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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 나 귀엽지 외전-60화 (485/500)

외전 60화 개학

드디어 개학 날이 왔다.

방학 때는 그래도 여유롭게 잠을 잤는데 학교 가는 시간을 맞춰야 하니 일찍 일어나게 된다.

왠지 피곤한 몸이지만 그래도 아침을 준비해야 하니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다행이라면 내가 회사원이 아니라는 사실일까.

심적으로 급한 느낌이 덜했다.

시하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일어날 때 슬며시 일어나서 자기 방에서 열심히 방학 숙제한 것을 챙기고 있었다.

“이거랑. 또 이거.”

“시하야. 챙길 거 별로 없지 않아?”

대부분 사진으로 남겼기 때문에 그것만 보여주면 될 것 같았다.

선생님이 보기 편하도록 잘 정리해서 파일 하나에 다 끼워 넣었다.

시하가 그린 그림도 프린트하려고 했는데 시하가 극구 반대했다.

프린트하면 색감의 맛이 안 난다나?

그래서 패드도 가방에 넣었다.

분명 가벼운 패드인데 은근 무거운 느낌이다.

시하가 문제집을 넣으며 말했다.

“아니야. 챙길 거 많아.”

“가방 안에 별로 안 들어있는걸?”

“이제 채워야지.”

“굳이?”

“고민 중이야.”

“지금만으로 충분할 것 같은데?”

너무나 충분해 보였다.

원래 개학은 가방 가볍게 가는 게 보통 아니던가.

이제 2학기 새 책도 받을 거고 어차피 그 책은 책상 안이나 사물함에 넣어둘 거니까.

“그런가?”

“응. 엄청 그래.”

“그럼 형아 말대로 여기까지 챙겨야지.”

내 말이 진리니?

시하가 책가방의 지퍼를 닫았다.

나는 그런 시하를 보다가 부엌으로 다시 갔다.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가 보였다.

국자로 한 번 저어준 뒤에 뚜껑을 닫았다.

시하가 달려와 내 다리에 매달렸다.

“형아. 오늘 밥 뭐야?”

“오늘은 된장찌개랑 달걀말이.”

“아싸. 된장찌개다. 나 형아가 만들어준 된장찌개 좋아. 두부 많이 넣었어?”

“엄청 넣었지.”

“달걀말이는 두꺼워?”

“엄청 두껍지.”

“백동 형아 팔뚝만큼?”

“…아니.”

백동환 팔뚝만큼 두께면 대체 얼마나 많은 달걀이 희생되어야 할까?

한 끼로 먹을 수 있는 양도 아닐 것 같았다.

시하가 팔을 벌려 큰 원을 그렸다.

“다음에 엄청 큰 거 해줘.”

“그건 형아가 생각해 보고 해줄게.”

삼촌이 시하에게 자꾸 이상한 영상을 보여준 여파 같았다.

세상에서 제일 큰 김밥, 세상에서 제일 큰 피자.

뭐 이런 영상을 보여주니 시하도 저걸 먹고 싶어 하지 않는가.

이 아담한 부엌에서 만들 수 없을뿐더러 그 정도 크기면 주변 이웃하고 나눠 먹어야 다 먹는다.

“얼마나 생각해 보고?”

“글쎄?”

아마 엄청나게 오래오래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시하가 이 부탁을 잊을 만큼.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이제 밥 다 됐으니까 삼촌 깨우자.”

“응!”

시하는 뭐가 그렇게 신났는지 삼촌이 자고 있는 방으로 쳐들어갔다.

벌컥.

문이 열리며 침대가 보였다.

이불에 들어가 아치형을 그리고 있는 삼촌이 보였다.

왜 얼굴까지 덮었는지 모르겠다.

커튼도 쳐서 있어서 빛도 별로 안 들어올 텐데 말이다.

“삼촌!! 일어나!”

시하가 침대 위로 올라가 삼촌이 있는 몸에 엎어졌다.

“좀만 더.”

“자려면 밥 먹고 자. 어서 일어나!”

시하가 삼촌 엉덩이를 팡팡 때렸다.

저거 내가 하던 대사인데.

엉덩이 때리는 건 누구한테 배운 거지?

삼촌이 이불을 뒤척였다.

“아. 좀만 더 잘래.”

“밥 먹고 자야지~ 형아가 맛있는 거 만들어놨는데. 뜨거울 때 먹어야 더 맛있어.”

삼촌이 이불 속에서 관심을 보였다.

“뭐 있는데?”

“된장찌개랑 달걀말이.”

“그거 평소에도 먹는 거잖아.”

“삼촌. 평소에 이렇게 밥해주는 것만 해도 고마워해야 한다고 했어! 그리고 된장찌개랑 달걀말이는 언제나 먹어도 맛있거든?”

크흑. 우리 시하 다 컸네.

근데 삼촌은 무슨 사춘기 아들처럼 이불 속에 있습니까.

어서 일어나지 못합니까?!

나도 시하랑 같이 엉덩이를 찰싹찰싹 쳤다.

“아! 엉덩이에 불나겠네! 그만 때려 이것들아!”

삼촌이 마지못해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까치집이 있는 삼촌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개학 첫날부터 이게 무슨 꼴인가 싶다.

시하가 침대 위에 내려와 말했다.

“삼촌.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래. 고오~맙다!”

우리 시하. 아침에도 인사성 바르구나.

잘 배웠다.

***

강인 초등학교 1학년 1반.

오랜만에 개학해서 아이들이 모인 반은 시끌시끌했다.

시하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승준이 손을 흔들었다.

“시하야! 안녕! 옆에 앉아!”

“승준아 안녕. 알겠어!”

시하는 승준의 옆자리에 책가방을 놓고 앉았다.

방학 때는 언제나 태권도장에서 만났지만 학교에서 만나는 건 무척 오랜만이었다.

“승준아. 방학 숙제는 다 했어?”

“다 했지! 아주 문제없어. 하하하.”

그때 연주랑 이야기하고 있던 하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승준의 뒷자리에 앉아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빠는 방학 다 끝나가서 급하게 했잖아. 나는 이미 다 끝내고 놀았는데.”

“뭐든 끝냈으면 됐지. 너처럼 일찍 하면 더 안 좋거든.”

“아니거든. 일찍 끝내고 노는 게 좋거든?”

“하나가 열심히 숙제하면 나는 그거 베끼면 돼. 하하하.”

“안 보여줄 건데.”

“넌 보여주게 되어 있어! 하하하.”

“이제 진짜 안 보여줄 거야! 맛있는 거 줘도 안 보여줘.”

시하가 물었다.

“승준아. 하나 숙제 베꼈어?”

“조금만 베꼈어. 나머지는 혼자 했고.”

“그렇구나.”

“시하 너는 숙제 다 했어?”

“응! 나는 다 했지. 형아랑 삼촌이 나랑 같이 숙제해 줬어. 엄청 재밌었는데.”

“오! 그거 방학 숙제 전부 해 보기로 했잖아. 진짜 다 한 거야?”

“아니. 다는 못 했어. 논다고 몇 개 빼먹었어.”

“논다고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대단하네. 몇 개 빼먹은 거면 많이 한 거잖아?”

“응. 볼래?”

시하가 자랑스럽게 패드를 꺼냈다.

그렸던 그림들을 승준이에게 보여 주었다.

하나랑 연주도 고개를 쏙 내밀며 뭘 그렸는지 구경했다.

“우와. 진짜 잘 그렸다.”

“시하야. 이거 워터파크 갔을 때 있었던 거네.”

“하나야. 너희끼리 워터파크 갔어?”

연주의 질문에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주가 흐응~ 하는 콧소리를 내더니 입술을 살며시 삐죽 내밀었다.

하나가 그런 연주의 모습에 살며시 목을 끌어안았다.

“연주도 나중에 나랑 같이 가자.”

“좋아. 다음에 나도 불러줘야 해.”

“응! 우리 같이 수영도 하고 컵라면도 먹자.”

“좋아.”

그렇게 떠들썩하게 말하고 있는데 종수 패밀리들이 다가왔다.

“야. 이시하. 너 방학 때 공부 많이 했냐?”

종수가 손에 있던 문제집을 팔랑팔랑 흔들며 시하의 자리에 내려놓았다.

“나 방학 때 문제집 엄청 풀었거든. 너 이제 공부로 나 못 이겨.”

“우와. 종수 대단하다.”

“하하하. 내가 벌써 2학기 공부도 다 끝냈어. 진도 엄청 빠르지?”

“2학기 공부 벌써 끝냈어? 그럼 종수 이제 2학년 되는 거야?”

“어? 아니. 그건 아닌데?”

“다 끝냈으면 학교 안 와도 되는 거 아니야?”

“아니. 학교는 와야지.”

“그럼 빨리 끝내서 좋은 게 뭐야?”

“어?”

시하의 말에 종수의 뇌가 정지했다.

빨리 끝내서 좋은 게 뭐지? 뭐였더라? 아까 내가 뭐라고 그랬더라? 아!

“공부 엄청 잘하게 되지.”

“와. 진짜 좋겠다. 공부 잘하게 돼서.”

시하의 영혼 없는 대답에 종수가 발끈했다.

“야! 하나도 안 부러워하는 거 다 보이거든!”

“나는 형아 있어. 이거 부럽지!”

“안 부럽거든!”

“안 부러운 척하는 거 다 보이네.”

“진짜 아니거든!”

“알았어. 아니라고 해줄게.”

“해주는 게 아니고 진짜 아니라고!”

종수는 조금 억울했다.

물론 시하에게 시혁이 있다는 걸 조금 부러워한 적은 있었다.

그래도 저렇게 좋다고 선언할 정도로 부러운 건 아니었다.

시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 알아. 다 알아.”

“아니. 너 몰라! 모르고 있다고!”

그렇게 투덕이고 있을 때 선생님이 들어왔다.

“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모두 자리에 앉아요.”

선생님이 들어와서 종수는 오해를 풀지 못한 채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다들 착석하고 반짝이는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다들 방학 잘 보냈나요?”

“네!”

“잘 놀았나요?”

“네!”

“방학 숙제는 다 해 왔죠?”

“네에!”

“얼마나 잘했는지 확인을 해 볼게요.”

“네에!”

“다들 꺼내 볼까요?”

아이들이 방학 숙제한 것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냥 평범하게 놀아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크게 부담은 없었다.

의외로 어머니들이 공부에 열성이기에 문제집도 아이들 책상에 꽤 많이 보였다.

인증 사진 남기는 것도 방학 숙제에 넣어뒀기에 사진을 꺼내는 애들도 많았다.

조금 특이한 게 있다면 시하가 패드를 꺼냈다는 것.

선생님은 저기에 그림이 그려져 있을 거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럼 방학 때 뭘 하면서 보냈는지 이야기해 볼까요?”

“네!”

“그럼 저기 1분단부터 해 봅시다.”

아이들이 일어나서 어떤 숙제를 했고 기억 남는 게 뭔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가끔 질문도 던져보고 아이들이 재밌는 이야기가 나오면 웃기도 하는 등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승준이 차례가 왔다.

“나는 방학 때 학교 왔어.”

방학 때도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요즘 시대에 맞벌이 부부가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승준은 매일 등교하는 건 아니었다.

어떨 때는 엄마의 연차에 맞춰 쉬기도 했으니까.

“다른 반에 있는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었는데 나중에 같이 사커하기로 약속해서 사커도 했지.”

보통 공부보다는 다양한 활동을 했다.

승준이 시하를 보았다.

“하지만 역시 나의 베스트 프랜드는 시하야. 하하하!”

굳이 왜 베스트 프랜드를 말하는지 선생님은 알 수 없었다.

시하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승준 역시 함께 엄지를 치켜들었다.

발표 도중에 우정을 나누고 있었다.

“방학 숙제는 하나가 도와줘서 살았어! 하하하.”

그 말을 끝으로 승준이 자리에 앉았다.

다음은 시하 차례.

“나는 엄청 많이 놀았어. 형아랑 물놀이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문제집도 풀고 그림도 그리고 떡볶이도 먹고 거기서 그림도 그려주고. 또…….”

선생님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림 그리기가 왜 이렇게 많니? 그건 그렇고 전부 형이랑 함께한 건가?

시하의 손가락이 하나씩 접혔다.

“삼촌이 게을러지지 않게 내가 매일 감시해서 방학 때 조금 부지런해진 것 같아. 이제 재방송 조금만 봐. 본방송은 보지만.”

재방송 조금만 보면 덜 게으른 것인가.

지금까지 대체 얼마나 봤단 말이야?!

그때 한 친구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시하야. 시하 삼촌은 뭐 하시는 분이야?”

“백수야!”

“헐? 그럼 일 안 나가?”

“응. 그래서 내가 먹여 살려야 해.”

“헐!”

선생님은 시하의 말에 풉 하고 웃음이 나왔다.

아니. 먹여 살리긴 누굴 먹여 살린다는 말인가.

시하가 식은땀을 닦는 시늉을 했다.

“내가 그래서 요즘 고민이 많잖아.”

아니. 그게 무슨 고민이야?

“나중에 형아도 일 그만두면 내가 먹여 살려야지. 삼촌은 알바하게 하고.”

아니. 삼촌은 왜 일하는데?!

선생님과 같은 마음인지 한 친구가 다시 물었다.

“삼촌은 왜 알바해?”

“지금까지 놀았으면 그만큼 일해야 한댔어.”

“누가?”

“몰라.”

선생님은 몹시 궁금했다.

대체 저런 이야기는 어디서 주워듣는 거야?

종수가 열심히 시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놀았으면 당연히 그만큼 열심히 일해야지. 응. 응.”

범인이 종수 너였니?

애가 성실한 줄 알았지만 이렇게 성실할 줄은 몰랐다.

“아무튼, 오늘도 삼촌 깨우느라 혼났어. 정말.”

“시하는 언제 일어나는데?”

“나? 나는 새벽 6시!”

엄청 일찍 일어나는구나…….

선생님은 저 말에 괜히 삼촌에게 몰입이 되었다.

새벽 6시는 일어나기 힘들지…….

다른 친구들도 놀랐는지 이렇게 말했다.

“우와. 진짜 일찍 일어난다.”

“대신에 일찍 자.”

일찍 자면 조삼모사인가?

밤에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건 굉장히 메리트가 크긴 했다.

아침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럼 시하 형은 언제 자서 일어나는데?”

“몰라. 형아는 나보다 늦게 자고 나랑 같이 일어나는데?”

“우와. 대단하다.”

“우리 형아 원래 대단해!”

시하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편, 그런 자랑스러운 형아 이시혁은 침대 위에서 낮잠으로 뻗어 있었다.

이시혁. 체력 보충 중.

물론 시하는 전혀 모르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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