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70화 운동회 (3)
운동회날이 왔다.
나와 시하는 아침부터 함께 등교했는데 시하는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형아랑 같이 학교 가고 계속 있어!”
“그렇게 좋아?”
“응. 형아랑 학교에 계속 있는 거 처음이잖아.”
옆에서 삼촌이 불쑥 끼어들었다.
“삼촌도 처음인데?”
시하가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보였다.
“삼촌 학교에 가니까 오늘 공부 열심히 해야 해.”
“그거 공부 안 해도 다 아는 거거든?”
“아는 거라도 선생님이 복습해야 한댔어.”
“내가 너랑 무슨 말을 하겠니.”
삼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더니 내 옆에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오늘 배상현 씨도 오는 거 맞지?”
“네. 오늘 오기로 했어요. 아무래도 시하가 계주에 나가는 거니까 꼭 보면 좋을 것 같아서. 선생님한테도 미리 말해 뒀고요.”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배상현 씨가 시하를 꼭 봤으면 좋겠다.
아들 운동회에 간 경험이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다른 아이들은 부모님이 오시겠지만 시하는 나밖에 없으니까.
지금은 모르지만 나중에라도 시하가 나도 부모님이 오셨구나 했으면 싶었다.
“근데 오늘 부모님들은 다 오는 거야? 굉장히 인원이 많아 보이는데.”
“안 그래도 물어봤는데 못 오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근로자의 날에 못 쉬는 분들도 있고.”
“하긴 그렇긴 하겠다.”
“그래도 둘 중 한 분은 꼭 오신대요.”
“그거는 다행이네.”
운동회는 참 오랜만이다.
마지막 체육대회가 대학교 때였으니 말 다 했지.
늘 하던 운동회인데 이상하게도 소속감을 느끼게 되면 이기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점수가 지고 있으면 의욕이 낮아지기도 하고.
뭐 그런 옛 추억들이 생각났다.
좋아하지 않았기도 했고 좋아하기도 했다.
“형아.”
“응?”
“형아도 이거 티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시하가 자기가 입은 반 티의 목 부근을 당겼다.
시하가 그린 페페 3마리의 그림.
손잡고 있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아 보였다.
“그러게.”
“나중에 선생님한테 하나 더 만들어 달라고 할까? 이거 금방 해.”
“하하하. 나중에 말하자. 나중에.”
나는 괜히 크로스백에 있는 티가 신경이 쓰였다.
사실 이미 반 티 하나는 받아뒀다.
아무래도 1반 대표로 계주를 나가니까 반 티를 입어야 했다.
오늘 시하 몰래 갈아입어서 짜잔 하고 보여줄 생각이었다.
이거 입으면 자기랑 같다고 시하가 기뻐하겠지?
상상만 해도 즐거운 웃음이 입가에 맴돌았다.
“삼촌. 여기가 우리 학교야.”
“안다.”
“내가 반도 소개해 줄게.”
“괜찮아.”
“아니야. 내가 소개해 줄게.”
“사진으로 봤어.”
“그거랑 직접 보는 거랑 다르지.”
“아닌데. 똑같은데.”
“달라. 달라.”
시하는 기어코 학교 안으로 들어가서 1학년 1반을 보여 주었다.
한산한 교실의 풍경.
오늘 운동장에 모이는 날이라서 아무도 없었다.
“삼촌. 이게 칠판이야.”
“나도 다 알아.”
“이거는 게시판이야.”
“안다니까.”
“저 위에는 빔프로젝터야.”
“???”
삼촌이 고개를 들어 천장에 달린 빔프로젝터를 보았다.
“뭔 초등학교에 빔프로젝터가 있어?”
“그러게요.”
“아니. 여기 대체 돈이 얼마나 많은 거야.”
“그러게요.”
“시혁이 넌 안 놀라?”
“전 와봤으니까요.”
처음에는 여러 가지가 참 신기했는데 이제 막 그렇게 신기하지도 않다.
시하는 신나서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삼촌 여기 책상 아래에 책 넣는 곳도 있어.”
“삼촌도 학교 다녀봐서 다 알아.”
“그러면 그거 알아?”
“뭘?”
“여기에 어떤 애가 폰 보고 있다가 선생님한테 걸려서 혼났어.”
“쯧쯧. 벌써 그렇게 폰 보고 말이야.”
시하가 교탁을 가리켰다.
“선생님이 앞에 있으면 다 보인대. 옷 뒤에 무슨 그림 그려진지도 다 보인대.”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진짜야. 선생님한테 그럼 옷 뒤에 뭐 적혀 있게요. 했는데 선생님이 브레이커 적혀 있다고 해서 다 놀랐어. 다 맞혔어.”
“그거 분명히 미리 알고 있었던 거지 뒤를 본 건 아닐 거야.”
“아닌데. 저 앞에 있으면 다 보인다고 했는데.”
물론 앞에 있으면 정말 딴짓하는 게 다 보이기는 한다.
그래도 등 뒤에 있는 게 보인다는 건 너무 과장이 심했다.
“또 옆 반에서 들었는데 선생님이 장풍도 쓰신대.”
시하가 손을 얍! 하면서 앞으로 내밀었다.
“바람 나오는 장풍.”
삼촌이 피식 웃었다.
“장풍 같은 게 어딨어.”
“진짠데. 옆집쌤이 애들한테 장풍 보여줬대. 촛불도 꺼트렸대.”
“그거 삼촌이랑 시혁이도 할 수 있는 거거든?”
“진짜? 삼촌이라 형아도 할 수 있어?”
시하가 놀랐다는 듯이 말했다.
뭐 할 수 있기야 하겠다.
촛불이야 손으로 휙 휘두르며 꺼질 테니까.
어릴 때 그런 걸 한 경험이 한 번씩 다 있으니.
“당연하지. 그거 남들도 다 하는 거야.”
“뭐야. 그런 거야.”
“그럼. 그럼.”
“그러면 옆집 쌤이 엄청난 거 아니네.”
시하야. 옆집 선생님이 아니라 옆 반 선생님 아닐까?
순간 너무 자연스럽게 말해서 맞는 말인 줄 알았다.
“근데 옆집 쌤이 수련하면 공중부양도 할 수 있다고 했어!”
“공중 부양은 무슨.”
“진짠데. 30년 수련하면 1초 뜰 수 있다고 했어. 아빠 다리하고.”
30년 동안 수련하는데 1초 뜨는 거면 대체 왜 수련하는 거지?
삼촌도 똑같이 생각했는지 어이없어 했다.
“1초가 뭐냐 1초가. 1분은 돼야지.”
“1분 할 수 있어.”
“어떻게?”
“엽집 쌤이 연속으로 쓰면 된대. 1초마다 떴나 앉았다. 퐁포봉봉퐁! 이렇게.”
앉아서 트램펄린 몇 번 뛰어지는 것 같은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엄청 없어 보였다.
그게 뭐야.
삼촌은 그걸 상상했는지 입가가 씰룩거렸다.
웃기나 보다.
“이제 운동장으로 가자. 구경 다 했으니까.”
“응!”
웅웅.
폰을 보니 때마침 배상현 씨에게 연락이 오고 있었다.
어딨는지 찾고 있나 보다.
“빨리 가자. 가.”
“응!”
우리는 교실을 떠나 다시 운동장에 향했다.
아까도 들어오면서 느꼈지만 사람이 정말 많았다.
이제는 대부분이 왔는지 바글바글했다.
그나마 1학년은 5반이라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1학년만 120명. 학부모 한 명씩만 왔다고 해도 240명이다.
1학년만 봐도 대인원이군.
그나마 운동장이 넓어서 다행이다.
‘강인초는 특이하게 한단 말이지.’
운동회를 3일에 걸쳐서 한다.
1일째 1, 2학년.
2일째 3, 4학년.
3일째 5, 6학년.
한 번에 다 하지 않는 게 특징이면 특징이다.
어느 학교도 이렇게 운동회를 하는 곳은 없을 것 같았다.
“시하야. 저기 미술쌤도 오셨네?”
“어? 미술쌤이다! 미술쌤! 안녕하세요!”
시하가 미술쌤에게 손을 흔들었다.
미술쌤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마주 손을 흔들었다.
배상현 씨는 지금 무슨 기분일까.
“안녕. 시하야.”
“네!”
“오늘 운동회를 한다며?”
“네! 오늘 운동회 해요.”
“정말 재밌겠네.”
“근데 미술쌤은 여기 왜 왔어요?”
“응. 미술쌤은 여기 운동회 하는 아이들 사진 찍으러 왔어. 나중에 그림을 그리면 좋겠다 싶어서.”
“정말요?”
“그럼.”
옆에 있던 삼촌이 경계의 눈빛으로 가지고 온 카메라를 매만졌다.
“경쟁자.”
“삼촌은 대체 뭘 경쟁하시는 건데요?”
“하지만 내 카메라는 비싸서 성능이 꿀리지 않아.”
“어차피 미술쌤은 폰으로 찍으실 건데.”
“시혁아. 네가 이제 눈썰미가 낮아졌네. 저기 가방 봐. 저 들고 온 큰 가방에 카메라가 있을 게 분명해.”
그럴듯했다.
요즘 열심히 사전 조사를 하는 배상현 씨를 보면 가능성 있는 추론이었다.
근데 카메라가 있으면 뭐 어때.
그거 가지고 대체 뭘 경쟁하냐고.
“내가 이 비싼 카메라로 더 좋은 사진을 찍겠어.”
“삼촌. 비싸다고 좋은 사진이 나오는 거 아니에요.”
“걱정마. 나도 엄청 전문적으로 공부했으니까.”
“네? 언제요?”
“요즘 너튜브에 보면 아주 잘 나와 있지.”
마치 책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실전에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처럼 보였다.
믿어도 되나?
실력이 는 거 맞나?
“삼촌.”
“갬성 있게 찍는 101가지 방법!”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냥 평범하게 시하 사진이 잘 나오길 빌 뿐이다.
그런데 미술쌤이 가지고 있는 가방에 뭐가 들었을지 궁금하긴 하네.
“저 미술쌤?”
“네.”
“거기 가방에 뭐가 들은 거예요?”
“아. 이거요? 제가 운동회에 대해서 조사를 해봤는데요.”
그래. 역시 조사를 해보셨다.
이 정도는 이제 예상을 했다.
배상현 씨가 가방을 살며시 들어서 지퍼를 열었다.
“운동회 하면 도시락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큰 가방에 있는 건 3단 도시락통이었다.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 도시락을 싸봤습니다.”
“예?”
“엄청나죠?”
“어…. 음…. 저기. 사실 이번 운동회 때 학교 측에서 점심에 도시락 주는데요?”
“예?”
“제가 미리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설마 도시락을 싸 오실 줄은 몰랐네요.”
요즘 운동회 때는 그냥 학교에서 급식을 주거나 혹은 도시락을 주기도 했다.
옛날과는 많이 다르다.
대체 언제 적 운동회를 조사하신 거지?
배상현 씨가 지퍼를 스르륵 닫았다.
“사실 이 안에는 옛날 느낌도 함께 살리기 위해 도시락 소품을 가지고 왔습니다.”
배상현 씨가 목덜미를 주무르며 그렇게 말을 바꿨다.
귓가가 빨개진 것을 보니 매우 쑥스러우신가 보다.
“하지만 이것 말고도 딴 것도 있는데…….”
“아. 딴 거요?”
“예.”
지퍼를 살짝만 열며 손을 쏙 넣어서 뒤적거렸다.
“땀 닦을 수건.”
“오.”
“응원할 수 있는 막대풍선 2개.”
“오?”
“응원용 짝짝이 손바닥.”
“어?”
“응원용 나팔.”
“에?”
“혹시 몰라 다 준비해 봤습니다.”
뭘 대체 혹시 몰라서 응원 용품을 이리 준비하셨습니까?
저게 맞아요?
조사가 저게 맞습니까?
“응원하면 힘이 난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그런데요…….”
조사가 너무 과하지 않나 싶다.
아니. 조사가 과한 게 아니라 준비가 너무 과한데?
“하하. 뭐 어쨌든 1학년 1반으로 가시죠. 저기 표지판이 세워져 있네요.”
우리는 운동장으로 갔다.
승준과 하나가 시하에게 손을 흔들었다.
“시하야!”
“시하야!”
“승준아. 하나야. 안녕!”
승준이는 손목에 밴드를 하고 있었고 하나는 머리에 헤어밴드를 하고 있었다.
하나 옆에 있던 연주도 함께 헤어밴드를 하고 붙어 있는 것을 보니 누가 보면 자매인 줄 알겠다.
아무래도 자기들 나름대로 꾸민 것 같았다.
“연주, 종수, 재휘도 안녕~”
종수는 시하를 보며 웃었다.
“이시하. 네가 제일 꼴찌야.”
“아닌데. 나는 교실 갔다 왔는데.”
“바보야. 교실을 왜 가.”
“삼촌에게 교실 소개해 주려고. 그러니까 나 꼴찌 아닌데.”
“그래도 여기 온 건 꼴찌야.”
“그럼 꼴찌 하지 뭐.”
시하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종수가 어? 이게 아닌데?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종수를 보며 여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이 아주 친하구나.
“시, 시하야. 오늘 계주니까 힘내.”
“응. 재휘야. 고마워.”
시하가 이번에는 윤동과 은우를 보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은우는 모자를 푹 눌러썼다.
“hey. hey. hey.”
뭐 저렇게 인사를 받았다.
윤동은 그저 고개를 까딱거리며 인사를 받는다.
시크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때 삼촌이 말했다.
“그럼 시하야. 빨리 거기 앉아봐. 사진 찍어줄게.”
“응!”
시하가 친구들 있는 곳에 앉았다.
“형아. 빨리 와.”
“어. 그래.”
나는 주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며 시하 옆에 앉았다.
삼촌이 미술쌤의 등을 툭 하고 밀었다.
“쌤도 가서 앉아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어허. 어서. 괜히 사진 찍는 척하지 말고.”
“하하하. 그럼.”
미술쌤도 내 옆에 살짝 붙었다.
“자자. 그럼 사진 찍는다.”
어쩌다 보니 단체 사진을 찍게 된 상황.
다른 친구들도 삼촌을 보며 브이를 들었다.
찰칵.
사진이 찍혔다.
운동회를 시작하는 즐거운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될 사진이.
그리고 아이들이 웅성웅성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저 외국인이 시하 삼촌?”
“그 백수?”
“맨날 드라마 보는?”
저기 시하야?
친구들이 대체 삼촌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나뿐만 아니라 삼촌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