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아, 나 귀엽지 외전-61화 (486/500)

외전 61화 교내 독서대회 (1)

9월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위한 대회가 많았다.

컴퓨터 활용 경진 대회라던가 교내 독서대회라던가.

수상하면 생활기록부에 표기된다고 한다.

참여할 사람은 미리 말해 달라고 가정통신문에 적혀 있었다.

“시하야. 여기 대회 한다고 하는데 나가고 싶은 거 있어?”

시하가 내 손에서 가정통신문을 바라보더니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으음. 형아는 어떤 게 좋아?”

왜 형에게 물어보냐.

형이 이거 좋다고 하면 할 거니?

시하니까 분명 한다고 하겠지.

“시하가 하고 싶은 거 해.”

“이거 잘하면 뭐 줘?”

“생활기록부에 수상했다고 적어준대.”

“좋은 거야?”

“글쎄?”

초등학교에서 수상했다고 엄청 좋은 게 있냐고 물어보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교육에 좋냐고 물어보면 좋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상 받으면 기분은 좋으니까.

“상 받으면 기분 좋긴 하지.”

“기분 좋은 거밖에 없어?”

“응.”

사실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를 그렇게 중시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어른이 된 지금 그 한 줄이 필요하냐면 글쎄.

“나는 그럼 이거 참가해 보고 싶어.”

“어떤 거? 그림 그리는 게 있었나?”

“아니. 그거 말고. 교내 독서대회!”

“아. 그거구나.”

교내 독서대회는 다들 많이 참가하는지 따로 자세히 나와 있었다.

1, 2, 3학년 주제가 다 다른데 일단 1학년은 ‘주인공에게 편지쓰기’가 적혀 있었다.

최우수 1명, 우수 2명, 장려 4명.

총 6명이 수상한다는 소리였다.

보통 여기에 많이 참가하는 만큼 뽑는 인원수도 많긴 했다.

“재밌겠네.”

“응! 이거 책도 마음대로 골라도 된대.”

“마음대로가 아니라 1학년 필독서라고 적혀있는데.”

“필독서 중에 마음대로.”

뭐 그런 의미로라면 마음대로이긴 하지.

시하는 이런 대회에 한번 참가해 보고 싶나 보다.

나 역시도 주인공에게 편지 쓰는 거면 꽤 재밌을 것 같았다.

전해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상상하는 것만으로 즐겁지 않은가.

어릴 때만 하는 특별한 느낌도 들고.

커서 책 읽고 주인공에게 편지 쓰기?

누가 하겠나. 나조차도 안 할 것 같은데.

“형아도 같이 쓸 거지?”

“응. 형아도 같이 쓸게.”

내 말에 시하가 좋다면서 폴짝폴짝 뛰었다.

이렇게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다.

시하와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 같으니까.

초등학교 들어가고 태권도도 가면서 함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만 간다.

나중에 학년이 올라가고 중고등학생이 된다면 더더욱 그 시간은 줄어들겠지.

부모님을 찾기보다는 친구들을 더 많이 찾게 될 것이고.

여느 때의 아이들처럼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라도 함께 무언가 하는 시간을 소중히 하고 싶다.

편지라는 형태의 글이 남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이런 대회에 참가하는 것도, 수상을 함께 기뻐하는 것도.

‘근데 나, 시하의 수상을 너무 확신하는데?’

그렇지만 상을 받지 못하는 시하를 상상할 수 없다.

우리 시하는 천재니까.

상 받는 것도 당연하지. 암!

시하가 내 손을 잡았다.

“형아. 우리 빨리 도서관 가자. 도서관 시간 다 될 것 같아.”

“도서관 닫으면 책 사면 되지.”

“!!!”

시하는 그런 방법은 생각도 못 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하야. 형아는 너 책 사줄 돈은 충분하단다.

“그래도 책 여러 개 직접 보고 고르고 싶어.”

“그건 그렇지.”

아직 참가 신청도 넣지 않았는데 벌써 책부터 고르는 거냐.

생각해 보니 이거 교내에서 편지 쓰는 거 아니야? 나랑 같이할 수 없을 텐데?

“시하야. 이거 학교에서 하는 대회니까 형아랑 같이 편지 못 쓸 텐데?”

“집에서 해보고 학교 갈 때 똑같은 거 또 적으면 되지.”

천잰데?

이시하. 천재인가?!

연습은 생각도 못 했다.

“그럼 책 고르러 갈까?”

“응! 아! 형아. 삼촌도 데려가자.”

“그럴까?”

티비를 보면서 우리 말을 듣고 있던 삼촌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 안 가. 너희들끼리 갔다 와.”

“삼촌. 그러지 말고 같이 가시죠?”

“안 간다니까 그러네.”

시하가 도도도 달려서 삼촌의 리모컨을 뺏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삼촌이 멍하니 시하를 보았다.

“삼촌. 안 가면 이거 안 줄 거야.”

“이건 협박이야!”

“티비 그만 보고 삼촌도 이제 책도 좀 읽어야 해.”

“삼촌은 어릴 때 많이 읽어서 이제 책은 안 읽어도 돼.”

“삼촌. 그러면 어릴 때 티비 많이 안 봤어? 그래서 지금 많이 보는 거야?”

굉장히 논리적인 말이었다.

“삼촌 어릴 때 티비 많이 못 봤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많이 보는 거야.”

“거짓말!”

“진짜야! 삼촌이 어! 어릴 때부터 신문 배달하고 짜장면 배달도 하고 어?! 야쿠르트 아저씨도 하고!”

“삼촌. 미국에 짜장면이랑 야쿠르트 아저씨가 어딨어!”

“미국에 있어! 원래 미국 음식이야.”

“그러면 지금 중국집에 짜장면 시키는 게 아니라 미국집에 짜장면 시키자고 사람들이 말하겠지!”

“아. 사실 삼촌 피자 배달했어. 어릴 때부터.”

삼촌이 뻔뻔하게 피자집으로 말을 바꾼다.

솔직히 짜장면에 야쿠르트 아저씨는 너무 무리수 아니었나?

삼촌. 정신 차리세요. 말만 들어보면 삼촌 한국 사람인 줄 알겠어요.

외국인만 아니었다면 정말 그럴듯한 핑계였을 것이다.

시하가 리모컨의 건전지 부분을 보였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하나를 뺄 듯 말 듯 건드리고 있었다.

“삼촌. 같이 안 가면 이 리모컨의 목숨은 없어.”

리모컨의 목숨은 건전지.

누가 보면 악당의 대사인 줄 알겠다.

사실 책 읽으러 갈 필요가 없는 거 아닐까?

여기 책에 나오는 듯한 악당의 대사를 하고 있는데.

삼촌이 피식 웃음을 보였다.

“시하야. 너는 잘 모르는데 리모컨은 여벌의 목숨이 있거든? 목숨이 무한이라는 말이지.”

“무한이 뭐야?”

“아. 말이 통해야지! 책 좀 더 읽어라.”

이제 두 자릿수 덧셈하는 애한테 무한이라는 말을 꺼낸 삼촌의 잘못이었다.

나는 목숨 무한에 관해서 설명해 줬다.

죽여도 죽여도 안 죽는다는 말이라고.

건전지가 많아서 새로 꼽으면 된다고.

“삼촌. 건전지 집에 다 떨어졌어.”

“사 오면 되지.”

“그럼 나가는 김에 도서관 갔다 오자.”

“?!?!”

이시하 천잰데?

나가는 김에 스킬을 쓰다니.

시하가 티비를 끄더니 리모컨을 주머니에 쏙 넣었다.

“그때까지 이 리모컨은 내가 데리고 있겠어!”

“후우. 시하 너. 많이 비겁해졌네.”

“다 삼촌한테 배운 거야.”

“왜 나쁜 건 다 나한테 배웠다고 하는데!”

삼촌이 억울하다고 소리쳤다.

시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이잖아?”

“아니야. 시하야. 시혁이도 나쁜 거 가르쳐 줄 거야. 시혁아. 빨리 나쁜 거 가르쳐줘.”

시하가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형아. 나쁜 거 가르쳐 줄 거야?”

“으음.”

나는 조금 고민했다.

어쩔 수 없지.

세상의 쓴맛을 잠깐 알려주는 수밖에.

사람이 너무 꽃밭에 살아서도 주위에 적응하지 못하는 법이었다.

이제 시하는 초등학교 1학년. 8살.

세상의 부조리함을 알 때가 되었다.

“형아가 나쁜 짓 하나 가르쳐줄게.”

“뭔데?”

저기 삼촌? 삼촌은 왜 기대하는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그 눈 저리 치우시죠.

나는 삼촌의 눈길을 애써 무시한 채 검지를 들었다.

“보통 인질은 살아남지 못해.”

“정말?”

“응. 그러면 리모컨을 어떻게 해야겠어?”

시하가 주머니에서 리모컨을 꺼냈다.

그리고 건전지를 뺐다.

“리모컨 이제 안녕.”

투둑.

건전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런. 내가 시하에게 나쁜 것을 가르쳐줬구만.

“형아. 이제 삼촌 몰래 도서관 쓰레기통에 버리면 돼?”

응용까지 한다고?

삼촌이 그 소리를 듣고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왜 저를 보세요?

“시혁이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삼촌이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you‘re crazy! you 돌아이! 이 murdrer! 살인자!”

한글과 영어가 섞인다.

리모컨 가지고 이게 그럴 일인가.

그리고 리모컨은 아직 쓰레기통에 가지 않았어요. 난 쓰레기통에 버리라는 말도 안 했다고!

“형아. 삼촌이 칭찬한다.”

“???”

시하야. 저게 어떻게 칭찬이야?

삼촌도 황당하다는 듯이 시하를 보았다.

“삼촌이 말했잖아. 너 정말 최고야.”

크레이지가 그런 감탄사로 쓰기도 하지.

“너 엄청 재밌어!”

돌아이가 왜 재밌어로 해석이 되지?

심지어 한국어인데?

“돌아이가 재밌어라는 뜻이야?”

“예능에서 칭찬이잖아.”

그건 그렇지…….

“그리고 마지막에 죽을 만큼 좋아!”

살인자에 그런 뜻이?

“엄청 좋다는 뜻이잖아.”

삼촌의 반응을 그렇게 해석한다고?

삼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아무래도 시하는 책 좀 더 읽어야겠어.”

시하가 손을 들었다.

“아싸. 다 같이 간다!”

일단 삼촌이 나가는 거로 리모컨은 어쨌든 살아있게 되었다.

시하는 결국 해냈다!

인질극 성공?

***

늘 찾는 도서관에 왔다.

시하는 컴퓨터에 앉아서 1학년 권장 도서의 책 제목을 검색하고 있다.

독수리 타법.

글자를 찾아서 치는데 종일 걸릴 것 같다.

보는 나는 괜히 귀여워서 웃음이 나오기는 한데 삼촌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시하에게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답답해. 그냥 삼촌이 칠게.”

“아니야. 내가 할 수 있어.”

“그거 치다가 도서관 문 닫겠다.”

“있어 봐. 다 찾았어.”

“너 아직 세 글자 쳤거든?”

“삼촌이 자꾸 말 거니까 내가 집중이 안 되잖아. 삼촌은 보고 싶은 거 골라.”

“어휴.”

삼촌이 답답해하면서 정말 책을 구경하러 가버렸다.

나는 그저 시하 옆에서 다른 컴퓨터로 책을 검색했다.

이럴 때는 묵묵히 시하의 권장도서 몇 개를 쳐서 들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시하가 고르려는 걸 피해서 말이다.

“형아. 대단해. 엄청 빨리 친다.”

“음. 다른 사람들도 이 정도는 칠걸?”

“정말?”

“어. 현대인이라면 대부분 이 정도는 하지.”

“나는 손가락 다 써서 안 되는데?”

“그건 연습을 안 해서 그런 걸 거야. 시하라면 금방 해.”

시하가 자기 손을 보더니 토독토독 키보드를 치기 시작했다.

역시 독수리 타법으로.

뭔가 시하를 위해서 키보드 연습을 시키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저 독수리 타법이 너무 귀여워서 딱 1년만 더 보고 싶기도 했다.

두 마음이 싸움을 벌인다.

제대로 가르칠 것인가.

아니면 좀만 더 보게 할 것이냐.

크흑. 어려운 선택지였다.

일단 시하가 독수리 타법을 하는 걸 동영상으로 남길까?

나는 폰을 들어 시하를 찍었다.

“음. 어딨지? 여깄다!”

토독토독.

키보드를 친다.

드디어 제목을 다 쳤는지 마우스를 움직여 검색을 클릭한다.

엔터를 안 누르는 게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오게 한다.

어릴 때 보이는 어수룩한 면이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나중에 크면 다 잘하겠지만.

그건 그거대로 왠지 서운할 것 같기도 하다.

친아버지의 피씨방에서 게임할 때는 특정 키만 누르면 되어서 저런 모습은 못 보았다.

“숫자 나왔어. 으잉? 형아. 뭐 해?”

“시하 찍고 있어.”

“아. 나 오늘 안 꾸몄는데. 머리에 왁스도 안 발랐고.”

“안 바른 게 귀여워.”

“나 안 귀엽고 멋있는데?”

“형아 닮아서?”

“응.”

“시하 지금 멋있어.”

“나중에 영상 확인할 거야. 이거 올리면 안 돼.”

“영상은 시하 허락 맡고 올려야지.”

“응. 수현이 누나가 저상권 있다고 했어.”

“초상권이나 저작권이겠지. 왜 합쳤어?”

저상권은 뭔가 저세상권 같은 발음이라서 좀 그랬다.

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거 말한 거야. 이제 숫자 적어야겠다.”

“시하야. 저거 클릭하면 요즘에 인쇄돼서 여기로 나와.”

“정말?”

“응.”

“우와. 세상 좋아졌다.”

“푸흡.”

아니. 저거 삼촌이 자주 말하던 말인데.

너 세상 좋아졌다 말할 나이 아니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