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아, 나 귀엽지 외전-74화 (499/500)

외전 74화 크리스마스 선물

[이시혁의 육아일기]

친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에 많이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시하는 나와의 관계를 더 신경 쓰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시하가 내 동생인 게 너무나 당연해서 그 부분을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배상현 씨와 시하의 관계만 생각했을 뿐.

그게 미안했다.

시하에게 배상현이 친아버지라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중요도 순위에서 밀렸다.

그저 나와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그 작은 머리로 불안해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달라지는 건 없다.

앞으로도 지금도 내가 시하의 형이라는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을 테니까.

장례식장에서 우는 시하를 안으며 결심했다.

내가 너를 지킨다고.

그래. 앞으로도 쭈욱.

다음 날에는 시하가 어리광을 부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부엌에 있는데 내 등 뒤에서 포옥 안지 않나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도 달려와서 포옥 안겼다.

시하를 그만큼 불안하게 했다는 게 미안했다.

그리고 미술쌤에 대해서는 잘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아직은 서로 아들이나 아빠로 말하는 건 어색하지만 그건 시간이 해결해줄 일이다.

[12월 5일]

시하의 생일이 되었다.

무슨 선물을 할까 매년 고민했지만 이번 연도는 더더욱 고민이 되었다.

그 사건이 일어난 지 아직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시하는 괜찮아 보이지만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이게 바로 부모의 마음인 걸까.

뭔가 마음 쓰이는 일이 생기면 계속 마음이 쓰이는 것 같은.

아버지도 그랬던 것 같다.

육아일기를 읽어보면 눈치 보던 아이인 나를 신경 썼던 부분이 많이 느껴졌으니까.

아무튼, 선물을 고민했는데 네발자전거를 사주기로 했다.

친구들이랑 자전거 타고 놀러 가면 재밌을 것 같았다.

시하에게 선물해 주니 정말 기뻐했다.

삼촌은 새로 출시된 플레이스테이션을 선물했는데 시하는 별로 하지도 않고 삼촌만 하고 있다.

사실 자기가 하려고 산 거 아니야?

또 배상현 씨는 무슨 생일 선물을 조사했는지 비장한 표정으로 큰 박스를 시하에게 건네 주었다.

시하가 웃으며 박스를 받으며 고맙습니다, 라고 외쳤다.

그리고 뭔가 쑥스러운지 작은 목소리로 아빠, 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배상현 씨는 그 말에 울음을 터뜨렸다.

나 역시도 살짝 눈에 물기가 맺혔다.

앞으로 시하의 입에서 누군가에게 아빠, 라고 불릴 일은 없었을 것 같았으니까.

그래도 다행이다.

시하의 기억 속에서 이제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이 생겼음을.

이렇게 일기를 적고 있는 순간도 오늘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렇게만 잘 자라줬으면 좋겠다.

정말.

***

날이 추워지며 옷을 따뜻하게 입는 12월.

시하는 요즘 고민이 들어 멍하니 학교 칠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승준이 그런 시하를 보더니 볼을 콕 찔렀다.

“시하야. 뭐 해?”

“응?”

“뭐 하냐고. 무슨 고민 있어?”

“이제 크리스마스잖아.”

“응? 크리스마스까지 아직 꽤 남았는데? 이제 7일이니까 18일 남았네. 많이 남았네!”

“아니야. 별로 안 남았어.”

시하는 두 손으로 턱을 괴었다.

승준이 시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무슨 일인데?”

“크리스마스 선물을 뭐 줄지 고민이야.”

“난 또 무슨 고민이라고. 크리스마스 선물이면 산타할아버지가 우리한테 줘야지.”

지극히 당연한 말이었다.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기만 하니까.

“나는 형아한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줄 거야. 내가 산타야.”

“오! 그렇네. 나도 엄마, 아빠 산타한테 뭐 줘야 하나?”

승준이도 같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뒤에 있던 하나가 의견을 냈다.

“오빠는 나랑 같이 노래 선물 하면 되잖아.”

“아니야. 노래 선물은 싫어.”

“그건 오빠가 싫은 거고 엄마랑 아빠는 좋아한다니까.”

“에이. 노래 선물이 무슨 선물이야. 이왕이면 크리스마스트리가 그려진 사커공을 줘야지.”

“그거는 더 쓸데없거든?”

쌍둥이가 투덕거렸다.

시하는 그런 쌍둥이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때 연주가 시하의 어깨를 콕콕 두드렸다.

“연주야 왜?”

“시하는 그림 잘 그리니까 그림 선물 하면 되지 않아?”

“그림?”

“응.”

“그거는 으음 예전에도 줬는데.”

“지금도 또 주면 되지. 이거는 어때?”

“응?”

연주가 폰으로 하나의 영상을 보여 주었다.

너튜버가 나와서 인사를 한다.

하얀 신발을 보여준다.

아무것도 칠해져 있지 않은 메이커인 신발을.

도색이 빠르게 되며 멋진 신발이 완성되었다.

시하가 눈을 빛냈다.

“이거 뭐야?”

“이거? 신발 커스텀이라는 건데 아는 언니가 신는 거 보고 엄청 멋있다고 생각했어.”

“우와.”

시하가 눈을 빛냈다.

새하얀 신발이 너무 예쁘게 변하고 있었으니까.

“이거 어떻게 해?”

“응? 모르는데.”

“으음.”

시하가 열심히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찾아보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연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정말.”

“대박. 시하야. 나도 나중에 해 주면 안 돼?”

“나중에 해 보고.”

“알았어.”

시하는 공책을 펴서 계획을 적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선물]

[형아, 삼촌, 아빠, 나 4개]

[신발 사기 – 알리사 누나에게 부탁해 본다]

[신발 색칠하기 – 피아노 도색 아저씨에게 부탁하기]

[모든 건 다 비밀]

계획은 완벽했다.

하지만 뭔가 걸리는 점이 있었다.

어떻게 모두에게 비밀로 하고 신발을 만들지.

형아랑 늘 함께해서 어딜 가든 들킬 게 뻔했다.

“우웅.”

안 들키는 방법이 없었다.

“형아한테 안 들키고 만들 수 있을까?”

승준이도 고민을 같이했다.

“아. 좋은 생각이 났다. 그러면 내가 사커하자고 말할게. 그럼 시혁이 형이랑 나랑 사커하고 있으면 시하가 그때 빨리 가서 하고 오면 되잖아.”

승준이 엄청난 아이디어라며 눈을 빛냈다.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삼촌은?”

“삼촌도 내가 사커하자고 불러내면 되지.”

“삼촌은 사커 안 할 건데? 드라마 보고 싶어 할 거야. 근데 내가 어디 가면 따라와.”

삼촌도 시하를 돌보기 위해서 따라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나가 말했다.

“그러면 내가 노래 불러서 음방하고 연주가 연기해서 드라마 방송하면 되겠다. 앞에서 보여주면 재밌어할 거야.”

어처구니없는 작전이었다.

그 누구도 이 작전에 대해서 태클을 걸지 않았다.

한 사람만 제외하고.

“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종수가 그 말을 듣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게 정말 통한다고 생각해?”

“왜? 통할 수도 있지.”

“그런 거 하나도 안 통하거든?”

“그러면 종수는 어떻게 할 건데?”

“나? 당연히 한 사람한테 알려야지.”

“이거 비밀인데?”

“그러니까 미술쌤한테만 알리면 다 편하게 되잖아.”

“미술쌤한테도 비밀로 할 거야.”

“어휴. 다 비밀이면 어떻게 할 거야. 태권도장에서 할 거야?”

“그건 아닌데.”

시하가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렸다.

확실히 비밀로 하기에는 너무나 어렵긴 했다.

그때 윤동이 말했다.

“그냥 담임쌤에게 부탁하면 되지 않아?”

그 말에 시하가 눈을 번쩍 떴다.

“그거다!”

은우가 시하의 말에 웃었다.

“푸하하. 그거래. 그거. 푸하하.”

아무도 뭐가 웃긴지 모르는지 어리둥절했다.

시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나갔다.

승준과 하나가 그리고 아이들이 그 뒤를 따랐다.

뒤에서 종수가 소리쳤다.

“야! 굳이 다 같이 갈 필요 있냐!”

하지만 다들 듣지 않았다.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결국 교무실까지 같이 가게 되었다.

담임은 갑자기 찾아온 아이들을 보고 당황하면서도 긴장도 함께 됐다.

그야 강인 어린이집 출신들이 다 함께 찾아온 건 처음이니까.

이제 방학식도 머지않아서 1학년이 끝나가는데 이렇게 찾아올지 몰랐다.

“으음. 얘들아. 무슨 일이니?”

담임은 뭔가 사건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이들 중 제일 앞장선 건 시하였다.

“쌤.”

“응. 그래. 시하야. 무슨 할 말이 있니?”

“형아도 삼촌도 모르게 저를 납치해 주셔야 해요.”

선생님은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 동공이 떨렸다.

“납치요?”

너무 당황해서 존댓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그야 너무 갑작스럽지 않나.

설마 선생님이 너희들에게 그렇게 잘못한 거니?

1학년 마지막 생활을 선생님이 교도소 가게 할 속셈은 아니지?

시하가 살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밝게 네! 하는 게 아니야!

앞뒤 다 자르고 그렇게 말하면 선생님이 어떻게 알아듣니?!

담임은 참으로 난감했다.

“무슨 일인지 우리 다른 곳에 가서 이야기할까?”

“으쓱한 데서요?”

시하야 말 쫌!

다른 쌤이 오해하실 수도 있잖아!

진짜 납치하는 것 같잖아!

담임은 벌써 피곤해졌다.

***

담임은 드디어 전말을 전부 들었다.

그냥 처음부터 크리스마스 선물 때문에 비밀로 뭔가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좋았잖아!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비밀을 숨기는데 도와줘야 한다고?”

“네!”

“으음. 그렇다는 말이지. 으음. 그러면 방과 후 수업으로 핑계를 대면 될까?”

“네!”

“그거 가지고 다 할 수 있겠어?”

“으음. 모르겠어요.”

“선생님도 한계가 있어서 힘들 것 같은데.”

“우음.”

“아! 그럼 체험학습은 어떻니? 우리 반 다 같이 가는 거야. 쌤이 한 번 그 도색업자라고 했니? 그분이랑 이야기해 볼게. 어때?”

“!!!”

“학교랑도 이야기해야 하니까 이것저것 준비해야겠다. 일단 해 보고 시하에게 이야기해 줄게. 아마 서로 이야기 잘되면 될 거야.”

“네!”

담임은 시하가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시하 대단하네. 크리스마스 선물도 직접 준비한다고 하고. 신발은 비쌀 건데. 아 참. 신발 사이즈는 알고 있니?”

“저 다 알아요.”

“아, 그래?”

담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신발 사이즈까지 알기 어렵지 않나 싶어서.

“쌤. 그러면 부탁드리겠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똑같이 따라 말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담임은 문을 열고 교실로 돌아가는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친구들은 대체 왜 따라온 거지?

뭔가 단체로 와서 압박하려고 같이 온 건가?

에이. 설마.

그냥 친구가 가니까 따라간 거겠지.

어린 시절 친구들은 몰려다니는 게 보통이니까.

다만 맞이하는 입장에서 피곤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 맞다! 쌤도 곧 갈 거니까 얘들에게 잘 준비하라고 해!”

“네에!”

시하는 대답하면서 주머니에 폰을 꺼냈다.

저장되어 있는 알리사 누나에게 통화를 했다.

신호음이 간다.

“여보세요.”

「어. 시하야.」

“알리사 누나. 나 부탁이 있는데.”

「응? 뭔데?」

“나 크리스마스때 형아랑 삼촌이랑 미술쌤에게 선물할 건데 하얀색 신발이 필요해. 아무것도 색칠 안 돼 있는 거. 커스텀 할 거야.”

「와. 정말? 시하가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아니. 그냥 피아노 도색하는 거랑 비슷해 보여서 해보는 건데.”

「어? 그래? 하긴 피아노 도색하는 거랑도 비슷하긴 하겠다.」

“응. 거기에 에어브러쉬도 있어.”

알리사가 살며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돈은 있어?」

“응! 나 돈 있어. 지갑도 들고 있어.”

「하하하. 그래. 시하야. 누나가 신발만 구해주면 돼?」

“응. 누나가 나중에 돈 말해 주면 내가 줄게.”

「알겠어. 그러면 내가 사면 언제 전해 줄까?」

“형아 몰래 해야 하니까 학교 마칠 때 전해줘. 여기 사물함에 넣어둘래.”

「오. 완전 본격적인데?」

“응. 내가 산타할아버지가 돼서 선물할 거니까.”

「근데 시하는 할아버지가 아닌데?」

“그럼 초딩산타?”

「푸흡.」

알리사가 깔깔 웃었다.

시하는 왜 웃는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하하하. 알았어. 금방 구해서 학교로 가져다줄게.」

“그러면 학교 올 때 내가 돈 줄게.”

「알겠어.」

“응. 알리사 누나 고마워.”

「그래. 시혁이는 참 좋겠다. 시하에게 선물도 받고.」

“헤헤. 아, 맞다. 내 꺼도 있어야 해서 신발 4개 필요해.”

「그래. 누나 꺼는 안 해줘?」

“누나 꺼는 다음에 해줄게. 4개 하는 것도 힘들어.”

「그건 어쩔 수 없네. 알았어. 누나 생일에 기대한다?」

“응!”

시하는 보는 사람도 없는 폰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통화를 종료하고 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싸. 이제 다 착착 되어가고 있어.”

승준이 말했다.

“시하야. 그럼 도색 체험 가게 되면 내 신발에 그림 하나 그려주라.”

하나도 손을 들었다.

“나도! 나도!”

시하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 가슴을 펴며 배를 내밀었다.

위풍당당한 포즈.

“시간 남으면 내가 해줄게.”

그때 종수가 슬쩍 말했다.

“나도.”

“종수는 늦었어.”

“왜?! 왜 나만!”

“선착순이야.”

종수의 얼굴이 구겨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