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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 나 귀엽지 외전-63화 (488/500)

외전 63화 교내 독서대회 (3)

각종 대회가 학교에서 열렸다.

교내 독서대회.

학년별로 주제가 다르지만 1학년은 주인공에게 편지 쓰기였다.

오늘 열리는 이 대회에 아이들이 너도나도 참가했다.

물론 시하도 당연히 참가했다.

“나는 정직한 기업가라는 책을 골랐어. 이거 엄청 재밌어.”

시하가 승준이에게 책을 추천해 주었다.

“오. 그래? 그 기업가 사커도 좀 할 줄 알아?”

“그건 모르겠는데.”

“내가 봤을 때는 분명 못할 거야. 티비에서 봤는데 높으신 사람이랑 사커하면 꼭 못하는 척한대.”

“그 사람도 기업가야?”

“아니. 그 뭐지. 군대에서 높은 계급이래.”

“그래?”

그때 옆에 있던 하나가 말했다.

“오빠. 기업가는 사커 안 하거든.”

“아닌데. 하는데!”

“바보 오빠. 골프 하는 게 당연하잖아. 사장님 나이스샷! 이렇게 말한대.”

“그거 나도 들어본 거 같네. 아. 나는 기업가 안 해야겠다. 사커 안 하고 골프 하네.”

시하도 승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기업가 안 하고 싶어.”

“시하도 그렇지? 사커 안 하는 거 싫지?”

“아니. 그거 말고. 기업가는 너무 바빠서 형아랑 놀 시간 없을 것 같아.”

“그것도 그렇네. 시혁이 형아랑 놀 시간 없겠다.”

“그런데 승준이 너는 무슨 책 골랐어?”

“우리 집은 내가 꼭 필요해!라는 책이야. 하하하.”

하나가 옆에서 자기도 그 책을 읽었다고 말했다.

“엄마, 아빠가 우리 걱정해서 혼내는 장면이 나와서 좋았어. 싫어서 혼내는 게 아니었어.”

시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다칠까 봐 잘못될까 봐 혼내는 이야기야. 칭찬도 자주 하고 엄청나게 사랑하는 이야기.”

“우와. 재밌겠다.”

“응! 재밌어. 이거 읽으니까 나는 엄마, 아빠 마음 다 알았어.”

승준이도 옆에서 ‘나도, 나도!’라고 말을 했다.

책 하나로 모든 걸 알았다고 주장하는 쌍둥이였다.

“나중에 나도 읽어봐야겠다.”

서로의 책 소개가 끝나자 종수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이시하. 너 독서대회 나간다면서?”

“응. 종수는 안 나가?”

“하하하. 나는 컴퓨터 대회 나가거든.”

“우와! 종수 컴퓨터 잘해?”

“당연하지. 타자도 연습 많이 해서 엄청 빨리 치거든.”

시하가 자신이 키보드 치는 속도를 생각했다.

손가락 두 개로 독수리 타법을 하는 자신의 손을.

“나는 치는 건 조금 느려.”

“그럼 나한테 안 되겠네.”

“괜찮아. 나는 형아가 빨리 치니까.”

“네가 빨리 쳐야지…….”

“괜찮아. 괜찮아.”

아무 문제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종수는 자신의 컴퓨터 타자 속도를 자랑하러 왔다가 이상하게 형아 자랑을 듣게 되었다.

뭐지? 왜 이렇게 되는 거지?

“야. 이시하. 너도 빨리 컴퓨터 배워서 2학년 때 대회 나가자.”

“나는 다음에 독서대회 또 나갈 건데?”

“왜!”

“하나랑 승준이도 다음에 여기 나갈 거니까?”

“나는?”

“종수는 지금도 혼자 나가잖아?”

“어어?”

종수가 입이 삐죽 나오더니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연주랑 이야기하고 있던 재휘의 손을 잡아서 끌고 갔다.

“재휘도 다음에 컴퓨터 대회 나갈 거거든!”

“에엑!”

재휘가 전혀 처음 듣는다는 듯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연주가 끌려가는 재휘를 졸졸 따라갔다.

“재휘야. 컴퓨터 배울 거야?”

“으응? 아니.”

종수가 배신당했다는 표정을 짓자 재휘가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배워보려고.”

종수의 얼굴이 환해졌다.

연주가 그 모습을 보며 쿡쿡 웃었다.

“나도 같이 배우자.”

“어? 으응. 연주랑 같이 배우면 재밌겠네.”

종수가 당황해서 말했다.

“나도 잘 가르쳐줄게. 나도 배웠으니까.”

시하는 그런 종수를 보다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나도 컴퓨터 배워야 하나?”

옆에서 승준이 시하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으악!”

“푸하하! 컴퓨터 배우지 말고 나랑 계속 사커 배우자! 우리 학교 사커 동아리도 있대!”

“사커 동아리?”

“응! 근데 4학년부터 할 수 있다고 하는데.”

“4학년이면 멀었네!”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말하고 있을 때 담임이 들어왔다.

“자. 이제 대회 할 시간이에요. 컴퓨터 대회하는 사람은 컴퓨터실로 가시고 독서대회는 여기 반에서 합니다.”

“네!”

드디어 독서대회의 시간이 왔다.

시하는 자신 있었다.

이미 한번 써보기도 했으니까.

형아랑 함께 썼던 기억을 되살리며 선생님이 주신 종이에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

태권도장에 다녀온 시하가 내 품에 포옥 안겼다.

도복 입고 띠를 맨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모르겠다.

역시 어릴 때 도복을 입어야 귀여운 것일까.

흔들리는 파란띠.

아직 빨간띠는 아니었지만 시하가 파란색도 참 좋아한다.

펭귄의 파란색이니까.

사실 펭귄의 털색이 파란색은 아니긴 한데.

“형아. 나 형아한테 보여줄 것 있어.”

“일단 집에 들어가서 보여주면 안 될까?”

“돼!”

시하가 가방을 벗다가 다시 어깨에 멨다.

뭘 그렇게 보여주고 싶은지 내 손을 잡으려 집 안으로 끌었다.

“다녀왔습니다!”

“다녀왔습니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들어오자 가방을 벗어서 지퍼를 열었다.

“짜잔! 나 상 받았어!”

“우와!”

파일에 끼워져 있는 우수상.

1등인 최우수상을 받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2명만 뽑는 우수상은 대단한 것이다.

내가 심사위원이었다면 무조건 시하를 최우수상을 줘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겠지만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선생님이 그렇게 판단했다는데 뭐.

나는 시하를 번쩍 안아서 두 바퀴 돌았다.

“진짜. 진짜 대단해! 우리 시하 천재다!”

“응! 나 형아 닮아서 천재야!”

“하하하.”

시하가 상을 타오는 게 왜 이렇게 기쁜지.

1학년 첫 상이니까.

그래. 나는 우리 시하가 상을 받아올 줄 알고 있었다.

“담임쌤도 엄청 칭찬했어. 정말 정말 잘했다고.”

“그래?”

“응! 어떻게 미래의 주인공이 과거의 주인공에게 편지 보낼 생각을 했냐면서 그랬어.”

“응. 응.”

그 부분만 봐도 사실 최우수상감이지.

그때 삼촌이 우리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겨우 그거 가지고 이렇게 호들갑이야.”

“삼촌. 솔직하게 시하 칭찬해 주세요. 엄청 잘했잖아요.”

“1학년에 상 받은 건 별거 아니지.”

“이게 어떻게 별거 아니에요. 별거지. 솔직히 나이를 보고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이를 모르고 봤으면 와 이건 대문호다! 이랬을걸요?”

“야이씨. 그건 아니다! 어떤 대문호가 마지막에 이시혁이랑 친해져야 한다고 쓰냐고.”

“여기요. 아! 이럴 때가 아닌데.”

나는 방으로 쏙 들어갔다.

그리고 웃으면서 액자 하나를 들고 왔다.

삼촌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그 액자는 대체 언제 준비했냐?”

“시하랑 미리 예습하고 다음 날에?”

“상 안 받았으면 어떡하려고 그걸 준비해 놨어.”

“삼촌. 시하가 그럴 리가 없잖아요.”

“나는 가끔 시하보다 시혁이 네가 어처구니가 없을 때가 많아.”

“전 항상 삼촌이 어처구니가 없어요.”

내 말에 삼촌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자각 있으신 모양이군. 시하랑 유치한 말다툼을 말이다.

나는 깨끗한 행주를 꺼내서 조심스럽게 닦기 시작했다.

“시하야. 이제 상장 줘봐.”

“응!”

시하의 상장을 줘서 깔끔하게 끼우면 완성.

“형아. 어디에 둘 거야?”

“당연히 시하 방에 둬야지.”

공구를 꺼내서 망치와 못을 집었다.

잘 보이는 곳에 깔끔하게 달 생각이었다.

“시하야. 여기 어때?”

“으음. 잘 모르겠어. 가운데가 좋은 거 같은데.”

“아니지. 나중에 시하가 여기 벽에 상장으로 줄 세울 건데 가운데로 되겠어? 제일 왼쪽이지.”

삼촌이 지켜보고 있었는지 황당해하며 말했다.

“아니. 상 얼마나 받을 줄 알고.”

“초등학교는 6학년까지 있으니까 적어도 6개는 받겠죠.”

“참나.”

“참나 하지 말고 삼촌도 위치나 제대로 봐주세요. 여기면 되겠어요?”

“어. 거기면 딱 될 것 같네.”

그 말에 시하가 부정했다.

“형아. 조금 더 왼쪽.”

“여기?”

“아니. 좀 더 오른쪽.”

“이만큼?”

“아니. 조금 더.”

“이만큼?”

“아니. 너무 갔어. 다시 왼쪽.”

“이만큼?”

삼촌이 말했다.

“오늘 안에 다 할 수 있는 거지?”

위치 선정을 끝내고 깔끔하게 망치질했다.

액자도 반듯하게 걸려서 만족스러웠다.

“다 했다.”

이상하게 이거 하는데 땀이 조금 나네.

삼촌이 물을 가져오며 말했다.

“누가 보면 대공사를 한 줄 알겠어.”

“이 정도면 충분히 대공사죠.”

나는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형아. 잘됐어.”

“그치?”

“응!”

막상 달고 보니 괜히 뿌듯함이 든다.

어떤 인테리어보다 저 상장이 좋은 인테리어가 아닐까 싶다.

“아, 맞다. 형아. 종수도 상 받았어.”

“종수도 독서대회에서 상 받았어?”

“아니. 컴퓨터 타자대회래.”

“그래?”

“응. 종수가 1학년 1등이래. 최우수상 받았어.”

“와. 대단하네.”

“타자도 엄청 빠르대.”

1학년이라 참가하는 아이가 별로 없을 것만 같았는데 그래도 있기 한가 보다.

“형아. 나도 타자 다섯 손가락으로 치고 싶어.”

“응? 아. 한번 해볼래?”

“응!”

“요즘에는 엄청 잘되어 있어서 쉬울 거야. 형아 노트북으로 해보자.”

“응!”

나는 얼른 노트북을 들고 왔다.

그리고 키보드를 따고 들고 와 노트북에 연결하게 했다.

노트북 키보드는 좀 딱딱한 느낌이 있어서 오래되면 손가락이 아플 수 있으니까.

실제로 작업할 때 쓰는 키보드이니 시하도 괜찮을 것이다.

“자. 여기 한컴타자연습 있지?”

“응.”

“손가락 따라서 하는 거야.”

요즘은 이런 게 잘되어 있다.

나도 어릴 때 저런 프로그램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

사실 저건 좀 지루해서 나중에 게임으로 넘어간 게 더 도움이 된 것 같긴 하지만.

“자. 저기 손가락을 따라 하면 돼. 알았지?”

“응.”

시하가 한컴타자연습을 시작했다.

조그마한 손이 키보드를 치는데 내가 칠 때 보던 풍경과 달라서 그런지 귀여워 보였다.

“이케. 이케. 이케.”

화면에서 누르라는 대로 시하가 열심히 따라 눌렀다.

“나중에는 키보드 안 보고 화면만 보고 칠 수 있게 된다?”

“형아. 나는 아직 키보드 봐야 해.”

“하하. 나중에 익숙해질 거야. 오늘은 딱 30분만 연습해 보자.”

“응. 매일 30분 연습하면 금방 늘겠지?”

“응. 금방 늘지.”

“종수보다 빨리 칠 수 있어?”

“그건 시간이 꽤 걸릴걸?”

“그렇구나.”

삼촌이 뒤에서 시하의 머리를 헝클었다.

“이제 막 타자연습 하는 애가 벌써 따라잡으려고 하고 있어. 종수가 열심히 한 걸 한 번에 따라잡으면 종수가 좀 억울하잖아.”

“왜?”

“시하야. 종수가 갑자기 미술 배웠는데 너보다 더 잘 그리면 안 억울하겠어?”

“왜 억울해? 잘 그리면 좋지. 둘 다 잘 그리면 재밌잖아.”

“아직 어리구만.”

나는 피식 웃었다.

어쩌면 나중에 질투라는 감정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시하보다 잘하는 사람도 나올 것이고.

지금은 이렇게 상을 받았지만 나중에는 못 받을 수도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시하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남들과의 비교는 시하가 최고가 아닌 이유가 될 수 없기에.

나에게 하나뿐인 동생.

그 자체만으로 이미 최고다.

시하가 무엇을 잘하든. 무엇을 못 하든.

“시하는 타자 속도로 종수 이기고 싶어?”

“아니.”

“그럼 타자는 얼마나 치고 싶은 거야?”

“당연히 형아만큼!”

뭐 그럴 줄 알았다.

나만큼 타자를 치고 싶다니.

여전히 시하에게는 내가 목표점인가 보다.

“그럼 30분씩 연습하면 충분히 형아 따라잡을 수 있어.”

“얼마나 연습해야 하는데?”

“한 6개월?”

반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솔직히 정확하게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다.

“6개월! 엄청 길어!”

“그래?”

“응! 역시 형아 대단해!”

“하하하.”

아이에게 6개월은 긴 시간인가 보다.

어른인 나에게는 반년은 정말 짧은 시간인데.

이 격차가 좁혀질 때쯤에는 더는 나를 따라잡을 목표점이 없어지겠지.

“형아도 열심히 해야겠다.”

“으잉? 형이 못 따라잡게 하려고 이거 연습할 거야?”

“하하하. 그렇게 해볼까?”

“안 돼! 그러면 못 따라잡잖아.”

조금은 더 오래 목표점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냥 이건 나의 작은 욕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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