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6화 직업 인터뷰 (3)
미술 선생님이 일인 소파에 앉고 아이들 세 명이 쪼르르 앉아 있었다.
펜과 종이를 들고 반짝이는 눈으로 미술쌤을 바라보았다.
뭔가 인터뷰하는 모습이라기보다는 소꿉놀이하는 느낌이었다.
먼저 하나가 물었다.
“어떤 일을 하시나요?”
“그림을 그리는 화가입니다.”
“네? 미술 선생님 아니었어요?”
“그건 개인적으로 하는 과외죠.”
“아하. 화가. 저 화가 처음 봐요!”
“하하하.”
미술쌤이 하나가 귀여운지 빙긋 웃으셨다.
나 역시도 하나를 보면 살며시 웃음이 나오긴 했다.
“그럼 화가 일을 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어떻게 보면 쉬운 질문이면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미술쌤이 살며시 고민하다가 힐끗 시하를 보았다.
“그냥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림을 그려오면 부모님이 칭찬해 주셨거든요. 그렇게 커가다 보니 칭찬보다는 그림이 더 좋게 되었고.”
정말 인터뷰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해 주는 듯했다.
“돈은 많지 않았지만 이 길을 가고 싶었죠. 제가 사랑하는 그림과 사랑하는 사람이 그림을 좋아했으니. 이보다 더한 행운이 어딨겠냐 싶었죠. 한 푼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외국으로 가서 이리저리 일하고 공부도 많이 했어요. 아. 너무 많이 말했나?”
아이들이 엄청 열심히 적고 있었다.
미술쌤이 말을 멈추고 아이들이 적기를 기다렸다.
하나가 웃으면서 말했다.
“역시 어릴 때 꾸는 꿈은 이루어진다!”
아직 이야기가 화가로 된 걸로 안 되었는데?
뭐 결과는 이렇게 미술쌤으로 나와있기는 있으니.
나는 슬쩍 시하에게 다가가 필기하는 걸 보았다.
-나도 그림 좋아하고 너도 그림 좋아하고 우리 모두 외국 떠나요.
이게 무슨 말이야?
아니. 그 아름다운 서사는 어디 가고 이리 짧은 문장만 있어?
너무 압축했잖아!
“저도! 저도! 질문이요!”
승준이 흥분해서 말했다.
대체 저 서사에 뭐에 꽂힌 거지?
“외국이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어디인가요?!”
“뭐. 여러 군데 돌아다녀도 보고 했었죠. 프랑스에 자주 있었고 영국이랑 미국도 가끔 갔죠.”
“와! 영국 프리미어리그 봤어요?!”
역시 축구 이야기인가.
“친구 따라 몇 번 보기는 봤습니다.”
“사커 정말 재밌죠?!”
갑자기 축구 인터뷰가 되었는데?
미술쌤이 살며시 웃었다.
“거기 있는 선수들의 경기도 무척 재밌지만 사람들이 더 재밌답니다.”
“네? 사람들이 왜요?”
“어떤 팀을 응원한다는 것에는 정말 진심 어린 표정이 보이거든요. 안타까움, 화남, 기쁨, 즐거움. 그런 것들이 다 애정 어린 눈으로 보니까요.”
“그건 재미없는데!”
“근데 친구랑 같이 축구 보면 재밌잖아요.”
“그건 그래요.”
“저도 그렇습니다.”
비록 축구 이야기였지만 배상현 씨가 어떤 면을 보는지 알 수 있었다.
화가는 화가인 것 같았다.
거기서 사람들의 감정과 표정을 관찰하다니.
시하가 손을 들었다.
“그럼 일하면서 힘든 일은 없었나요?”
미술쌤은 그 질문에 미소가 사라졌다.
뭐라고 말하려고 달싹이다 다시 다물기를 반복했다.
두 손을 모으며 엄지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냥. 모든 날이 힘들었어요.”
“왜요?”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후회도 많이 되고.”
“???”
“하하하. 힘든 일은 여기까지 하자. 얘들아.”
배상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이제는 안다.
결국 화가로서 성공해도 행복하지 않았던 삶이었다.
“그럼 다시 태어나도 이 직업을 하실 건가요?”
“아니.”
“!!!”
“다시 태어나면 그냥 평범하게 직장 일하며 퇴근할 때 가끔 치킨도 사서 아이들에게 안겨주고 싶어.”
시하가 펜으로 마지막 대답을 적었다.
아이들은 이 말을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 눈에는 미술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알까?
나는 시하가 적은 글을 보았다.
-화가 안 하고 싶다. 다시 태어나면 다른 직업을 가지고 싶다. 좋은 아빠고 싶다.
솔직히 놀랐다.
시하가 듣고 받아들인 말은 정확히 핵심을 짚고 있었다.
“다 했다! 인터뷰 끝.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때였다.
띵-동-!
문을 벨소리가 울렸다.
치킨과 피자가 도착한 소리였다.
배상현 씨는 직장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이렇게나마 치킨과 피자를 안길 수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저 신나게 말했다.
“인터뷰도 끝났으니까 배 터지게 먹겠네?!”
“우와!”
아이들이 신나 하는 모습을 보며.
배상현 씨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옅게나마 지웠다.
***
치킨과 피자를 마구마구 먹어서 배가 터질 것 같다.
그것뿐인가.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와서 더는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우리를 위해 카페에서 커피까지.
살, 살려줘.
그런 시간도 잠시.
이제는 떠날 시간이 왔다.
승준 엄마가 미술쌤에게 인사했다.
“정말 재밌게 놀다 가요.”
인터뷰하러 온 건데 재밌게 놀다 간다는 인사가 맞을까 싶었다.
배상현 씨가 손을 저었다.
“하하하. 아닙니다. 저도 참 재밌었어요. 아이들에게 이런 인터뷰도 받고.”
“그러게요. 이런 경험도 특이하죠.”
“마지막에 너무 진지해져 버려서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졌지만.”
“아니에요. 때론 저런 것도 좋죠. 아이들에게 뭔가 색다른 자극이 되었을 거예요.”
“그런가요?”
“그럼요.”
쌍둥이들도 옆에서 인사를 했다.
“미술쌤. 정말 재밌었어요. 다음에 프리미어리그 이야기 더 해주세요.”
“저도 재밌었어요! 나중에 콘서트 간 이야기 있으면 해주세요!”
시하도 인사했다.
“미술쌤. 감사합니다.”
“그래. 시하도 고마워.”
“근데 미술쌤.”
“응?”
“지금도 그림 그리는 거 힘들어요?”
시하의 말에 미술쌤이 웃었다.
“지금은 그렇게 힘들지 않아. 시하를 가르치며 그리는 것도 엄청 즐거워.”
시하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다행이다! 저도 그림 배우는 거 재밌어요!”
“하하. 고마워.”
아무래도 시하는 자기를 가르치면서 그림 그리는 게 힘든지 생각해 봤을 것만 같았다.
나는 배상현 씨를 보았다.
“다음에 시하랑 또 뵐게요.”
“네. 언제나 감사합니다.”
“정말 잘하고 있어요.”
“예?”
“그냥 그렇다고요.”
언제 누군가가 나에게 말해 줬으면 했던 말.
내가 힘들 때 해 줬으면 했던 말.
정말 잘하고 있는지 아니면 이게 맞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았고 고민하고 선택했을 때 누군가 해 줬으면 했던 말.
그 말을 배상현 씨에게 건넸다.
배상현 씨가 살며시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잘하고 있는 거군요.”
“네.”
“감사합니다.”
사실 나도 이게 잘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애쓰는데 그 마음만은 정말 잘하고 있는 게 맞지 않나.
그 길이 쉬워 보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럼 가볼게요.”
나는 시하의 손을 잡았다.
배상현 씨가 손을 흔들었다.
시하도 손을 흔든다.
그리고 앞을 본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배상현 씨가 우리를 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라질 때까지 거기서 하염없이 보고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그제야 집 안으로 들어가겠지.
그런 사람이니까.
“형아.”
“응?”
“이제 백동 형아 보러 가는 거지?”
“응. 그렇지.”
이제 백동환을 보러 간다.
오랜만에 신나게 떠들 수 있을 것 같아서 미소가 저절로 나왔다.
벌써 안 지 5년이 되었나?
“인터뷰 엄청 잘해야지.”
“근데 시하야. 어디서 만나기로 되어 있는지는 알고?”
“응? 아니!”
“아. 그래? 몰라?”
“응. 몰라. 형아가 알면 됐지.”
“그건 그렇지.”
“근데 어디야?”
“길거리.”
“응?”
“길거리 인터뷰.”
“길거리?”
“응.”
나도 처음에 들었을 때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무슨 인터뷰를 길거리에서 하냐고.
캠핑하기 좋은 길거리가 있다는 말에 기겁했었다.
뭐 아무튼, 좋은 길거리를 향해 가고 있었다.
“도착했다.”
“우와!”
시하가 밖을 보았다.
탁 트인 전망.
밭들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고 백동환의 차로 보이는 캠핑카가 보였다.
햇빛을 막는 천막이 차 천장에서부터 뻗어져 있었고 자세히 보니 루프탑 텐트도 탑재되어 있었다.
‘뭐야 저게.’
차에서 내리자 백동환이 우리를 반겼다.
“형님! 시하야!”
손을 휙휙 흔드는데 주변에 바람이 이는 것 같았다.
어찌 되었든 백동환에게 우리는 걸어갔다.
“백동 형아!”
“이야. 시하야. 넌 어찌 된 게 그대로야?”
“아니야. 나 많이 컸어. 벌써 초등학생이야.”
“하하하. 거짓말하면 안 돼.”
“진짜야!”
“사실 알고 있지. 읏차!”
백동환이 시하를 번쩍 들었다.
아직도 저렇게 들 수 있는 걸 보니 시하가 정말 작아 보인다.
우리 시하 벌써 초등학생이고 키도 많이 컸는데.
“안 본 사이에 시하 엄청 컸지? 이제 너무 묵직해서 오래 못 들 건데.”
백동환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뜬다.
“아마 조금 있으면 내 키도 금방 따라잡을 거야.”
“형님.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닙니다. 시하 반에서 몇 번째로 큰데요?”
시하는 반에서 제일 작다.
“시하는 도약을 위해 웅크리고 있을 뿐이야.”
“그게 작다는 거지 않습니까?”
“시끄러. 조용히 해.”
작은 게 뭐 어때서! 작고 소중하면 된 거 아니야!
“오늘 인터뷰 취소다!”
“아! 시하 엄청 컸네!”
이제야 입바른 소리를 한다. 암! 우리 시하 엄청 컸다!
“백동 형아도 엄청 컸어!”
“아니. 그건 좀.”
이미 2미터라서 엄청 큰데 저기서 더 크면 큰일 나지 않을까?
집 구하는 것부터가 문제일 것 같았다.
“우와! 백동 형아!”
“백동 오빠!”
금방 도착한 승준과 하나가 내려서 백동환에게 매달렸다.
시하는 백동환 목에 힘껏 매달렸고 쌍둥이 둘은 양팔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셋이서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까르르 웃는다.
“이제 다들 내려와. 백동이. 아니, 동환이 힘들어.”
가끔 백동이라는 말이 자꾸 튀어나오는데 이건 시하 때문이다.
의식적으로 동환이라고 부르려고 한다.
“백동 형아. 이제 내려줘!”
“알았어.”
백동환이 아이들을 내려놓았다.
종일 매달리면 아이들이 더 힘들 테니까.
턱걸이도 아니고 저게 뭔가 싶다.
“자. 잘 왔습니다. 다들 캠핑 인터뷰를 즐기시죠!”
기어코 캠핑을 준비했구나.
의자도 잘 갖춰져 있는 것을 보니 세팅은 이미 끝난 것 같았다.
나무로 된 책상도 펼쳐져 있었고 그 위에 음료로 마실 수 있는 것들이 올려져 있었다.
“너도 참.”
이렇게까지 캠핑을 해야 했겠냐!
뭐 간단하게 이렇게 앉아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했다.
탁 트인 공간이 이상하게 안정감을 줘서 좋으니까.
“자자. 일단 앉아보세요.”
시하랑 쌍둥이는 이미 편안하게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형아. 이거 편해.”
“응. 그래 보이네.”
나 역시도 의자에 앉았다.
이 정도면 꽤 캠핑도 할 만한 것 같았다.
약간 파라솔 하나 펴고 책상에 의자만 편 느낌?
금방 치울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았다.
“자. 자. 여기 음료도 마시고.”
백동환이 아이들에게 음료를 건네주었다.
근데 왜 오늘 인터뷰 받는 사람들이 다 대접하고 있냐.
부탁한 건 우리일 텐데.
뭐 어떤가.
진짜 기자가 쓰는 인터뷰도 아니고.
백동환이 내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형님. 어떻습니까? 힐링되지 않으십니까?”
“어. 힐링되네.”
“크으. 이게 바로 캠핑의 참맛입니다.”
“근데 오늘은 힐링하러 온 게 아니라 인터뷰를 하러 온 건데?”
“그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그게 중요한 건데?
너는 캠핑이 중요하냐!
아. 얘는 그게 중요했지.
“하하! 농담입니다. 자. 그럼 인터뷰해 볼까요? 다들 궁금한 거 있으면 다 물어봐.”
시하가 손을 들었다.
“백동 형아.”
“응?”
“여자 친구는 있어?”
“그건 직업 질문이 아니잖아!”
갑자기 훅 들어오는 아주 사적인 질문이었다.
근데 아이들이 눈을 빛내고 있다.
흠. 그건 나도 궁금한걸?
“있어?”
“…없습니다.”
“내가 수현이한테 소개팅이라도 해달라고 할까?”
“형님!”
갑자기 큰 목소리에 당황했다.
“왜?”
“평생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저리 가.”
그때 시하가 말했다.
“백동 형아. 나도 소개해 줄까?”
“아니. 그건 좀…….”
그건 그렇지.
“연예인은 어때?”
“시하가 아는 연예인 있어?”
“으음. 고 감독님?”
“그것도 진짜 아니다!”
그래. 그건 아니지.
그때 하나가 물었다.
“그럼 백동 오빠. 이상형이 어떻게 돼?”
아니. 얘들아. 직업적인 질문을 하라고.
인터뷰가 이렇게 진행돼도 괜찮은 거야?
어이. 백동환. 너는 뭘 그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하고 있냐! 정신 차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