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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 나 귀엽지 외전-52화 (477/500)

외전 52화 방학 (6)

워터파크 일정이 끝났다.

시하는 돌아온 뒤부터 열심히 여름방학 숙제를 했다.

워터파크에 있었던 일을 그리고 있었는데 숙제가 저렇게 퀄리티가 좋아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형아. 완성됐어!”

시하가 보여주는 그림에 감탄이 나왔다.

숙제는 여름방학을 주제로 한 그림 그리기.

시원한 물속에서 잠겨서 아이들이 미끄럼틀을 탄다.

물 밖이 아니라 잠수하는 것처럼 물속의 미끄럼틀이었다.

아이들이 물안경과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책상으로 보이는 튜브를 잡고 미끄럼틀을 타고 있다는 것이다.

굉장히 상상력이 좋아 보이는 그림인데 이게 대체 뭔가 싶은 느낌도 있었다.

“시하야. 이거 무슨 그림이야?”

“이거 봐봐.”

시하가 손으로 책상을 가리켰다.

“친구들이 방학에도 학교 가잖아. 그래서 워터파크 데려다줬어.”

“아하.”

워터파크 가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 그림으로 데려다준 거구나.

이제야 그림의 의도가 보이는 것 같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못 가니 이렇게라도 데려다주는 거겠지.

미끄럼틀도 워터파크에서 보던 것과 똑같이 생겼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그럼 왜 물속에 잠기게 했어?”

“시원하잖아. 그리고 실제로 못 가니까?”

“응?”

“꿈꿀 때 물속에 있는 느낌이 드니까.”

“아하.”

한마디로 이렇게 물속에 풍덩 잠수하면서 미끄럼틀 타는 것이 꿈속이라는 것인가?

실제로 워터파크에 데려가는 건 아니고 꿈속에서 데려가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좀 아련한 느낌도 든다.

시하가 이런 연출을 하는 것도 정말 신기하다.

어떻게 보면 따뜻하고 어떻게 보면 안타까운 느낌의 그림이라고 할까.

“여기 꿈속에서 다 만날 수 있어.”

“그러네.”

워터파크에서 놀 친구 꿈속에서 모여라.

아마 그런 느낌으로 그린 건가 싶었다.

근데 이거 방학 숙제치고 너무 과한 느낌의 그림인데? 이래도 되는 건가? 이렇게 힘써서 그려도 돼?

물론 방학 숙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시하야. 엄청 잘했네.”

나는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짜 잘한 건 맞으니까.

아이들의 상상력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뛰어나다.

그리고 시하의 따뜻한 마음은 여전히 그림 속에 담겨 있었다.

그림에 따뜻한 의도를 담는 것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시하는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었다.

그때 삼촌이 불쑥 등장했다.

“어디 보자. 오. 잘 그렸네. 그런데 아쉬운 게 있어. 왜 컵라면은 없는 거야. 수영장 가면 당연히 컵라면을 넣어야지.”

“삼촌. 책상 안에 컵라면 있어.”

“아니. 그림에 보이지도 않는데 무슨 컵라면이야. 그리고 책상 안에 다 안 들어가거든?”

“아닌데. 다 들어가는데.”

“아닌데. 안 들어가는데?”

또. 또. 별거 아닌 것 가지고 두 사람에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삼촌은 시하를 놀리기 위해서 컵라면을 꺼냈나 본데 시하가 그걸 못 참고 말려들어 버렸다.

삼촌이 패드를 한동안 흔들다가 시하에게 돌려주었다.

“실제로 꿈은 아니더라도 친구들이랑 워터파크에 만날 수 있어.”

“어떻게?”

“바로 VR 게임기를 통해서!”

“VR 게임기?”

“그래. 여기서 맵이 있는데 캐릭터 가지고 만날 수 있지.”

“근데 진짜 물 아니잖아.”

“그래도 물 뿌릴 수 있어. 느낌은 안 나지만.”

그 말에 시하가 호기심이 동했다.

“삼촌. 그런데 VR 게임은 어떻게 하는 거야?”

“VR 기기가 있으면 되지.”

시하가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삼촌이 말했다.

“왜?”

“삼촌. 그러면 VR 기기 없으면 못 만나잖아.”

“크흠.”

맞는 말이다.

친구들도 있어야 만날 수 있는 거지.

삼촌이 반박했다.

“그래도 집에서 만날 수 있는 게 어디냐. 여행도 가고.”

“진짜가 아니잖아.”

“네 그림도 진짜가 아닌데 뭘.”

“!!!”

그것 또한 맞는 말이지.

오늘의 말싸움은 굉장히 심오하군.

누가 이겼다고 하기에는 애매하다.

둘 다 지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로 내가 VR기기를 샀다!”

이번에는 내 머리에 물음표가 떴다.

뭐가 어째? 뭘 사?

“자자. 시혁이 꺼랑 시하 꺼도 샀는데. 시하가 별로 필요 없어 보이니까 이건 다시 반품해야겠네.”

“삼촌. 왜 반품해. 시하 꺼 줘.”

“아니야. 너 친구들이 VR기기도 없을 텐데 이게 있어봤자 뭐 하려고.”

“아니야. 다들 나중에 생길 거야. 빨리 줘.”

“하하하. 안 되지~”

삼촌이 팔을 흐느적 흔들면서 시하를 놀렸다.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삼촌. 그거 얼마인데요?”

“아, 이거? 한 30만 원대였는데.”

“한 개당요?”

“어. 그렇지?”

“미쳤어요?”

3개를 주문했으니까 VR 기기 사는 데만 백만 원을 태운 거나 다름없었다.

“반품해요. 반품.”

그 말에 시하가 내 옆으로 왔다.

“맞아. 삼촌. 반품해. 반품.”

삼촌이 시하를 배신당한 얼굴로 보았다.

“야. 너는 아까까지만 해도 달라며!”

“형아가 반품하라잖아.”

“와씨. 태세 전환 너무 빠른 거 아니야?”

“형아 말 잘 들어야지. 그래야 밥도 먹지.”

시하야. 그런 말을 또 어디서 배워 왔어?

아무튼.

“크흠. 삼촌. 너무 돈 낭비예요. 그리고 여기 둘 데가 또 어딨다고 3개나 사요. 다 짐이에요. 짐.”

“아니야. 시혁아. 들어봐. 이거 게임하려고 산 게 아니라 즐겁게 운동하려고 산 거야. 격투기 게임 한 번 하면 땀이 쫙 빠진대.”

“아무튼 3개는 필요 없잖아요.”

“시하야. 너도 하고 싶지? 그렇지?”

시하가 손을 허리에 얹고 말했다.

“내 것만 빼놓고 다 반품하면 되잖아.”

“아니. 내가 하려고 샀는데 너는 왜.”

“삼촌. 가끔 내 꺼 빌려줄게.”

“어이가 없네?”

그야 이거 산 건 삼촌 돈이니까.

아무리 삼촌 돈이더라도 이건 낭비다. 낭비.

이런 건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

“아무튼 반품해요.”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한번 해보고 그때 가서 생각해 보자.”

“???”

“그러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잖아. 한 번은 해 보고 결정하자고.”

“음. 알겠어요.”

한 번 하나 두 번 하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 같지만.

그도 그렇게 굳이 3개가 필요하냐는 말이지.

삼촌이 VR 게임기를 하나 들고 왔다.

뭔가 조작을 좀 하더니 내 머리에 씌워줬다.

“자. 자. 이거 검 쓰는 게임인데. 그래. 리듬 게임 같은 거야. 사물을 자르면 돼.”

“이걸 한다고요?”

“어. 어. 한번 해 봐.”

나는 일단 게임을 해 보았다.

노래가 나오면서 박스가 나에게 다가왔다.

손의 감각은 게임기를 쥐고 있었는데 고글에 비치는 화면에는 검이 두 자루 쥐고 있게 되었다.

열심히 휘둘러서 박스를 다 베어 넘겼다.

생각보다 재밌어서 좀 놀랐다.

그런데 이거 한 번 하고 나니까 몸에서 열이 좀 나는 것 같았다.

“이거. 몸 좀 움직였다고 지치는 느낌이 나네요.”

“그치? 이거 운동이 된다니까.”

“음.”

운동이 된다기보다는 그냥 지치는데.

나는 시하를 보았다.

“시하도 해 볼래?”

“해 볼래!”

시하가 두 손에 컨트롤러를 잡았다.

열심히 팔을 허우적거렸다.

게임 화면이 보였을 때는 캐릭터의 검이 쉭쉭 잘려서 멋있었는데 플레이를 하는 사람을 보니 나도 저랬을 것 같아서 괜히 좀 부끄러운 것 같기도 했다.

“어때? 굉장하지?”

“삼촌. 이거 재밌어!”

“그렇다니까. 어때 시혁아?”

“하나만 남기고 반품.”

“아니. 이거 3개 있으면 우리 만나서 놀 수 있다니까!”

“굳이 맨날 만나는데 VR에서 만나야겠어요?”

내 말에 삼촌이 할 말이 없어졌는지 침묵을 선택했다.

나도 어쩔 수 없다.

저거 있어봤자 얼마 쓰지도 않을 것 아닌가.

특히 내 꺼.

옆에서 시하가 삼촌의 엉덩이를 토닥여 주었다.

“시하야. 삼촌 위로해 주는 거니?”

“아니. 빨리 반품하라고.”

위로가 아니라 재촉이었나 보다.

삼촌이 뭐 이런 애가 다 있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모습에 그냥 웃음이 터졌다.

***

방학 숙제 중 교육 방송을 보고 인증샷을 찍는 것이 있었다.

시하의 말로 방학 숙제를 다 한다고 하는데 과연 이걸 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오늘은 교육 방송 보는 게 숙제였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가로막는 악당이 집에 한 명 있다는 것이지만.

바로 소파 귀신인 삼촌.

소파와 하나가 되는 게 뭔지를 보여주는 사람.

삼촌인지 소파인지 알 수 없다.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드라마를 집중적으로 보고 있었다.

시하가 삼촌에게 다가가 얼굴 앞에 섰다.

이것 역시 평소와 다름없는 풍경이다.

“야. 안 보이잖아.”

“삼촌. 나 볼 거 있어.”

“나중에 봐. 나중에. 지금 중요한 장면이라고.”

“이거 봤던 거잖아. 내가 볼 거 볼 거야.”

“아. 이것만 보고.”

뭔가 삼촌의 변명은 아들이 이것만 보고 공부하러 들어간다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시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삼촌. 삼촌은 맨날 보잖아. 이거 끝나면 또 딴 거 볼 거잖아.”

“아니야. 진짜 이것만.”

“봤던 거면서.”

“으이구. 네가 뭘 알겠니. 봤던 거라도 또 보면 달라. 책도 다시 읽으면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

“삼촌 이거 열 번째야.”

“야. 그 정도는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과장이 너무 들어갔어.”

“아무튼 리모컨 줘.”

시하가 소파 위로 올라가며 삼촌의 손에 있는 리모컨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걸 쉽게 뺏길 삼촌이 아니었다.

누워있는 채로 팔을 들었다.

“이얍!”

“이익. 삼촌!”

“이건 안 돼!”

“빨리 줘.”

시하가 손을 뻗었지만 삼촌이 다리로 시하의 몸을 묶으며 움직임을 봉쇄했다.

정말 치열한 리모컨 쟁탈전이었다.

삼촌이 물었다.

“그래서 너 뭐 볼 건데.”

“나 교육 방송. 방학 숙제할 거야.”

“으이구. 교육 방송 재미도 없는 거 왜 봐. 방학 숙제 다른 걸로 해.”

“이거 보면서 인증샷 찍어야 해.”

“그럼 교육 방송 잠깐 틀 테니까 인증샷만 찍고 다른 데 튼다?”

“안 돼. 선생님이 물어볼지 모르잖아.”

“대충 말하면 되지.”

“안 돼. 빨리 리모컨 줘.”

시하가 삼촌의 품에서 낑낑거렸다.

하지만 8살의 힘으로 삼촌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뭐 삼촌의 몸도 운동한 몸이라 여기서 더 컸다고 해도 이길 수 없긴 하겠지만.

“잠깐만!”

삼촌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교육 방송이면 폰으로 보면 되잖아.”

“삼촌. 그럼 사진은?”

“사진은 당연히 다른 폰으로 찍으면 되지.”

“안 돼. 이렇게 큰 티비에 인증사진 찍을 거야. 삼촌이 폰으로 보면 되잖아.”

“나도 이 드라마 큰 티비로 봐야 재밌어.”

뭐 결국 결론은 서로 티비를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건 그냥 리모컨 싸움이 아니다.

리모컨을 쥔 자 집안의 최고 권력자로 승패가 갈린다.

그 정도의 싸움이었다.

뭐 그건 농담이고 내가 봤을 때는 시하랑 싸우는 삼촌이 좀 한심해 보였다.

저게 시하랑 놀아주는 거라는 걸 아는데도 말이다.

진짜 놀아주는 거 맞겠지? 그냥 그렇다고 하자.

삼촌이 시하에게 제안했다.

“그럼 이렇게 정하자.”

“어떻게?”

“가위바위보. 이기는 사람이 티비로 보기. 어때?”

“좋아.”

시하가 삼촌의 품에 벗어나 소파 앞에서 섰다.

그리고 고개를 휙 돌리더니 나를 향해 손짓했다.

“형아. 빨리 와!”

“나는 왜?”

“형아도 티비 보기 정해야지.”

“???”

그때 삼촌이 시하의 손목을 잡았다.

“시하, 너 전에 도둑잡기 했을 때부터 알아봤었는데 처음부터 장난질이냐!”

시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모르는 척하지 말고. 너 시혁이 끌어들여서 승률을 높일 생각이잖아. 시혁이가 이겨도 교육 방송을 틀게 될 테니까. 이렇게 치사하게.”

시하가 눈을 크게 떴다.

“삼촌. 천재네.”

“모른 척하지 마. 진짜 그렇게 생각해서 시혁이 불렀잖아.”

“아니야. 진짜 그런 생각 안 했어.”

“거짓말하고 있네. 아무튼, 시혁이는 빼.”

“안 돼. 형아도 보고 싶은 프로그램 있을 수 있잖아.”

“이게?”

흠. 내가 생각하기에도 시하가 머리 좀 쓴 거 같은데?

우리 시하 역시 똑똑하다니까.

나는 손을 들어서 참가 신청을 했다.

“나도 보고 싶은 거 생겼어요. 저도 가위바위보 참전할게요.”

삼촌이 머리를 헝클였다.

“아악! 진짜. 형제 사기단.”

아니. 사기단이기는 누가 사기단이라는 건가.

물론 내가 이기면 시하가 보고 싶어 하는 교육 방송을 틀 거지만.

시하는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며 주먹을 내밀었다.

“가위바위보!”

결국, 가위바위보를 했다.

승리는 바로 이시혁.

“아. 제가 이겨버렸네요.”

나는 리모컨을 손에 쥐고 흔들었다.

“갑자기 교육 방송을 보고 싶은데.”

그 말에 삼촌이 손가락질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이 형제 사기단아!”

사기라니. 정정당당히 2 대 1로 붙어서 이겼는데.

‘조금은 시하 방학 숙제하는 데 도움이 되시죠.’

나는 그런 삼촌의 반응을 무시하고 시하가 좋아할 만한 교육 방송을 틀었다.

그리고 잠시 후.

삼촌은 소파에 앉아서 시하랑 같이 교육 방송을 아주 잘 보고 있었다.

저렇게 ‘의외로 재밌네?’ 하는 표정으로 볼 거면 우리는 왜 그 난리를 피웠던 걸까?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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