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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편과의 이혼을 거부합니다 (13)화 (13/107)

제13화

“많기도 하군.”

에드먼드가 퉁명스레 답했다. 클로엔이 손가락을 펴 보이며 말을 이었다.

“하나, 이 시간 이후 두 번 다시 이혼을 논하지 말 것.”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우리 이혼은 내가 된다고 하기 전까지는 절대 안 돼.”

“아니, 그냥 말을 하지 말아요. 이혼의 이자도 꺼내지 마. 나는 정말 갈라설 생각이 없다고요.”

클로엔이 험상궂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와 달리, 에드먼드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말만 이혼하지 않겠다고 하는 줄 알았거늘, 정말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마주한 얼굴에 거짓을 찾을 수 없어 더욱 당황스러웠다.

“그래, 다음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그가 의연하게 대답했다.

“둘, 더는 내 말을 의심하거나 오해하지 말 것. 제발 내가 하는 말은 그냥 믿어요. 내가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잖아요. 안 그래요?”

“믿을 수 없는 말들만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나?”

“또, 또, 또 의심하죠? 본인 입으로 신뢰가 중요하다면서요?”

클로엔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크흠, 노력해 보지.”

“마지막 세 번째, 하루 한 번씩 대화의 시간 가질 것.”

“……!”

찰나였다. 피부 위로 느껴지는 낯선 손길. 에드먼드의 붉은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불안한 심장이 쿵쾅거리고 불규칙한 호흡이 찾아왔다.

“이제부터 내 이야기는 샤샤가 아니라 나한테 들어요.”

알겠어요? 나지막한 속삭임에 에드먼드의 심장이 더욱 빠르게 요동쳤다.

가까워진 거리, 은은하게 느껴지는 여린 숨결. 모든 게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망상에서 벗어나려 그가 좌우로 고개를 내저었다.

뭔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정처 없이 뛰고 있는 심장의 움직임에 에드먼드는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나도 조건이 있어.”

“뭔데요? 말해 봐. 다 들어줄게.”

샐쭉 미소 지은 그녀가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신체 접촉 금지. 불필요한 손길은 자제했으면 좋겠군”

응? 뭐라고?

내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말과 동시에 클로엔의 고왔던 얼굴이 삽시간에 구겨졌다. 신체 접촉 금지라니 이게 무슨 개똥 같은 말이란 말인가. 믿을 수 없었다. 응당 확인이 필요했다.

“뭐라고요?”

“못 들었어? 신체 접촉 금지라고. 그리고 그 이상한 숨소리도 금지야. 물론, 귓속말도 안 돼.”

어느새 멀찍이 떨어진 그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순간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말 그대로 그림에 떡.

이 좋은 먹잇감을 두고 바라만 봐야 한다니, 너무나 가혹한 일이 아니던가. 간악한 처사에 눈을 부릅뜨며 쌍심지를 켰다.

“그래도 부부인데! 신체 접촉을 어떻게 안 해요? 말도 안 되지! 그러면 따로 살아야지.”

“지금까지 잘 살아왔어.”

“그런 사람이 결혼기념일에 퇴짜를 맞아요?!”

“그건! 후…… 말을 말자고. 기억을 잃었다더니 뻔뻔함이 극치를 달하는군.”

에드먼드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대며 화를 삭였다.

“나는 절대 용납할 수 없어요”

“아니, 앞으로도 우린 그렇게 잘 살아갈 거야.”

“응당 부부란 어? 한 이불 아래에서 살도 부대끼고 그러면서 살아야지. 신체 접촉 금지?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 아들딸 골고루 낳아야죠. 대를 이어야 할 거 아니에요?”

일순 에드먼드의 잇새가 한없이 벌어졌다. 이 당황스러운 상황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적극적이다 못해, 저돌적이기까지 한 클로엔의 모습이 이제는 두렵기까지 했다. 진심 어린 눈초리에 커다란 손이 그녀를 막아섰다.

“접촉 금지. 기억하도록 해. 아! 치료가 끝났으면 이만 방으로 돌아가는 게 어떨까?”

단호한 그의 태도에 알 수 없는 패배감이 몰려왔다. 부부로서의 관계를 재정비하자더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주장이란 말인가.

온 힘을 다해 지금의 역경과 고난을 막아야만 했다.

“난, 인정할 수 없어요.”

주먹을 꽉 쥐며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곤 재빨리 남편과의 간격을 좁혔다. 물론 가까워지기가 무섭게 에드먼드의 몸이 뒷걸음질 쳤지만 말이다.

“왜, 왜 이러는 거야 대체?”

잔뜩 경직된 목소리가 귓가를 스치자, 한쪽 입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갔다.

“왜 이러긴요. 부부의 의무를 다하려는 거죠.”

“장난이 과하군.”

“방법을 바꿔 볼 거라면서요. 하나둘 이렇게 알아가는 거죠. 난 이미 준비가 됐어요.”

야릇한 미소와 함께 에드먼드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하…… 정말 말이 안 통하는군. 이만 돌아가는 게 좋겠어. 당신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야.”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에드먼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으로 향했다. 널찍한 등 위로 달아오른 목덜미가 보였다.

‘머리가 아픈 게 아니라 심장이 아픈 것 같은데?’

저런 숙맥. 불타는 고구마라도 된 듯 벌게진 피부를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여보, 귀가 빨개졌어요!”

“방이 더워.”

에드먼드가 곧장 철통 방어했다.

“아닌데, 지금 무척 부끄러운 것 같은데?”

“착각이야. 이만 나가.”

곧바로 철컥, 닫힌 문이 열렸다. 어서 나가라는 듯 단단한 에드먼드의 팔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냉소적인 그를 보고 있자니, 되레 장난기가 발동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에드먼드 쪽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커다란 인영이 코앞에 닿을 즈음, 부러 입술을 씰룩이며 말했다.

“오늘 여기서 자고 가고 싶은데.”

말과 동시에 에드먼드의 얼굴이 터질 듯 달아올랐다. 그러곤 하! 헛웃음을 터뜨리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뭐? 어디서 뭘 해? 기억을 잃으면 다 이렇게 되는 건가?”

“부부의 의무를 다하자는 게 그리 큰 문제예요? 몸이 맞아야 마음도 맞지!”

“정말 못 하는 말이 없군.”

에드먼드가 질색하며 말했다. 얼굴을 보아하니 여기서 더 했다가는 정말로 쫓겨날 것 같았다.

‘그래, 일 보 후퇴는 이 보 전진을 위한 밑거름이니까.’

아쉬운 마음에 조용히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그래요. 오늘은 여기까지. 아 참! 부탁이 하나 있어요.”

“여기서 자고 간다는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가 아니라면 얼마든지.”

“서점에 가고 싶어요.”

“서점?”

“네. 보고 싶은 책이 있거든요. 같이 가줘요. 그리고 가정 교사도 하나 붙여 주면 좋겠어요.”

“가정 교사는 또 왜? 이번에는 가정 교사와 작당 모의라도 할 생각인가?”

“쓰읍, 신뢰.”

나직한 목소리에 에드먼드가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부글거리는 속을 참아내며 다음 말을 이었다.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아쉽게도 글을 몰라서. 계속 이렇게 바보로 살 수는 없잖아요. 뭐라도 배워야죠.”

“그런 이유라면 굳이 부를 필요 없겠군.”

이대로 바보로 살게 하려는 작정인가? 영문 모를 그의 말에 대답 대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알려 주면 되니까.”

“진심이에요? 완전 감동.”

감동의 물결이 심장을 간질였다. 호의에 보답하려 환히 웃으며 그의 품에 달려들었으나.

‘뭐야 왜 닿는 게 없어?’

마주한 건 빈 허공일 뿐. 커다란 손바닥이 반듯한 이마를 단단히 받쳤다.

‘이래서 눈치 빠른 것들이란.’

널따란 가슴팍에 닿아 보려 연신 버둥거렸지만 무리였다. 실망 어린 눈동자가 그를 향하고. 오만한 입술이 틈을 벌렸다.

“하나 더 추가하지. 반경 1미터 내에서 얼굴 가져다 대지 말 것. 입술을 부딪치는 건 더더욱 안될 일이겠지.”

“뭐라고요?”

“피차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 말자고.”

“어휴, 비싸다 비싸! 나도 됐다 이거예요. 결혼까지 한 마당에 손끝 하나도 못 닿는 건 너무 한 거 아니에요?”

“나뿐만 아니라, 당신 역시 원하던 거야.”

“내가 언제요?”

“정확히 말하자면, 과거의 당신이 원했지.”

“지금의 나는 원하지 않아요!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고요. 누구보다 나는 당신의 손길을 원해요.”

적나라한 그 말에 에드먼드가 조용히 이마를 짚었다.

“후……. 그만하지. 같은 얘기 반복하는 것도 지겹군. 왜, 또 멱살이라도 잡을 생각인가? 두 번은 없으니까 그런 줄 알아.”

“아니, 멱살은 실수였다니까 그러네. 됐고, 우리 부부로서의 대화를 나눠 보자고요. 네?”

“나가.”

커다란 손이 제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러곤 순식간에 복도로 내몰았다. 이어진 푸대접에 기분이 퍽 상했다.

“사람이 어쩜 그렇게 칼 같아요? 아주 빈틈이 없어! 들어갈 수가 없네.”

“응, 그러니까 나가. 시간이 늦었어. 내일 보자고.”

“여기서 자고 간다니까요! 어느 부부가 각방을 쓰냐고, 신혼인……!”

순식간이었다. 가느다란 허리가 에드먼드로 인해 단단히 얽매인 건. 밀착된 피부 위로 촘촘하게 자리 잡은 잔근육이 느껴졌다.

“앗……!”

벌어진 잇새에서 외마디 비명이 흘러나왔다. 거칠어진 숨결이 동그란 이마 위로 쏟아지고, 낮게 침식한 붉은 눈동자가 오롯이 하나에 고정됐다.

남편과의 거리가 한 뼘도 채 남지 않았다. 조금만 몸을 기울이면 입술이 닿을 것만 같았다. 뒤바뀐 기세에 얼굴이 화르르, 달아오름이 느껴졌다.

“봐주는 건 여기까지야.”

곧이어, 듣기 좋은 저음이 귓가를 울렸다. 나지막이 속삭인 그가 다른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곤 허공에 날린 백금색 머리칼을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아주 다정히, 시선을 마주한 채. 말간 라벤더색 눈망울이 파르르 떨려 왔다.

“하나씩 천천히, 거리를 유지하자고.”

나직한 읊조림에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곧이어 더러운 것에 닿기라도 하듯 에드먼드가 손끝을 세워 어깨를 툭, 밀어냈다.

그 순간, 머릿속에는 몇 가지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진찰이 끝나고 독대를 하던 에드먼드와 닥터 마르스, 그리고 조금 전 멜빈까지.

분명 가까이 두어야 할 사람들이었으나, 어쩐지 이상했다. 자연스러운 만남치고는 무척이나 은밀했고, 제가 들이닥쳤을 때 하나같이 화들짝 놀라며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설마…… 나를 피하는 이유가?’

일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원작이 숨겨진 BL……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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