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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 나 귀엽지 외전-71화 (496/500)

외전 71화 운동회 (4)

운동회가 시작됐다.

각 반이 한 줄로 쪼르르 서서 교장 선생님을 지켜보고 있었다.

의외로 교장 선생님은 말을 짧게 했다.

“오늘 같은 좋은 날 재밌게 즐기기를 바랍니다.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다치지 않는 겁니다. 지면 손해는 아니지만 다치면 손해입니다. 그러니 다치지 않고 즐겁게 운동회를 즐깁시다.”

교장 선생님은 다치지 않는 것을 강조했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한다.

언제나 사고를 조심해야 하는 거.

시하가 다치면 마음이 아플 것 같다.

어릴 때 넘어져서 무릎 한 번 까질 수 있다.

거기까지는 다 그렇게 크는 거라고 넘어갈 수 있지만 뼈가 부러지거나 그런 큰 상처는 위험했다.

“자, 여러분 모두 1반 스탠드에 앉아요.”

“네!”

아이들이 쪼르르 스탠드에 앉는 모습이 귀여웠다.

각자 반티를 입고 있는 모습도 귀엽게만 보였다.

“자. 얘들아. 응원 점수도 있으니까 친구들 나오면 열심히 응원해야 해. 알았지?”

“네에~”

응원 점수라는 말을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것 같았다.

운동회 때는 이렇게 앉아 있는 시간이 길면 심심하지만 친구들이 나올 때 열심히 응원하면 그건 그것대로 즐겁다.

“시하야.”

“응?”

“나 잠시 옷 좀 갈아입고 올게. 알았지?”

“응? 옷을? 왜?”

“옷에 뭐가 묻어서. 금방 갔다 올게.”

“응!”

나는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화장실로 들어가 상의를 벗고 반티로 갈아입었다.

선생님들도 반티를 입을 때 이런 기분일까?

그냥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애들이 입어야 할 캐릭터 티를 입은 느낌.

그냥 봤을 때는 예쁜데 내가 입으니까 좀 쑥스러운 기분.

내 기분이 딱 그랬다.

그래도 시하가 좋아할 것을 생각하니 기분은 좋다.

화장실에 나와서 시하가 앉아 있는 곳을 향했다.

승준이랑 뭐가 그렇게 즐거운 이야기를 하는지.

“시하야.”

“형아?”

시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의 가슴팍에 있는 페페와 내 몸에 새겨진 페페를 본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에게 쪼르르 달려왔다.

“형아! 나랑 같은 거 입었네?!”

“응. 형아가 오늘 1반 대표로 나가잖아.”

“대박! 대박! 진짜 대박이야!”

같은 옷 입은 거로 뭐가 그렇게 대박인 건지.

폴짝폴짝 뛰는 모습이 귀엽다.

허리를 붙잡은 채 티셔츠를 올려다보는데 눈이 반짝거렸다.

좋아할 줄 알았지만 이렇게 좋아할 줄이야.

서프라이즈가 통한 것 같았다.

“이제 자리로 가자.”

“응!”

시하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자리에 앉아서 빨리 오라는 듯이 옆자리를 손으로 두들겼다.

“처음에는 무슨 경기해?”

“달리기.”

“달리기?”

“응. 윤동이 나가.”

“오!”

윤동이 달리기를 나가는가 보다.

보니까 레일 위에 윤동이 보였다.

각 반 대표가 출발선에 섰다.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입에 대고 손을 든다.

그리고 부는 것과 동시에 손을 내렸다.

아이들이 달린다.

확실히 윤동이 운동 신경이 있는지 제일 앞서 나갔다.

결승전까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따라잡힐 위험은 없어 보였다.

“윤동아! 파이팅!”

“이겨어~~~”

“좀만 더!!”

아이들의 응원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시끌벅적한 소리.

소음이 아니라 괜히 심장에 흥분을 불어넣는 소리였다.

이 힘찬 외침이 아이들의 에너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시하도 옆에서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

“지면 혼나!”

지면 어떻게 혼내주는 걸까?

응원하는 모습이 너무 웃겼다.

“우와아아! 형아. 윤동이 1등 했어!”

“응. 그러네.”

시하를 보다가 누가 들어오는지 놓쳐 버렸다.

뭐 시작했을 때부터 누가 이길지 뻔히 보여서 예상은 했지만.

윤동이 멋쩍은 표정으로 1등 깃발을 쥔 채 스탠드로 달려왔다.

아이들이 일어나서 너도나도 손을 뻗었다.

하이파이브를 일일이 해주며 자리에 앉았다.

“윤동아. 멋있었어.”

“최고.”

“윤동아. 이겼으니까 안 혼낼게.”

마지막 시하의 말에 풉 하고 웃음이 나온다.

시작부터 1반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다음은 2학년 달리기.

2학년이 달리기를 하는 동안 윤동이 숨을 골랐다.

이렇게 2학년의 경기가 번갈아 있으니 중간중간 아이들이 쉬는 구간이 나온다.

담임이 말했다.

“자. 이제 저 달리기 끝나면 단체 게임이에요. 상대편 쪽에 공 던지기.”

많은 공을 가진 반이 탈락이다.

“저기 그물을 세울 거니까 다들 그물 위로 던져야 해요. 알았죠?”

“네!”

2학년 달리기가 끝나고 그물이 세워진다.

운동장이 넓어서 공이 멀리 안 나가게끔 플라스틱 장막 같은 게 쳐졌다.

1반은 2반이랑 붙게 되었다.

“좋았어. 한번 해볼까!”

시하가 나를 보며 손을 잡았다.

“형아 파워. 전해줘.”

“응. 시하가 잘할 수 있게 형아가 피워 보내줄게.”

“응!”

나는 시하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때 삼촌이 와서 시하의 팔목을 잡았다.

“내 파워도 받아라! 으아아!”

“안 돼! 삼촌 파워 받으면 약해져!”

“대체 왜!”

“소파에 눕고 싶어지는 파워야.”

그건 확실히 약해지게 만드는 파워네.

이렇게 되면 플러스마이너스 제로인가.

그때 뒤에 있던 미술 선생님이 시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설마 시하에게 힘을 주시려고 하는 걸까?

“내가 조사해본 바로는.”

또 조사입니까?!

어쩐지 아까부터 폰을 보고 뭔가를 치고 있더니 조사하기 위해서였나?

“이기려면 빠르고 멀리 던지는 게 중요해.”

당연한 말 아닌가?

“맞춘다는 생각으로 아이들 몸을 향해 던지는 거야.”

음. 일리가 있는 것 같은데?

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술쌤. 일단 해볼게요.”

“그래.”

뭐 파워를 주는 것보다 팁을 주는 게 더 좋을지도 몰랐다.

저게 팁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시하가 운동회에 출전했다.

아이들이 입장했다.

“종수야.”

“왜?”

“내가 미술쌤에게 들었는데 공 잡아서 맞추면 이길 확률이 더 좋대.”

“오! 정말?”

“응.”

1반과 2반이 나란히 섰다.

서로 인사를 하고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종수는 시하에게 들은 대로 아이들을 맞추며 던졌다.

시하는 공을 줍느라 허겁지겁 넘기기 바빴다.

그때 2반 반장이 외쳤다.

“야! 1반 반장이 계속 사람 맞춘다. 집중 공격!”

2반에서 공을 종수에게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종수는 당황해서 몸을 돌렸다.

“아! 왜 나만!”

종수 눈에는 시하가 보였다.

공을 주우며 열심히 넘기기만 하는 시하가.

사람은 맞추지 않았다!

“야! 이시하! 너는 왜 안 맞추냐!”

“막상 해보니까 바빠!”

“이씨!”

그러다 보니 종수만 아이들을 맞추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종수는 시하에게 당했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타깃이 잠깐 설정된 사이에 1반 친구들은 공을 재빨리 넘겼다.

삐이익!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며 공 넘기기가 끝났다.

1반의 승리였다.

“와 종수야. 덕분에 이겼어. 대단해.”

“야. 이시하. 이리 와!”

종수는 그런 거 상관없고 시하를 잡으러 뛰었다.

시하는 깜짝 놀라서 뒤돌아서 도망쳤다.

“야 일루와!”

“종수야. 지금 힘 빼면 안 돼!”

“누구 때문인데! 누구 때문!”

“이겼잖아?”

“이기는 게 문제가 아니야!”

시하가 달리면서 내 뒤로 휙 숨었다.

종수가 헉헉거리며 오라고 손을 까딱거렸다.

“헉. 헉. 아 진짜. 헉. 헉.”

“헉헉. 종수야. 괜찮아?”

“야!”

뭐 어찌 되었든 공 던지기는 1반이 2등을 한 거로 끝났다.

1학년 2학년이 번갈아 가면서 하니까 의외로 진행이 쭉쭉 되는 것 같았다.

쉬게 되는 타임도 적당하고.

“다음은 판 뒤집기야.”

이것 역시 공 던지기와 비슷한 놀이였다.

누가 더 많이 같은 색의 판을 뒤집어놓는 건지 승부.

강인초 운동장은 잔디밭이라 아이들이 별로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할까.

이번에도 미술쌤은 조언을 해주었다.

“내가 조사한 바로 따르면 각자 구역을 만들어서 그 주위에 있는 것만 잘 뒤집으면 이길 수 있어.”

뭐 이런 조언.

뭔가 도움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안 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기는 자세에서 계속 그 구역을 완전히 마크해. 그러면 이긴다!”

“네!”

어느새 반 아이들에게까지 조사한 팁을 건네고 있게 되었다.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이다.

누가 보면 국가대표 코치인 줄 알겠다.

근데 저게 맞아?

어찌 되었든 판 뒤집기는 시작하자마자 아이들이 잘해냈다.

조언이 도움이 되었는지 이번에는 1등을 차지했다.

1등, 2등, 1등.

점수제로 가니까 이대로만 잘 이긴다면 1반이 1등 할 것 같았다.

굉장하다, 1반.

담임이 말했다.

“다음은 줄다리기예요.”

줄다리기.

운동회에서 꼭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다.

흔하다면 흔한 운동이다.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또다시 나타난 배상현 씨.

“이건 유명한 방법이 있지.”

유명한 방법까지 있었나?

“여기 팔과 몸에 딱 붙여서 처음에 몸을 뒤로 딱 누워서 버티는 거야. 그럼 기회가 오지. 상대방이 살짝 힘이 빠질 기회가 말이야. 그때 서로 하나! 할 때 당기고. 둘! 할 때도 당기고. 모두 동시에 힘을 발휘하는 거야.”

승준이 눈을 빛내며 듣고 있었다.

저런 걸 좋아하나?

“뭔가 사커 전술 듣는 느낌이야! 감독님이다!”

“미술쌤이 감독님?”

졸지에 미술쌤에서 감독님으로 지위가 상승했다.

담임은 살며시 손을 허리까지 들었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원래라면 담임이 줄다리기에 대해서 가르쳐주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역할을 뺏겨 버렸다.

무섭다. 저게 조사의 힘인가?

이렇게 나서는 분이 아닌데 시하를 위해 조곤조곤 열심히 말한다.

담임은 헛기침을 했다.

“흠흠. 그러니까 선생님이 여기 장갑도 준비했어요. 다들 이걸 끼세요.”

빨간 목공용 장갑.

줄다리기할 때 좋은 무기지.

다른 반도 힐끗 보니 다들 장갑을 끼고 있었다.

조건은 동등한가 보다.

담임이 1반을 보며 말했다.

“자. 승리하러 갑시다!”

“네!”

“형아. 다녀올게.”

“그래.”

자신만만하게 떠난다.

그런데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개인의 힘보다 단체의 힘이 중요하니까.

이게 어떻게 될지 몰라서 괜히 긴장된다고 할까.

“준비하시고.”

아이들이 줄을 잡는다.

팽팽하게 당겨진 줄이 선 가운데로 오게 맞춘다.

힘이 균형이 이뤄졌다고 생각했을 때 선생님 한 분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삐이익!

아이들이 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1반 애들은 배운 대로 처음에 드러누워서 버텼다.

근데 중요한 거 하나.

힘 빠질 때 누가 알고 신호를 주는가.

“아무도 신호를 안 주는데?”

삼촌이 말했다.

그렇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질질 끌려서 져버렸다.

줄넘기 초반에 탈락!

그때 시하가 말했다.

“종수야. 하나, 둘 하자고 신호를 줬어야지.”

“내가 왜?”

“반장이잖아.”

옆에 있던 승준과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하라고 반장이지.”

“맞아. 맞아.”

재휘는 애들 말에 동의하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연주는 그런 재휘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은우는 그냥 푸하하 웃었고 윤동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종수가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너희! 이럴 때만 반장이지! 이럴 때만 반장 찾고!”

시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닌데. 종수 원래 반장이잖아.”

“끄응.”

“종수야. 다음부터 구호 외치는 거야. 알았지?”

“잠깐. 구호 외치는 거 알았으면 네가 했으면 됐잖아!”

“나는 반장이 아니잖아.”

“아니. 그런 말이 아니잖아!”

어찌 되었든 이번 줄다리기 시합으로 앞으로의 1등이 어떻게 될지 모르게 되었다.

뒤에 있던 배상현 씨가 시무룩해졌다.

“저 때문에 졌습니다.”

아니. 이번 경우는 애들이 너무 말을 잘 들어서 진 것 같은데요?

“제가 신호를 할 사람을 정해 줬으면.”

뭘 또 세상 다 끝났다는 표정을 짓고 있어요?

운동회 게임이 아직 남았는데.

“미술쌤. 아직 꼴찌 안 정해졌어요.”

“그, 그렇군요. 4등이라도 해야. 이번에야말로.”

그렇다.

4, 5등을 결정하는 줄다리기가 예정돼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1학년에 맞는 플랜입니다. 모두 시작할 때 하나, 둘을 외치면서 힘을 맞추는 겁니다.”

그래. 어려운 거 말고 쉬운 플랜으로 가자고.

그렇게 줄다리기 4, 5등 경기가 시작되었고.

1반은 꼴찌가 되었다.

생각보다 저쪽 반의 힘이 너무 세더라고.

전략이 뭐든 간에.

“저, 저 때문에.”

“아니. 미술쌤 때문이 아니고 그냥 힘이 모자랐을 뿐이에요.”

지금까지 열심히 잘해 왔으니까 힘 빠졌을 때가 되었는지도 몰랐다.

어찌 되었든 미술쌤 때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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