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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편과의 이혼을 거부합니다 (26)화 (26/107)

제26화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확인과 동시에 고왔던 미간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수줍게 다리를 꼰 뽀얀 속살과 말간 국물, 그리고 모락모락 올라오는 뜨거운 김까지.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오늘 아침 공작께서 직접 잡아 오셨습니다. 신선한 수탉으로 말이죠!”

마치 제가 한 일인 양, 주방장 레틴이 수줍게 미소 지었다. 곧이어 에드먼드가 토실한 다리 살을 찢어 내 앞에 내려놓았다. 실로 무심한 손길이었다.

‘아니, 이게 말이 돼?’

여전히 믿을 수 없어 두 눈을 비비적거려 보았지만 틀림없는 삼계탕이었다.

애초에 이놈의 원작이 심상치 않다는 건 알았으나, 닭튀김도 아니고 삼계탕이라니.

개연성이라고는 밥 말아 먹어 버린 소품 선정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어서 먹지. 식으면 맛이 없거든.”

굳어 버린 나와 달리 에드먼드의 목소리에는 여유로움이 가득했다. 포크와 나이프로 푹 달여진 닭 다리를 잘라 내는 그의 모습이 퍽 익숙해 보였다.

“역시 맛이 좋군. 내일 점심은 이걸로 통일해. 단원들도 좋아하겠어.”

“안 그래도 농장에 주문을 넣어 뒀습니다.”

만족스러운 듯 에드먼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식사를 이어 갔다. 맛있게 음식을 즐기는 그와 달리 삼계탕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그렇지 못했다.

‘성의가 있는데 안 먹을 수도 없고 어쩌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수증기를 보고 있자니, 절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아마 저걸 먹고 나면 곁땀 전사가 될지도 모른다.

“어서 먹지. 여름에 이만한 게 없으니까.”

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보다 못한 그가 한마디 거들었다. 언뜻 살핀 에드먼드의 얼굴을 보아 퍽 기대하는 눈치였다.

‘정성이 갸륵하니까 딱 한 입만 먹자.’

잠시 고민하던 난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결의를 다졌다. 그러곤 뜨끈한 국물을 한 숟가락 떠 마셨다.

짙은 마늘 향과 깔끔한 국물 맛이 일품이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고국의 맛에 기어코 봉인이 풀렸다.

한 입, 두 입, 더해 갈 때마다 여며 둔 목깃 사이로 습기가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온몸의 땀샘이 수로처럼 열리며 가진 것들을 내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으…… 좋다.”

역시 아는 맛은 무섭다더니, 벌어진 잇새에서 자연스레 용트림이 흘러나왔다. 한 솥 가득 담겨 있던 국물은 어느새 반으로 줄었다.

둥근 이마 위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축 젖은 백금색 머리칼이 얼굴 곳곳에 덕지덕지 붙었다.

“후, 여기 너무 덥지 않아요?”

훅 끼친 열기에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런데도 이 마성의 맛을 놓을 수가 없어 괴로웠다.

“별로.”

에드먼드가 짧게 답하며 식사를 이어 갔다. 살 발린 뼈로 수북이 쌓인 제 앞과 달리, 에드먼드의 접시는 멀끔했다.

어쩐지 민망한 기분이 들었으나 잠시뿐이었다. 고요한 식당 안은 작은 쇳소리와 오물거림이 전부였다.

식사는 한동안 계속됐다. 그사이 뜨거운 태양은 점점 더 기승을 부렸다. 흘러내리는 땀방울의 양은 점점 늘어 갔고 달아오른 두 뺨은 발갛게 물들었다.

“이거 정말, 엄청 맛있네요.”

나는 몽롱한 시선을 바로 잡으며 길게 호흡했다. 불안한 모습에 에드먼드의 시선이 한동안 이어졌다.

‘왜 자꾸 쳐다봐. 민망하게.’

차오른 습기가 옷을 적실 때마다 불안했다. 혹, 그의 시선이 겨드랑이에 닿으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다.

한 김 식히러 잠시 나갔다 올까 생각했으나, 밖은 그늘 한 줌 없는 땡볕이었다. 고로 상황을 악화하면 악화했지 더 나아질 리 없다.

‘어떡하지, 땀이 너무 나는데.’

고장 난 온도계라도 된 듯,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계속되는 불볕더위와 상기된 감정으로 인해 숨이 턱턱 막혀 왔다.

“어디 아픈가?”

이상함을 느낀 듯, 에드먼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하하, 아뇨. 괜찮아요.”

나는 멋쩍게 웃으며 다급히 손부채질했다. 열을 내리려는 노력이었으나, 되레 열이 올라 절망스러웠다.

‘어지러워…… 찬물 없나?’

엎친 데 덮친 격이라더니, 현기증이 일었다. 이대로 버티다간 정말로 더위에 실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 정말 너무 덥네요.”

나는 울며 겨자 먹는 심경으로 닫힌 단추를 하나, 둘 풀었다. 조금의 틈이 생기자 울렁이던 속도 조금은 잠잠해졌다.

거침없던 손길이 마음과 달리 움직이지 않았다. 풀어낸 단추는 고작 세 개가 전부였다. 이유인즉, 힐끔 살핀 에드먼드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건, 내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에요. 정말 더워서, 정말 너무 더워서 그래요.”

습관적으로 변명이 튀어나왔다. 천천히 가자던 에드먼드의 말을 저 역시 존중하고 싶었으나, 이번에도 역시 상황이 따라 주질 않았다.

“한동안 잠잠하다 했지.”

에드먼드가 제 말을 가로채며 덤덤히 말했다. 가늘게 뜬 붉은 시선은 이미 나름의 판단을 마친 듯했다.

게슴츠레한 보랏빛 동공과 벌어진 입술, 붉게 달아오른 뺨 그리고 제멋대로 풀어헤친 앞 단추까지. 어딜 보아도 유혹의 흔적이 다분했다.

역시나 천천히 가자던 제 말은 들은 채도 안 한 게 분명했다. 처음부터 이상하더라니. 순순히 제 말을 따를 때부터 석연찮다 여겼으나, 이리도 적나라하게 굴 줄은 몰랐다.

신성한 식탁에서, 그것도 제가 만들어 준 음식 앞에서 저런 모습을 보일 줄은 정말이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잠시라도 가만있을 수는 없나?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난 정말 그런 게 아니라…….”

쭈뼛거리며 답했으나, 상대는 이미 귀를 막은 이후였다.

“대체 당신이라는 사람은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군. 온종일 날 어떻게 해 볼 생각만 하는 건가?”

계속되는 날조에 슬슬 울화가 치밀었다. 호흡은 가빠지고 시야는 흐릿했다. 몽롱한 정신을 바로 잡고자 고개를 내저었으나, 잠시뿐이었다.

“천천히 가자던 내 말은 당신한테 아무것도 아닌 거야?”

이어진 물음에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곧이어, 에드먼드의 형상이 두 개로 갈라지는가 싶더니 세상이 핑핑 돌았다.

“여보…… 나 어지러운데.”

그 순간, 쿵!

“클로엔!”

또다시 시야가 뒤집혔다.

* * *

“흠……. 아무래도 열사병에 걸리신 것 같습니다.”

닥터 마르스가 진료 가방을 뒤적거리며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일순 곁에 있던 에드먼드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사람이 사경을 헤매는데 저토록 태연하다니.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게 느껴졌지만, 애써 외면했다.

‘와, 정말 너무 덥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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