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8화 운동회 (1)
강인초등학교.
1학년 1반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이 한 인터뷰를 차근차근 보고 있었다.
엄마, 아빠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을까?
‘귀여워.’
삐뚤삐뚤한 글씨가 귀여웠다.
이때만 보일 수 있는 글씨들.
나중에 보면 왜 이렇게 못 썼지? 하고 웃어넘길 추억들.
그런 게 글자에 담겨 있었다.
“쌤. 뭐가 그렇게 재밌어요?”
옆에 앉은 2반 선생님이 물어왔다.
“아이들이 이번에 직업 인터뷰해 왔는데 그게 너무 귀여워서요.”
“아. 그거 우리 애들도 했는데 다들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적은 것도 귀엽고.”
“그러게요.”
1반 담임은 다시 인터뷰 종이를 보았다.
이번에 나온 것은 시하였다.
대체 몇 개의 인터뷰를 했는지 모르겠다.
형아 씨와 삼촌 씨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니 누구를 인터뷰했는지 다 알 수 있었다.
‘이게 뭐람.’
이름이 형아 씨랑 삼촌 씨라고 하면 너무 웃기지 않은가.
심지어 삼촌 씨의 이름이 이화상이었다.
‘에이. 장난이겠지. 어떻게 사람 이름이 이화상이야.’
인터뷰 내용도 뭔가 재밌었는데 이게 맞는 건가 싶은 부분도 많았다.
“백동 씨는 누굴까?”
승준과 하나 역시도 백동 씨라고 적었는데 이름이 참으로 특이했다.
많은 아이와 부모님을 만나봤지만 백동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본 것 같았다.
‘이름이 특이하시네.’
금속 이름 중 백동이 있는 건 알고 있지만 사람 이름이 있을 줄이야.
실제로 백동환이지만 아이들이 전부 별명을 적었다는 사실을 선생님은 몰랐다.
그때 옆에서 2반 선생님이 말했다.
“아, 참. 쌤. 애들 반티 뭐 할지 정했어요?”
담임은 곧 운동회라는 걸 떠올렸다.
그걸 위해 반티를 준비해야 하는데 아직 정하지 않았다.
“아. 아니요. 아직. 아이들이랑 한번 상의해 보려고요.”
“어? 아이들 의견 물어보려고요? 고학년은 모르겠는데 저학년은 저희가 정하는 게 낫지 않아요? 아무래도 비용도 정해져 있으니까.”
“그래도 물어는 봐야죠. 안 그래도 목록을 뽑아서 보여주려고요.”
“으음. 나도 그렇게 할까?”
“그렇게 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애들도 취향이 있는데.”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 나중에 정해지면 단톡방에 올려줘요. 겹칠 수도 있으니까.”
“네. 그럼요.”
담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충 인터뷰 내용은 다 보았고 도장도 찍었다.
이제 아이들에게 돌려줄 차례였다.
***
시하는 반에서 선생님이 앞에서 보여주는 반티를 보고 있었다.
“여러분. 이 중에서 뭐가 좋을까요?”
무지 디자인에 색만 다른 티셔츠.
물론 선이 있어서 포인트를 준 종류도 있었다.
대부분 단순한 디자인이었다.
한정된 선택권에 아이들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거기에 다른 제보를 하는 아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강인 어린이집 출신 아이들이었다.
승준이 말했다.
“쌤! 반티는 등에 등 번호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응. 축구 선수처럼 말이지?”
“네!”
“일단 생각해 볼게. 다른 의견 없나요?”
이번에는 하나가 손을 들었다.
“쌤! 저는 반티는 그냥 저거 하고 해어밴드요! 손목이랑 머리랑 같이하면 예쁠 것 같아요. 그냥 헤어밴드 말고 가운데 예쁜 초승달 그려져 있는 거요.”
어디서 아이돌이 하고 있는 것을 봤는지 하나가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
반티는 제시한 것 중 그냥 흰색에 붉은 띠가 있는 것을 골랐다.
“응. 그거 정말 예쁘겠네.”
선생님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이상한 의견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할까.
“또 없나요?”
선생님의 질문에 재휘가 손을 들었다.
“어? 재휘도 의견 있어?”
“네!”
설마 얌전한 재휘에게 의견이 있을 줄이야.
선생님은 재휘가 패션을 좋아한다는 걸 기억했다.
“저는 예전에 예쁜 거 봤는데요. 흰 티에 검은색 야구 져지 걸쳐 입는 거요. 손목 밴드를 차고서. 그게 예쁘던데요. 모자 쓰는 것도 다양하게 꾸밀 수 있고.”
설마 그런 구체적인 의견이 나올 줄 몰랐다.
“어, 잠시만. 이런 거 원하는 거니?”
선생님은 모니터에서 검색하더니 아이들에게 보여 주었다.
“네!”
확실히 디자인도 괜찮고 한번 시도해볼 만했다.
문제가 있다면 아이들 몸에 맞는 게 파느냐는 거겠지만.
그때 종수가 손을 들려다가 말았다.
“종수도 의견 있니?”
“아. 아니요. 그냥.”
“왜? 말해도 괜찮아.”
종수가 재휘를 힐끗 보더니 크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그냥 재휘가 말한 게 좋은 거 같다고 하려고 했어요.”
선생님은 종수가 다른 옷을 고르자고 말하려고 했지만 재휘가 의견을 내는 바람에 한발 물러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종수라면 그냥 간단한 티 하나 고르자고 했을 것 같았다.
“그럼 다양한 의견이 나왔는데 이제 없지? 이제 이 중에서 고르…….”
그때 시하가 손을 들었다.
“어. 시하야. 뭔가 의견이 더 있어?”
“네!”
선생님은 침을 꿀꺽 삼켰다.
과연 이제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저는 그거요.”
“그게 뭐야?”
그거라고 하면 선생님이 어떻게 알겠니.
시하가 자기 옷을 가리켰다.
“시하 옷을 반티로?”
“아니요. 그거 말고요.”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말을 해!
“반티 만들면 좋겠는데요.”
“으응? 반티를 만들어?”
“네! 반티에 들어가는 캐릭터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캐릭터?”
“페페요!”
“페페?”
“임티에 나오는 펭귄 캐릭터 이름이에요. 페페!”
“아. 페페.”
“반티에 페페 캐릭터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어…. 다른 아이들도 좋아할까?”
“좋아해요!”
어디서 나오는 그 자신감일까?
선생님은 페페 이모티콘을 검색해 봤다.
알고 보니 예전에 아이들이 막 쓰던 이모티콘이었다.
이 임티 이름이 페페였구나.
귀엽기도 하고 이 캐릭터로 만들어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이건 굿즈 아닌가?
“만약에 마음에 안 들면 다 같이 자기가 그림 그려서 옷에 넣으면 되겠다.”
“으응?”
“반티니까 함께 만들면 좋잖아요.”
“그건 그렇지?”
뭐지? 뭔가 설득당하고 있다.
“그리고 캐릭터로 그리면 친구들이 원하는 거 다 넣을 수도 있어요. 사커 선수 유니폼이랑 아이돌 같은 거랑 야구 져지 같은 거 전부 캐릭터로 그리면 되잖아요.”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다들 그려오면 제가 패드에 그릴게요!”
“으응?”
“저 잘 그릴 수 있는데!”
“아니. 선생님은 시하에게 그렇게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아.”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요? 제가 캐릭터 반티 가질래요.”
“어어?”
선생님은 고민했다.
캐릭터 반티를 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런 고민은 필요 없는 거였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되니까.
“얘들아. 시하 의견 어때? 한번 같이 반티를 만들어 볼래? 만든다고 하면 선생님도 티부터 새길 수 있는 거까지 해볼게. 그림이야 잘 못 그려도 시하가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아이들이 고민하면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생각할 시간을 주면서 기다렸다.
“자. 이제 결정하자. 시하가 말한 거 하고 싶은 사람?”
척. 척. 척.
과반수의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설마 이렇게 적극적일 줄 생각도 못 했다.
“좋아. 그러면 오늘부터 자기가 생각하는 캐릭터를 그려보자. 그리고 시하한테 주면 그 캐릭터를 패드에 그려줄 거야. 그렇지?”
“네!”
시하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포용할 수 있었으니까.
그때 하나가 말했다.
“선생님. 해어밴드는요?”
“하하. 그것도 선생님이 한번 사볼게.”
“아싸!”
선생님은 대충 예산을 한번 정리해 봤다.
너무 과하지만 않으면 학교 쪽에서도 허락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도 교육의 일종.
서류 작업이야 담임의 일이 아니겠나.
그러니 문제없었다.
“그럼 다 같이 힘내자!”
“네!”
***
시하가 태권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라는 인사를 하고 후다닥 방으로 들어갔다.
“시하야. 손 씻어야지.”
“아, 맞다!”
다시 튀어나오더니 화장실로 들어간다.
뭐가 그렇게 급한 건지.
오늘따라 정신없어 보인다.
“형아. 오늘 일해?”
“일은 시하가 학교 있을 때 열심히 했지.”
“이제 남은 일 없어?”
“뭐 하려면 할 수 있는데 굳이 내일치는 안 해도 되겠지.”
“아니야. 해야 해.”
“응?”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지?
혹시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벌어오라는 소리일까?
그런 소리를 받으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아니지. 차라리 CEO가 되어서 시하가 만족할 만큼 벌어야 할까?
그런 헛생각은 뒤로해 두고 이유를 물어보았다.
“갑자기 일은 왜?”
“내가 오늘 운동회 때 입을 반티를 다 같이 만들자고 했어.”
“응. 대단하네.”
“그래서 각자 캐릭터를 그리기로 했거든.”
“응. 응.”
“근데 다들 패드나 태블릿 없으니까 종이에 그려주면 내가 옮겨서 그려주기로 했어.”
“응. 응. 응? 시하가?”
“응. 다 같이 만들면 좋잖아.”
“어…. 그렇긴 하지.”
아이들이 열심히 생각한 캐릭터를 옮겨 그리기.
분명 시하가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아이들도 잘 참여할 수 있고.
문제는 시하가 하는 일이 많다는 거지만.
“그럼 시하한테 일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괜찮아. 나도 형아처럼 일하는 거니까!”
“어. 그렇긴 하지?”
“그리고 나 페페 그릴 거야. 페페.”
“오. 진짜 오랜만에 그리겠네?”
“응.”
“대단하네. 우리 시하.”
나는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친구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작업이라고 할까.
환경미화부장일 때도 하나로 의견을 종합하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형아랑 같다. 그치?”
“응. 그렇네. 같이 일할까?”
“응!”
오늘은 노는 날이 아니라 일하는 날인가 보다.
시하에게는 그림 그리는 게 일이 아니겠지만.
시하가 패드를 들고 소파와 하나 된 삼촌에게 다가갔다.
“삼촌. 우리 여기서 일할 거니까 티비 소리 줄여.”
“아니. 공간이 이렇게 많은데 왜 여기서 일한다는 거야?”
“여기에 상 있으니까 형아랑 같이 일할 수 있지.”
“안 돼! 지금 중요한 거 해!”
“맨날 중요하대. 여기 일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어딨어.”
삼촌이 손가락을 흔들었다.
“쯧쯧쯧. 때로는 일보다 휴식이 중요할 때가 있는 법이야. 세계적인 기업은 일과시간에 휴식 시간을 반드시 줄 정도라고.”
“삼촌. 그러면 스파이였는데 스파이도 잠깐 그만두고 휴식 줘? 그리고 일해?”
“…….”
삼촌은 아무 말도 못 했다.
그야 스파이 일이 ‘아, 저기요? 잠깐 10분 동안 휴식 좀 쉬고 원래 이화상 씨로 있다가 다시 스파이할게요~’ 할 수는 없으니까.
“크흠. 어쩔 수 없네. 이번만이야.”
“내가 내 반티에 삼촌 캐릭터도 넣어줄게.”
“오? 어떤 거?”
“앙마페페.”
“야! 그거 언제 적 악마페페야. 그리고 발음 똑바로 안 할래? 앙마가 악마야.”
“아니야. 앙마야. 이미 그렇게 발음했었으니까.”
“끄응. 그게 나라니.”
“귀여워.”
“귀엽기는 하지…….”
그냥 본판은 페페니까 말이다.
시하가 일하기 위해 상 앞에 패드를 놓고 턱 앉았다.
한국인의 특징처럼 소파에 기대어 있다.
“형아. 빨리 와. 이제 소리 조금만 들려.”
“응. 고마워. 시하야.”
시하가 뿌듯한 표정으로 옆자리를 탁탁 치는 게 이게 맞나 싶었다.
나는 그저 살며시 노트북을 들고 옆에 앉았다.
“나는 이제 이거 불러서 붙이고 하면 끝!”
삼촌이 태클을 걸었다.
“아니! 새로 그리는 게 아니라 복붙이잖아!”
“삼촌. 원래 이런 건 빨리빨리 해야지. 그리고 천사페페랑 앙마페페랑 페페랑 삼총사 있잖아.”
“그게 문제가 아니라 복붙으로 끝났잖아?”
“삼촌. 어차피 이것도 내가 그린 그림인데 뭐가 문제야.”
“크흠.”
삼촌이 되게 할 말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야 시하의 티셔츠 캐릭터는 금세 뚝딱 만들어졌으니까.
“그러면 조금 그려야겠다. 이렇게 셋이 손잡고 있는 거야.”
시하가 슥슥 몇 번을 지우더니 손을 맞잡게 했다.
그리고 색을 다시 채워 넣었다.
모두 그리는 데 정말 얼마의 시간도 필요 없었다.
그야 이모티콘 캐릭터이니까.
“뭔가 사기 행태를 본 느낌이야.”
“아니야. 이제 시작이야.”
시하가 어딘가로 달려가더니 가방을 들고 왔다.
그리고 거기서 그림을 꺼냈다.
바로 오늘 받은 친구들 그림.
“오늘은 이만큼 일 받았어. 다른 애들은 생각해 보고 내일 보내준대.”
시하가 그림을 내게 내밀었다.
“형아. 이거 사진 찍어서 보내줘. 대고 그릴 거야.”
“으음.”
“왜?”
“사진 말고 프린터로 스캔할까? 그게 깔끔할 것 같은데.”
“?!”
삼촌이 뒤에서 말했다.
“그냥 저 정도 캐릭터면 대고 그리지 말고 시하가 보고 그리면 되잖아. 어렵지도 않아 보이는구만.”
시하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왜?”
“내가 보고 그리면 너무 내가 그린 것같이 나오잖아.”
나는 시하의 말에 감탄했다.
진짜 친구들을 생각하는 것 같아서.
친구들이 그린 개성마저 살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게 누군가 보기에는 조금 이상할지라도.
“그럼 이건?”
삼촌이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내뱉으며 하나의 종이를 들어 올렸다.
괴상한 사람이 머리는 땅을 향하고 팔다리는 떨어져 분해된 채로 꼬여 있었다.
그리고 주위에 소용돌이가 그려져 있었다.
저게 대체 뭔 기괴한 그림이지? 한 느낌이었다.
시하가 말을 더듬었다.
“그, 그건. 수리해야 해. 윤동이는 최선을 다했어!”
열심히 친구를 옹호해 주는 이시하!
“나한테 수리를 부탁했어!”
윤동아. 너 결국 시하에게 부탁하고 말았구나…….
그림을 못 그리는 친구도 있는 법이다.
때로는 수리하는 사람이 필요하지.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