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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편과의 이혼을 거부합니다 (16)화 (16/107)

제16화

한결 더 미끈해진 구릿빛 피부, 정갈하게 넘긴 검은 머리칼, 퇴폐적인 붉은 눈동자, 날카로운 콧날 그리고 그 밑에 자리한 탐스러운 입술.

나날이 발전하는 남편의 미모로 인해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이러다 심장이 터져 버리면 어쩌나, 걱정될 지경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고작 한 뼘 남짓한 거리였다. 그가 조금만 몸을 숙인다면, 입술이 닿고도 남은 상황.

고지가 멀지 않았다.

게슴츠레한 눈과 함께 턱 끝을 말아 올리던 그 순간,

탁! 채쟁챙!

커다란 손이 식탁 위를 쳤다. 가지런히 놓여 있던 식기들이 곤두박질하고, 곧바로 날카로운 굉음이 식당을 가득 메웠다.

“무슨 일입니까! 공작님!”

보좌관 멜빈이 쏜살같이 들어왔다. 이내 난장판이 된 주변을 살피고는 원망 어린 시선을 보냈다.

“나, 나 아니에요!”

행여 쏟아질 의심에 재빨리 손사래 치며 말했다. 그사이 자리에 앉은 에드먼드는 어깨를 으쓱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서둘러 정리하겠습니다.”

멜빈의 말과 동시에 밖에 있던 사용인들이 재빨리 주변을 정리했다. 엉망이 된 식기들이 금세 제자리를 찾았다.

“다 정리됐으면 이만 나가 봐. 필요하면 부를 테니, 들어오지 말고.”

에드먼드의 말을 끝으로, 소란스러웠던 주변은 다시 평화를 찾았다. 졸지에 절호의 찬스를 놓친 나를 제외하곤 말이다.

‘분하다, 분해……. 진짜 조금만 더 닿았으면 됐는데.’

에드먼드가 힐끔 저를 살피곤 고개를 빳빳이 했다. 이내 무표정한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다시 시작해 볼까?”

“위기 대처 능력이 아주 대단하십니다? 손은 자기가 먼저 잡아 놓고! 인제 와서 오리발을 내밀어?”

“그건 당신이 너무 못하니까. 시범을 보여 준 것뿐이야.”

“아, 네네. 제가 달려들기라도 할까 봐 무서우셨나 보죠? 이런 치사한 방법까지 쓰고?”

“치사? 지금 나한테 한 말인가?”

“여기 당신 말고 누가 있어요? 손잡은 것도 당신, 식탁 어지른 것도 당신, 다 당신이 했잖아. 그리고 나한테 뒤집어씌우고 있고. 이게 치사한 거지 다른 게 치사한 건가?”

“허, 이제 아주 막 나가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군?”

“아 됐어요, 됐어. 하던 거나 마저 하자고요. 나도 더럽고, 치사해서 안 한다 이거야.”

“듣던 중 좋은 소식이네. 잘 생각했어. 안 하면 서로 좋지.”

에드먼드가 샐쭉 미소 지으며 심드렁히 말했다.

‘아악, 얄미워……!’

이대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간, 속이 터져 죽고 말 거다.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앞으로의 장수를 위해 입을 꾹 다물었다. 기약 없는 침묵을 이어 가던 그때, 에드먼드가 나이프를 쥐며 말문을 열었다.

“후, 다시 처음부터. 처음부터 해 보자고.”

“흥. 그러든지 말든지.”

“손목을 구부리고, 팔꿈치는 편안하게 두는 거야. 그다음, 포크로 음식을 단단히 고정하고 나이프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면 돼. 이렇게.”

에드먼드가 말끔하게 잘린 고기 절단면을 보여 주며 입 안에 쏙! 집어넣었다.

얼굴도 잘생긴 게, 칼질도 잘했다. 대체 부족한 게 있기는 한 건지. 질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나이프를 고쳐 잡았다.

‘나도 할 수 있어!’

얼마 지나지 않아, 끼기긱!

접시에 닿은 칼끝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두 사람의 미간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구겨졌다.

“에이! 이건 왜 이렇게 안 썰려!”

“당신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를 않는 건가? 내 칼은 잘만 썰리는데.”

“허! 에드먼드 경, 당신 원래 그렇게 말이 많았어요? 옆에서 깐족깐족, 사람 약 올리는 게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데.”

“…….”

접시를 향해 있던 시선이 대번에 그를 향했다. 그러곤 화르르, 언제 그랬냐는 듯 새하얀 두 뺨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염병. 얼굴이 무기네, 얼굴이 무기야. 억울하고 짜증 나지만, 얼굴을 보니까 화가 싹 가셔!’

분한 마음에 입술을 짓이기며 주먹을 내리쳤다. 붉은 동공이 저를 향하고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계, 계속하죠. 차차 하다 보면 뭐…… 실력이 늘겠죠.”

나는 부러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깟 고깃덩어리에 무참히 짓밟힐 수는 없다. 비장한 표정으로 접시를 찢을 듯 노려보던 그때.

달그락, 무심한 손길이 시야에 닿았다. 갈기갈기 찢기다 못해 넝마가 된 고깃덩어리가 사라지고.

“일단 이것부터 먹어. 배는 채워야지.”

에드먼드가 손수 잘라 놓은 음식들을 앞에 놓았다. 커다란 눈망울에 감동의 물결이 일었다.

먹기 좋게 썰린 고깃덩어리가 가지런히 늘여져 어찌나 먹음직스러워 보이는지, 가뜩이나 요란한 위장이 대번에 반응했다.

“여보……!”

붙은 궁둥이가 의자에서 떨어지던 찰나, 에드먼드가 한쪽 손을 들어 올리고는 일자로 바로 세웠다.

“불필요한 신체 접촉 금지. 감사 표시는 말로도 충분해.”

“알았어요, 알았어. 안 건드려요. 하여간, 신경 안 쓰는 척하면서 은근 신경 쓴다니까. 말만 더 예쁘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여보.”

나는 콧소리를 내며 애교스럽게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나름의 고마움의 표현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해.’

에드먼드는 클로엔의 행동이 도통 익숙해지지 않았다.

‘여보’라는 닭살 돋는 애칭도,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애교도 이상하기만 했다. 하지만 가장 이상한 것은…… 그것들이 딱히 싫지만은 않다는 사실이었다.

“흠흠, 어서 먹자고. 이러다가는 음식이 다 식겠어. 식어 빠진 송아지 구이만큼 최악인 건 없지.”

에드먼드가 들고 있던 나이프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곤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그와 달리 내 얼굴에는 싱글벙글 미소가 가득했다.

바라던 만큼은 아니었지만, 며칠 새 에드먼드와 가까워졌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했으니 말이다.

‘이대로만 간다면, 합방은 문제없겠어.’

들고 있던 고깃덩어리를 입에 넣은 채, 우적우적 씹어댔다. 그 모습을 슬쩍 힐끗거리던 그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입에 맞는 모양이군.”

“당연하죠. 이렇게 맛있는데, 입에 안 맞을 리가 있나요.”

입에 든 고깃덩어리를 씹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순간, 에드먼드의 잇새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정말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음식을 먹기는커녕,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불쾌해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한데. 이토록 무방비한 모습으로 즐거워하는 걸 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차라리 잘된 걸지도 모르겠군.”

“응? 뭐가요?”

이어진 물음에도 에드먼드는 말없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릴 뿐, 이렇다 할 대답이 없었다.

‘또 씹지. 아주 무시가 일상이야.’

나는 입술을 씰룩이며 새로 집은 고깃덩어리를 입에 넣었다.

“포크의 끝은 위를 향하지 않게. 나이프도 마찬가지야.”

에드먼드가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괜한 민망함에 작게 아우성치며 코끝을 찡긋거렸다. 그러곤 들고 있던 포크를 조심히 내려놓았다.

“음식은 조금씩, 천천히. 소리가 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해.”

“네네.”

이어진 잔소리에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다시 음식에 집중했다. 에드먼드 역시 잘라 낸 고기 조각을 입에 넣고는 조용히 씹어 삼켰다.

입 안 가득 고소한 육즙이 퍼지고,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은 입맛을 자극했다. 접시는 어느새 바닥을 보였다.

마지막 남은 고기 조각까지 모조리 털어 낸 후에야 비로소 포크를 내려놓았다. 이어지는 만족감에 부른 배를 통통거리며 기분 좋은 콧소리를 냈다.

“흐음…… 잘 먹었다.”

“식사를 마쳤을 때는 나이프와 포크를 나란히, 오른쪽 아래를 향하도록 놓으면 돼. 지금이야 사용인들이 없으니 상관없지만, 있을 때 그렇게 했다가는 먹던 음식이 사라지고 말 거야.”

“어차피 늘 함께 먹을 건데요, 뭐. 누가 내 음식을 치우려고 하거든 당신이 막아 주면 되죠.”

“내가 그렇게 한가한 줄 아나.”

“당신이라면 기꺼이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 주겠죠. 잘해 보기로 했잖아요, 안 그래요?”

낯간지러운 말에 에드먼드의 시선이 다시금 접시 위로 처박혔다. 그러곤 재빨리 화젯거리를 돌렸다.

“식사할 때는, 소리에 제일 주의해야 해. 음식을 먹으며 쩝쩝거려도, 아까 전처럼 접시가 긁히는 소리가 나서도 안 돼.”

“나도 잘하고 싶다고요. 하지만 칼질도 서툴고 힘 조절도 잘 안 되고, 손도 너무 아픈걸요.”

나는 부러 입술을 삐죽대며 툴툴거렸다. 꾀병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건지, 잠시 침묵하던 그가 고개를 홱! 돌렸다.

“하다 보면 익숙해질 거야.”

냉정히 답한 그가, 앞에 놓인 물잔을 집어 들었다.

“그냥 오늘처럼 당신이 잘라 주면 안 돼요? 여보가 계속해 주면 좋겠는데. 같이 밥도 먹고 좋잖아요?”

동시에 풉! 에드먼드가 머금고 있던 물을 뿜었다. 곧이어 젖은 입가를 닦으며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갑게 말했다.

“호의는 한 번으로 족해.”

“그런 게 어디에 있어요. 사나이가 칼을 들었으면 무라도 잘라야지! 그냥 당신이 해 줘요. 그러면 난 당신이 주는 대로 곧잘 받아먹기만 하면 되잖아요, 안 그래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하지만, 정말 힘들다고요. 이것 좀 봐요!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이 팔목으로 어? 대체 뭘 하겠어요.”

에드먼드의 시선이 클로엔을 따랐다. 살벌한 드레스 아래로 가느다란 손목이 모습을 비췄다.

그녀의 말마따나 툭 치면 부러지다 못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얇은 뼈마디였다.

우람한 그의 팔에 반의반도 못 미칠 듯한 가느다란 손목. 일순 가슴 깊숙한 곳에서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소용돌이쳤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좌우로 도리질하며 닫힌 입술을 열었다.

“어린아이들도 하는 일이야. 당신이 못할 리 없잖아.”

“쯧. 설마 내가 정말 못 해서 해 달라고 한 거겠어요? 하여간 사람이 무드가 없어. 고목 나무야. 너무 우직해.”

클로엔이 홀로 쫑알거리며 혀를 끌끌 찼다. 에드먼드가 구겨지는 이맛살을 애써 펴내며 말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지. 내일은 차에 대해 알려 줄 거야. 나이프 쥐는 법도 잊었는데 이걸 기억할 리가 없겠지.”

“잠깐! 오늘 수업이 여기서 끝이라고요? 점심도 있고, 저녁도 있는데? 아직 배움의 수양이 부족하다고요. 홀로서기를 하기엔 무리에요.”

“가볼 곳이 있어. 기억을 잃은 누구와 달리 한가하지가 않아서 말이야. 샤샤에게 말해 둘 테니 나머지 식사는 알아서 잘해보도록 해.”

그럼 이만, 마지막 말을 끝으로 에드먼드의 발걸음이 식당 밖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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