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철컥! 묵직한 굉음이 났다. 시선을 내리깔자, 자그마한 손 위로 웬 고철 덩어리가 묶여 있었다. 자연스레 시선은 닥터 마르스를 향했다.
“아! 손에 묶인 것 때문에 놀라신 모양이군요. 별것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거짓을 고하시면 앞쪽에 달린 깃털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간지러움을 유발할 뿐이지, 생명에는 지장이 없답니다.”
하! 하! 마르스가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꺼덕거렸다.
간지럼? 천천히 얼굴을 구기며 옆에 선 에드먼드를 말없이 바라봤다. 무심한 표정으로 벽에 기댄 그 모습조차도 어찌나 완벽한지. 솟구쳤던 전투력이 자연스레 가라앉았다.
‘그래 설마 죽기야 하겠어?’
생각과 동시에 경직된 몸에 힘을 풀었다.
“그럼 이만, 검사를 시작해 볼까요?”
마르스의 말을 끝으로 길고 긴 검사가 한동안 계속됐다. 이따금 들려오는 클로엔의 비명과 숨이 넘어갈 듯 자지러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 * *
지금 내 기분을 표현해 보자면, 마치 고요한 태풍의 눈 속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너무도 평화로워 의심이 들 지경이랄까?
‘그래, 내가 죽던 그날 밤도 이상하리만치 고요했었지.’
잠시 생각하자 절로 미간이 구겨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조금 전까지도 손에 묶였던 빌어먹을 고철 덩어리.
어쩜 그리 거짓을 고할 때마다 어김없이 간지럼을 태우던지, 이대로라면 진짜 클로엔이 아니라는 사실을 걸리는 건 시간문제일 터.
“뭔가 다른 대책이 필요해.”
“무슨 대책이요? 설마 어떻게 하면 공작님을 속이고 저택을 빠져나가실지, 뭐 그런 대책을 세우시는 건 아니죠?”
어느새 곁으로 온 샤샤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늘게 접힌 라벤더색 눈동자가 샤샤를 향했다.
“흐음…….”
우선, 이 말 많은 시녀의 포지션부터 확실히 해 두는 게 나았다. 입이 가벼우니 잘만 이용한다면 제법 쓸모가 있을 테니 말이다.
“에드먼드에게 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보고하니?”
“예. 예?!”
“보아하니, 내 이야기를 고대로 가서 에드먼드에게 전달하는 것 같던데. 샤샤?”
“그, 그게……. 이건 다! 두 분의 평화로운 부부 생활을 위해……!”
“괜찮아. 인간이란 무릇, 권력 앞에서 작아지곤 한단다.”
‘나도 늘 그랬지. 아무렴.’
변명하는 샤샤의 말을 가로채며 혀를 끌끌 찼다. 물론 뒷말은 조용히 입 안으로 삼켰다.
“이해해 주시니 감사해요, 부인. 하지만 부인께서 불편하신 곳이 있다면, 응당 공작님께서도 아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물며 기억을 잃으셨는데 알리지 않는 건 정말이지 말이 안 되는 일이잖아요. 저 샤샤가 이른 나이에 부인을 모시게 된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고요!”
“음~. 어려서부터 고자질 아니, 보고를 잘했던 모양이구나. 과연 파워 직장인에 버금가는 현명한 처사야.”
자랑스럽게 말하는 샤샤를 향해 장단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순한 반응이 당혹스러운지, 샤샤가 커다란 눈망울을 끔벅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부인께서 크게 화를 내실 줄 알았는데.”
“너도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굳이.”
여전히 간질거리는 듯한 오른팔을 긁적거리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얼결에 회귀했고 빙의를 했다고 말했다가는 곧장, 마녀로 몰려 죽을지도 몰라.’
첫 번째 위기에 봉착한 지금, 혹여라도 이 말도 안 되는 사실을 에드먼드가 알게 되어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좋은 방법에 대해 생각해야만 했다.
“아, 참! 기억 회복에 좋은 차를 가져왔어요. 어서 빨리 잊힌 기억을 찾으셔야 할 텐데……. 아니다, 차라리 잊고 사시는 게 낫겠네요. 또 저택을 벗어나려 하실 테니.”
“아쉽게도 난 떠날 생각이 없단다, 샤샤.”
“그게 정말이세요? 정말, 정말 떠나지 않으시는 거예요? 멋대로 저택 문을 부순다거나, 마차를 훔치신다거나. 세상에! 드디어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는 거예요? 언젠가 부인께서 마음을 다잡으실 줄 알았어요.”
샤샤가 활짝 미소 지으며 두 손을 붙들었다.
“그럼. 여기가 내 집이고, 여기 내 남편이 있는데 내가 왜 떠나.”
부러 쐐기를 박았다. 이 또한, 에드먼드에게 전달되리라는 계산하에 한 말이었다.
“휴, 정말 다행이에요. 아! 가져온 것들은 꼭 식기 전에 드세요. 저는 이만 점심 식사를 준비하러 가겠습니다.”
기쁨에 찬 환호성이 한동안 계속됐다. 샤샤가 방을 나가려던 찰나, 무언가 번쩍 떠오르며 전두엽을 스쳤다.
“잠깐! 그래, 나 지금 기억 상실이지? 그래 맞아! 나 지금 기억이 전혀 없는 거잖아, 안 그래?”
“예? 예…… 그렇죠.”
“그 말은 즉,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말이고?”
“갑자기 왜, 왜 이러세요. 무섭게.”
울먹이는 샤샤와 달리 내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고 얼굴도 자주 봐야 정이 드는 건데, 왜 이 생각을 못 했을까.”
“……?”
“뭐해? 안내하지 않고?”
“대체 무얼 말씀이세요?”
“뭐긴, 내 남편이지. 가자! 에드먼드한테!”
“예?! 하, 하지만! 부인! 부인!!”
* * *
“다시 한번 묻지, 마르스 경은 어떻게 생각하지?”
축 처진 어깨가 절로 움찔거렸다. 악독하고 잔혹하기로 소문난 공작이었다. 괜한 말로 성미를 건드렸다가는 산목숨으로 이곳을 나가는 건 불가능할 터.
‘시급의 다섯 배를 쳐준대도 오는 게 아니었는데…….’
마르스가 떨리는 두 손을 마주 잡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다, 다행히도 몸에는 이상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돌팔이 눈에는 저게 이상이 없는 거로 보이는 모양이군.”
에드먼드의 붉은 동공이 중년 남자를 향해 번뜩였다. 흠흠, 마르스가 마른 목을 가다듬으며 조금 전 일을 잠시 회상했다.
공작 부인의 검사는 정말이지, 예상에 예상을 뒤엎는 충격적인 전개였다. 일단, 첫 질문부터 순탄하지 않았으니.
‘당신은 클로엔 랜돌프가 맞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