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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편과의 이혼을 거부합니다 (14)화 (14/107)

제14화

“샤샤, 왜 이렇게 늦었어!”

“미안, 나도 빨리 오고 싶었지! 부인께 잡혀 버린 걸 어떻게 해. 휴, 요즘 줄곧 나만 찾으셔서 힘들어 죽겠다니까.”

“네 몫까지 하느라 정말 팔이 빠질 것 같아. 어쩜 해도 해도 줄어들지가 않는 거야?”

고향 친구이자, 시녀 동기인 티모가 볼멘소리를 늘려 놓았다.

“아 참, 너 요즘 공작님의 집무실에 가는 일이 많다며,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듣자 하니, 부인께서 사고 이후로 많이 이상해지셨다던데. 사실이야?”

“말도 마. 내가 요즘 그것 때문에 심장이 쪼들려서 못 살겠다니까. 나 피부 삭은 것 좀 봐. 요즘 매일같이 공작님의 방에 불려 들어가고 있어. 그래도 다행인 건, 부인께서 사고 이후로 공작님에 대한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신 모양이야.”

“어머, 정말? 솔직히 말해서…… 사람 취급도 안 하셨었잖아.”

“내 말이 그 말이야. 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도통 모르겠어. 요즘 나를 대하는 것도 평소랑은 완전 다르다니까. 지금도 공작님의 상처를 치료한다고 가셨어. 정말 기억을 잃으신 것인지, 그런 척을 하시는 것인지 나도 헷갈릴 지경이야.”

“세상에, 공작님께 가셨다고? 그러면 차라도 준비해 가는 게 어때? 모처럼 같이 시간을 보내시는 거잖아.”

일순 샤샤의 눈망울이 반짝였다. 이참에 두 분의 사이가 좋아진다면, 그 공로를 인정받기에 좋은 기회였다.

차를 내어 간다면, 그 이유를 핑계 삼아라도 대화가 길어질 거고 대화가 길어진다면,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확률 또한 높아질 터.

그렇다면 이 샤샤의 공로 역시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단 말이지!

“헙! 그래, 두 분이 모처럼 이야기를 나누시도록 차를 준비해야겠다.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을까? 티모, 넌 정말 천재야!”

샤샤가 찻잔을 집어 든 채 2층으로 향했다. 가벼운 발걸음이 코너를 돌자, 마주 본 공작 부부가 보였다.

“이야기가 잘된 모양이네.”

홀로 읊조리던 그 순간, 커다란 공작의 손이 부인의 어깨를 툭 밀었다. 놀란 샤샤가 제 존재를 알리며 걸음을 빨리했다.

“부인!”

동시에 클로엔의 커다란 눈망울이 소리가 난 쪽을 향했다.

‘미운 정도 정이라더니.’

찻잔을 든 샤샤를 보고 있자니 괜스레 서러움이 북받쳤다.

말없이 남편을 흘겨봤으나, 철옹성 같은 사내는 미동이 없었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사람을 가지고 노는 재주가 있어. 역시 잘생긴 놈들은 얼굴값을 한다니까.’

얄미운 태도에 주먹을 불끈 쥐며 이를 갈았다.

“샤샤…….”

이내 뒷말을 흐리며 기운 없게 말했다. 손으로는 젖지도 않은 눈가를 지분대며 코를 훌쩍였다.

그간의 억울함을 토로할 심산이었다. 부부 사이에 신체 접촉 금지가 가당키나 하냐며 제삼자의 의견을 들어 볼 생각이었다.

“부인을 데려가도록 해.”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에드먼드가 축객했다.

“당신, 정말 해 보자는 거죠!”

“억지는 여기까지야. 제발, 당신 방으로 돌아가.”

무심히 말한 그가 샤샤를 향해 눈짓했다.

“에드먼드!”

“부인, 이만 돌아가세요. 시간이 늦었어요.”

“샤샤, 너까지!”

“……여기 더 계시다가는 정말로 미움을 살지도 몰라요.”

소리치는 내 팔을 붙들며 샤샤가 조그맣게 속삭였다. 그사이 몸을 완전히 돌린 에드먼드가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업은 내일부터 있을 거니, 늦지 말고.”

그럼 이만.

말을 끝으로 쾅! 순식간에 문이 닫혔다. 곧이어 딸깍. 잠금장치도 잊지 않는 저 철두철미함을 보며 오기가 생겼다.

* * *

밤부터 내린 비는 아침이 될 때까지 그칠 생각이 없었다. 꾸물거리는 하늘은 검게 물들었고, 이따금 번개와 천둥을 동반했다.

우르르, 쾅쾅!

엄청난 굉음에도 이불 속, 형태는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작은 몸을 둥글게 만 채, 골똘히 생각할 뿐.

“부인, 곧 식사 시간이에요. 공작께서도 함께하신다던데, 슬슬 일어나시는 게 어떠세요?”

옆에 있던 샤샤가 흔들리는 창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며 말했다.

동대륙의 여름 태풍은 지독하고 강력했다. 지난해에도 불어오는 강풍에 창문을 몇 개나 깨 먹었는지. 관리를 소홀했다가는 문책을 당할 게 불 보듯 뻔했다.

‘역시, 난 유능한 시녀야.’

샤샤가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옹송그린 제 주인의 곁으로 다가가 다시 한번 의무를 다했다.

“부인, 어서 일어나세요.”

그녀의 부름에도 제 주인은 목석이라도 된 듯,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클로엔이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뭐, 뭐가요?”

“부부 사이에 접근 금지가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어기찬 태도에 샤샤는 울고 싶었다. 부인께서 이런 날이면 꼭 일이 터지곤 했으니 말이다. 휴, 낮게 신음한 샤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더했다.

“대체 뭘 하시려는지 모르겠지만, 공작께서 글을 알려 주신다고 하셨다면서요. 그때 잘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하하.”

“아무래도 전투복을 준비해야겠어.”

“네? 전투복이요? 그건 또 무슨……. 그냥 식사하시는 것뿐인데 전투복이 왜 필요해요! 이,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을 벌이시려고요.”

샤샤의 목소리가 볼품없이 떨렸다.

“내가 상대를 너무 띄엄띄엄 본 경향이 있단 말이지. 이대로 가다가는 애는커녕, 평생 독수공방으로 늙어 죽겠어. 그럴 수는 없지.”

클로엔이 평평하던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동시에 잔잔하던 보라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지난밤.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심층적 고찰을 한 결과, 답은 하나였다.

“샤샤,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한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니?”

“음…… 글쎄요. 무기? 무기가 아닐까요? 단번에 적을 무찌를 수 있는 그런 크……!”

“아니! 갑옷, 갑옷이야. 내가 아무리 날아다니면서 잘 싸워도 나를 보호할 단단한 갑옷이 없으면 결국, 찔려 죽어.”

“아……. 근데 그게 아침 식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쯧, 왜 상관이 없어. 다른 의미로 전쟁에 참전하는 건데. 어쨌든! 우리도 의상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어. 드레스 룸이 어디지? 상태를 좀 봐야겠는데.”

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이내 화려하게 장식된 작은 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손을 들어 소리 없이 문 쪽을 가리켰다. 의중을 헤아린 듯, 샤샤가 긍정의 끄덕임을 보냈다.

드레스 룸은 화려한 의상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중에도 단연, 제 눈에 띄는 한 가지가 있었으니.

“아무래도 이게 좋겠다.”

걸린 옷가지 하나를 집어 든 채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그와 달리, 샤샤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빠르게 흔들리는 눈동자가 샤샤의 마음을 대변했다.

“부, 부인. 그건 좀…….”

“왜? 네가 보기에도 너무 예쁘니? 얼굴이 천상계라 그런가, 아무거나 갖다 입혀도 태가 사네 살아. 크…… 이 정도면 가만두고는 못 배기지. 아무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썩 마음에 들었으나 뭔가 부족했다. 때마침, 번쩍 든 생각에 손가락을 튕겼다.

“화려한 의상에 투구가 빠지면 안 되지.”

들뜬 발걸음이 화장대로 향했다. 오랜 망설임 끝에 작은 쇳덩이를 집어 들었다. 입으로는 “패완얼”을 읊조리며.

* * *

그 시각, 식당

내린 비로 인해 저택 곳곳에는 어둠이 서려 있었다. 이따금 꺼진 촛불은 을씨년스러웠고, 축 가라앉은 내부는 정적만이 가득했다.

“클로엔은, 아직인가?”

에드먼드가 다소 피곤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곧 내려오실 겁니다. 밤새 서류를 살피셨는데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닙니까?”

보좌관 멜빈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차라리 자네와 전쟁터를 거닐 때가 나은 것 같아. 영 머리 아픈 일들뿐이군.”

에드먼드가 씁쓸한 미소와 함께 앞에 놓인 물컵을 집어 들었다. 보이지 않는 짐이 고스란히 느껴져 멜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부지런한 제 주인은 하루에도 수십 통의 서신들을 처리했다. 더군다나 영지를 비운 지금, 저택 문을 넘어선 서신의 숫자는 하루하루 늘어 갔고, 당연하게도 공작의 피로 역시 누적됐다.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멜빈이었다. 공작을 수호하는 보좌관으로서 혹, 제 주인의 몸이 상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였다. 저 강인한 사내는 늘 제 몸을 돌보지 않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가서 부인을 모셔올까요?”

“됐어. 조금 더 기다려 보지.”

짧은 말을 끝으로 에드먼드가 들고 있던 물을 벌컥벌컥 삼켰다.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날카로운 굽 소리가 저택을 울렸다. 요란하게 퍼져 가던 하이힐 소리가 이윽고 식당 앞에 멈췄다.

“……!”

정면을 향해 있던 에드먼드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보좌관 멜빈 역시 벌어진 입을 다물 생각조차 못 한 채, 정면을 응시했다.

“당신…… 대체……?”

나지막한 공작의 목소리가 허공에 울렸다. 그 순간 우르르 쾅! 클로엔의 머리 위로 번개가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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