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샤샤의 얼굴 위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던 제 주인이, 눈앞에서 눈물을 흘린다니.
“부인! 일단 진정을 좀……! 눈이 다 붓겠어요. 손, 손수건!”
악어의 눈물을 흘려 내며 힐끔, 옆을 살폈다. 다행히 샤샤는 제 연기에 껌벅 속아 넘어간 듯했다. 심쿵하라고 준 꽃이 하필이면, 고인에게 헌화하는 용도였다.
이대로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다가는 정말로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거다.
고로 지금은 이 말만은 시녀를 이용해야 할 시점이었다. 쥐어짠 눈물을 닦으며 샤샤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하……. 난, 정말 몰랐어. 증상이 생각보다 더 심각한가 봐.”
말없이 제 어깨를 토닥이던 샤샤가 의구심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를 않으세요?”
“사고 후유증이 생각보다 큰 모양이야. 이런 기본적인 것들조차 잊는 걸 보면. 그이의 앞에서 이런 엉망인 모습까지 보이다니……. 얼마나 상심했을까,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아파.”
부러 아련한 표정을 유지하며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빨리 가서 일러바쳐. 네 주특기인 고자질을 하란 말이야!’
조금은 유순해진 샤샤의 시선을 보며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곤 쐐기를 박듯, 다음 말을 이었다.
“에드먼드와 더는…… 틀어지고 싶지 않아.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된 걸까. 샤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내가 지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잖아.”
“부인…….”
감동한 듯, 샤샤가 두 눈을 글썽이며 다음 말을 이었다.
“일단은, 제가 공작님께 부인의 상황을 잘 말씀드려 볼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샤샤, 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 그동안 부인께서도 공작님께 이 일을 만회할 만한 무언가를 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만회?”
마주 본 얼굴 위로 결연함이 가득했다. 말을 움직였으니, 이제는 특기를 이용해 볼 차례다.
* * *
이튿날 아침, 따사로운 햇살이 감긴 눈을 비췄다.
“으음.”
출근 압박에서 해방되니 절로 나른한 비음이 흘러나왔다. 오늘의 평온함을 온전히 느끼던 그때, 샤샤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인, 손님이 오셨어요.”
익숙한 아침, 익숙한 흐름 그리고 익숙한 대사까지. 모든 게 계획대로였다.
‘우리 샤샤, 인재야. 인재.’
솟구치는 광대를 잠재우며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눈길이 닿은 곳에는 어젯밤, 에드먼드를 주려 손수 만들어 둔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하얀 국화가 여기서는 행운을 상징할지 누가 알았겠어?’
다발을 만들기 전, 샤샤에게 꺾어 온 꽃들의 의미를 확인하기도 했으니 이번만큼은 실패하지 않으리라.
“부인? 아직 주무세요?”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샤샤가 다시 한번 독촉했다.
“나야.”
기다리다 지친 건지, 문밖으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만들어 둔 꽃다발을 챙겨 들었다. 준비를 마치자, “후…….” 낮게 심호흡하곤 문고리를 돌렸다.
그러곤 재빨리.
“이, 이거!”
등 뒤에 있던 국화 다발을 에드먼드에게 건넸다. 곧바로, 평온하던 적안이 당황한 듯 빠르게 일렁였다.
“사, 사과하고 싶어서. 급히 만들어 봤어요. 그 꽃이 그런 의미인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얼결에 다발을 건네받은 에드먼드가 말없이 시선을 내렸다. 거뭇한 피부와 달리 새하얀 국화 송이는 어쩐지 부조화한 행태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히고, 잠시 침묵하던 그가 애꿎은 입술을 세게 짓이겼다.
“흠흠, 그래.”
짧은 대답과 함께 민망한 정적이 계속됐다. 일순, 에드먼드의 등 뒤로 어색하게 미소 짓는 샤샤의 모습이 들어왔다.
어서 다음 말을 하라며 친히 손짓까지 해 주는 샤샤를 보며 또다시 용기를 냈다.
“해피해피꽃은 이름처럼 행운과 행복을 뜻한다길래, 준비해 봤는데…… 마음에 안 들어요?”
에드먼드 품에 안긴 국화 다발, 아니 해피해피 꽃다발을 바라보며 입술을 잘근거렸다.
“……들어.”
쥐꼬리만 한 목소리에 나는 귀를 쫑긋 기울이며 되물었다.
“네? 뭐라고요? 잘 안 들려요.”
“마음에 든다고.”
대답과 함께 굳어있던 에드먼드의 얼굴이 조금씩 풀어졌다.
이대로 오해가 풀리는 듯했으나, 애석하게도 짧은 대화를 끝으로 두 사람 사이엔 침묵만이 흘렀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말을 하라고, 말을.’
속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눈앞의 남자는 묵언 수행 중인 수도승이라도 된 양, 나른한 시선을 유지했다.
‘새로운 고문 방식인가? 묵언으로 죄를 사하는, 뭐 그런 건가?’
가히 확언할 수 있었다. 가시방석이 있다면 분명, 이곳일 거라고. 그렇게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입이 간질거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하하, 차가 다 식었는데. 자리를 옮길까요? 오늘 레틴이 가재 요리를 해 준다던데…….”
부러 뒷말을 흐리며 에드먼드의 눈치를 살폈다. 은근한 제안에도 에드먼드는 뜻 모를 표정을 지어 보일 뿐,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그사이 에드먼드의 동공이 새하얀 꽃송이에 머물렀다. 지금 이 상황이 답답한 건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군’
어젯밤, 클로엔의 시녀로부터 전해 들은 말들은 정말이지 충격 그 자체였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차 사고가 난 이후 단 하루도 혼란스럽지 않은 날이 없었다.
단순한 기억도 모자라 기본적인 것들까지 모두 잊었을 줄이야. 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다.
고작 하룻밤 새에 야윈 클로엔의 모습이 에드먼드는 신경이 쓰였다. 품에 안긴 꽃다발은 덤이었다.
‘부인께서 많이 슬퍼하고 계세요. 조금 전까지 우시는 걸 간신히 달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