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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편과의 이혼을 거부합니다 (11)화 (11/107)

제11화

“참아 주는 데도 한계가 있어.”

조용히 읊조리던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성을 잃은 난 물러설 생각이 없었고.

“참아? 누가? 내가? 아니면 당신이?”

“클로엔!”

이어지는 고성에 밖에서 대기 중이던 멜빈이 빠르게 뛰어 들어왔다. 이내 엉겨 붙은 공작 부부를 보며 다문 입이 절로 벌어졌다.

“대, 대체……!”

눈 깜짝할 새였다. 성난 내 입술이 에드먼드에게 닿는 데까지는 불과 3초도 걸리지 않았다.

말캉한 애벌레 같은 것이 입술 위로 내려앉자, 에드먼드의 동공이 한계를 모른 채 확장했다.

“이게 지금 뭐, 뭐 하는!”

에드먼드가 이성을 차리곤 황급히 뒷걸음질 쳤다.

‘하…… 여기가 현실이었으면 당장 로또를 사는 건데.’

당황한 그와 달리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잠깐이었지만 머릿속에 제야의 종이 울렸다.

“후, 그러기에 말로 할 때 들었어야죠. 난 내 마음을 증명한 것뿐이라고요. 어머! 잘 왔어요, 보좌관님. 많이 놀랐죠?”

“아, 예. 예? 예.”

넋이 나간 것은 비단 에드먼드뿐만이 아니었다. 공작 부부의 애정 행각을 두 눈으로 지켜보게 될 줄이야. 멜빈은 고장 난 뻐꾸기시계라도 된 듯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니, 이이가 자꾸 나를 몰아붙이잖아요? 총명하고 공의로운 우리 보좌관님께서 보시기에도 내가 연기를 하는 것 같나요?”

부러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사이 에드먼드는 빼앗긴 입술을 부여잡은 채 멍한 표정을 유지했다.

“어머, 옷깃은 왜 이렇게 구겨졌담.”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흐트러진 타이를 정리했다. 그러곤 에드먼드의 옷깃을 탈탈 털어 냈다. 붉은 시선이 찌를 기세로 나를 향했다.

“하, 모른 척을 하겠다?”

매서운 눈초리가 피부 위로 느껴졌다. 발개진 그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자니 미안한 감정이 몰려왔다.

“그러길래 이혼은 말하지 말았어야죠. 내가 몇 번이나 안 할 거라고 했잖아요. 왜 사람 말을 못 믿어서 이런 험한 꼴을 봐요?”

괜히 찔려 뒷말을 흐리며 눈치를 살폈다. 그새를 못 참고 존잘남의 멱살을 잡은 것도 모자라, 입술까지 빼앗다니.

‘이렇게 급하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생각지 못한 급전개, 아주 좋아요.’

“공, 공작님. 괜찮으십니까?”

상황을 지켜보던 멜빈이 천천히 에드먼드에게 다가섰다.

“호들갑 떨지 말고 나가 있어.”

“하지만, 얼굴이……! 일단, 방으로 돌아가시죠. 아무래도 두 분께서는 당분간 거리를 두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멜빈이 제 쪽을 한 번 힐끗거리고는 공작에게 속삭였다.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에드먼드 역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커다란 두 장정이 저를 지나쳐 문 쪽으로 향하던 그때.

“잠깐! 거기 스탑, 동작 그만.”

기운찬 목소리에 두 남자의 시선이 뒤쪽을 향했다.

“더 할 말이 남아 있나?”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왜 이혼을 하고 싶지 않은지, 말해 주고 싶은데 들어 볼래요?”

“들은 거로 치지.”

대번에 거절하는 에드먼드의 말을 못 들은 척, 아랑곳하지 않으며 할 말을 이어 갔다.

“일단 첫째, 잘생겼어요. 무척. 둘째, 그 와중에 돈도 많죠? 셋째, 그뿐인가? 몸도 좋아요. 넷째, 세상에 여자관계도 깨끗해.”

내심 기분은 좋은 듯, 에드먼드가 시선을 피하며 자리를 지켰다.

“다섯째, 거기다 야심도 있어요. 자고로 사람이 배포가 있어야지! 여섯째, 힘도 세요. 그냥 센 것도 아니고 소드마스터라네? 그리고 마지막, 츤데레야. 이게 또 마음을 간지럽게 하거든. 무심한데 또 다정해. 안 그래요, 멜빈?”

“아…… 네. 그러신 편이지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멜빈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했다. 자신감을 얻자 무리수를 날렸다. 에드먼드를 향해 찡긋, 윙크를 날린 것이다.

“정, 정말 제정신이 아니군.”

에드먼드가 아연실색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러곤 재빨리 걸음을 돌려 문밖을 향했다.

“어딜 가! 여보, 에드먼드! 우리 아직 얘기 안 끝났잖아요. 맨날 제 혼자 먼저 가지! 야!”

대답 없는 외침 뒤로, 방 안을 가득 채우던 두 남자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내 풀썩. 가녀린 몸이 힘없이 주저앉았다.

“하, 아무래도 망한 것 같아.”

상황은 이미 벌어졌고 되돌리기에는 일의 규모가 너무도 커져 버렸다.

“이제 쫓겨날 날만 새면 되나?”

미래를 예견한 듯 벌어진 잇새에서 하하,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입술을 뺏었으니, 승자인 건가?

“나가면 뭐 해 먹고 살지……? 그래도 돈은 좀 챙겨 주지 않으려나. 아니면 미리 금붙이라도 챙길까?”

홀로 중얼거리는 사이, 샤샤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공작님과는 말씀 잘 나누셨어요? 제가 어제 에둘러 말하기는 했는데, 몇 번을 말씀드려도 믿지를 않으시더라고요. 말씀드리는 내내, 부인과 삼자대면이라도 하고 싶더라니까요.”

말 많은 시녀는 곧 불어닥칠 절망적인 사실을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샤샤…… 너도 미리 짐 싸놔. 그래도 내가 데려왔다는데 챙겨 나가야지. 아 참, 너 가진 돈 좀 있니? 뭐, 보석도 나쁘지 않아.”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보석이라뇨? 헙……! 부인, 혹시……. 우리 쫓겨나는 거예요?”

샤샤가 입술을 바르르 떨며 다음 말을 이었다.

“차라리 공작님께 두둑이 합의금을 챙기는 게 어떠세요? 제 월급이 돼 봤자 얼마나 되겠어요. 이제 조금 적응하나 했는데, 다시 돌아가야 한다니 하늘이 무심하기도 하지…….”

“말을 말자, 말을 말아.”

울먹이는 샤샤를 보며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에요? 어휴, 그럼 다행이고요! 이왕이면 잘 사시는 게 부인께도 복이고 백작님께도 효도죠. 그러고 보니 공작님 얼굴과 목에 상처가 생겼던데.”

“…….”

“어디 부딪히시기라도 한 건가? 하긴, 부인께서는 관심 없으시죠? 공작께서 다치셔도 꿈쩍도 안 하시던 분이시잖아요.”

덤덤한 샤샤의 말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계속됐다.

“아 참, 배고프시죠? 간단한 요깃거리를 가져왔어요. 공작님께서 가져다드리라고…….”

샤샤가 힐끗, 눈치를 살피며 디저트용 포크를 손에 쥐여 줬다. 알싸한 감정과 함께 가슴 한편이 쿵쿵거림을 느꼈다.

* * *

“신경 쓰여. 신경 쓰인다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반대편으로 돌아누웠다. 시원한 여름 이불을 채 느낄 새도 없이 불편한 몸이 다시 한번 돌려졌다.

아무래도 찝찝했다. 내가 한 일은 아니었지만, 은연중에 흘러나온 샤샤의 말이 계속 신경 쓰였다.

‘공작께서 다치셔도 꿈쩍도 안 하시던 분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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