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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편과의 이혼을 거부합니다 (7)화 (7/107)

제7화

‘와, 비주얼 보소. 이거 지금 인별에서 보던 그 비주얼인데?’

화려하게 세공된 식기와 잘 짜인 테이블보,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뿐인가, 없던 입맛도 돌아오게 하는 이 맛있는 냄새까지!

‘딱 봐도 미슐랭 각이네.’

놀라운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둘러보던 그때, 힐끔대는 시선이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괜한 민망함에 벌어진 잇새를 조용히 다물었다.

‘하지만…… 엄청나잖아!’

황제의 총애를 받아, 살림살이가 넉넉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공작 가문의 식탁은 말대로 산해진미로 가득했다. 뭐가 뭔지 구분이 되지 않았음에도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식탁 위의 식자재들이 비루했던 내 한 달 월급에 버금갈 거라는 사실 말이다.

불연 에드먼드에 대한 애정이 한층 더 깊어졌다. 얼굴이면 얼굴, 몸이면 몸, 재력이면 재력. 뭐 하나 빠지는 데가 없는 그로 인해 심장이 버거웠다.

‘난 공작 부인이야. 고귀한 공작 부인. 주접떨지 말고, 오바하지 말고, 고상하게, 우아하게 행동하자. 귀족스럽게.’

“결혼기념일을 위한 만찬에 딱 어울리는 식사네요. 정말 죽여 주…… 아니지, 무척이나 훌륭해 보이는걸요. 호호.”

음식 때문인지, 아니면 빛나는 남편의 미모 때문인지. 입 안 가득 고이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사람 좋게 미소 짓는 나와 달리 샤샤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냄새만 맡아도 인상을 구길 때는 언제고, 맛있겠다며 입에 발린 소리까지 하는 제 주인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등골이 서늘했다.

‘저래 놓고 대뜸 식탁을 뒤집어엎는 건 아니겠지?’

하하, 잠시 생각하던 샤샤가 멋쩍은 미소와 함께 머리를 긁적였다.

곧바로 주방 모자를 쓴 남자가 준비한 메뉴들을 차례대로 소개했다.

“레드커런트 샐러드와 피코동 치즈를 넣은 토마토 파르시, 붉은 후추를 곁들인 새우구이, 그리고 버섯과 함께 구운 송아지 커틀릿까지.”

남자를 마주함과 동시에 그가 누구인지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랜돌프 공작 가문의 수석 주방장, 레틴 코코. 원작 속 그는 제가 만든 음식을 사랑했으며 자부심을 가진 이였다.

무릇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 하여 코코의 빛나는 자기애를 이용하기로 했다.

에드먼드에게 신뢰를 얻는 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릴 거다. 고로 이곳에서 편히 살고자 한다면 사용인들과 가까워지는 게 최우선이었다.

“그린 빈으로 장식한 타라곤 오믈렛, 헤이즐넛 버터로 구운 갑오징어와 후식으로는 라즈베리 퓌레 그리고……!”

“와, 가짓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하군요. 준비하느라 고생했어요, 레틴. 잘 먹을게요.”

끝없이 메뉴를 설명하는 레틴을 향해 예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동시에 우락부락한 레틴의 두 눈이 촉촉하게 차올랐다.

무엇에 그토록 감명을 받은 것인지, 소리 없이 울먹이던 사내는 입술까지 바르르 떨어 가며 말문을 열었다.

“공작 부인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다니…… 너무 감격스럽습니다. 제 음식에서는 늘 구린내가 난다며 야박을 주시기 일쑤였는데, 흡.”

‘여기는 웃는 낯으로 할 말 다 하는 게 유행인 모양이구나?’

레틴은 커다란 어깨를 들썩이며 연신 눈물을 훔쳐댔다. 괜히 나쁜 사람이 된 거 같아 양심이 콕콕 찔렸다. 어색해진 분위기에 부러 힘껏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대체 이 여자는 어떤 삶을 살아왔던 건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감명이라니…… 민망하기는 했으나,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원작 클로엔의 악행 덕에 앞으로의 행보가 빛을 보기 수월할 테니 말이다.

“무슨 말이에요, 레틴. 이렇게 훌륭한 음식을 만들어 놓고. 매일 레틴의 정성이 담뿍 담긴 음식을 먹는다는 건, 정말이지 행복한 일인걸요.”

“공, 공작 부인……!”

주방장 레틴이 울먹이며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험상궂은 인상착의와 달리 눈물과 콧물로 범벅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지만 간신히 참았다.

“저런. 레틴, 얼굴이 엉망이 되겠어요. 이거로 닦아요.”

품에 있던 손수건을 레틴에게 건넸다. 감복한 듯, 조용히 훌쩍이던 레틴은 급기야 울음을 터트렸다.

“어흐흑! 공작 부인께서 이렇게 따뜻하신 분인지, 제가 미처 몰랐습니다.”

쥐여 준 꽃무늬 손수건에 알뜰히 콧물까지 닦아 내는 레틴을 보며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일단 한 명은 완전히 감겼고.’

레틴의 어깨를 토닥이며 공략을 마무리하려던 그 순간,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에드먼드가 굳은 표정을 유지한 채 짧게 말했다.

“연기가 대단하군.”

이내, 가소롭다는 듯 에드먼드가 한쪽 입꼬리를 비틀었다.

젠장, 걸린 건가?

순간 마른침이 꼴깍 넘어갔다. 말아 쥔 손엔 식은땀이 차올랐다.

‘아니야, 아닐 거야. 이 속에 든 게 진짜가 아니라 외간 여자인 사실을 알 리가 없어. 침착해. 숨 쉬어. 괜찮아.’

허를 찌르는 공작의 말에 두근거리는 심장을 잠재우려 노력했다. 그러곤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비록 목소리는 볼품없이 떨려 버렸지만 말이다.

“연, 연기라뇨?”

“늘 못 먹는 음식을 내놓는다며 주방장을 잡기 일쑤였다지. 입에 안 맞으면 굳이 먹지 않아도 돼.”

떨리는 시선이 천천히 레틴을 향했다. 한 손에는 손수건 다른 한 손에는 꾸깃꾸깃하게 쥐어 잡은 주방 모자를 든 채, 레틴은 조용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간 부인의 입맛을 맞추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두 분께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니, 아니에요. 정말 맛있어 보여요. 그때는 제가 좀 어떻게 됐었나 봐요. 하하.”

잔뜩 풀이 죽은 레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공들인 탑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불안했다. 재빨리 입술을 잘근거리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말씀만 해 주십시오. 두 분이 기뻐해 주신다면, 힘이 닿는 데까지 성심성의껏 준비하겠습니다.”

타오르는 레틴과 달리 이 상황이 귀찮은 듯, 에드먼드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만 가 보라, 손짓했다.

“이만 식사하지. 어서 들어. 식겠군.”

퍽 다정한 말과 함께 듣기 좋은 저음이 귓가를 울렸다. 아무래도 조금 전, 집무실에서의 도발이 약효가 있는 모양이었다.

‘후, 진정해. 아직 때가 아니야.’

잘 그을린 피부 위로 보일 듯 말 듯 달아오른 두 뺨을 보고 있자니, 당장에라도 식탁을 뒤엎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지만 애써 무시했다.

검은 속내를 감추고 화사한 미소와 함께 “네.”하고 짧게 답했다. 그러고는 잘 차려진 식탁 위로 다시 한번 눈길을 돌렸다.

‘음, 이것들은 다 뭐지? 굉장히 유해한데? 가짓수가 많은 게 음식만이 아니었구나?’

동시에 미간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붉으락푸르락 자유자재로 낯빛을 바꾸던 라벤더색 눈동자가 파르르 떨려 왔다.

중앙에 놓인 접시를 기준으로 양옆에 늘여진 수많은 포크와 나이프를 마주하자 온몸이 수축하며 꿀꺽, 마른침이 넘어 갔다.

접시 위로 놓인 작은 포크와 스푼, 그리고 오른쪽에 놓인 용도 불문의 크고 작은 글라스 잔을 보고 있자니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하, 이거 K-로판 아니었어?”

낮게 신음하곤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곧장 서늘하게 식은 에드먼드의 시선이 피부 위로 느껴졌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하하, 아니에요.”

진득하게 엉겨 붙던 그의 시선이 곧장 떨어져 나갔다. 길게 늘여진 투명한 유리잔 위로 잔뜩 굳은 제 얼굴이 비쳤다.

‘침착하자, 침착해. 당황할 것 없어 괜찮아. I’m Ok.’

앞에 놓인 물컵을 벌컥벌컥 들이켜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식사라고 해 봤자 포크 하나, 나이프 하나만 달랑 있을 줄 알았다. 이토록 정석 중의 정석일 줄이야.

‘바로 옆에 놓인 게, 정식용이던가? 아니면, 그 옆에? 그것도 아니면 저 쥐방울만 한 포크?’

커다란 눈망울이 해답을 찾으려 연신 이리저리 움직였다. 하지만, 투명한 머릿속은 새하얀 도화지와 다름없었고.

‘염병, 아무리 봐도 모르겠어!’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솝 우화 속 두루미가 된 기분이었다. 앞에 놓인 맛깔스러운 음식을 두고도 먹지 못하는 슬픔이 이런 걸까.

묘한 배신감과 동시에 곧 만천하에 공개될 무식함이 수치스러워 입술이 달달 떨렸다.

‘아냐, 의지의 한국인. 이깟 시련 아무것도 아니야.’

맛있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음식들을 포기할 수 없었다.

고로, 염탐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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