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4화 직업 인터뷰 (1)
강인초 1학년 1반.
선생님은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신나게 떠들고 있다가도 자신이 쉿 하면 금세 조용해진다.
1학기는 아이들의 적응 기간과 함께 공부를 열심히 하게 했다면 2학기는 다양한 활동들이 중점이었다.
교내대회가 그랬다.
“여러분들. 이번에는 좋은 숙제를 내줄게요.”
“아아~~”
아이들 싫다는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굴하지 않는다.
교육이라는 게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인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흠흠. 여러분. 인터뷰라고 아시나요?”
“아니요!”
“네!”
아는 아이들도 있고 모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중 시하는 아주 자신만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럼 아는 사람 중에 친구들에게 알려줄 사람?”
손을 든 아이들은 전부 강인 어린이집 출신.
사커가 꿈인 승준.
아이돌이 꿈인 하나.
아역으로 있던 연주.
뭐든 지식이 많은 종수.
마지막으로 형아바라기 시하.
총 5명이 손을 들고 있었다.
담임은 살며시 그 다섯 명을 보다가 누구를 고를지 순간 고민이 들었다.
다들 개성이 넘치니.
“그럼 연주가 해 볼래?”
“네!”
연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휘가 ‘연주야 힘내~’ 하고 응원을 보낸다.
“인터뷰는 배우들이 새로운 작품 나왔을 때 해요! 기자들이 이것저것 질문해요.”
“네. 맞아요. 연예계 뉴스에서 이것저것 질문하죠?”
“네.”
“네. 잘했어요. 인터뷰라는 건 궁금했던 걸 질문해서 알아보는 거예요.”
시하가 손을 들었다.
“응. 시하야. 뭔가 말하고 싶은 거 있니?”
“네!”
“그게 뭘까?”
“인터뷰는 멋있게 말로 딱딱 말해 줘야 해요. 형아처럼요. 외국어로!”
“응. 멋있게 딱딱 외국어로 대답해 주는구나. 그건 인터뷰 답하는 사람의 이야기지?”
“네! 마이크 잡고 멋있게!”
“멋있게, 가 중요한 거니?”
“그게 제일 중요해요. 멋있게.”
“그렇구나. 그렇지.”
어쨌거나 시하는 멋있게 하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유머가 있어야 해요. 그러면 백 점짜리 인터뷰예요.”
“와. 유머. 어려운 말을 아네?”
“네!”
시하는 배우들과 감독 그리고 시혁이 인터뷰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있었다.
멋있고 여유 있게 말하는 것.
어릴 때 봐왔던 그 장면은 시하의 머리에 잊히지 않는 추억이 되었다.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거라는 이미지화가 되어버렸다.
담임이 말했다.
“하지만 시하야. 그건 어디까지나 인터뷰에 대답하는 사람이고 선생님이 숙제 내주는 건 인터뷰하는 사람이 되어보는 거예요!”
“!!!”
“각자 어떤 직업에 대해 궁금한 거나 힘든 점? 혹은 좋은 점 등을 직접 인터뷰하는 거예요. 엄마도 좋고, 아빠도 좋고, 형도 좋고, 이모나 삼촌도 다 좋아요.”
직업 인터뷰 숙제.
엄마, 아빠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생활하고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숙제였다.
보통 바쁜 부모님을 아이들이 알아 가면 좋으니까.
때로는 이런 게 부모님들이 자식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 주기도 한다.
일이 힘들 때도 있지만 너를 생각하면 더욱 힘이 난다고.
시하가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삼촌은 백수인데…….”
담임은 쓴웃음을 지었다.
백수도 인터뷰하면 꽤 재밌을 거라고요?
물론 입 밖으로는 내뱉지 못했다.
백수를 직업으로 봐야 할지 고민이 들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초등학교 선생님인데 백수가 좋은 직업인 경우도 있어! 할 수 없지 않나.
“흠흠. 아무튼, 여러 명 인터뷰해 보세요. 알았죠?”
“네!”
“인터뷰한 건 일기로 써서 제출해 주세요.”
“네에!”
담임은 충분히 공지를 하자 종이 쳤다.
쉬는 시간.
책을 정리하고 교실을 나서려고 했다.
승준이 시하를 보았다.
“시하야. 나는 사커 선수를 인터뷰하고 싶은데 어떻게 만날 방법이 없을까?”
“누구 만나려고?”
“메시!”
“외국 선수니까 외국 가야 하네.”
“응!”
“근데 외국 가려면 돈 많이 필요해서 힘들지 않아?”
“그게 문제야.”
하나가 말했다.
“나는 아이돌 인터뷰하고 싶은데!”
승준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더 힘들지.”
“아니거든. 오빠가 더 힘들거든. 아이돌은 그래도 한국 사람이잖아.”
“아이돌은 한국 사람이라도 만나기 힘들거든!”
둘 다 만나기 힘들다는 점에서 별 다를 바 없었다.
담임은 나가려다가 쌍둥이의 인터뷰 고민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냥 평범히 엄마, 아빠에게 인터뷰해…….
시하는 고민에 빠졌다.
“나는 할 사람 너무 많아. 형아랑 삼촌. 아. 삼촌은 빼고. 미술쌤이랑 백동 형아. 그리고 혀니 누나. 또…….”
승준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우와. 시하 진짜 많다. 나도 시하랑 같이 인터뷰할래.”
“하나도!”
시하가 어깨를 으쓱 폈다.
“좋아. 다 같이 인터뷰하자.”
또 상대방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세 명이서 뭉쳤다.
삼인방이 하는 것을 보자 다른 아이들도 힌트가 됐는지 같이하자고 팀을 이뤘다.
연주와 재휘와 종수.
은우와 윤동.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짝지어 인터뷰하기로 했다.
담임은 갑자기 조별 숙제가 돼 버린 모습을 보며 황당해했다.
이게 왜 이렇게 됐지?
이게 맞아? 내 의도는 이게 아니었는데?
꼭 교육이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었다.
***
시하는 집으로 오자마자 인터뷰를 시작했다.
준비물은 집에서 쓸데없이 굴러다녔던 블루투스 마이크, 그리고 공책과 연필이었다.
먼저 인터뷰할 상대는 형아.
“형아. 빨리 와봐. 나 학교 숙제 있어.”
“응. 잠시만. 금방 나가.”
나는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왔다.
아무래도 오늘 시하가 의욕이 넘치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인데?”
“오늘 직업에 대해서 인터뷰하라고 숙제 나왔어.”
“오. 엄청 중요한 숙제네.”
“응. 그래서 승준이랑 하나랑 같이 인터뷰 가기로 했어.”
“응? 내 인터뷰도?”
“아니. 형아 인터뷰는 나만 할 거야.”
“아. 그렇구나.”
형아 독점 인터뷰 기사!
뭐 이런 느낌인가 보다.
시하가 마이크를 내밀었다.
“이거 받고.”
“알았어.”
“그럼 질문할게. 선생님이 질문할 걸 미리 적어서 가라고 했어.”
“오. 선생님이 제대로 가르쳐주셨네.”
인터뷰가 쉬운 게 아니었다.
미리 질문할 걸 정리해서 가는 게 긴장해도 잊어먹지 않고 대답을 잘 받을 수 있었다.
“어떤 일을 하시나요?”
“통역도 하고 번역도 합니다. 요즘에는 통역보다는 번역 일을 많이 하네요.”
“번역 일은 재밌으신가요?”
“보통 재밌고 한국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책을 가지고 오니까 번역하면서 굉장히 재밌고 흥미로워요. 영화 번역도 가끔 맡게 되는데 이것 역시 재밌습니다.”
“그럼 일하는 게 재밌나요? 아니면 시하랑 놀아주는 게 재밌나요?”
너무 사적인 인터뷰 아닌가?
누가 봐도 답은 뒤야! 하는 느낌이었다.
“시하랑 노는 게 더 재밌죠.”
“나도! 형아랑 노는 게 재밌어!”
“시하야. 지금 인터뷰 중이잖아.”
“괜찮아!”
음. 인터뷰 이렇게 하는 게 맞아?
질문지 좀 보여줄래?
뭘 그렇게 열심히 썼는지 한번 보게.
내가 공책에 손을 뻗자 시하가 비밀이라는 듯 공책을 품에 안아서 뒷걸음질 친다.
뭐 못 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지.
“보면 안 돼!”
“뭐 대단한 거라도 적혀 있어?”
“엄청난 거 적혀 있어.”
얼마나 엄청난 질문들이 있길래?!
긴장되는걸.
나는 시하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진행하시죠.”
“응! 아니. 네! 그러면 힘든 일은 없었나요?”
“으음. 딱히 힘든 건 없는데 하루를 바쁘게 지내다 보니까 좀 여유롭게 휴식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시하가 내 대답을 열심히 썼다.
“일은 여유롭게 멋있게 해낸다. 어려운 거 하나도 없이 쉽다.”
저기요? 시하 씨? 그런 말이 아니었는데요?
기자가 이렇게 인터뷰를 왜곡해도 됩니까!
펙트를 내보내라고요! 교묘하게 진실과 거짓을 섞지 말고.
어떻게 보면 시하는 기자에 재능이 있을지도?
다른 건 어떻게 썼을지 궁금해진다.
제대로 썼겠지?
“다음 질문!”
“네. 다음 질문하세요.”
“그럼 형아. 아니. 형아 씨.”
시혁 씨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시하 기자님? 형아 씨가 뭡니까. 형아 씨가. 어이! 형씨! 이런 것도 아니고.
“그럼 번역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뭐예요?”
의외로 제대로 된 인터뷰 질문이었다.
“제일 중요한 건 부지런함인 것 같아요. 매일매일 꾸준히 하는 거.”
“매일매일 멋있게 잘한다.”
부지런함이라니까 매일매일 멋있게 잘한다고 적어 버리다니.
그렇게 적으면 너무 잘난 척하는 것 같잖아!
“부지런함.”
“아! 멋있게 부지런함.”
멋있게는 꼭 붙여야 하는 거니?
이게 맞아?
“형아는 멋있게, 라고 말 안했는데?”
“괜찮아. 내가 멋있게, 라고 받아들였어.”
그게 괜찮은 거 맞아? 진짜?
나는 황당하다는 듯이 시하를 보았다.
내가 뭘 말하든 멋있게는 들어갈 거지?
“마지막 질문이야!”
시하는 다 적었는지 눈을 반짝였다.
무슨 질문이 나오는지 중요하지 않다.
그냥 시하가 적는 게 중요했다.
나중에 검사를 해야겠다.
“마지막 질문이 뭔가요?”
“다시 태어나도 이 직업을 하고 싶은가요?”
오. 질문이 너무 좋은데?
시하가 천재인가?
아니면 선생님이 질문지를 주셨나?
“저는 다시 태어나도 이 직업을 할 것 같아요. 여러 이야기를 출간하기 전에, 혹은 영화가 상영하기 전에 미리 볼 수 있잖아요. 그리고 버는 것도 꽤 되고요. 통역 역시 굉장히 매력적인 것 같아요.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알 수 있으니까요.”
나는 마이크를 고쳐 잡으며 이어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하가 무슨 일을 하려고 결심하든 여러 사람을 소개시켜 주거나 만나게 해줄 수 있는 게 정말 좋은 것 같아요.”
너무 길었나?
조금 쉬면서 말했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다시 말해줘야 하는지 물어봐야겠다.
시하가 열심히 쓰면서 중얼거렸다.
“다음에도 시하 형아 하고 싶다.”
그런 말은 안 했잖아!
대체 저 말에서 왜 저렇게 적냐고!
물론 시하 형아 안 하고 싶다고 한 건 아닌데.
“다 했다!”
“아니. 음. 그래.”
잘했어. 시하야.
“형아가 좀 확인해 봐도 될까? 잘 적었는지?”
시하가 다시 펄쩍 뛰면서 공책을 뒤로 숨겼다.
“아니야! 잘 적었어! 비밀이야!”
“대체 왜!”
인터뷰한 질문과 답이 그대로 적혀 있을 건데 왜 숨기는 건데!
역시 이상하게 적은 거지?!
“형아. 이제 마이크 줘.”
시하가 내 손에서 마이크를 가져간다.
이대로 두면 선생님이 인터뷰 내용을 확인하게 될 건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할지 벌써 두렵다.
“시하야. 인터뷰 다시 할래? 원래 인터뷰는 녹음을 하는 거거든.”
“아니야. 괜찮아. 다음부터 녹음할게.”
아니야. 지금부터 다시 녹음하자! 선생님에게는 해명을 해야지!
“이제 됐다.”
이제 된 게 아니라 형아가 안 괜찮거든?!
“삼촌에게 인터뷰해야지~”
시하가 도도도 달려가 떠나갔다.
소파에 있는 삼촌에게로.
삼촌이 파리 내쫓듯이 손을 저었다.
“아. 또 뭐!”
“삼촌 직업 인터뷰.”
“백수가 뭔 인터뷰를 한다고.”
“백수 하기 전에 직업 있었잖아.”
“있었지.”
“그럼 그거 해줘.”
“으음. 이거 직업을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도 그럴 것이 CIA 요원이라고 말할 수 없잖아.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시하가 이상하게 쓴 걸 제대로 수정하는 게 중요하다.
나는 시하에게 갔다.
“시하야. 아직 인터뷰 안 끝났어.”
“으잉? 아닌데. 끝났는데.”
“원래 인터뷰는 말을 정확하게 적어야 하는 거야.”
“정확하게 적었어.”
어딜 봐서!
네가 중얼거리는 말 자체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고!
전혀 다르단 말이야.
누가 보면 엄청 잘난 척한 것 같아서 재수 없어 보인다고.
“아! 이거 빼먹었다!”
“응?”
“얼마 버시나요?”
“그건 비밀입니다.”
시하가 중얼거리며 썼다.
“멋있는 얼굴만큼 법니다.”
아니!!! 그렇게 말 안 했잖아!
그리고 뭔가 말이…. 얼굴값 한다는 뜻 같잖아!!
저기 삼촌? 왜 고개를 끄덕이고 있어요!
이거 인터뷰 아니지? 나 놀리려고 쓰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지만 열심히 연필을 놀리는 시하의 얼굴은 진지했다.
아까 자신이 그렇게 받아들인다고 했던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시하를 보며 차마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좀 봐주라…….
나는 그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릴 뿐이다.
이제 나도 모르겠다.
이시혁 항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