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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 나 귀엽지 외전-67화 (492/500)

외전 67화 직업 인터뷰 (4)

짝.

나는 백동환의 팔을 쳤다.

“아픕니다.”

“아프라고 때린 거야. 뭘 또 진지하게 대답하려 하고 있어?”

“흠흠. 다 형님 때문 아닙니까.”

“이걸 내 탓으로 돌린다고?”

뭐 내가 그쪽으로 물어보긴 했지만.

“아무튼, 이제 제대로 인터뷰 시작해.”

“인터뷰 진행은 제가 하는 게 아닌데요?”

“그건 그렇지.”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도 정신이 없었다.

세 명의 아이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자자. 이제 직업에 관련된 질문만 하자. 다들 알다시피 백동환의 직업은 성우야.”

아이들이 펜을 잡고 편하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다들 성우라고 적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성우 일은 정말 재밌어하고 있어. 원래 어릴 때부터 성우가 꿈이었지. 특기가 있는데 애니메이션 성우 목소리가 좋아. 너희도 알고 있는 애니메이션도 있어.”

“잠깐만요. 형님. 형님이 이렇게 말하면 저는 여기 인터뷰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닙니까?”

“아, 뭐 그럴 수 있지.”

“아니. 저도 입이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뭔가 주절주절 말하고 말았다.

백동환과 오래 알다 보니 어떤 대답을 할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 이제 네가 하면 돼.”

“뭔가 다 말한 것 같은데요?”

“다시 태어나도 성우하고 싶다는 말은 안했잖아.”

“지금 방금 말했는데요?! 야. 너희들. 이 대답 왜 필기하고 있어?!”

아이들이 내 말을 철썩같이 믿고 열심히 필기 하고 있었다.

백동환이 말하지 않는 인터뷰.

근데 이럴 거면 정말 여기 올 이유가 있었을까 싶긴 했다.

그때 승준이 손을 들었다.

“나 물어볼 거 있어!”

백동환은 잘됐다는 얼굴을 했다.

드디어 인터뷰에 입을 뗄 수 있는 질문을 할 테니까.

“그래. 승준아. 마음껏 물어봐.”

“그렇게 근육 많으면 성우 할 때 도움이 돼?”

“…조금?”

거짓말하지 마!

저게 도움이 된다면 다들 어디 헬스 대회 준비하는 사람일 것이다.

“와! 목소리 낼 때 쓰여?”

“…조금?”

“백동 형아. 어떨 때?”

“그러니까. 힘줘서 굵은 목소리를 낼 때?”

“우와!”

“여기 근육이 울려서 더 굵은 목소리가 나올 수 있어.”

“진짜?!”

아니. 승준아. 그거 아니야. 그렇지 않아.

시하가 열심히 쓰며 중얼거렸다.

“굶은 목소리는 근육에서 나온다.”

“굶는 게 아니라 굵은, 이야. 시하야.”

“!!!”

시하가 깜짝 놀랐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형아. 어떻게 알았어?! 내가 적은 거.”

“혼자 말하면서 적던데?”

“내가? 아니야. 난 멋있어서 형아처럼 아무 말 안 하고 생각해.”

“응. 시하가 그렇다면 그렇겠지.”

너무 귀여워서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거 아닐까?

물론 이건 속으로만 생각했다.

백동환은 대답이 좀 그랬다고 생각했는지 말을 바꿨다.

“크흠. 사실 근육은 성우 일하는 데 엄청 좋은 체력이 돼. 보통 2번 할 수 있는 일을 3번 더 할 수 있지!”

“와! 그렇구나. 역시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해.”

승준이 알겠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필기했다.

저기에는 뭐라고 쓰여 있을까?

차마 보여 달라고 할 수 없었다.

뒤에서 보고 있는 승준 엄마의 표정이 오묘해지는 걸 보니 이상한 걸 적은 것 같았다.

“다음은 내가 할래! 백동 오빠!”

“어. 해 봐.”

“성우면 방송국 가잖아.”

“응. 가지.”

“그러면 방송국에서 연예인도 만나봤어?”

“어…. 몇 번 마주치기는 해 봤지?”

“아이돌은?!”

다들 직업적 관심은 없고 뭔가 개인적 관심사에 관한 질문만 던지는구나.

이렇게 인터뷰해도 되는 거 맞아?

“아이돌 멤버 한 명은 봤지. 애니메이션 영화 더빙할 때 같이 일한 적이 있거든.”

“스캔들이야!”

“아무 일도 없었어.”

“힝. 스캔들…….”

“하나가 뭘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막 드라마 같은 데서 일어나는 일은 없었어.”

“근데 아이돌 누구?”

“위너스에 규이 님.”

“규이 언니!”

나는 들어도 누군지 모르겠는데 하나는 잘 아나 보다.

솔직히 연예인은 잘 모르겠다.

대충 인기 있는 노래가 뜨면 한 번씩 들어보는 정도였다.

누가 불렀고 멤버의 이름이 누군지 이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냥 좋은 노래면 추가하고 아니면 넘긴다.

옆에 있는 시하에게 물었다.

“시하도 알아?”

“아니. 나는 형아만 아는데?”

“형아는 아이돌이 아닌데?”

“아니야. 아이돌보다 형아가 더 멋있어.”

“푸흡. 고맙다. 근데 하나가 말하는 건 여돌인데?”

“여돌보다 멋있어.”

이게 지금 무슨 대화인지 모르겠다.

뭐 시하가 나를 아이돌보다 높게 쳐 준다는 건 알겠다.

사실 자기도 아이돌 잘 모르면서 말이다.

“규이 언니 엄청 예쁜데! 백동 오빠. 진짜 예쁘지?”

“응. 진짜 예쁘시지.”

“근데 규이 언니는 백동 오빠랑 만나면 안 돼. 규이 언니 작아서 백동 오빠랑 만나면 애기 돼.”

“내가 그 정도로 크지는 않거든?”

“아니야. 백동 오빠 100미터라서 안 돼.”

“그건 이미 인간이 아니잖아…….”

백미터면 그 규이 언니라는 분이 애기가 되는 게 아니라 그냥 개미가 될 건데?

밟히면 죽겠지?

그때 시하가 말했다.

“백동 형아 원래 괴물이라서 인간이 아니라도 괜찮아.”

“그건 대체 무슨 위로야?”

백동환이 어이없다는 듯이 시하를 보았다.

그러더니 두 손을 번쩍 들어서 시하의 의자를 잡고 띄웠다.

“그래! 나 괴물이다!”

“우왁! 난다!”

몇 번을 흔들어 주더니 제자리에 놓았다.

쌍둥이도 그게 재밌어 보였는지 자기들도 해달라고 했다.

“백동 형아. 나도 해줘.”

“백동 오빠. 나도 해줘!”

“크아아앙!”

백동환이 인터뷰하다 말고 아이들이랑 잘 놀아 주었다.

그런데 저런 힘을 보면 정말 괴물이네.

물론 그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대충 놀아주는 걸로 한 바퀴 돈 다음에 시하가 말했다.

“근데 인터뷰 어디까지 했지?”

“시하야. 나도 까먹었어.”

“그거. 규이 언니 이야기까지 했어. 규이 언니 예쁘다고.”

그래. 그것까지 했지.

아니. 그게 맞나?

시하가 손을 들었다.

“그럼 이제 내가 질문할 차례야.”

백동환이 조금은 지쳤는지 자리에 앉아서 의자에 등을 깊숙이 기댔다.

“그래. 무슨 질문인데?”

“일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요?”

“음. 일하면서 힘들었던 건 별로 없었던 것 같아. 왜냐면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거였으니까. 아주 만족도가 높아.”

“진짜 하나도?”

“하나도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크흠. 그냥 남들 일할 때 피곤한 정도? 그리고 매일같이 몸 관리해야 하는 거?”

“몸 관리? 목 관리가 아니야?”

“응. 몸 관리지. 아프면 목에서 바로 티가 나거든.”

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아프면 목에 힘이 없어.”

“응. 그렇지. 이제 질문 끝났어?”

“아니! 더 궁금한 거 있어.”

“뭔데?”

“몸 관리는 꼭 그렇게 근육이 엄청 커야 해? 성우들은 전부 그렇게 근육이 커?”

“크흠. 아니.”

“근데 왜 백동 형아는 커?”

“그거야…. 운동 좋아하니까?”

시하가 그 말에 열심히 받아 적었다.

“근육으로 아픈 걸 막는다.”

아니. 아니. 그게 맞아?

근육으로 아픈 걸 어떻게 막아?

“크면 클수록 잘 막을 수 있다. 방법은 운동으로 키운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번역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시하야. 우리 같은 한국인 맞지?

백동환이 옆에서 말했다.

“역시. 시하가 잘 아네.”

너는 또 왜 그래?

여기서 이상함을 느끼는 건 나뿐이야?

그래도 아직 희망이 있다.

승준 엄마를 보았다.

자애로운 미소를 지는 걸 보니 이미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승준아. 넌 대체 어떻게 쓴 거니?

***

엉망진창인 인터뷰가 끝났다.

날도 어둑어둑해지는 것이 이제 밤이 찾아올 것만 같았다.

툭. 툭.

백동환이 어느새 램프를 가지고 와서 불을 밝힌다.

아니. 이제 가면 되는데 이렇게 감성 있는 걸 둔다고?

“동환아. 이제 가야 하지 않아? 여기 계속 있을 거야?”

“아. 좀 있다가 가야죠. 일단 켜봤습니다. 켜기 좋을 때인 것 같아서.”

“그래? 그럼 좀 있다가 저녁이나 같이하자.”

“형님이랑 오랜만에 밥 먹는 건 좋네요.”

“사실 오늘 점심때 배불리 먹어서 별생각은 안 들긴 하는데 간단히 먹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럼 바비큐 어떻습니까?”

바비큐? 내가 방금 간단히 먹어야 할 것 같다고 하지 않았나?

말없이 그냥 백동환을 쳐다보자 자기도 머쓱한지 목을 긁었다.

“하하. 농담입니다.”

“캠핑에 너무 미쳤어.”

“캠핑은 갬성입니다. 잊으셨습니까?”

“아니.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야.”

“너무 배부르면 간단히 디저트랑 차 한 잔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건 괜찮네?”

생각보다 솔깃한 제안이었다.

그때 쌍둥이랑 놀고 있던 시하가 우리를 불렀다.

“형아. 백동 형아. 여기 봐봐.”

“응?”

시하가 백동환의 흰색 차 문을 통통 두드렸다.

“백동 형아. 여기에 누가 그림 그려놨는데?”

“아. 그거…. 어떤 말썽쟁이가 그림을 그려놨더라고.”

나는 의문을 내뱉었다.

“안 지웠어?”

“닦으니까 유성매직이더라고요.”

“저런.”

“오늘 저런 일이 벌어져서 지우려다가 뒀어요. 여기 오기도 해야 하고.”

“오늘 벌어진 일이라고?”

“네. 오늘 보니까 저렇게.”

“화 많이 났겠네.”

“별로요? 그냥 뭐 어쩔 수 없다 싶었죠.”

잘 그린 그림이라기보다는 그냥 낙서 느낌이 많이 났다.

누가 이렇게 했을까.

“백동 형아. 그럼 내가 여기에 그림 그려줄까?”

“어? 으음. 뭐 좋지.”

“정말?”

나는 그 말에 조금 놀랐다.

“야. 괜찮겠어?”

“뭐 어차피 도색 다시 할 때 된 거 같아서요. 재밌게 쓰이면 좋죠. 언제 저기에 낙서해 보겠어요.”

“그건 그런데.”

“괜찮다니까요.”

“네가 그렇다면 뭐.”

백동환이 차에서 네임펜을 꺼냈다.

진짜 하게? 진짜? 이래도 되나 싶었다.

“자. 시하야. 여기 낙서된 문 쪽에만 해야 해.”

“아싸.”

시하가 신나서 네임펜을 잡았다.

“백동 형아. 내가 멋지게 그려줄게.”

“아니. 멋지게 그리지 마. 지우기 아깝잖아…….”

그것도 그렇다.

너무 멋지게 그리면 지우기 아까울지도?

“그러면 더 멋지게 그려야지!”

안 지우게 멋지게 그릴 생각인 것 같았다.

시하가 네임펜의 뚜껑을 뽑고 거침없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스윽. 스윽. 스윽.

흑색 선이 그어진다.

둥근 곡선이 그려지면 형체를 갖춘다.

선과 선이 만나고.

선과 선이 모여서.

하나의 형태를 이루고.

함께 어우러진다.

‘저건…….’

백동환의 캠핑카였다.

승준과 하나도 어느새 시하가 그리는 그림을 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우와! 대박!”

“저거 백동 오빠 차네.”

아이들의 반응에도 시하는 오롯이 그림에 집중하고 있었다.

멋들어지게 천막이 완성됐다.

사람들이 그려지고 의자에 앉으며 테이블 위에 차가 놓인다.

램프 하나가 가운데 놓이며 그림자를 짙게 만들어낸다.

스윽. 스윽.

얇게 선으로 칠하는 곳에 명암이 나타난다.

분위기 있는 캠핑의 모습이 차 문에서 다시 태어났다.

구석에 있는 낙서가 초라해질 정도로 말이다.

아니. 오히려 그려진 그림을 망치는 요소 같았다.

“다 했다.”

오늘 캠핑을 즐기며 인터뷰했던 풍경.

그 풍경이 차 문에 전부 녹아 있었다.

“백동 형아. 어때? 이거 지울 거야?”

“크흑.”

내가 봐도 지우기 아깝다.

딱 저기 있는 낙서만 지우고 싶었다.

“여기만 어떻게 지우면 이상하겠죠?”

“엄청 이상하지. 가까이 보면 티 날 것 같은데.”

백동환이 시하의 머리를 벅벅 헝클였다.

“내가 멋있게 그리지 말라고 했잖아…….”

“백동 형아. 내가 멋있게 그린다고 했잖아.”

“크흑. 이거 어떡하지.”

“사진 찍으면 되지.”

“그러면 저 낙서가.”

“저 낙서 프로그램으로 쉽게 없애면 돼.”

“그러면 되긴 하네? 천잰데?”

우리 시하가 천재이기는 하지.

“근데 그건 사진이고 이거는 지우기 너무 아까운데.”

“안 지우면 되지.”

“그게 그렇게 쉽게 되냐고.”

나는 그런 백동환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길래 누가 그리라고 허락하래?”

“아니. 시하가 이렇게 잘 그릴 줄 몰랐죠. 난 그냥 임티 같은 캐릭터 그릴 줄 알았지…….”

“왜 그래. 전에 피아노 영상 봤으면서.”

“그건 그거고요!”

“아, 그건 모르겠고 비켜봐. 사진 좀 찍게.”

나는 사진을 찍었다.

찰칵.

약간 어둑해서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동환아. 밝을 때 다시 찍어서 보내라.”

“크흠. 알겠습니다. 하아. 이거 고민되네.”

“그냥 지워.”

“형님. 너무하십니다. 어떻게 시하 그림을 지울 수가 있습니까!”

“이걸 때서 새로 갈아 끼우던가.”

“아니. 거기까지는 좀.”

“왜! 시하 그림은 그 정도 가치가 있잖아!”

백동환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형님. 아까는 그냥 지우라면서요?”

“그거야 이 문을 떼기 위한 빌드업이었지.”

“역시 형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스케일이 남다르네요. 그런 의미에서 형님 차에도 그림을 그리는 건?”

“시끄럽고. 디저트나 먹으러 가자.”

“형님?”

우리는 시하의 그림을 한 번 더 보고 나서 디저트를 먹으러 자리를 떴다.

오늘 정말 파란만장한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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