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72화 운동회 (5)
어느새 점심시간이 지나고 소화를 위해 간단한 게임 몇 개도 했다.
아이들이 하나같이 참 즐거워했다.
응원 점수도 있어서 열심히 응원도 자주 했다.
“다음은 반대표 학부모 계주입니다.”
어느새 학부모 계주 시간이 돌아왔다.
1학년과 2학년이 맞붙는 시간은 없지만 대신 학부모들이 맞붙었다.
여기에는 점수가 아니라 특별상품이 걸려 있다고 하던데 과연 그게 뭔지 모르겠다.
상품은 비밀.
의외로 그게 더 불타오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형아. 파이팅. 이겨야 해.”
“응. 열심히 할게.”
“진짜진짜 잘 이겨야 해.”
“응. 이기고 올게.”
“이번에 내가 기운을 줄게.”
시하가 손을 뻗었다.
아무래도 무슨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게 귀여워서 손을 맞잡아주었다.
“이렇게 하면 확실히 전달되겠지?”
“응!”
시하가 기운차게 말하자 승준도 벌떡 일어났다.
“시혁이 형아. 나도 기운 줄래!”
“나도 시혁이 오빠한테!”
쌍둥이가 손을 겹쳤다.
연주랑 재휘도 은근슬쩍 겹치고 종수는 괜히 혼자 뻘쭘한지 손을 모았다.
은우는 푸하하 웃으며 자기도 하겠다고 가져다 대었고 윤동은 저게 뭐 하는 짓이지? 하면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게, 윤동아. 이게 뭐 하는 짓일까?
“시혁아. 나는 옥상에 있을게. 질 것 같으면 2학년 학부모에게 마취총으로 저격하면 되니까.”
“그냥 여기 시하랑 같이 있어요.”
삼촌의 말에 어이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배상현 씨가 어깨에 손을 얹는다.
“그럼 저도 기운을. 크흠.”
아무래도 이렇게까지 아이들에게 어울려줄 필요가 없는데.
“아니면 계주에 대해서 팁을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이제 팁은 그만 알아도 될 것 같습니다.
내 말에 배상현이 조금 실망한 눈이었다.
아무래도 조사는 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
나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얘들아.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해. 이미 충분히 기운을 받았어.”
“조금만 더 있어야 해! 아직 100퍼센트 안 됐어.”
폰 충전도 아니고 100퍼센트라는 게 있어?
아무래도 이쯤에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손을 살며시 아래위로 흔들었다.
“그럼 하나, 둘, 셋 하면 파이팅하고 끝내자. 하나, 둘, 셋!”
“파이팅!!!”
손잡은 게 풀어지면서 아이들의 손이 위로 향했다.
의외로 이 응원이 기운을 나게 했다.
아이들 운동회인데 뭔가 재밌는 것 같기도 했다.
“자. 그럼 가볼게.”
“응!”
드디어 아이들을 벗어나 1학년 대표들이 있는 부모님에게 갈 수 있었다.
다들 웃으며 반겨 주었다.
나는 1학년 계주에서 마지막 순서를 맡았다.
아무래도 부모님 중 제일 젊었으니까.
뭐 나는 시하의 형이긴 하지만.
“파이팅!”
“이겨라!”
“형아!”
아직 계주는 시작도 안 했는데 아이들의 열띤 응원이 들렸다.
보니까 벌써 응원 점수를 메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 준비하시고.”
부모님들이 자세를 잡았다.
땅!
총소리가 들리자 1학년, 2학년 아버지들이 뛰기 시작했다.
흰색 바통을 쥐고 있는 게 1학년, 청색 바통을 쥐고 있는 게 2학년이었다.
생각보다 달리는 것은 막상막하.
엎치락뒤치락하며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막판에 와서야 1학년 쪽이 좀 뒤처졌다.
“여기!”
나는 바통을 받고 냅다 뛰었다.
“형아! 형아! 형아!”
그 수많은 응원 속에 시하의 형아라는 단어만이 오롯이 들렸다.
조금 신기했다.
여기 이곳에서 저런 응원을 할 수 있는 아이는 시하밖에 없으니까.
바람이 뺨을 빠르게 스치며 숨소리가 커질 때쯤 시하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목표는 오로지 흰 띠가 있는 결승점.
앞에 뛰고 있는 아버지를 따라잡았다.
‘이겨야 한다.’
승부욕 같은 건 원래 크지 않았지만 언제나 생각하는 게 있다.
시하에게 멋진 형아로 남아있는 것.
그것도 최대한 오래.
어린 시절의 영웅이 빌런에게 지면 얼마나 큰 충격이겠는가.
그러니 나는 오늘 이겨야 한다.
학교에서 주는 학년 상품에는 관심이 없지만 시하의 소중한 마음만은 아직 지켜주고 싶다.
‘따라잡았다.’
어느새 상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달렸다.
팔을 좀 더 빨리 움직이며 땅을 박찼다.
옆에 있는 사람이 시야에서 뒤로 밀리는 것을 느끼며 결승선이 가슴에 닿는 게 느껴졌다.
흰 선이 나풀나풀 떨어지는 걸 느끼며 손을 들었다.
“와아아아!”
1학년 아이들의 환호성이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발걸음을 천천히 걸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1반이 있는 곳을 쳐다보니 시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이들에게 뭐라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형아야! 우리 형아 멋있지! 진짜 짱이지!”
뭐라고 하는 걸까?
나를 가리키고 있는데 자랑이라도 하는 걸까?
오늘도 나는 너에게 별거 아닌 운동회로도 자랑스러운 형아가 된 걸까?
그랬다면 나는 이긴 보람이 있었다.
누군가는 바보같이 이런 일에 뭐 그렇게 열심히 달리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의미 있는 일이다.
봐라. 저렇게 웃으면서 달려오는 시하가 있으니.
“형아!”
품에 쏙 안기며.
“형아. 최고야!”
최고라고 말해 주는 네가 있기에.
나는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거친 숨을 참고 미소 띤 얼굴로 말해 주었다.
“시하 응원도 최고였어.”
그 어떤 응원보다도 더.
“시하 응원 덕분에 이겼어. 고마워.”
“정말?”
“응.”
정말. 정말로.
응원이 없었다면 이길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
교장 선생님이 마이크를 들었다.
“그럼 학년 선물을 전해 주겠습니다! 그건 바로!”
아이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아이스크림!”
“아싸!”
“그것도 떠먹는 비싼 아이스크림!”
“우와아아!”
“2학년도 수고 많았습니다. 바로 된 아이스크림을 드리겠습니다!”
2학년도 아이스크림을 먹게 되었다.
바로 된 것.
떠먹는 것보다는 싸다.
그래도 아이들은 좋아했다.
어찌 되었든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으니까.
“나는 바가 좋은데.”
삼촌이 불만이라는 듯이 떠먹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삼촌. 그냥 공짜로 주면 감사히 먹어요.”
“나는 취향도 말 못 해?!”
“그게 지금 해야 할 일은 아니잖아요?”
“어허. 시혁아. 생각해 봐. 떠먹는 건 의외로 양이 많아. 먹는데 오래 걸리지.”
“그런데요?”
“하지만 바는 금방 먹어. 나중에 싸울 때를 바로 준비할 수 있지.”
“누구랑 싸우는데요?!”
“누구랑 싸우긴. 다른 반이랑 애들이랑 싸워야 하잖아.”
“운동회지 싸우는 게 아닌데요?!”
왜 운동회를 전쟁으로 만들고 그러십니까.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삼촌을 보았다.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것도 좋은 전략이죠.”
옆에서 배상현 씨가 고개를 끄덕인다.
저기요? 삼촌에게 동조하지 말아 주시겠어요?
시하가 고개를 젓는다.
“서로 재밌게 하는 운동회인데 왜 싸워.”
배상현 씨가 말했다.
“역시 전략보다는 화합이죠.”
삼촌이 배신당했다는 표정으로 배상현을 바라보았다.
태세전환이 엄청나다.
“이제 마지막은 계주가 남았네요.”
어느새 운동회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시하도 계주에 나가려고 준비를 했다.
“형아. 나도 형아처럼 멋있게 이기고 올게.”
“응. 파이팅.”
시하가 옷을 털며 계주하는 장소로 갔다.
아쉽게도 시하는 마지막 순서가 아니었다.
마지막은 제일 빠른 승준이 맡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1반에서 가장 운동 신경이 좋은 아이라고 하면 승준을 꼽으니까.
시하? 시하야 그리는 것에는 최고지.
“준비!”
선생님이 깃발을 들었다.
“출발!”
아이들이 달리기를 시작했다.
연주가 먼저 뛰었다.
1반에서 5반까지 5명의 아이들이 라인을 따라 뛰고 있었다.
현재 3등.
“시하네요.”
시하가 바통을 잡았다.
삼촌이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빠르게 누르고 있었다.
뭔가 달라질까 싶어서 지켜봤는데 시하가 한 명을 따라잡았다.
2등과 3등이 비슷하게 나아갔다.
저 정도면 충분히 시하가 잘해 주었다.
하나가 바통을 잡았다.
“시하야. 잘했어!”
나는 짝짝 박수를 쳤다.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쳤다.
시하가 나를 보더니 손을 브이 자를 그렸다.
누가 보면 운동회 끝난 줄 알겠다.
괜히 웃음이 나왔다.
“달려라! 달려라!”
하나가 2등으로 달리고 있었다.
1등과의 거리가 그리 차이 나지 않았다.
역시 승준이와 같은 쌍둥이라고 할까.
운동신경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승준이 빨리! 빨리! 하는 입 모양이 보였다.
눈에는 이기겠다는 투쟁심이 가득했다.
바통이 잡혔다.
승준이 재빨리 뛰었다.
바통을 받는 순간 1등과 2등의 간격이 곧바로 좁혀졌다.
순식간에 1등을 제치며 승준이 앞서 나갔다.
“1등이네요.”
옆에 배상현 씨가 말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넘어지지 않는 이상 저 거리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역전되었다는 건 결국 승준의 다리가 더 빠르다는 말이니까.
거리가 벌려지면 더 벌려졌지 좁혀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겼네요.”
결국, 승준이 결승선을 넘고 점프를 하며 소리를 질렀다.
곧바로 시하가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더니 서로 끌어안고 방방 뛰었다.
1학년 1반. 이어달리기 1등!
저렇게 서로 기뻐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어느새 연주랑 하나도 같이 모여서 기쁨을 나눴다.
“우와와와아!”
반 친구들도 너무 좋은지 주위에서 비명을 질렀다.
“우리 반이 1등이다! 1등! 전체 1등이야!”
종수는 어느새 계산을 끝냈는지 1등이라고 단언했다.
그렇구나. 1반이 운동회 1등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배상현 씨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고맙습니다.”
“네?”
“이렇게 운동회에 올 수 있게 해줘서요.”
“제가 뭘 한 건 없죠.”
나는 오겠냐고 물어봤을 뿐이다.
그리고 오겠다고 말한 건 배상현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정말 자신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다.
“설마 물어볼 줄은 몰랐으니까요. 솔직히 그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요?”
“시혁 씨가 시하 생각을 참 많이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요.”
“하하하.”
나는 그 말에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냥 뭐든지 시하를 위해 생각하게 되는 게 익숙하니까.
어떤 선택이 시하에게 좋을지 이건 좋지 않을지 그런다.
배상현은 살며시 웃었다.
“이런 말이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네.”
“저는 시혁 씨를 통해서 이장혁 씨를 봅니다.”
나는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 말에 뭐라고 답해야 해야 할지 몰라서.
“서로 대화해 보지는 않았지만 저런 면모를 가진 사람이었겠구나.”
“아니에요. 저는 속 많이 썩인 아들이었는데요.”
사고는 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나의 행동 하나하나에 안타까워했다.
육아일기에 적힌 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고 나는 어느새 그 사고방식을 닮았을 뿐이었다.
조금 닮았을 뿐이다.
“아니요. 닮았습니다.”
“아니. 안 봤는데 그렇게 확신해요?”
“네. 적어도 미소를 봤으니까요.”
배상현은 무언가 떠올리는 얼굴이었다.
“똑 닮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의 그 미소와.”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네. 다행입니다. 시혁 씨가 시하의 형이라서요. 시하도 닮을 테니까.”
나는 그 말이 어딘가 좀 안타까워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자신을 닮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걸까?
배상현 씨가 앞을 보았다.
나도 그 시선을 따랐다.
시하가 뛰어오고 있었다.
“색은 언제나 캔버스를 물들이는 법이고.”
그의 말이 귓가에 아른거린다.
“그걸 보는 사람들은 그저 분위기를 느끼죠.”
배상현 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화가라 사람들보다 좀 더 자세히 알게 되는 거고요.”
주머니에서 폰을 꺼낸다.
웅웅 울리며 전화가 오고 있었다.
화면에는 [스테판]이라고 적혀 있었다.
“누군가가 전시회를 보러 가자고 권유하지 않았으면 절대 볼 수 없는 그림이었을 겁니다.”
그게 나였다는 걸까.
배상현이 폰을 들어 전화기를 보았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네요.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편하게 받고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