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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 나 귀엽지 외전-50화 (475/500)

외전 50화 방학 (4)

푸른 수영장.

그 위에 있는 미끄럼틀이나 여러 탈 것들.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은 것들이 있어서 참 재밌게 보였다.

수영복을 입은 시하가 승준이랑 하나를 만나서 인사를 나눴다.

“승준아. 하나야. 안녕!”

“시하야! 안녕!”

“시하야! 안녕!”

세 명이 손을 흔들며 오랜만에 만났듯이 반겼다.

또 얼싸안고 있었다.

아니. 너희들 방학이라고 학교에서 보지 못해도 태권도에서 보잖아.

쟤들은 맨날 그렇게 보는데 좋을까 싶다.

저런 삼총사도 나중에 떨어지게 되겠지.

시하가 내게 달려오더니 손을 잡았다.

“형아. 빨리 가자. 응?”

“그래. 가자. 가.”

아이들과 물놀이가 시작됐다.

배상현 씨가 비장한 얼굴로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그게 저런 얼굴을 할 필요가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희들. 각오해.”

배상현이 아이들에게 물을 뿌렸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아이들이 으악! 하면서 몸을 피했다.

촤악!

그래도 가만히 당할 수 없는지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서로 물 뿌리기.

촤악. 촤악.

아무도 다치지 않는 전쟁이었지만 그런데도 심플하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놀이였다.

“받아라!”

시하도 열심히 물을 뿌렸다.

얼굴에 물을 너무 맞게 되면 등을 돌려서 세수했다.

배상현이 그 모습을 보면서 팔을 들어 올렸다.

“잡히면 물에 던진다!”

“우아악!”

아이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진짜 던지지는 않고 시늉만 하는 거겠지만 아이들을 신나게 할 수 있는 놀이였다.

물을 뿌리며 추격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전부 이야기해준 대로 배상현이 잘 따르고 있었다.

그렇게 나서지 않고 보고만 있는데 손에서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

“오빠.”

“어? 왔어?”

서수현이 싱긋 웃으면 손을 꼬옥 잡았다.

예쁜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나 어때요?”

“예뻐.”

“뭐야. 고민도 없이.”

“이게 고민할 거리가 있어? 그냥 예쁜 건데.”

서수현이 베시시 웃었다.

눈을 내리며 내 수영복을 보았다.

“오빠는 시하랑 같은 수영복이네요?”

“하하. 뭐 그렇지.”

“나도 커플티 같은 거 없는데 시하랑 맨날 커플이네요. 아 서러워.”

“커플티 맞출까?”

내 말에 서수현의 눈이 반짝였다.

“네! 커플인 거 티 팍팍 내야지. 그래야 다른 여자가 안 쳐다보죠.”

“언제는 비밀 연애하고 싶다고 했으면서.”

“그건 로망 같은 거였어서…. 아, 아무튼,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다 들켰잖아요. 그게 뭐야.”

“티를 너무 냈어. 우리 둘 다.”

“그건 그래요. 비밀은 무슨. 다들 다 눈치챘던데.”

서수현의 입이 툭 튀어나왔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귀고 나면 평소와 다를 수밖에 없지. 그냥 실없이 웃음이 나오는 걸 참을 수도 없고 말이다.

나는 손가락으로 서수현의 입을 살며시 툭 쳤다.

“난 다 알게 되니까 좋던데?”

“뭐 저도 좋았어요.”

서수현의 얼굴이 살며시 빨개졌다.

그때였다.

물줄기가 날아와서 머리를 맞은 건.

“아, 차가.”

고개를 돌려보니 삼촌이 히죽 웃으며 물총을 쏘고 있었다.

저건 또 언제 빌렸대?

“삼촌…….”

“어이쿠. 너무 더워서 열 좀 식히려고 쐈어. 이제 좀 더위가 가시네. 아니, 수영장인데 왜 이렇게 덥대?”

“열 식히는데 왜 저를 쏴요.”

“몰라서 물어보는 건 아니지?”

“크흠. 근데 그 물총은 왜 빌려왔어요.”

“왜 빌려왔긴. 아이들이 지금 저거 타고 있는 거 안 보여?”

미끄럼틀 위에 신나게 놀고 있는데?

“저렇게 얼굴이 드러내면 쏴야지.”

“대체 왜요?”

“이게 다 나중에 저격당할 때를 대비해서 조심성을 길러주는 거야.”

한국은 총기 소지 국가도 아닌데 그게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심지어 저격당하는 대비는 대체 왜 하나?

“그냥 애들 놀려먹으려고 그러는 거죠?”

“크흠. 아니거든.”

그냥 애들에게 장난치려고 가는 거면서 핑계가 참 거창하다.

삼촌은 물총을 열심히 펌프질해서 시하에게 다가갔다.

하여간 열심히 시라니까.

“오빠. 저희도 애들이랑 놀아주러 가요.”

“응. 그럴까?”

서수현과 나도 아이들이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저 멀리서 삼촌이 아이들 얼굴에 물총을 쏘고 있었다.

“안 되겠다. 우리도 물총 빌려서 애들에게 나눠주자.”

“오. 그래요.”

우리 둘은 다시 등을 돌려서 물총을 빌리러 갔다.

삼촌은 그것도 모르고 시하의 얼굴을 노리며 물총을 쏘았다.

“하하하. 헤드샷을 조심해야지.”

“아! 삼촌!”

시하가 미끄럼틀에 내려왔다.

“어이쿠. 내려오면 어떡해? 이렇게 탁 트인 공간이면 총에 맞는다고. 차라리 위에서 숨었어야지.”

“아, 진짜!”

시하가 얼굴을 돌리며 허우적거렸다.

열심히 팔다리를 움직여서 도망쳤다.

하지만 삼촌은 시하의 뒤통수에 열심히 물총을 쏘았다.

그걸 본 승준이 앞으로 나섰다.

“시하야. 도와줄게!”

승준이 미끄럼틀에 내려와서 삼촌의 등 뒤에서 물을 뿌렸다.

하지만 겨우 그런 거로 끄떡도 없었다.

삼촌이 씨익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뿌꾸뿌꾸.

물총에 펌프질을 하며 그대로 승준에게 쏘았다.

“으악!”

“뒤를 잡는 건 좋았지만 화력이 부족해. 그거 가지고 되겠어?”

“으아악!”

결국, 승준이도 시하처럼 도망치게 되었다.

그 모습을 위에서 바라보고 있는 하나가 말했다.

“시하야. 오빠. 빨리 피해. 빨리.”

삼촌이 이번에는 하나를 노렸다.

“그렇게 얼굴 내밀고 있으면 바로 맞지.”

“꺄악!”

하나가 물에 맞지 않게 재빨리 몸을 숙였다.

그 모습을 보며 웃고 있는 삼촌은 악당 그 자체였다.

배상현은 삼촌이 아이들과 놀아주는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과연 저렇게 아이들과 놀아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꼭 저렇게 놀아줄 필요는 없지만 말이다.

실제로 삼촌은 놀아주는 게 아니라 그저 장난을 치는 것뿐이었다.

“하하하. 앗 차거!”

그렇게 삼촌이 웃고 있을 때 뒤통수에 물줄기가 날아왔다.

“헐. 시혁아. 언제 물총 가져왔어.”

삼촌의 반응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 전쟁을 끝내러 왔다.”

아이들이 서수현에게 물총을 받았는지 열심히 펌프질했다.

모든 총구의 과녁은 삼촌을 노리고 있었다.

삼촌이 그 모습을 보며 한마디 했다.

“oh. oh.”

촤악.

물줄기가 일제히 쏘아지더니 한 사람을 향했다.

장난을 친 대가는 고립을 낳았다.

쯧쯧. 그러니 적당히 했어야지.

***

실컷 물놀이를 즐긴 뒤에 찜질방으로 내려왔다.

여기에 매점이 함께 있어서 무언가 먹기 좋았다.

전체적으로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를 느끼며 매점 의자에 앉았다.

“컵라면 먹을 사람?”

아이들 셋이 손을 들었다.

승준 엄마와 교수님은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뭔가 이동할 때마다 대가족이 이동하는 느낌이기는 한데 이런 것도 괜찮은 것 같았다.

아무튼, 역시 수영장에서 실컷 놀고먹는 컵라면이 최고지.

시하가 배상현을 보았다.

“미술쌤. 많이 드세요.”

“그래. 너도 많이 먹어.”

“근데 미술쌤. 미술쌤은 라면 몇 개 먹을 수 있어요?”

“그냥 하나 먹는데? 밥 말아 먹는 정도?”

“삼촌은 한 번에 4개 먹던데.”

“엄청나시구나. 시하는 몇 개 먹니?”

“저는 1개 먹어요. 밥도 조금 말아 먹어요. 많이는 못 말아먹어요.”

“그래? 근데 벌써 라면 1개를 다 먹어?”

“저 형아 동생이에요.”

내 옆에 있던 서수현이 풉 하고 웃음이 터졌다.

대답이 형아 동생이라고 해서 그런가 보다.

나는 뭐 저 대답에 익숙하지.

원래 식사량이라는 게 은근 주변 사람들의 먹는 양도 중요하다.

주변에서 많이 먹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더 많이 먹게 되는 법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적당히 1인분을 하고 있었다.

삼촌은 2인분 이상을 하는 것 같지만 말이다.

배상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삼촌은 어디 갔니?”

“삼촌 아까 보니까 안마 기계로 가던데요.”

“그래?”

시하가 삼촌이 어디 갔는지 봤나 보다.

아니, 이 삼촌. 찜질방에만 가면 안마 기계를 찾는다니까.

이 정도면 마사지 받으러 가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지금쯤 안 봐도 편안히 잠을 자고 계시겠지.

뭐, 오늘은 아이들이랑 놀아주느라 고생하셨으니 피곤한 건 이해가 간다.

“미술쌤. 근데 이거 다 먹고 뭐 할 거예요?”

“음. 찜질방에서는 뛰어놀 수 없으니까 그냥 찜질해야 하지 않을까?”

“그럼 저는 목욕탕 갈래요.”

“오. 목욕탕 좋지. 좋지.”

나는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그래. 이렇게 친해지면 되는 것이다.

별거 아닌 쓸데없는 말 같지만 나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원래 친구들끼리 이야기해도 다 기억나지 않는 거 아니겠나.

무슨 이야기한 지는 몰라도 나중에 그곳에서 친구들과 재밌게 놀았다는 감정의 추억만 남아서 그렇게 기억되는 것이다.

배상현이 오늘을 위해 노력한 것은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시하에게 잘 전해졌을 거라고 생각된다.

***

실컷 놀아서 그런지 다들 빨리 씻고 호텔로 와서 낮잠을 자게 되었다.

이상하게 여행을 오면 낮잠이 잘 온다.

일어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기지개를 켜며 온몸의 세포를 깨웠다.

“하암.”

하품이 절로 나오며 눈을 끔뻑 떴다.

침대 옆을 보는데 시하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지?’

고개를 돌리자 시하가 소파 의자에 앉아서 패드를 들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어느 틈에 일어나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근데 설마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이 그림 그리기라니.

“시하야. 뭐 해?”

“응? 형아. 일어났어?”

“응. 일어났지. 시하는 뭐 그리는 거야?”

“이거 아직 안 그렸어. 뭐 그릴지 고민 중이야.”

“그래?”

“응!”

“근데 그거 방학 숙제지?”

“응. 그래서 고민이야.”

“오늘 있었던 거 그리면 되지.”

“오늘 너무 많이 해서 뭘 그릴지 모르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릴 거리가 많으면 뭘 그릴지 모르게 된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뭐 먹을지 고민하는 것도 참 큰일이다.

선택 장애는 이런 그림에서도 오는구나.

근데 돈만 있으면 그냥 다 선택하면 선택 장애가 안 오지 않을까?

물론 돈 낭비이기는 하지만.

오늘 낮잠도 자서 머리가 몽롱한지 그 생각이 입으로 튀어 나갔다.

“그럼 다 그리면 되잖아.”

“!!!”

“아. 그러면 너무 많지?”

“아니야. 형아가 맞아. 나 게시판 꾸밀 때도 의견 다 넣었어.”

“그건 그렇긴 하지.”

“다 넣으면 돼!”

“응. 그렇지? 근데 그거 다 넣으면 그림이 너무 많지 않아?”

“괜찮아. 괜찮아.”

시하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슥삭슥삭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문득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근데 여름방학 숙제를 패드로 그려도 되나?

그런 근원적인 의문.

뭐 인쇄하면 되겠지.

답은 금방 나왔다.

“그럼 시하야. 형아 머리 좀 씻고 올게. 자고 나니 엉망이네.”

“응!”

머리를 감고 오늘 할 일을 생각했다.

먹고 자서 배가 덜 고플 테니까 저녁은 좀 미뤄두자.

그리고 저녁을 먹고 뭘 하지?

서수현은 밤에 같이 바에 갈 수 있으려나?

낮잠도 잤는데 애들이 일찍 잠을 안 잘 것 같기도 한데.

그런 의문이 생기면서 머리를 말렸다.

아마 서수현이 안 왔으면 그냥 귀찮아서 나갈 때 모자를 썼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수현이 일어나 있으려나?’

그런 궁금증을 가지며 침대로 다시 돌아왔다.

시하는 집중해서 그림을 샥샥 그리고 있었고 나는 충전기에 폰을 빼서 톡을 보냈다.

-일어났어?

조금 기다렸는데 답장은 없었다.

아직 자는 건가?

그러면 삼촌에게 톡을 보내둬야겠다.

-삼촌. 오늘 밤에 시하 맡아줄 수 있죠? 재밌는 놀이로 시야를 확 잡을 수 있죠?

-삼촌 : ???

-삼촌 : 아니. 옆에 있는데 왜 톡으로 말해?

-시하가 알면 안 되잖아요.

-삼촌 : 그래서 밤에는 왜? 어디 가게?

-바에 수현이랑 같이 좀 가려고요.

-삼촌 : 오오오.. 안 돼!!! 안 돼!!!

-???

-삼촌 : 나도 데려가! 시하는 상현 씨가 맡으면 되잖아.

-어색하잖아요.

-삼촌 : 아니야. 오늘 이야기하는 거 보니까 화기애애해.

-그건 우리랑 같이 있었으니까 그렇죠. 그건 그렇고 어딜 따라오려고 해요!

-삼촌 : 그런 곳은 꼭 끼어들어야지!

이 삼촌이 증말.

-삼촌 : 이 삼촌은 빠끼빠끼다!!!

빠끼빠끼가 뭐야?

빠져야할 때에 낀다. 뭐 그런 뜻이야?

하아. 내가 진짜…….

오늘 실컷 시하 놀려먹으려고 했으면서 아직도 그렇게 놀려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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