물건을 내 저택에 들인다,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야…… 영물이니까요.”
멜빈이 두 눈을 끔벅거리며 청렴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찌나 깨끗한지, 그대로 사고 회로도 비어 버린 것은 아닌가 걱정스러울 지경이었다.
“아, 논리라고는 찾을 수 없는 그런 이유 하나만으로 이런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저 빌어먹을 게 대체 어디서 들어왔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한가?”
에드먼드가 두 눈을 사납게 번뜩이며 으르렁댔다. 날카로운 질문에 멜빈은 조용히 입술을 쭈뼛대며 대답을 아꼈다.
그러면 그렇지.
승기는 다시 한번, 그에게로 향했다. 에드먼드가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클로엔을 응시하던 그때였다.
무언가 생각난 듯, 멜빈이 “아!” 외마디 외침과 함께 손뼉을 마주쳤다.
“며칠 전에 겨울에 쓸 땔감이 대량으로 들어왔지 않습니까? 아마도 그때 들어온 게 아닐까요? 나뭇더미에 섞여서 말입니다.”
“그렇네! 맞네요, 맞아. 그 땔감들이 후원에도 있었죠?”
“네. 맞습니다, 부인. 창고 공간이 모자라서 일부 물량들을 후원에 잠시 뒀었습니다.”
“그때! 우리 둘이 산책하던 날, 후원에서 소리 났었잖아요. 기억 안 나요?”
클로엔의 두 손이 허공에서 맞부딪히며 말했다. 에드먼드는 말없이 기억을 더듬었다. 곧이어 무언가 생각난 듯, 눈살을 찌푸렸다.
요정 나무를 잘라 내라던 그날, 무언가 있는 것 같다며 호들갑을 떨어대던 클로엔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빌어먹을.’
시시각각 변하는 에드먼드의 모습에 클로엔이 히죽이며 뒷말을 덧붙였다.
“아, 역시! 그때부터 있었던 거네.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니까? 아니, 제가 얼마 전부터 뭔가 낯선 시선을 느꼈었거든요. 이상한 소리도 나고, 공작께도 말씀을 드렸는데 통 믿지를 않더라고요.”
“그러셨습니까? 서대륙에서 오기까지 애를 먹인 물건들이었는데, 이런 귀한 것이 들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멜빈이 활짝 미소 지으며 맞장구를 쳤다. 모두가 하나로 뜻을 모은 지금, 공작은 홀로 어울리지 못하는 외딴 섬이 된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속이 뒤틀리고, 심통이 나는 것은 비단 정체불명의 생물체 때문일 거다. 절대 두 사람을 질투한다거나 부러워하는 게 아니라.
“그래서 저 귀한 영물께서는 어떤 복을 가지고 오나요?”
클로엔이 가지런한 눈썹을 찡긋거리며 멜빈과 시선을 맞췄다.
“모든 영물이 부와 명예를 가져오는 것처럼, 고슴도치 역시 비슷합니다만 그중에도 가장인 것은 아무래도…….”
“아무래도?”
나는 뒷말을 덧붙이며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것인지, 조금 전까지도 신나게 떠들어대던 멜빈이 답지 않게 뜸을 들였다.
‘아오, 답답.’
기다리다 못한 내가 무엇이냐며 질문을 던지려던 찰나였다. 줄곤, 똥 씹은 표정을 지은 채 침묵하던 에드먼드가 질문을 던졌다.
“왜, 말을 하다 말지?”
“음…… 그게 말입니다.”
멜빈이 말없이 두 사람을 힐끗거리고는 입술을 달싹였다. 커다란 손을 비비적거리며 뜸을 들이는 모양새가 눈에 띄었다.
‘뭘 저렇게 뜸을 들여. 사람 긴장되게.’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어색한 침묵이 세 사람을 맴돌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기다림을 뒤로 한 채 닫혀 있던 멜빈의 입술이 틈을 벌렸다.
“흠흠. 풍문이기는 합니다만, 자식운이 크게 들어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공작 가문에 귀여운 아기씨가 생길 모양입니다.”
지저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