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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편과의 이혼을 거부합니다 (8)화 (8/107)

제8화

조용히 숨을 죽인 채 에드먼드가 식사를 시작하기만 기다렸다.

“파릇하군.”

에드먼드가 가장 바깥쪽에 놓인 작은 포크를 집어 들었다. 힐끔 그를 살피곤 곧장 바깥에 놓인 샐러드용 포크를 집어 들었다.

“으음. 신선하네요! 식감도 좋고!”

일순 에드먼드의 붉은 동공이 저를 스쳐 갔다. 전에도 같은 시선을 느낀 적이 있었다.

마치 이건 뭐 하는 물건이냐는 듯, 그런 경멸 어린 눈초리 말이다. 에드먼드가 포크를 내려놓곤 바깥쪽에 놓인 작은 스푼을 집어 들었다. 이번에도 역시 냉큼 따라 들었다.

“지금…… 뭘 하는 거지?”

“아하하, 수프 맛이 참 좋네요. 그렇죠?”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앞에 놓은 수프를 떠먹었다.

“그래.”

무언가 이상한 듯, 에드먼드가 짧게 대답하곤 가장 안쪽에 놓인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이번엔 커틀릿이었다.

“커틀릿이 색이 무척 좋아요. 아주 맛있어 보여요. 하하.”

“대체 왜, 아까부터 계속 따라 하는 건데?”

“따라 하다니요? 그냥…… 먹고 싶은 걸 먹는 것뿐인데.”

어깨를 으쓱이며 커틀릿 위로 나이프를 가져갔다. 절단면을 만들려는 그 순간.

끼이익!

손에 들린 나이프가 미끄러지며 듣기 싫은 쇳소리를 냈다.

‘제엔장! 이제는 칼질도 제대로 못 하는 거야?’

어이없는 실수에 눈동자가 빠르게 굴러갔다. 역시나, 잘리다 만 커틀릿과 함께 에드먼드의 미간 또한 보기 싫게 구겨졌다.

“휴, 사고 때문인지 손목에 힘이 없네요. 통증도 있는 것 같고……. 아무래도 닥터 마르스를 다시 한번 불러야겠어요.”

원래 순간의 기지가 위기를 넘기는 법이었다. 들고 있던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 두며 너스레를 떨었다.

의심 어린 시선이 이어지자 정말로 아프다는 듯, 손목을 주물러 보이며 눈살을 찌푸리는 등의 행동을 취하기도 했다.

“아야, 아야야! 아파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드먼드가 한숨을 푹, 내쉬곤 옆에 있던 샤샤에게 말을 붙였다.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부인을 잘 모셔라.”

“네? 아, 네!”

전에 없던 명령에 샤샤가 공작 부부를 살피며 서둘러 답했다. 그사이, 나는 테이블에 얼굴을 처박고 웃음을 참기 바빴다.

은근한 관심에 광대뼈가 승천했기 때문이다. 한껏 나아진 기분을 느낀 채 앞에 놓인 수프를 한입, 두 입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배고픈 위장이 고작 수프 따위에 만족할 리 없었고.

‘새우, 새우도 먹고 싶은데. 새우는 뭐로 먹는 거지? 랜돌프 공작님! 제발 먹어 줘. 그래야 나도 따라 먹지!’

입맛을 다시며 노릇하게 구워진 새우를 응시했다.

“레틴의 새우 요리는 일품 중 일품이지.”

잠시 힐끗거린 그가 전체용 포크를 집어 들었다. 꿀꺽, 포크 날에 꿰뚫린 새우살을 보며 저도 모르게 군침이 돌았다.

“와……. 정말 맛있어 보여요.”

부러 아프지도 않은 손목을 주물러 대며 가련한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빈 접시 위로 깨끗이 발라진 새우살이 놓였다.

“이거 지금…… 나, 주는 거예요?”

“먹지.”

아무렇지 않은 듯 대화를 넘기는 에드먼드를 보고 있자니, 되레 자신이 더 민망해져 버렸다.

하지만 주린 배가 먼저였다. 빠른 손놀림으로 발라진 새우를 입에 쏙, 넣었다. 짭조름한 바다 향과 함께 버터의 감칠맛이 입속에서 어우러지자, 자연스레 미소가 떠올랐다.

‘레틴이 확실히 실력이 좋네. 그냥 입 안에서 녹네, 녹아.’

지금껏 먹어 본 새우 중에 단연 으뜸이라고 해도 될 만큼 맛과 풍미가 훌륭했다.

“으음~. 맛있어.”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행복하게 미소 짓는 클로엔을 힐끗거리며, 은은히 올라가는 입꼬리를 말이다.

* * *

“부인, 이게 다 드신 거예요?”

남은 식기를 정리하던 샤샤가 조용히 속삭였다. 텅 빈 에드먼드의 접시와 달리 앞에 놓인 접시는 처음과 큰 차이가 없었다.

“손목이 시큰거려서 도통 먹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도 배고프실 텐데…….”

맞아. 그것도 아주 많이.

먹은 양도 쥐꼬리인 데다가, 같지도 않은 내숭을 부려서인지 주린 배가 아우성을 쳤지만 무시했다.

“괜찮아.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부실한 식사에 신경이 날카로웠으나 애써 미소 지으며 짧게 답했다. 마음 같아서야 눈앞의 음식들을 진공 흡입기라도 된 양, 빨아들이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도 없었다.

‘저 만찢남만 아니었어도.’

조용히 마주 앉은 에드먼드를 흘겼다. 식사하는 내내, 자신을 살피고 또 살피는 미남의 시선이 퍽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곧바로 따뜻한 차와 색색의 예쁜 디저트들이 나왔다. 동글동글 한눈에 봐도 달콤해 보이는 마카롱과 노릇한 마들렌.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자태에 절로 눈동자가 커지고 마른침이 넘어갔다.

‘이건 손으로 먹어도 되겠지?’

고인 침에 냉큼 마카롱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곤 재빨리 입 안으로 넣었다.

“으음~.”

저도 모르게 기분 좋은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달콤한 행복 속에 몸부림치던 그때, 피부 위로 진득한 시선을 느꼈다.

“무슨…… 문제라도?”

뭘 그리 빤히 보는 건지. 에드먼드의 적안이 말없이 저를 향해 있었다.

“이런 걸 좋아하는지 몰랐군.”

에드먼드가 피식, 한쪽 입꼬리를 올리곤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어디 가려고요?”

“내가 여기 더 있어야 하나?”

“아직 많이 남았는걸요?”

“미안하게도 난, 설탕 덩어리에 관심이 없어서.”

무심히 말한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내, 망설임 없이 식당 밖으로 걸음을 돌렸다.

이대로 간다고?

커다란 음영이 자취를 감출 즈음, 나는 버둥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 우리! 같이 산책 안 할래요?”

말과 동시에 에드먼드의 상체가 천천히 돌아갔다.

“산책?”

“네! 산책. 오랜만에 함께 한 자리인데 같이 산책이나 해요. 보니까 뭐…… 화원? 후원? 그런 것도 있던데.”

“…….”

“사람이 너무 안에만 있는 것보단 적당히 광합성도 해 주고, 바람도 쐬고 해야 기분이 좋아지는 법이거든요.”

부러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머리 위론 햇살이 비쳤다. 보기 좋은 백금발이 영롱히 반짝이자 냉철했던 에드먼드의 시선에도 미세한 변화가 일었다.

“어때요, 같이 안 갈래요?”

완전히 변한 듯한 그녀를 보며 에드먼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3년이라는 결혼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미소를 고작 1시간 남짓한 시간에 차고 넘치도록 보여 줬다.

‘대체 무슨 꿍꿍이인 거지?’

잠시 생각하던 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후원은 생각보다 정리가 잘된 모습이었다. 가짓수가 얼마 없긴 하나 꽃으로 보이는 생물체가 있었고, 저 멀리 커다란 나무도 한 그루도 보였다. 물론, 굳이 가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은 딱, 여기까지. 밥 먹고 차 마시고 산책하고. 데이트의 정석이지 정석.’

완벽한 계획에 고개를 끄덕이며 히죽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드먼드가 조용히 말을 얹었다.

“아까부터 기분이 좋아 보이는군.”

“안 좋을 게 없잖아요. 바람도 좋고, 볕도 좋고.”

미남도 옆에 있고.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자연스레 코 평수가 넓어졌다. 얼마나 걸었을까, 트인 시야 사이로 보라색 꽃망울이 들어왔다.

“어? 라벤더?”

모든 게 낯선 이곳에서 유독 익숙한 생물체를 마주하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절로 걸음이 빨라졌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손바닥을 휘적거려 냄새를 퍼트렸다. 은은한 향내를 맡고 있자니 불안했던 머릿속이 안정되는 듯했다.

한차례 기분 전환 후, 라벤더 한 송이를 꺾어 에드먼드에게 건넸다.

“지금 뭘, 하는 거지?”

곧장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록 꽃향기에 취한 제게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향이 아주 좋아요. 이 꽃으로 집 안을 장식하면 참 예쁠 텐데. 어떻게 생각해요?”

말과 동시에 에드먼드의 얼굴이 시리도록 차가워졌다. 이내 알겠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이상하다 했지. 역시나. 당신이란 여자는 변하지를 않는군.”

서릿발 같은 눈동자가 저를 향했다. 조금 전과 달리 날 선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어쩐지 속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저 예쁜 꽃을 주고 싶었을 뿐인데. 의도와는 달리 상황이 계속 이상하게 돌아갔다.

‘왜일까, 왜 화가 난거지?’

적대적인 에드먼드의 반응을 이해해 보려 이런저런 생각들을 이어 본 결과,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혹시…… 아끼는 꽃인가?’

* * *

무더운 날씨가 무색하게 에드먼드의 집무실은 바람 한 점 들지 않았다.

방 곳곳에 달린 커다란 창문은 꼭꼭 닫혀 있었고, 그 위로 달린 두꺼운 커튼은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빛을 차단했다. 덕분에 내부는 어두컴컴한 찜통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단 한곳. 에드먼드가 앉은 자리만큼은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불쾌한 기분을 증명하듯, 그의 주변으로 푸릇한 오러가 넘실거리며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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