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44화 학습 평가 (2)
오늘은 학습 평가가 있는 월요일이다.
시하는 학교에 와서 책가방을 걸었다.
안에 필통을 꺼낸 다음에 자리에 앉았다.
옆에는 승준이 앉아 있는데 시하가 오자마자 신나게 어깨를 흔들기 시작했다.
“우와~ 시하다!”
“우와~ 승준이다~”
그렇게 서로를 반긴 후에야 이야기가 진행됐다.
“시하야. 공부 많이 했어?”
“응. 나 공부 많이 했지. 이제 안 봐도 될 것 같아.”
“그래. 지금 봐도 무슨 소용이 있겠어. 이미 늦었지.”
“응?”
시하는 이미 열심히 공부해서 안 본다고 한다면 승준이는 이미 봐봤자 소용없다고 포기한 상태였다.
그런 승준을 보며 하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빠. 그러니까 미리미리 공부하라고 했잖아.”
“야. 나는 공부 안 하는 게 아니야. 사커 공부는 열심히 한다고.”
“사커 선수도 공부 잘해야지.”
“그래도 아예 안 하는 거 아니야. 숙제는 안 한 적 없잖아.”
“숙제한다고 공부한 게 아니야.”
“아, 몰라.”
승준이 책상에 엎드렸다.
마치 만화에서 나오는 운동부 애들이 아침마다 자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시하는 그런 승준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우하하하! 간지러!”
승준이 옆구리를 잡으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시하는 그런 행동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콕콕 찔렀다.
“자면 안 돼.”
“알았어. 안 잔다니까. 안 자고 있었어!”
“지금이라도 공부하자. 내가 가르쳐줄게.”
“이미 늦었는데.”
“근데 승준이가 전에 말했잖아. 아직 1분이 남아있어도 골은 들어간다고.”
“!!!”
“그러니 아직 늦지 않았어.”
“?!?!”
승준이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그 정신을 잊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공부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근데 공부하기 싫은데.
시하가 말했다.
“나도 같이 공부하면 재밌으니까. 이거 보자.”
“좋아. 그래.”
그렇게 시하랑 승준이 같이 보면서 복습을 하기 시작했다.
하나 역시도 연주랑 같이 공부했다.
갑자기 공부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종수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아까부터 공부하고 있었는데 다들 떠들고 있어서 조금 불편했다.
하지만 이런 공부하는 애들이 많아지니 조금은 조용해진 것 같았다.
“승준이는 일단 이겼네.”
종수가 딱 이야기 들어보니까 자신과 누가 이길지 내기는 까먹은 게 틀림없다.
그건 그것대로 좀 분하지만, 어차피 이런 공부는 시하랑 붙어서 이기는 게 중요했다.
자신이 제일 잘하는 것에 질 생각이 없었다.
“종수야. 파이팅해.”
재휘의 작은 응원에 종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너도 잘해.”
그렇게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은우와 윤동만 좀 달랐다.
은우는 교과서 빈 곳에 랩 가사를 적고 있었다.
“푸하하.”
뭐가 그렇게 신났는지 혼자 웃기도 했다.
그 옆에 있는 윤동은 교과서도 꺼내놓지 않고 멍하니 창가를 바라보았다.
학습 평가에 그저 무관심했다.
정확히는 그렇게 열정적이지 않았다.
그런 교실의 풍경이 펼쳐질 때 담임이 들어왔다.
“자. 여러분~ 오늘 학습 평가의 날이에요.”
“네!”
“지금까지 잘 공부해서 다 익혀왔는지 확인하는 시간이에요. 모두 준비되셨죠?”
“아니요!”
아이들이 하나같이 준비 안 되어 있다고 하는 말을 담임은 한 귀로 흘렸다.
“네. 다 준비되어 있다고요?!”
“아니요!!”
“그럼 이제 학습 평가를 해 봅시다. 이건 자기가 얼마나 잘 익히고 어떤 걸 모르는지 알게 하기 위한 거기 때문에 옆 사람의 것을 훔쳐보면 안 돼요. 알았죠?”
“아니요!”
“훔쳐보면 선생님이 별 하나 가져갈 거예요.”
“안 돼요!”
선생님이 주시는 별 스티커는 중요했다.
많이 모을수록 어마어마한 선물을 준다고 했으니까.
문제는 그 선물 뭔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별 스티커를 중요시했다.
“자. 그럼 시험 시작해 볼까요? 먼저 책상을 띄워주세요.”
승준과 시하의 책상이 멀어졌다.
승준이 손을 뻗으며 시하에게 말했다.
“안 돼. 시하야. 이렇게 떨어질 수 없어!”
“승준아.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선생님은 생각했다.
아니. 그냥 책상 떨어뜨리는 게 그렇게 할 정도로 큰일이니?
누가 보면 남북으로 가르는 줄 알겠다.
“하나야.”
“응?”
연주가 비장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그리고 필통에 지우개를 하나 꺼내더니 그대로 두 개로 부쉈다.
그리고 하나의 손에 쥐여 주었다.
연주가 아련한 눈을 하며 말했다.
“다시 만날 날에 이 지우개를 맞춰보는 거야. 알았지?”
연주와 하나의 지우개가 퍼즐이 맞춰지듯이 꼭 맞았다.
“우리는 커서도 다시 만날 수 있어.”
“응. 연주야.”
선생님은 어이없이 두 사람을 보았다.
승준과 시하가 장난으로 했다면 연주는 그걸 유심히 봐서 연기 연습을 했다.
하나도 그 친구가 맞는지 당황하지 않고 받아주기는 했다.
근데 얘들아. 그냥 학습 평가 때문에 책상 떨어지는 것뿐이야. 다 끝나면 책상 원래대로 할 거라고.
이게 그렇게까지 할 일이야?!
“연, 연주야. 잘 쳐.”
재휘가 연주를 응원하는 그 순간 연기가 깨졌다.
정신이 돌아온 연주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응. 재휘도 잘 쳐.”
“으응. 고마워.”
“우리 같이 백 점 맞자.”
“응!”
재휘가 옆을 보면서 종수도 잘 치라고 말했다.
종수는 내심 좀 서운했다.
연주 보고 먼저 저 말을 했으니까.
“푸하하. 학습 평가! 학습 평가!”
은우가 웃고만 있자 윤동이 조용히 책상을 옮겨주었다.
“오. 윤동아. 고마워.”
“의자는 네가 움직여라.”
“푸하하! 알았어. 알았어. 빨리 움직이면 되잖아.”
은우가 의자에 앉은 채로 옆으로 질질 끌었다.
드르륵. 드르륵.
선생님은 그렇게 다양하게 책상을 떨어뜨리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어찌 된 게 책상 떨어뜨리는데 이렇게 다양한 양상이 나올 수 있는지 신기했다.
“자. 자. 그럼 다 떨어뜨렸으면 평가지 나눠줄게요. 모두 연필이랑 지우개는 꼭 꺼내세요.”
“네!”
“그럼 먼저 수학입니다.”
“아아아~”
수학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평가지를 배부했다.
아이들이 연필을 잡고 열심히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승준은 문제를 바라보았다.
[수영 선수가 대회에서 다음과 메달을 땄습니다. 가장 많이 딴 메달은 무엇일까요?]
[금메달 : 2개, 은메달 : 7개, 동메달 : 4개.]
[풀이 과정과 답을 써주세요.]
수학에서 어느 게 더 큰 숫자인지 물었던 문제의 응용 버전이다.
큰 것과 작은 것의 개념을 확인하는 문제.
그리고 풀이 과정을 적는 거에 따라 받아쓰기도 되는 문제였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어떻게 답을 쓰는지 지켜보았다.
먼저 승준.
[풀이 과정 : 사람들은 어차피 금메달 딴 사람만 기억하니까 금메달 개수만 기억한다. 그래서 답은 2개를 딴 금메달이다.]
[답 : 금메달]
선생님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게 답이 왜 그렇게 되는 거야…. 이걸 맞다고 해야 해? 아니면 아니라고 해야 해?
벌써 채점에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양궁 선수가 과녁에 점수를 맞혔다. 9점, 10점, 8점. 그럼 양궁 선수는 총 몇 점을 얻었을까?]
더하기 문제.
선생님은 이번에 시하의 답을 바라보았다.
일단 수영 선수는 문제는 은메달이라고 적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더하기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풀이 과정 : 9+10+8 = 19+8 = 27]
[답 : 27]
[근데 선생님. 형아라면 10점 다 맞출 수 있어요. 30점. 3 들어가니까 이게 더 좋은 문제인 거 같아요.]
선생님이 절레절레 저었다.
저기요? 시하야? 개인적인 그런 의견은 안 써도 되거든요?!
이게 시험인지 편지인지 모를 것을 적고 있었다.
잠깐?
그럼 수영 선수 문제에도 사족을 붙였을 거 아닌가?
[형아라면 다 금메달이니까 2+7+4는 13이에요. 13개 금메달. 3 들어가서 좋아요. 선생님 이건 3 들어가니까 좋은 문제네요.]
이게 대체 무슨 사족을 쓴 걸까?
아무리 문제 풀 시간이 충분하다고 하지만 이것까지 쓴다고?
어찌 된 게 학습 평가를 선생님이 받고 있다.
그건 그렇고 형아랑 3이 꼭 들어간다.
아무리 좋아해도 그렇지!
그래도 다른 강인 어린이집 출신 아이들은 괜찮게 풀고 있었다.
종수는 너무 쉽게 다 풀었는지 손을 들고 다 풀었다고 말했다.
“다 풀었으면 선생님이 거두어갈게요. 그리고 친구들 시험 치고 있으니까 조용히 있으세요.”
“네.”
재휘도 열심히 풀고 연주도 열심히 풀었다.
의외로 윤동도 그냥저냥 잘 풀어서 놀라게 했다.
마지막은 은우였다.
수영 선수 메달 문제를 보았다.
[풀이과정 : 금메달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난 그래도 포기하지 않아 the love ‘은’ 세상!
‘은’제부터 기억하게 될 거야.
내가 가진 위상! yo!]
[답 : 은메달.]
선생님은 풀이 과정을 보고 아연했다.
아니. 답은 맞는데! 맞긴 하는데! 풀이 과정이! 풀이 과정이! 이거 어떡해야 해!
아니, 틀렸다고 하자. 아니, 근데 비교는 했잖아? 금메달과 은메달을. 아닌가? 어? 비교하는 걸 보는 거니까 맞았다고 해야 하나? 어???
그래도 숫자를 비교해야 하니까 틀렸다고 하자. 세모다. 그래. 세모.
담임은 무슨 이런 답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리 답을 속으로 채점하느라 이상하게 강인 어린이집 출신 애들 주위를 자주 지나가게 되는 선생님이었다.
***
다사다난한 수학 학습 평가가 끝나고 아이들이 서로 모였다.
중고등학생들이었으면 답지로 OMR 카드를 냈겠지만 아이들은 시험지에 답을 적었기 때문에 맞춰보는 게 힘들었다.
승준이 시하에게 말했다.
“시하야. 너 잘 봤어?”
“응! 나는 진짜 잘 봤지. 아마 백 점 맞을 것 같아.”
“우와! 대박!”
“그럼 승준이는 잘 봤어?”
“응! 나도 답 엄청나게 잘 썼어. 백 점 맞을지도?”
“오! 대박!”
시하는 살며시 손뼉을 짝짝 쳤다.
그렇게 서로가 백 점 만점을 꿈꾸고 있을 때 종수가 시하에게 걸어왔다.
“야. 이시하.”
“응?”
“너 메달 문제 답 뭐라고 썼어? 은메달이지?”
“응. 나도 은메달이라고 썼는데?”
종수가 문제를 기억하며 답을 맞춰 보았다.
승준이 그 말에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어? 금메달 아니야?”
종수가 그런 승준을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바보야. 금메달은 2개뿐이잖아. 은메달은 7개고. 당연히 은메달이 많지.”
“헐? 아니지. 금메달만 기억하는데 당연히 금메달이 많은 거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개수를 물어보는 거잖아. 바보야.”
승준이 고개를 돌려서 하나를 쳐다보았다.
자신과 같은 동지가 필요했다.
“야. 하나야. 금메달 썼지? 우리 쌍둥이잖아.”
하나가 고개를 저었다.
“오빠. 은메달이잖아.”
“헐?”
승준이 왠지 모르게 배신당한 표정을 지었다.
종수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아. 내가 하나 더 맞췄네?”
“아직 안 끝났거든! 다음에 국어 남았거든! 그리고 네가 딴 거 틀릴 수 있잖아.”
“나는 이런 거 다 맞추지.”
승준이 종수의 그런 모습에 화가 났는지 시하의 손목을 잡았다.
“시하야. 다음 공부하자. 다음 공부!”
“응. 그리고 승준아. 괜찮아. 다음에 더 잘 맞추면 돼.”
“응.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어!”
그렇게 두 사람이 자리로 돌아가 교과서를 폈다.
국어 문제가 뭐가 나올지 모르지만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런 둘을 보며 종수도 살며시 불안감을 느꼈는지 스르륵 자리로 돌아가서 교과서를 폈다.
서로를 자극하며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런 셋과 상관없이 5명은 눈을 껌뻑일 뿐이었다.
연주가 재휘에게 말했다.
“재휘야. 백 점 받은 거 같아?”
“음. 모르겠어. 너무 어려웠어.”
“응. 나도 어려웠어.”
“정말?”
“응!”
“다행이다.”
재휘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연주는 그런 재휘를 싱긋 웃으며 보았다.
하나는 그런 둘을 지나쳐서 오빠에게 다가갔다.
“오빠. 나도 도와줄게.”
“나는 동생한테 도움 안 받아. 저리 가.”
“으이구. 그럼 이거 많이 틀리면 앞으로 나보고 누나라고 불러.”
“그건 싫어!”
그런 승준의 반응에 시하가 한마디 했다.
“동생이 좋은데.”
물론, 이건 지극히 시하의 개인적인 의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