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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 나 귀엽지 외전-58화 (483/500)

외전 58화 방학 (12)

아줌마가 시하의 말에 놀라서 대답했다.

“어머. 정말? 티비 보니까 그림 엄청 잘 그리던데? 그림 그려줘도 괜찮은 거야?”

아줌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하가 김밥을 입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펜이랑 종이 있어요?”

“그럼. 있지. 가끔 연예인이 오면 싸인을 받기도 하거든. 물론 잘 오지는 않지만.”

그러고 보니 가게 벽에 몇몇 싸인이 붙여져 있는 게 눈에 띈다.

예전부터 느꼈는데 저런 싸인이 맛집 인증서라도 되는 것일까?

뭐 잘 먹는 모 연예인이 다녀가면 잘 찾아온다고 하긴 하던데.

떡볶이 프렌차이즈점들이 늘어나면서 이런 분식집은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여기.”

아줌마가 종이랑 펜을 2개 들고 왔다.

왜 2개지?

“하하하. 저기 통역사님도 싸인 좀 해주세요.”

“저요?”

“네.”

설마 내 싸인을 요구할 줄은 몰랐다.

아니. 뭐. 그렇게 유명한 사람도 아닌데 이런 싸인이 쓸모 있을지 모르겠다.

“저는 별로 안 유명한데요.”

“에이. 티비 나왔으면 유명인이지. 어디가 안 유명해요.”

일개미가 한참 화제였을 때는 꽤 유명했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지금은 좀.

프로그램 한 번 나갔다고 해서 유명해진 거로 생각하면 크나큰 착각이었다.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은 게 현실이니까.

실제로 방송이 나가고 나서 생활하는 게 크게 불편한 것도 없었다.

솔직히 아줌마가 알아보셨다는 게 나는 신기했다.

김유한 MC님 팬이시니 이렇게 알아보는 일도 있는 거지 뭐.

“하하. 그럼 시하 그림에 제 싸인도 함께 남길게요.”

“와. 그러시면 되겠다.”

시하가 펜으로 쓱싹쓱싹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거침없이 뻗어 나가는 선이 굉장히 시원했다.

어느새 학생들도 가까이 오더니.

“저어. 저희도 구경해도 돼요?”

“아. 네. 하세요.”

구경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얼마든지 봐도 된다.

학생들도 시하가 그리는 그림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우와. 진짜 빠르게 그린다.”

“그러게. 금방 완성될 것 같아.”

시하가 그리고 있는 것은 가게를 밖에서 본 풍경이었다.

분식집 간판이 있고 그 안에 떡볶이와 비닐에 싸인 순대가 있다.

안에는 아줌마의 옆모습도 단순히 그렸는데 입가에 주름과 특징적인 부분이 들어갔다.

전체적으로 큼지막하게 그린 다음에 손에 들고 있는 펜으로 명암을 주는 작업을 세밀하게 진행했다.

검은색으로 그림자가 지는 부분.

혹은 선과 선이 만나서 짙게 윤곽이 그려지는 부분.

빠르게 그린 것치고는 굉장히 퀄리티가 좋아 보였다.

색을 넣었으면 더 예뻤을 수도 있겠지만 검은색으로만 그려진 그림도 꽤 느낌이 있었다.

좋은 그림은 스케치부터 다르다는 말이 있다.

그런 의미해서 시하의 선화는 정말 잘 그리는 축에 속한 거겠지.

“이거는 이렇게.”

시하가 아줌마의 앞치마를 그렸다.

그리고 손에는 접시가 있는데 그 위에는 산처럼 쌓인 만두가 있었다.

아줌마의 키보다 훨씬 넘는 만두.

과장되게 그려지면서 천장에 닿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앞치마 주머니에 삐죽 튀어나온 네모난 종이에는 [00]이라고 적혀 있었다.

뻥 뚫린 가게 안 식탁 의자에 앉아서 뒷모습을 보이는 남자가 고개를 돌려 돈을 전해주고 있었다.

[1,000원]

산처럼 쌓인 만두에 비해서 너무나 적은 금액이 눈에 띈다.

“아…….”

나는 시하가 의도한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건네는 돈에 비해 많이 주시는 아줌마의 마음을 나타낸 것이리라.

그리고 앉아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자세히 보면 옷깃이 그려져 있고 의자는 책가방이 걸려 있었다.

가방은 지퍼가 열려 있었으며 책하나가 과장되게 튀어나와 있었다.

거기에 적힌 것은 [국사].

누가 봐도 학생의 가방이었다.

‘학생 가방 열려 있네. 앞에 국사책이 있는 게 아니라 맨 뒤에 국사책이 있는 거지만.’

사진 같은 그림 속에 시하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저 그냥 가게의 풍경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따뜻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야. 이거 너 아니야?”

“오. 이거 열려 있는 내 가방인데?”

학생 셋이 낄낄 웃으며 시하의 그림을 보았다.

“근데 진짜 잘 그린다.”

“만두 엄청 많다. 일부러 저렇게 그린 건가?”

“천 원이 아니라 만 원을 내야 할 것 같은데?”

한 학생이 말했다.

“가성비 나타내는 거 아니야? 그냥 적당히 그리면 모르잖아.”

“오. 그거네.”

“이게 천 원이라고? 하는 느낌이 있네. 오! 그러네?”

아줌마의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그려 넣은 시하가 펜을 놓았다.

“다 그렸다.”

짝짝짝.

모두가 손뼉을 쳤다.

아줌마와 곁에서 본 학생들마저도.

“우와. 이런 그림을 그려주다니. 정말 고마워.”

“대박. 진짜 금방 그렸어.”

“엄청 빨리 완성되긴 했어.”

“와. 나도 저 나이에 저 정도 그렸으면 바로 공부 때려치우는 건데.”

아무리 그래도 공부 때려치우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원래 그림으로 먹고살기는 힘든 법이니까.

시하가 펜을 들고 내게 내밀었다.

“형아. 제목 적어줘.”

“어?”

설마 여기까지 와서 제목을 적을 줄이야.

나는 살며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마음을 담고 추억을 먹다.”

내가 생각했을 때는 학창시절의 그 분식집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요즘 프렌차이즈점의 다양한 떡볶이를 시켜 먹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런 추억 정도는 지금 학생들도 한 번씩 가지고 가지 않을까 싶었다.

저기 저 학생들처럼 말이다.

나는 시하에게 물어보았다.

“어때?”

“좋아! 엄청 좋아!”

혹시 그냥 내가 말한 거라 다 좋다는 거 아니야?

뭔가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데?

방구 먹다는 어때? 하고 말하려고 했는데 옆에 있는 아줌마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제목 좋네요.”

“하하하.”

여기서 방구 먹다, 라고 하면 욕먹겠지?

구경하던 학생들이 말했다.

“뭔가 오글거리긴 하는데 나쁘지 않기도 하네.”

“딱 어울리는데? 난 저런 거 좋음.”

“저거 들으니까 뭐 생각 안 나네.”

웃긴 학생들이었다.

뭐 감성적인 글귀긴 하니까.

나는 펜을 들어서 제목을 적었다.

그리고 싸인은 영어로 SIHA라고 적었다.

내 싸인이 들어가는 건 좀 그러네.

“제 싸인은 패스할게요.”

“네. 네.”

아줌마가 저렇게 말하니 뭔가 괜히 시무룩해진다.

그냥 해버려?

아줌마가 눈을 반짝이며 그림을 받았다.

“이런 그림을 서비스로 받기 좀 그러네.”

시하가 말했다.

“괜찮아요. 저는 만두 받았잖아요.”

시하가 만두를 입에 넣었다.

오물오물 잘도 맛있게 먹었다.

아줌마가 웃으며 말했다.

“그거 가지고 되겠어?”

“넹. 이거 다 먹으면 배불러요.”

“그럼 다음에 또 오면 아줌마가 서비스로 또 줄게.”

“고맙습니다.”

언제 여기 다시 올지 모르겠지만 뭐 시하가 좋은 인연을 만들었구나 싶었다.

지켜보던 학생이 말했다.

“나도 하나 그려주면 안 돼?”

시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 돼요!”

단호박 이시하 등장.

학생이 물었다.

“응? 왜 안 돼?”

“이제부터 백만 원이니까요.”

갑자기 가격이 엄청나게 뛰었다.

시하 몸값 순식간에 급상승.

학생이 말했다.

“아, 백만 원이면 어쩔 수 없지. 그럼 저 그림 사진 찍어도 돼?”

“그건 돼요.”

사진은 허락했다.

근데 시하야. 그림은 아줌마에게 준 거니까 사진 허락은 아줌마가 해야 하지 않니?

아줌마도 왜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시는데요?

아줌마를 보니 심각하게 무언가 고민하고 있었다.

“아. 이거 어디다 잘 두지?”

구겨지지 않을 곳에 두려고 탐색하는 중이셨다.

시하의 그림을 좋아해 주셔서 감사하기는 하다.

***

시하랑 집으로 돌아왔다.

삼촌이 소파 위에서 쓰러져 있었는데 그어어 하는 소리를 냈다.

“삼촌 뭐 해요?”

“배…….”

“배?”

“배가 고파아…….”

소파 위에서 끙끙거리며 죽는 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점심도 걸렀나 보다.

그냥 좀 먹지 뭔데 저렇게 버티는지 모르겠다.

“너희는 어디 갔다 왔어?”

“저희는…….”

시하가 내 바지를 잡아당겼다.

입가에 검지를 가져다 대었다.

“형아. 쉿. 쉿. 비밀이야.”

나는 괜찮다는 듯이 시하의 머리를 매만졌다.

삼촌을 보며 말했다.

“시하랑 시장 가서 싸게 먹고 왔죠.”

“뭐? 뭐 먹었는데?”

“떡볶이랑 순대, 김밥, 만두?”

“그렇게 많이 먹었다고?!”

“뭐 점심이니까 싸게 먹었어요.”

“내가 봤을 때 아무리 싸게 먹었어도 돈 많이 썼어. 하하하. 내 그럴 줄 알았지.”

삼촌이 주먹을 꽉 쥐고 손을 위로 들었다. 아주 기뻐했다.

아마 자신이 1등으로 달리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미안하지만 1등은 시하였다.

현재 소지금이 2만 2천 원 있으니까.

“좋아. 나도 맛있는 저녁을 한번 먹어볼까!”

삼촌이 눈을 크게 뜨며 배달 어플을 켰다.

“배달은 비싸니까 포장으로. 어디…….”

저녁을 푸짐하게 먹을 생각인가 보다.

“6천 원 피자를 먹겠다. 포장이다.”

“오오오.”

삼촌이 전화를 걸더니 불고기 피자를 주문했다.

“이거 하나면 나중에 야식까지 아낄 수 있다.”

이제 삼촌의 소지금은 4천 원.

6천 원 남았으니까 나 역시도 괜찮은 저녁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형아. 우리 저녁 뭐 먹어?”

“으음. 뭐 먹지?”

“나는 스파게티랑 오므라이스 먹을래!”

“괜찮겠네.”

삼촌이 불쑥 나왔다.

“시켜먹게?”

“아니요. 그냥 해 먹어야죠. 스파게티랑 오므라이스면 남은 돈으로 충분하죠.”

“하하하. 그렇게 막 써도 돼? 이거 내가 이겼구만.”

삼촌이 신난다는 듯이 소파에 누운 채 팔을 흐느적 흔들었다.

삼촌이 그 모습을 보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하하하. 시하 너도 웃기지? 근데 어쩌냐 삼촌한테 져서.”

삼촌은 시하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왜 웃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자신의 춤을 보고 웃는 줄 착각하고 있다.

시하는 삼촌이 설레발 치고 있다는 사실에 웃는 건데.

승자에 한 걸음 훌쩍 다가간 이시하.

저게 바로 여유라는 것일까.

“일단 재료 뭐 있나 볼까?”

스파게티는 하기 쉬웠다.

면과 스파게티 소스만 있으면 뚝딱이지.

거기에 모짜렐라 치즈까지 있으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고기 남아있는 것도 있고.”

삼촌이 놀라서 바라보았다.

“고기도 넣게? 너무 사치 부리는 거 아니야?”

“시하랑 합쳐서 낼 거니 문제없어요.”

“치사하다! 연합이라니! 안 되겠다. 내가 가격 정확히 매겨줄게.”

“정작 치사한 게 누군데요.”

“이런 건 제삼자가 해야 정확해.”

이게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가 싶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재료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스파게티면, 소스, 모짜렐라 치즈, 다진 돼지고기, 대파, 올리브유, 달걀, 케첩, 햄, 당근, 양파 등등.

“예산 초과 하는 거 아니야?”

“저 6천 원이나 있어요.”

“6천 원밖에 없잖아.”

“괜찮아요. 집밥이잖아요. 아마 계산하면 6천 원 다 쓸 거 같은데 이 정도면 시하랑 합쳐서 1만 2천 원. 이거면 충분히 값 나오죠.”

“으음. 뭐 좋아. 돈 다 쓴다니까 나만 좋지. 하하!”

삼촌이 폰을 들고 시간을 보았다.

“아, 나는 이제 피자 가지러 가야겠다. 딱 가면 나올 것 같아.”

“네. 다녀오세요.”

삼촌이 콧노래를 부르며 집을 나갔다.

이제 좀 조용해졌다.

0원을 이기는 건 손쉬울 거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쯧쯧쯧. 그건 아주 푸른 꿈이었다.

시하가 내게 다가왔다.

“형아. 삼촌 바보다. 바보.”

“아니. 보통 저렇게 생각하는 게 맞지.”

누가 알겠어.

그림 팔아서 돈을 불렸을 줄은.

심지어 배상현 씨를 말리지 않았으면 시하의 소지금은 500만 원이 넘을 뻔했다.

뭐 카드가 별로 없는 배상현 씨가 현금이 그렇게 많이 뽑을 수는 없었겠지만.

“그럼 우리도 대충 밑준비 해둘까?”

“응! 나도 도울래.”

“그래 줄래?”

“응!”

“그럼 시하는 햄을 잘게 썰어줘.”

“응!”

나는 아이용 식칼을 시하에게 건넸다.

햄은 잘 잘리니까 손을 다칠 일은 없겠지.

그래도 안전은 언제나 중요하다.

“자. 손을 둥글게 말고 이렇게 써는 거야.”

“응!”

네모네모네모.

네모나게 잘 썰었다.

나는 그런 시하를 보면서 식재료들은 씻어서 손질했다.

탁탁탁탁.

도마 위에서 칼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였다. 잘 잘리는 식재료들.

시하가 그 모습을 보며 신기해했다.

“형아. 나도 그렇게 빨리 자르고 싶은데.”

“시하도 자르는 거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빨라질 거야.”

“그럼 4학년 되면 빨라지겠다.”

“왜 4학년인데?”

“4학년부터 고학년이래! 나는 1학년이니까 저학년!”

대체 고학년이 뭐길래 고학년이 되면 식칼로 빨리 자르게 된다는 걸까?

내가 모르는 고학년의 비밀이라도 있는 거니?

대체 어디서 저런 기준을 만드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10살 되면 혼자 학교 갈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게임도 아니고 나이의 단계마다 뭔가 스킬을 습득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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