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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 나 귀엽지 외전-46화 (471/500)

외전 46화 캐치볼

배상현은 이대로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실 미술 수업의 목표는 시하랑 친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열정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8살 아이와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

미술 이야기라면 술술 잘할 수 있는데 그 외 이야기의 운은 어떻게 띄워야 할지도 모르겠고 기껏 생각한 거라고는 밥을 먹었는지 묻는 것이었다.

그나마 이시혁이 도와줘서 여러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곁에 친구들이 많은 것은 축복이었다.

들어보니 다들 좋은 친구 같아 흐뭇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조금씩 친해질 생각이긴 했지만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지 않았나.

그래서 친구에게 조언을 받기로 했다.

전에 한 번 실패하긴 했지만 자신이 그중 괜찮은 것을 잘 걸러 들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무서운 건 아웃이다. 아웃.

“스테판. 오랜만이지.”

「아니. 이게 누구야? 상현! 진짜 오랜만이야.」

“그래. 잘 지냈어?”

「나야. 잘 지냈지. 아! 그래. 어때? 아들과 좀 친해졌어?」

배상현이 부엌에서 컵에 물을 따랐다.

졸졸졸.

“그렇게 많이 친해지지 못했어. 이야기하기가 좀 어려웠거든.”

「흠. 역시 쉽지 않군.」

“그래도 내가 미술 선생님이라고 잘 챙겨주기는 해.”

스테판이 황당하다는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챙겨줘야 하는 거 아니야?」

“뭐…. 그렇지. 한국에 스승의 날이라는 게 있는데 보통 카네이션을 주거든. 내가 카네이션의 그림을 받았어.”

「오우! 아니. 안 친하다면서 친하네.」

“그냥 예의지. 예의”

「누가 예의로 그림을 그려줘.」

“한번 보여줄까?”

「그거 보여주려고 전화했네.」

“아니. 꼭 그건 아니고.”

배상현은 괜히 머쓱했다.

스테판이 아들 자랑할 때는 언제나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던 자신이었는데 막상 자신이 그 상황이 되니 행동이 별다를 바 없었다.

이미지 파일을 가져다가 스테판에게 보냈다.

“어때? 괜찮지?”

「…….」

“왜? 별로야?”

「아니. 미친. 이거 아들이 그린 그림이야? 8살이라며?」

“어. 왜?”

「미친 거 아니야? 이건 진짜…. 미쳤어. 재능이 너무 뛰어난데?」

“흠흠. 미술에 소질이 있더라고.”

「소질이 있는 정도가 아닌데?」

배상현은 스테판과의 전화에 괜히 가슴이 뿌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생각에도 시하는 재능이 있었다.

“혹시 다른 것도 보겠나? 이거 봐봐.”

배상현이 스테판의 말을 듣지 않고 노트북을 사진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건 처음 그린 그림. 색감에 관해 공부했는데 작품을 만들었더라고.”

그리고 자랑스러운 피아노에 그린 그림.

너튜브 링크까지 첨부해서 보여주었다.

“이건 문화가 있는 날이라고 행사가 있었을 때 아들이 그린 거야. 쇼팽의 환상즉흥곡에 맞춰 악보가 그려지지. 그것도 등잔으로. 아. 스테판. 혹시 등잔이 뭔 줄 알아? 등잔이 뭐냐면…….”

이것저것 설명을 하는 배상현이었다.

스테판은 한 귀로 흘리면서 피아노 그림에 감탄했다.

「이거 완전 동서양의 조합인데? 경매에 내놓아도 꽤 받겠어. 여기에 자네 아들의 이름값이 오르면 더 오를 거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 물론 화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너무 앞서갔네.」

한참을 이야기하던 배상현은 전화를 건 목적을 잠깐 깜빡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 그래. 혹시 아들과 이야기도 잘하고 친해지는 방법이 있나?”

「흠. 예로부터 고전적인 수법은 왕도가 되었지.」

“음? 그게 뭔데?”

「전에 이야기했던 캐치볼이야.」

“어?”

「아들이랑 하는 캐치볼! 이야기도 나누면서 운동도 되고 즐겁지!」

“좋은 방법이네. 근데 내 아들이 운동을 좋아할까? 안 좋아하면 어떡해.”

배상현은 이 방법이 막힐 것을 걱정했다.

스테판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음을 보냈다.

「하하하. 그럼 요즘의 최신식 방법이 또 있어.」

“그게 뭔데?”

「게임이야. 게임.」

“아…….”

「어때? 이 정도면 충분하지?」

“근데 게임 오래 하면 눈 나빠지는데…….”

「에이! 그냥 알아서 해!」

“아무튼, 고마워. 해볼게.”

배상현은 친구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

미술 수업 시간이 왔다.

오늘은 뭘 배울까 싶어서 가보니 배상현 씨가 비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뭐지? 뭔가 엄청난 걸 하나?

시하랑 내가 문 앞에서 꿀꺽 침을 삼키며 바라보았다.

배상현의 입이 열렸다.

“오늘은…….”

“네.”

“캐치볼을 합니다.”

“……네?”

“오늘은 캐치볼을 하려고 합니다.”

혹시 내가 못 들었을까 봐 한 번 더 말했다.

근데 저 제대로 들었거든요?

아니. 갑자기 캐치볼? 음. 아! 시하랑 친해져 보려고 얘기를 꺼냈나 보다.

열심히 생각해본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게 비장한 표정으로 말해야 할 것이었나?

나는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

“하하하. 캐치볼 좋죠. 시하야. 너 캐치볼 좋지?”

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캐치볼 좋아. 나 캐치볼 잘해. 야구도 잘하고.”

“응. 그렇지.”

시하가 고개를 돌려 배상현을 보았다.

“근데 미술쌤. 캐치볼이랑 미술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근데 아무래도 미술을 하러 온 거다 보니 시하가 의문이 생기나 보다.

배상현은 살며시 고민하더니.

“공이 가만히 있는 모습은 그리기 쉽지만 공이 움직이는 느낌의 그림은 그리기 어렵지. 오늘은 캐치볼을 하면서 그걸 관찰할 거야. 어떻게 공이 움직이는 걸 표현할 수 있을까!”

뭔가 그럴싸하게 말하는데 실제 목적은 시하랑 친해지는 거겠지.

시하가 알아들었는지 오른손에 주먹을 쥐고 왼손바닥을 팡팡 쳤다.

글러브만 있으면 딱 포수 느낌일 것이다.

“그럼 캐치볼 할까요?”

“그래요.”

배상현이 현관 앞에 놓인 가방을 들었다.

“시하야. 쌤이 준비했어.”

“우와. 글러브예요?”

“응. 공하고 글러브야.”

벌써 현관 앞에 준비하고 있었구나.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근처에 공 던지기 좋은 곳이 있거든. 거기로 가자.”

“네!”

우리는 일단 공던지기 좋은 곳으로 이동했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푸른 잔디공원이었다.

솨아아아.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서 풀들도 고개를 숙인다.

캐치볼 하기 좋은 날씨였다.

“자. 이제 던져봐.”

셋이서 글러브를 끼고 삼각형으로 섰다.

대충 이렇게 하다가 빠져줘야 하나?

뭐 그런 생각도 들었다.

“형아. 간다!”

“응!”

시하가 공을 던졌다.

가벼운 공이라서 그런지 두둥실 떠서 그대로 글러브에 안착했다.

나는 배상현에게 던졌다.

탓.

글러브에 쏙 들어갔다.

그렇게 한 세 바퀴를 돌고 나서야 나는 배상현에게 턱짓했다.

무슨 말이라도 좀 하시라고요.

배상현도 눈치를 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보면 투수와 포수의 싸인인 줄 알겠다.

배상현이 시하에게 공을 던지며 물었다.

“밥 먹었니?”

“네!”

시하가 공을 잡으며 대답했다.

그놈의 밥 타령. 그거 말고 딴 거 있잖아요!

시하가 내게 공을 던진다.

“형아. 밥 먹었어?”

“어. 오늘 너랑 같이 먹었지.”

뭐지? 릴레이 질문인가?

어찌 된 게 질문이 되돌아온다.

나도 배상현에게 던지며 물었다.

“선생님은 밥 드셨어요?”

“밥 먹었죠.”

배상현이 공을 잡았는데 던지지 못하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벌써 질문거리가 떨어지면 안 된다고요.

아, 답답해!

겨우 생각을 짜냈는지 공을 던지며 말했다.

“그…. 형은 잘 있고?”

“네. 옆에 잘 있어요.”

아니! 그 질문이 왜 나와요! 옆에 잘 있는 거 알잖아요.

“형아. 동생 잘 있고?”

“어. 엄청 잘 있지. 지금 캐치볼도 하고 있어.”

안 되겠다.

내가 공과 함께 질문을 던지는 수밖에.

“선생님. 학습평가 치셨다던데 잘 치셨어요?”

“어? 학습평가?”

배상현이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나머지 공을 놓쳤다.

데구르르, 굴러가는 공을 주우러 달려간다.

분명 시하 학습평가 백 점 맞았다고 톡도 보내드렸는데 기억 안 났나 보다.

공을 주운 배상현이 뭔가 떠올랐는지 입을 벌렸다.

“아! 학습평가. 잘 봤죠. 시하야. 학습평가 잘 봤니?”

“네! 백 점! 만점이에요!”

“정말? 대단하네.”

그래. 이거다.

시하가 자랑할 만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했다.

“형아. 번역 일 잘했어?”

“응. 형아는 번역 일 잘하고 왔지.”

우리 시하는 질문에 응용할 줄 아는구나. 암! 누구 동생인데.

“선생님. 방학하면 하고 싶은 거 있어요? 가고 싶은 곳이나.”

그때 시하가 물어보았다.

“형아. 어른도 방학 있어? 형아는 방학 없던데! 미술쌤은 방학 있어?”

“그건 미술 선생님이 알려주실 거야.”

우리 형제는 공을 받은 미술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배상현이 글러브로 얼굴을 가리고 허허 웃었다.

“방학은 없지만 시하가 방학하면 이렇게 놀고 싶네. 혹시 시하가 놀러 가고 싶은데 있니?”

배상현이 공을 던졌다.

시하가 공을 받았다.

“저는 수영장 가고 싶어요! 워터파크! 친구들이 워터파크 재밌는 곳이라고 했어요.”

친구들이 참 많은 것을 가르쳐줬구나.

이번 여름방학은 워터파크인가…….

“형아. 나 방학 때 어디 놀러 가고 싶어?”

“형아는 그냥 시하 가고 싶은데 가면 되는데.”

“그래도 형아 가고 싶은데!”

“카페 가고 싶네.”

“으잉? 거기는 맨날 가잖아.”

“하하하.”

카페에 커피 마시러 가는 게 아니란다.

나는 그냥 웃음으로 무마하며 배상현에게 공을 던졌다.

“워터파크 가면 미술선생님도 같이 가시죠.”

“네. 그러면 고맙죠. 근데 시하야. 선생님이 같이 가도 재밌겠니?”

“미술쌤이 괴물 역할 하면 재밌을 것 같아요!”

배상현이 눈을 껌뻑거렸다.

괴물 역할?

나는 그런 시하의 공을 받으면서 배상현을 바라보았다.

설마 또 이상한 생각하는 거 아니겠지?

“역할 놀이라는 거지 진짜 괴물같이 하면 안 되는 거 아시죠?”

“…하하. 당연하죠.”

뭐지? 뭔가 반응이 느렸는데?

말을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역시 캐치볼은 대화하기 좋은 수단인가?

어찌 되었든 남자 셋이서 이렇게 캐치볼도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

조금 이르지만 밥을 먹기로 했다.

종일 캐치볼만 할 수 없으니까. 근처 가서 치킨이라도 먹을 생각이었다.

몸을 좀 움직였다고 조금 출출한 기분이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치킨이 앞에 나왔다.

바싹하게 튀겨져 나와 굉장히 냄새도 좋고 먹음직스러웠다.

콜라에는 탄산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괜히 보고 있으니까 빨리 먹고 싶었다.

시하가 다리를 들더니 선생님에게 내밀었다.

“미술쌤. 드세요!”

“아니. 시하 먹어.”

“다리가 제일 맛있으니까 선생님 먼저 드세요. 시하가 줄게요.”

“와…. 고마워.”

나는 시하의 행동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시하. 누가 가르쳐줬는지 모르겠지만 제대로 잘 배웠구나.

“삼촌이었으면 다리 안 줬을 거예요. 삼촌은 치킨 오면 다리 두 개 양손에 들고 춤추면서 저 놀려요.”

그래. 때로는 타산지석이라고 남을 보고 배울 때가 있는 법이었다.

삼촌이 저러니까 시하가 저러면 안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거지.

배상현도 거기에 대해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지 그저 닭다리를 뜯을 뿐이었다.

사실 저게 맞는 대답이었다.

“형아. 이거!”

시하가 두 번째 닭다리도 나에게 주었다.

크으. 두 개밖에 없는 닭다리를 나에게 주다니.

“이건 시하 먹어.”

“왜?”

여기서 올바른 대답은 무엇일까?

닭다리 먹을 기분이 아니야.

이렇게 말하면 시하도 날 따라서 닭다리 먹는 기분이 아니라고 하겠지?

그리고 딴 걸 집어 먹을 것이다.

그럴 수 없지.

“오늘은 시하가 닭다리 먹는 걸 찍어서 올려야 하거든. 그러니까 이건 시하가 먹어야 해.”

“으잉? 왜 찍어?”

“왜냐면 형아가 요즘 인별에다가 올리고 있어서 그래. 자. 어서 닭다리 먹자. 맛있게 먹어야 사람들이 아! 나도 치킨 먹어야겠다! 하지.”

“우음.”

“그리고 나중에 시하가 닭다리 먹는 모습을 그릴 수도 있잖아. 형이 잘 찍어줄게.”

“알았어. 나 먹을게.”

“응.”

나는 영상을 찍었다.

시하가 닭다리를 베어 물었다.

바사삭. 튀김 씹는 소리와 함께 야들야들한 살코기 베어져서 시하의 입속으로 쏙 들어갔다.

오물오물.

아무 맛있게 먹는다.

“형아.”

“응?”

“형아도 한 입 먹어. 아~”

크으. 저런 마음은 거절할 수 없다.

“아~”

나는 폰으로 찍으면서 한 입 베어 먹었다.

뭔가 이거 엄청 잘 찍은 느낌이 드는데?

“형아. 올릴 거야?”

“어? 올려야지.”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바로 하고 보니 배상현이 괜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들고 있는 닭다리를 보았다.

크흠. 시하가 이렇게 될 수 있게 노력하자구요.

아까 닭다리 받았을 때 좋아했는데 뭐든지 상대적인 거라 나와 비교하면 손색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시하는 어쩔 수 없이 형아를 너무 좋아하니까.

근데 뭔가 괜히 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일단 시하 보여주기용으로 올려야지.’

애써 배상현 씨의 시선을 피하며 인별에 영상을 올렸다.

시하 확인용이니 나중에 올린 것은 다시 내릴 생각이다.

“형아. 올렸어?”

“어. 올릴 거야. 올렸다. 봐봐.”

“어디! 와 잘 찍혔다.”

시하가 내 폰을 들고 열심히 영상을 보았다.

음음. 누가 찍은 건데 당연히 잘 찍혔지.

“근데 형아. 뭔가 많이 달려.”

“어? 뭐가?”

나는 인별을 보았다.

하트와 댓글이 달렸다는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었다.

‘어? 이게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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