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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 나 귀엽지 외전-48화 (473/500)

외전 48화 방학 (2)

시하는 집에서 담임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를 했다.

바로 방학 때 생활 계획표 짜기.

책상 앞 종이 위에는 큰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24시간이 적혀 있는 시계.

시하는 고민하다가 시간표를 그어서 만들기 시작했다.

“10시부터 6시까지 잠자기.”

실제로는 11시쯤에 자서 7시쯤에 일어난다.

하지만 시하는 이번에는 형아를 위해 일찍 일어나기를 결심했다.

시하는 연필로 잠자기를 썼다.

“7시부터 8시까지 씻기.”

씻는 데 20분도 안 걸리는 시하였지만 방학이니 시간을 넉넉히 잡았다.

“8시부터 9시까지 밥 먹기.”

방학이라서 여유로운 밥 먹기 시간.

“이제 9시부터 10시까지 방학 숙제하기. 10시부터 11시까지 형아랑 놀고. 11시부터 12시까지 방학 숙제하고. 12시에 밥 먹고 1시까지 형아랑 놀고.”

중간중간에 쉬는 시간으로 형아랑 놀기를 넣어두었다.

형아의 스케줄은 고려하지 않은 시간표였다.

“다 했다!”

시하가 의자에서 내려와 시간표 종이를 쥐고 시혁에게 도도도 달려갔다.

시혁은 부엌에서 오늘 점심에 먹을 수육을 찌고 있었다.

“형아. 형아!”

“응?”

“형아. 이거 봐봐. 내가 방학 시간표 짰어.”

“그래?”

시혁은 시간표를 보았다.

잠자기, 밥 먹기를 빼면 온통 형아랑 놀기와 방학 숙제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나마 태권도 시간이 끼어 있기는 한데 그 뒤에 형아랑 놀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아주 빽빽한 스케줄이었다.

시혁은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우와. 대단하네.”

“응. 대단하지?”

“그런데 미술 배우러 가는 날이랑 여행가는 날 시간표는 없네?”

“그때는 이거 안 지키고 전부 형아랑 놀기야.”

시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어떻게 다 형아랑 놀기가 될 수 있지?

여행은 그렇다 쳐도 미술 배우러 가는 날은 배상현 씨랑 노는 거로 생각해야 하지 않겠니?

이런 걸 보면 배상현 씨도 아직 멀었다.

앞으로 더 친해졌으면 싶었다.

시혁은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그래. 근데 방학 숙제가 그렇게 많아?”

“응! 나는 방학 숙제 전부 다 해보려고!”

“우와. 대단한데? 방학 숙제 진짜 전부 다 할 거야?”

“응! 나는 형아 동생이니까.”

대체 형아 동생이 뭐길래 방학 숙제를 다 한다는 걸까?

시혁은 그런 의문을 가졌지만 일단 넣어두기로 했다.

“여행은 어디로 가고 싶어?”

“워터파크!”

시혁은 솔직히 시하가 저렇게 말할 줄 예상했다.

이미 알아보기도 했다.

어린이들이 잘 즐길 수 있는 어린이 워터파크.

거길 가면 아이들이 정말 좋아한다고 인터넷에 나와 있었다.

온천과 호텔이 겸비되어 있어 함께 놀러 다닐 만했다.

어른들도 온천에 몸을 푹 담그며 쉴 수 있으니 엄청 좋을 것 같았다.

“형아. 승준이랑 하나도 가기로 했어.”

“응?”

시혁이 가족끼리 가는 아주 훌륭한 휴가를 생각하고 있을 때 그 상상을 와장창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하가 확인 사살을 한다.

“그러니까 승준이랑 하나도 같이 가기로 했어.”

“어, 어째서? 언제?”

“우리끼리 정했어.”

시혁은 득도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언제나 너희끼리 잘 정했었지. 언제나 통보 형식이었지. 빨리 커서 너희끼리 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형아. 재밌겠지?”

“와. 엄. 청. 재밌겠다.”

시혁의 목소리에 영혼은 없었다.

뭐 어쩌겠는가. 사실 이 정도는 이미 예상을 했다.

늘 그래왔으니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들이 같이 가면 자기들끼리 잘 놀 테니 너무 힘들지도 않다.

라고 생각하기에는 늘 자신이 많이 놀아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하하.”

“형아. 그렇게 좋아?”

시하가 아주 순진한 눈으로 시혁을 바라보았다.

“그럼. 엄청 좋지.”

시혁은 그저 시하의 머리를 다시 한번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시하가 좋아하면 뭐 됐다는 느낌이었다.

“형아. 시간표 줘.”

“응. 그래.”

시하는 시간표를 받더니 소파 위에 누워있는 삼촌에게 달려갔다.

“삼촌!!”

삼촌은 이미 소파와 하나가 되어서 TV를 보는 중이었다.

“응? 왜?”

“이거 봐봐. 시간표.”

삼촌이 시간표를 들고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뭐 다 공부하고 노는 것밖에 없네.”

“아니야. 여기 삼촌도 있어.”

“뭐 어디?”

[8시~9시 : 삼촌과 형아가 시하에게 태권도 배우기.]

삼촌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읽어봐서 물음표가 떠오르는 게 아니라 종이가 너무 가까워서 물음표가 떠올랐다.

“시하야. 너무 가까워. 코에 닿잖아. 이러면 누가 봐.”

“삼촌 잘 보이라고 그랬지.”

“아무리 그래도 이러면 안 보이거든?”

삼촌이 손을 휙휙 젓다가 시하의 손에 있는 시간표를 뺏었다.

그리고 시하가 말했던 삼촌 부분을 보았다.

곧장 삼촌이 질색한 표정을 지었다.

“야이! 나 태권도 안 배워도 된다니까.”

“아니야. 내가 가르쳐줄게.”

“안 배워도 된다고. 그리고 이때 재밌는 드라마 봐야 하거든.”

“그거 재방송 보면 되지.”

“본방사수 해야 해. 재방송은 조금 잘린단 말이야.”

“그럼 다시 보기 하면 되잖아.”

“시하야. 다시 보기는 돈 든다고.”

“삼촌 돈 많아서 괜찮아.”

“내가 안 괜찮아. 궁금하니까 그때그때 봐줘야지.”

“아니야. 삼촌 맨날 티비 봐서 안 봐도 돼.”

삼촌이 그런 시하를 보다가 히죽 웃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시간표를 머리 위로 들었다.

두 손으로 종이를 잡았다. 마치 찢을 것처럼 말이다.

“이 시간표가 없어지면 배우지 못하겠지?”

“응? 안 돼! 삼촌 빨리 줘!”

시하가 폴짝폴짝 제자리에서 뛰었다.

삼촌이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시하를 놀렸다.

좌우로 움직이는 엉덩이가 때리고 싶을 정도로 힙업이 되어 있었다.

“하하하. 이거 없으면 안 지켜도 된다는 말씀.”

“안 된다고!”

시하가 하늘로 손을 뻗지만 닿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소파 위에 올라서 점프했다.

하지만 삼촌도 만만치 않아서 같이 소파 위에 올라갔다.

“이익!”

“하하하. 돌려받고 싶으면 어서 태권도 가르쳐준다는 부분을 빼라.”

“삼촌 맨날 티비만 봐서 운동해야 해.”

“삼촌 충분히 운동하거든? 네가 못 봐서 그렇지. 이런 몸매가 그냥 만들어지는 줄 알아?”

삼촌이 한 손을 내려서 배를 깠다.

선명한 식스팩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게 바로 초콜릿 복근이라는 거다.”

“삼촌 복근을 초콜릿으로 만들었어? 초콜릿 먹으면 만들어져?”

“그게 아니라 생긴 게 초콜릿이라고.”

“삼촌 하얀데?”

“…화이트 초콜릿이다. 왜!”

“아니다. 빨간 거 같아.”

“그건 네가 배를 손바닥으로 쳐서 그렇고.”

시하는 삼촌의 배를 찰싹찰싹 쳤다.

“딸기 초콜릿 복근?”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아무튼, 나는 태권도 안 배운다.”

삼촌은 시하의 말을 무시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시하는 하는 수 없이 소파에서 내려와 방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지우개와 연필을 들고나왔다.

“알았어. 삼촌 지워줄게.”

“진작 그럴 것이지. 삼촌이 지켜본다.”

“알았다니까.”

시하가 삼촌과 형아가 태권도 배우기를 지우개로 슥삭슥삭 지웠다.

연필을 잡더니 다른 것을 썼다.

“삼촌이랑 놀기.”

“아니. 그 시간에 드라마 봐야 한다니까.”

“삼촌. 드라마는 언제든지 볼 수 있지만 나랑 노는 건 언제든 할 수 없어.”

“아닌데. 놀 수 있는데?”

“삼촌. 드라마는 재방송하는데 나랑 이 시간에 노는 건 재방송이 안 돼. 그것도 몰라.”

“나중에 놀면 되지.”

“삼촌. 나도 바쁜데 이렇게 시간 내서 놀아주는 거잖아. 그러니까 이건 삼촌이 양보해.”

“아니. 네가 뭐가 바쁘다고.”

“여기 봐봐.”

시하가 다시 한번 시간표를 보여주었다.

아주 빽빽한 일과였다.

삼촌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흘렸다.

“여기 절반은 형아랑 노는 거거든? 차라리 이걸 빼고 이 시간에 나를 넣어.”

“안 돼.”

“왜?”

“형아랑 놀 거야.”

“또 또 차별한다.”

“삼촌도 나랑 드라마 차별하잖아.”

“…….”

시하가 그렇게 말하니까 할 말이 궁색해졌다.

“너 요즘 말 잘한다?”

“당연하지. 나 초등학생이야. 국어도 배워.”

“대체 초등학생이 뭐길래…….”

“초딩한테 까불면 혼나.”

“그럼 중학생은?”

“혼나.”

“고등학생은?”

“혼나.”

“대체 안 혼나는 때가 언제야!”

“삼촌은 맨날 형아한테 혼나잖아.”

“…….”

평생 혼나는 게 예정된 삼촌이었다.

삼촌이 소파에 털썩 누웠다.

“네 마음대로 해라.”

“아! 그런데 형아 일도 해야 하니까 여기 오후에 삼촌으로 바꿔줄게.”

삼촌이 발끈하며 상체를 일으켰다.

“야!”

“왜?”

“너무한 거 아니야? 삼촌도 그때 일하거든?”

“삼촌 백수잖아.”

“아니. 운동 가. 삼촌 운동 간다.”

“그럼 시하 잘 때 가면 되겠다.”

“누구 마음대로?”

“삼촌이 좀 맞춰. 내가 이렇게 바꿔주기도 했잖아.”

“어이가 없네?”

딱히 틀린 말이 아니라서 삼촌은 다시 소파에 드러누웠다.

“넌 대체 누굴 닮아서…….”

“나? 형아.”

“아니야. 시혁이 어릴 때는 이렇지 않았어.”

“형아는 어릴 때도 멋있었나 보네.”

“???”

시하는 시간표를 들고 일어났다.

“나 이제 가야겠다.”

그리고 방으로 휙 들어갔다.

삼촌은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완전 마이 페이스인데…. 시혁아. 누구 닮은 거 같아?”

시혁이 쓴웃음을 지었다.

“삼촌이요.”

삼촌이 황당하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

“영향을 너무 줬어요. 환경적으로.”

“나는 저렇게 마이 페이스 아니야.”

“아…. 네…….”

삼촌이 억울한 얼굴을 했다.

“왜 안 믿어? 진짠데?”

“네. 어련하시겠어요.”

“진짜라고!”

“그런 것치고는 굉장히… 집도 사시고… 일도 안 가시는데 월급도 타시고…….”

“그거 내 연금이야!”

“엄청 자유롭게 사시잖아요. 마이 페이스.”

“아니야. 다 너희 생각해서 여기 있는 거라고.”

“그건 그거고 마이 페이스는 마이 페이스고. 아, 맞다. 시하한테 이상한 것 좀 가르치지 마세요.”

“야. 그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왜 그렇게 보는 거야!”

시혁은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방학은 아이들만의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부모님들이 곡소리 나는 일이었다.

아이들에게 세끼를 차려줘야 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었으니까.

집에 있으니 이래저래 신경을 써야 할 것도 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돌봄교실을 운영한다는 것이다.

요새 맞벌이 가정이 많아 운영하고 있었는데 나는 신청하지 않을 것이다.

“돌봄교실이라고 있는데 안 해도 되겠지?”

“응.”

방학 기간에는 좀 더 함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 싶었다.

회사를 나가는 것도 아니고 프리랜서니 시하랑 함께 있는 시간을 늘려나가고 싶었다.

물론 학교 안 가는 날에는 그럴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나마 한 달간 방학이니까.

그때쯤이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시하가 말했다.

“형아. 근데 승준이랑 하나는 돌봄교실 간대. 8시 30분에서 4시까지?”

“그렇구나.”

하긴 승준 어머니도 일하는 분이니 어쩔 수 없긴 하다.

다행히 쌍둥이라서 같이 학교에 가니까 외롭지는 않을 것 같았다.

“시하는 따라 안 가도 돼?”

“안 가도 만날 수 있는데? 그리고 형아랑 더 같이 있을래.”

“그래. 그럼.”

우리 시하 똑똑하군.

굳이 돌봄교실에 가지 않아도 보고 싶으면 그냥 가면 된다니.

정말 아이들은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라면 약속 시간 맞추고 언제 휴가니, 몇 시에 만나니 하고 따지는 것도 많을 텐데 말이다.

어른이 되면서 친구들과 만나기가 더더욱 힘들어진다.

지금 이때를 충분히 즐겼으면 싶었다.

“저. 시하야.”

“응?”

“워터파크 갈 때 수현이 누나도 같이 가도 될까?”

“응! 좋아!”

“아. 그래?”

나는 조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서수현에게 묻지 않았지만.

방학 되어서 신경을 덜 쓰게 될 것 같아서 그 부분 역시 조심하고 있었다.

폰을 들어서 서수현에게 연락했다.

통화음이 몇 번 가더니 금방 받았다.

달칵.

「오빠?」

“응. 통화돼?”

「완전요.」

“하하하.”

서수현이 저럴 때마다 괜히 웃음이 나왔다.

나는 곧바로 본론을 말했다.

“그게 혹시 같이 워터파크 갈래? 온천도 있고 호텔도 같이 있대.”

우당탕탕탕.

스피커 너머로 어딘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수현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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