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59화 방학 (13)
오므라이스와 스파게티가 금방 완성됐다.
시하가 식탁 위에 수저를 놓고 나는 오므라이스를 그릇에 담고 놓았다.
스파게티는 그냥 요리한 냄비를 가져와 놓았다.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나서 침이 꿀꺽 삼켜졌다.
오늘 이렇게 제대로 된 요리를 먹은 적 있던가.
다음에는 만 원의 행복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삼촌이 피자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오. 드디어 완성됐어?”
“네. 그래도 삼촌이 먹은 지 얼마 안 돼서 금방 만들어졌네요.”
“그래도 이 피자에는 안 되지.”
“제가 봤을 때는 충분히 비벼볼 만한데요?”
“너 6천 원이라고 무시하냐!”
“아무도 무시한 적 없어요. 삼촌이 괜히 찔려서 그런 거지.”
삼촌이 자연스럽게 타깃을 바꿨다.
입에 피자의 치즈가 쭈욱 늘어나는 걸 보여주면서 시하에게 자랑했다.
“시하야. 이거 봐라. 맛있겠지?”
“삼촌. 먹으면서 말하는 거 아니야.”
나는 시하의 말에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대답이 저렇게 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나.
삼촌은 시하의 말에 다 씹고 말했다.
“이제 입에 없다! 자! 피자 맛있겠지?!”
“응. 근데 이게 더 맛있어.”
시하가 오므라이스를 한 숟갈 떠서 후우후우 불어 입에 넣었다.
“먹어보지도 않고 그게 더 맛있는 거 어떻게 알아.”
“그럼 우리 한 입씩 바꿔 먹어볼까?”
“하하하. 너 그걸 노렸나 본데 나는 바꿔먹지 않을 거야.”
“그럼 그래. 나도 안 바꿔도 돼.”
“하지만 시하 네가 특.별.히. 부탁하면 안 해줄 이유도 없지.”
“괜찮아.”
시하가 스파게티를 덜자 치즈가 쭈욱 딸려왔다.
삼촌에게 스파게티를 흔들어 보여주었다.
“나도 치즈 있어!”
“그 치즈랑 이 피자에 있는 치즈랑 느낌이 완전 다르지.”
“어차피 배에 들어가면 다 똑같다고 했어.”
“혀에 들어가면 다르잖아! 그리고 삼촌은 이 콜라도 있는걸?”
삼촌이 콜라를 꿀꺽꿀꺽 마셨다.
시하가 스파게티를 오물거리다가 그 모습을 보며 상당히 끌리는 눈을 했다.
“좋아. 삼촌. 콜라랑 바꿔먹자.”
피자보다는 콜라가 끌린 게 틀림없어 보였다.
스파게티랑 콜라를 먹어도 꽤 잘 어울리긴 하지.
삼촌이 걸려들었다는 듯이 씨익 웃었다.
“자, 그럼 시하는 콜라 한 모금. 나는 오므라이스 한 숟갈이다?”
시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나는 콜라 세 모금이고 삼촌은 오므라이스 한 숟갈.”
“너 뭔데 세 모금인데?!”
“나 이시하야.”
“이시하가 뭐길래 세 모금이야? 설마 3 좋아한다고 세 모금은 아닐 테고.”
“맞아.”
“맞는 거냐?!”
삼촌이 어이없다는 듯이 시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다.
“잠깐!”
“시혁이 넌 왜?”
“이 오므라이스와 스파게티 지분의 반은 제 건데 시하에게만 협상하면 뭐 합니까.”
“그래서 너도 콜라 세 모금 마셔야 한다고?”
“아니요. 저는 제안을 받아주면 이 교환을 허락해 줄게요.”
“뭔데?”
“한 모금이든 세 모금이든 그러지 말고 뽑기로 하죠.”
“뽑기?”
“잠시만요.”
나는 폰을 꺼내서 사다리 타기 앱을 켰다.
뭔가 재밌을 것 같아서 다운받은 적이 있는데 오늘 쓸지는 몰랐다.
“자. 시하가 먹을 컵을 정하는 사다리 타기. 그리고 삼촌이 한 숟갈 먹을 수 있는 수저 사다리 타기. 이걸로 정하죠.”
“흐음. 난 좋다.”
“형아. 나도 좋아.”
둘 다 동의했으니 이제 시작하면 될 것 같았다.
“시하 컵은 소주잔, 에스프레소 샷잔, 종이컵, 머그컵, 대형 맥주잔이 있어.”
삼촌이 말했다.
“머그컵부터는 괜찮네.”
“나름 공정하게 했어요.”
“40퍼 확률로 좋은 거라. 근데 종이컵도 나쁘지 않지.”
“그건 그렇죠.”
나는 사다리를 시하에게 보여주었다.
시하가 신중하게 5개의 선택지를 바라보았다.
시하는 금손인 편이니 좋은 걸 뽑겠지?
내심 그런 마음도 있었다.
“이거다! 세 번째!”
삼촌이 말했다.
“어차피 3 고를 건데 뭘 그렇게 고민했어!”
그건 그렇지.
세 번째 선택지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간다.
좌로 갔다가 우로 갔다가 가면서 하나의 컵이 선택됐다.
삼촌이 살며시 입을 벌렸다.
“이거 맞아?”
시하가 당첨된 건 대형 맥주잔이었다.
“아싸!”
시하가 방방 뛰면서 주먹으로 허공에 어퍼컷을 날렸다.
재빨리 부엌으로 가서 대형 맥주잔을 들고 왔다.
콜라의 뚜껑을 따서 잔에 콸콸 부었다.
대충 400mL는 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 정도만 따라줄게.”
“가득 채웠구만 뭘 봐주는 식으로 말하는 거야?”
“형아랑 나눠 먹어도 되겠다! 맞지? 형아.”
크흑.
나랑 나눠 마시려고 이렇게 많이 따르다니.
시하는 천사다.
“고마워. 시하야. 그럼 소주잔 걸렸으면 나눠 마시지도 못했겠다.”
“그럼 나는 맛만 보고 형아 다 줬지!”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시하는 그걸 나에게 잘 실천하고 있었다.
역시 이시하.
삼촌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래. 나도 엄청 큰 거 걸려서 저기 오므라이스랑 스파게티 다 들고 갈 거다.”
“안 돼. 한 번만 퍼야 해.”
“치사하네.”
“삼촌이 더 치사해.”
“뭐 그건 그렇고. 시혁아. 나는 숟가락이 어떻게 되냐?”
삼촌이 숟가락을 묻자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일단 이쑤시개.”
“이쑤시개는 심하잖아!!! 시하의 최악은 그래도 소주잔이었는데 이쑤시개는 진짜 아니잖아!”
“에이. 안 걸리면 되죠.”
“형평성 좀 지켜줘!”
“어휴. 애처럼. 어쩔 수 없네요. 그럼 티스푼.”
“그래. 이쑤시개보다는 그나마 티스푼이 낫다.”
“그다음은 아이스크림 스푼.”
“너무한다. 그거 티스푼보다 조금 크잖아.”
“안 걸리면 되죠.”
내 말에 삼촌은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안 좋은 거 두 개 나왔네.”
“그다음 숟가락!”
“그다음은 국자겠지?”
“아니요. 그다음은 상추!”
“상추는 숟가락 아니잖아!”
삼촌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반응이었다.
“상추에 딱 싸서 한입에 다 넣어야 해요.”
“저기 숟가락 아니라는 말 안 들려?”
“상추 나쁘지 않아요. 숟가락보다 많이 올릴 수 있고.”
“누가 오므라이스에 상추 싸먹냐고! 벌칙이잖아!”
“그럼 양배추?”
“뭐가 달라진 건데?!”
“아무튼 마지막은 국자입니다!”
정리하자면 이랬다.
티스푼, 아이스크림 스푼, 숟가락, 상추, 국자.
총 5개.
삼촌은 이걸 뽑아야 했다.
“그래. 국자 뽑아서 아예 고봉밥처럼 싹싹 긁어줄게.”
삼촌이 열의를 불태웠다.
과연 뽑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흠.”
삼촌이 다섯 개의 선택지 중에서 아주 신중하게 고르려고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진지한 모습.
그게 사다리 타기라는 게 문제이기는 하지만.
근데 그렇게 뚫어지라 바라보면 뭐가 보이나?
이건 순전히 운의 영역인데 말이다.
“좋아. 나도 3으로 간다.”
삼촌의 말에 시하가 곧장 반응했다.
“3은 언제나 옳아!”
“그래. 너 한번 믿어보겠어!”
삼촌도 세 번째를 선택했다.
사다리가 점점 내려갔다. 좌로 우로 가면서 하나의 숟가락이 당첨됐다.
[티스푼]
삼촌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으아악! 왜 하필 저건데!!!”
시하가 말했다.
“역시 3은 옳았어!”
“옳긴 뭐가 옳아! 최악이잖아!”
“삼촌은 최악은 나한테 최고야!”
시하가 콜라를 맛있게 꿀꺽 먹었다.
삼촌이 그런 시하를 보다가 부엌으로 갔다.
그리고 티스푼을 꺼내 들었다.
“그래. 티스푼으로도 많이 먹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마.”
삼촌이 티스푼을 가지고 오므라이스를 푹 찔렀다.
아무리 봐도 저건 무리일 것 같다.
“흐읍.”
살살 들면서 퍼 올린다.
투두둑.
오므라이스가 그 위를 흘러내린다.
티스푼 위에 그래도 한입 크기 정도로 보이는 밥이 뭉쳐서 올라가 있다.
“오오오.”
삼촌이 기쁜 얼굴을 했다.
정말 조심히 들어 올리고 있는데 시하가 그걸 보고 곧장 행동에 나섰다.
“후우.”
바람 앞에 손쉽게 흔들리는 밥.
순식간에 기울어지더니 그대로 밥이 떨어졌다.
“안 돼!”
삼촌이 절규 어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티스푼 위에는 밥이 존재하기로 했던 흔적으로 세 톨 정도 남아 있었다.
“이건 무효야! 바람 부는 게 어딨어!”
“그러니까 삼촌 빨리 먹었어야지.”
“너 치사하게 그럴래? 삼촌이 이 티스푼 걸린 것도 불쌍하지 않아?”
“삼촌이 선택한 건데 왜 불쌍해?”
“맞는 말이라서 열 받네?”
삼촌이 허탈한 마음으로 티스푼을 입에 넣었다.
“아무 맛도 안 느껴지네.”
“삼촌. 입맛 없어?”
“네가 없게 만들었거든?”
시하가 절레절레 고개를 젓더니 자기 숟가락으로 크게 한 숟갈 펐다.
그리고 삼촌에게 내밀었다.
“내가 특별히 한 입 줄게.”
“병 주고 약 주냐?”
“병 주고 약 안 주는 것보다는 낫잖아.”
“너랑 뭔 말을 하겠니.”
삼촌이 입을 열어서 시하가 주는 한 숟갈을 먹었다.
“음! 맛있네!”
어찌 되었든 서로 먹긴 했다.
“이제 그만하고 빨리 먹고 치우자.”
“응!”
저녁 식사가 본의 아니게 길어졌다.
뭐 재밌었긴 했지만 말이다.
***
게임의 끝이 다가왔다.
아침, 점심, 저녁을 먹었으니 이제 남은 금액을 확인할 차례였다.
물론 꼴찌는 정해져 있었다. 바로 나.
우승할 생각은 없었으니 0원으로 꼴찌인 게 당연했다.
1등도 정해져 있다. 이시하.
이미 돈을 불린 시점에서 이건 끝난 게임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거실에 모여서 식탁 앞에 앉았다.
“자. 그럼 남은 금액 공개합니다. 저는 0원이죠. 제가 꼴찌예요.”
“이길 생각이 아예 없었구만.”
삼촌이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시하가 말했다.
“형아. 멋있어.”
“넌 그냥 형아가 꼴찌여도 멋있냐!”
“형아는 전교 꼴찌여도 멋있어!”
시하야. 형아 공부 잘했어…….
대학교에서도 과탑이었다고…….
뭐 그건 넘어가고.
“그럼 시하 금액이랑 삼촌 금액은 동시에 공개하겠습니다. 다들 돈 봉투를 올려주세요.”
두 사람이 돈을 넣어둔 흰색 봉투를 꺼냈다.
삼촌이 아주 자신만만 표정이다.
모든 걸 계산 끝냈다는 것이지.
하지만 그 얼굴이 찌푸려질 일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럼 공개하겠습니다.”
흰 봉투에서 돈이 나왔다.
삼촌 2500원.
이시하 1만 6천 원.
삼촌이 시하의 돈을 보자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떴다.
“뭔데? 왜 1만 6천 원이 있는데? 사기 아니야!”
“아니야! 이거 내가 돈 불린 거야.”
“돈을 불렸다고?”
“응. 이 돈으로 종이랑 색연필 사서 그림 그려서 팔았어.”
“!!!”
삼촌이 뒤통수 한 대 맞은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 돼! 사기다!”
“아니야.”
“그림 그려서 파는 건 반칙이잖아!”
“아니야. 나도 돈 써서 판 건데 사기 아니지.”
나는 시하의 말을 거들어주었다.
“맞아요. 사기 아니죠.”
“이 형제 사기단!”
삼촌이 우리에게 손가락질했다.
아니. 형제 사기단이라니.
정당하게 만 원을 가지고 불린 건데 너무하네.
“삼촌. 인제 그만 인정해요. 삼촌이 졌어요.”
“이럴 수 없어…. 내 쓸데없는 선물 컬렉션이…….”
“이기면 진짜 쓸데없는 거 사려고 했어요?!”
“컬렉션 모음이라고 파는데 그거 잘 안 나온다고.”
“쓸데없는 거잖아요!”
“사주면서 불평불만 없는 룰이었잖아.”
“삼촌이 졌으니 그런 쓸데없는 거 사지 마세요. 알았죠?”
“쳇.”
시하가 삼촌에게 다가가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삼촌. 이제 내가 원하는 거 사주는 거야?”
“그래. 내가 졌으니까 말해봐. 아니지. 시혁이 너도 졌잖아.”
“형아는 당연히 사주지.”
뭐 시하가 이런 게임을 하지 않아도 원하는 거 있으면 다 사주고 싶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뭔데?”
“우리 학교 사서 방학 좀 길게 늘여줘.”
“그거 학교 사도 방학 못 늘려준다.”
“왜?”
“쉴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으니까 그렇지.”
“누가 정하는데?”
“교육부?”
“그럼 교육부 사줘.”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원하는 거 사주기로 했으면서.”
“삼촌이 아무리 그래도 교육부 사줄 수 있을 정도로 돈이 많지 않아.”
“삼촌 그럼 빨리 일해.”
“아니야. 교육부 사줄게.”
“아싸!”
그렇게까지 일하기 싫으신 건가?
삼촌이 손으로 시하의 머리를 거칠게 헝클였다.
“농담이고. 진짜 뭐 사줄까? 갖고 싶은 거 없어?”
“지금 생각나는 거 없으니까 나중에 써먹을래.”
“…기한 3개월이다. 그 안에 말해라.”
“삼촌 치사해.”
“아까 네가 후 불 때 더 치사했거든?”
둘이 또 투닥투닥, 했다.
방학 마지막 날은 여전히 평소와 다름없는 채로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