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아, 나 귀엽지 외전-43화 (468/500)

외전 43화 학습 평가 (1)

5월이 가정의 달이라면 6월은 학습 평가의 달이라고 한다.

1학년에게 시험은 없지만 사실 평가가 시험이나 마찬가지다.

100점 맞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까지 배웠던 걸 잘 익혔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음 주 월요일에 학습 평가가 있을 예정이에요. 지금까지 공부했던 내용들을 평가하는 문제를 낼 거니까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요.”

“네!”

기습적으로 평가지를 낼 수도 있었지만, 선생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렇게 날짜를 잡는 건 중요하다.

혹시 공부가 부족했던 아이들이 더 공부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이미 공부했던 아이들이 복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까.

얼마나 맞았냐, 틀렸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럼 모두 점심 맛있게 먹고 방과 후 교실에서 볼게요.”

“네!”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떠나가자 승준이 벌떡 일어나서 시하에게 다가갔다.

“시하야. 빨리 밥 먹으러 가자.”

“응!”

시하는 교과서를 책상 위에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준이랑 급식실로 가면서 학습 평가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시하야. 학습 평가 자신 있어?”

“나는 자신 있는데.”

“와! 시하 공부 열심히 했어?”

“응. 나는 형아랑 맨날 열심히 해. 숙제도 열심히 형아한테 검사받아.”

승준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자신의 엄마처럼 숙제를 검사하는 이미지인 줄 몰랐으니까.

“시혁이 형도 엄마처럼 검사하는구나.”

“아닌데. 그냥 내가 다했다고 보여주는 건데?”

“응? 그걸 왜? 굳이?”

시하는 숙제를 다 하면 형아가 꼭 봐주어야 한다.

자신이 열심히 한 걸 자랑하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똑똑한 형아라서 틀린 게 있으면 가르쳐주기도 한다.

형아랑 함께 공부하는 느낌!

시하는 그걸 원하기 때문에 숙제 검사를 받치는 것이다.

반면에 승준은 숙제했는지 안 했는지 검사받는 게 싫었다. 숙제보다 사커를 더 많이 하고 싶었다.

승준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숙제 없어졌으면 좋겠다~”

“왜? 승준이도 나처럼 엄마랑 같이해.”

“그게 더 싫어!”

승준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실시간 감시라니 그것만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때 뒤에서 그걸 듣고 있던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나는 괜찮은데? 오빠는 너무 숙제 안 하려고 해서 탈이야. 나처럼 미리미리 하면 나중에 놀 수 있잖아.”

“일단 놀고 숙제는 나중에 하는 게 좋지.”

“아니야. 숙제하고 노는 게 더 좋아. 나 놀 때 오빠는 엄마한테 잡혀서 맨날 숙제하고 있잖아.”

“야. 그러면 밝을 때 사커해야지 밤에는 못하잖아.”

“그럼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하면 되지.”

“안 돼. 잠은 보약이랬어.”

의외로 승준이도 승준이만의 생각이 있었다.

물론 사커하고 지친 몸으로 숙제하는 건 힘들지만 말이다.

하나가 연주를 보았다.

연주는 뒤에서 재휘랑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재휘야. 학습 평가 잘 봐야 해. 알았지?”

“응? 으응. 열심히 할게.”

“누가 이길지 내기할래?”

“어?”

“이기는 사람에게 소원 들어주기.”

“소원이 뭔데?”

“그건 평가받고 이야기해 줄게.”

뭔가 알콩달콩한 이야기였다.

하나가 그런 연주에게 팔짱을 꼈다.

“연주야!”

“응? 왜?”

“너는 숙제 미리 하지?”

“나? 나는 미리 하지.”

“역시 연주야. 봐봐. 오빠. 연주도 미리 한다고 하잖아. 재휘야. 너도 미리 하지?”

“으응. 나도 미리 하는데.”

승준이 그런 친구들을 보며 배신당한 표정을 지었다.

종수가 그 모습을 보며 킥킥 웃었다.

“야. 숙제 좀 미리 해. 그러니까 네가 사커만 잘하는 거야.”

“아닌데. 나 다 잘하는데.”

“나보다 공부 못하잖아.”

“와. 어이없네. 그럼 다음 주에 비교해 보자.”

비교하는 시험이 아닌데 아이들은 이미 경쟁을 시작하고 있었다.

시하도 문뜩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나도 백 점 받을래.”

종수가 그런 시하를 경계했다.

“이시하. 너도 나랑 붙으려고?”

이시하가 먼저 이렇게 승부를 거는 건 아주아주 드문 일이었다.

종수는 이미 머릿속에서 학습 평가를 위해 엄청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을 불태웠다.

이런 승부 놓칠 수 없었다.

하지만 시하는 그런 종수의 불타는 마음에 응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형아가 좋아해 줬으면 싶어서 그런 건데?”

아, 너랑 경쟁은 관심 없고 형아가 기뻐해 줬으면 좋겠다.

그런 말이었다.

종수는 타오르던 경쟁심이 스르륵 사그라지는 것을 느꼈다.

괜히 뭔가 부글부글 끌었다.

“야! 뭐 나는 신경 안 쓰냐!”

“???”

“어휴. 됐다. 됐어.”

“종수야. 너도 엄마 기쁘게 하면 되지. 그럼 신경 쓴 거지?”

“그 말이 아니야! 네가 날 신경도 안 쓰냐는 말이거든!”

“??? 나 종수랑 이야기하고 있는데? 신경 안 썼으면 이야기 안 했지.”

“그 말이 아니야!!”

오늘도 어딘가 어긋나버린 대화가 급식실 앞 복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느새 기다리던 줄이 줄어들고 식판을 받았다.

시하가 즐겁게 식판을 들었다.

“아! 밥 먹고 이야기하자.”

“야!”

시하는 밥을 받아서 맛있게 한 입 먹었다.

종수는 답답하다는 듯이 고구마 맛탕을 포크로 콕 찍어 먹었다.

어찌 되었든 평화로운 초등학교의 한때였다.

***

시하는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신발을 벗어서 가지런히 돌려놓았다.

“다녀왔습니다.”

나 역시도 집으로 들어왔다.

언제나 태권도에서 돌아올 때쯤 마중을 나와서 시하를 데리고 온다.

과잉보호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집 앞에서 오는 사이에 이상한 사람이 있을지 어떻게 알 것인가.

예전이라면 이런 것에 신경 쓰지 않겠지만 어머니들과 이야기하면서 세상에는 실종된 아동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았다.

CCTV는 그저 범행이 이뤄지고 난 후에 사용되는 것이다.

없어지고 나면 부모님들은 가슴을 졸이며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

그런 일이 일어날 바에야 이렇게 조금 몸이 힘들더라도 마중 나오는 게 낫다.

그리고 요 앞에 나가는 건데 큰 힘이 드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어~ 왔어? 맛있는 건?”

삼촌이 시하를 반겼다.

요즘 매일 올 때마다 맛있는 거 사 왔냐고 묻고 있었다.

“없어! 그리고 삼촌이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사면 되잖아.”

“아니. 내가 고르러 가면 다 맛없어 보이는데 시하 네가 고르면 왠지 맛있어 보인단 말이야.”

“삼촌. 그거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하는 거야. 나 다 배웠어.”

“오! 근데 나는 남의 것보다 시하가 먹는 것만 맛있어 보이던데? 난 뺏어 먹을 때가 제일 맛있더라.”

나는 솔직히 삼촌의 저런 모습을 보면 감탄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다양하게 놀릴 거리를 생각할 수 있지?

이미 맛있는 거 사 왔냐고 물어볼 때부터 빌드업이 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삼촌이 소파에 널브러져 있으면서 시하에게 손을 뻗었다.

“가방을 보여줘. 거기 맛있는 냄새가 난다.”

“안 돼!”

시하가 가방을 벗어서 품에 꼬옥 안았다.

뒤로 뒷걸음질 치며 가방을 사수했다.

“오! 정말 맛있는 거 있나 본데?”

“이거 아껴먹으려고 했단 말이야.”

“딱 보니까 오늘 급식에서 나온 초코 머핀이겠네.”

시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삼촌. 어떻게 알았어?”

삼촌이 스르륵 일어났다.

웃음을 보이며 시하에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다가갔다.

시하는 그런 삼촌의 모습에 뒷걸음질 쳤다.

“흐흐흐. 냉장고에 붙은 거 다 봤지.”

냉장고에는 이번 달 학교 급식표를 붙여놓았다.

오늘은 시하가 뭐 먹을지 눈에 보이는 게 좋아서 붙여둔 건데 삼촌이 저렇게 체크하고 있는 줄 몰랐다.

역시 대단하네. 시하를 놀리기 위해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준비할 줄이야.

“빨리 줘!”

“아, 안 돼!”

시하가 엎드려서 가방을 사수했지만 삼촌의 손은 집요했다.

가방을 뺏는 게 아니라 지퍼를 열어서 손을 넣었다.

시하도 삼촌의 기발한 방법에 놀랐다.

손목을 잡아서 막으려고 했지만 힘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부스럭. 부스럭.

봉지 구겨지는 소리가 나더니 그대로 초코 머핀을 들어 올렸다.

“하하하! 이제 이 초코 머핀은 내 거다. 이런 맛있는 걸 아껴먹는 타입이라니. 이러니까 뺏기는 거야. 하하하.”

“이익! 내놔!”

시하가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지만, 천장에 들어 올린 초코 머핀을 뺏을 만큼 크지 않았다.

삼촌이 살며시 머피를 내렸다.

시하가 점프할 때 다시 들어 올렸다.

그리고 다시 내렸다가 올렸다가.

반복의 연속이었다.

닿을 듯 말 듯 한 모습에 시하가 볼을 부풀렸다.

나는 조금 감탄이 나왔다.

그 와중에 더 놀리려고 저렇게까지 하다니.

하지만 이쯤에서 시하를 도와줘야지.

“삼촌. 저 초코 머핀 좀 보세요.”

“응? 왜?”

삼촌이 비닐에 쌓인 초코 머핀을 보았다.

“어? 이게 뭐야!”

이미 쥐가 갈아먹은 듯이 초코 머핀의 윗부분이 몇 개 파여 있었다.

삼촌이 시하를 바라보았다.

“에라이! 이미 쫌 먹었네. 근데 왜 쥐 파먹었어!”

시하가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먹다가 배불러서 다시 싸 왔어. 잘했지?”

“잘하기는. 남으면 버려야지.”

“버리면 아깝잖아. 나중에 다 먹을 거야.”

“그래. 너 많이 먹어라.”

삼촌이 김샜다는 듯이 시하에게 초코 머핀을 던져 주었다.

나는 대체 뭘 위해 저렇게 놀린 건지 모르겠다.

이거면 시하가 이긴 거려나? 판정이 좀 어렵게 되었다.

삼촌이 나를 돌아보았다.

“근데 시혁이 여전하네. 그 와중에 머핀이 저 상태인 걸 보고.”

“뭐, 그냥 보이던데요.”

눈썰미 하나는 자신이 있어서 말이죠.

나는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남긴 거 안 버리고 가져왔구나. 똑똑하네.”

“응. 딴 거는 버려도 이거는 안 버릴 수 있으니까.”

“그럼. 그럼. 낭비 안 할 수 있으면 좋지.”

시하가 초코 머핀을 내밀었다.

“그리고 형아. 이거 맛있어. 같이 먹을까?”

“아니. 그건 좀.”

아무리 그래도 내가 저걸 먹기는 좀 그랬다.

“그럼 나 혼자 먹어야지. 진짜 맛있는데~”

그럼. 맛있겠지. 맛은 있겠지. 그런데 네가 먹은 흔적이 나를 막았어.

시하가 냠냠 초코 머핀을 먹었다.

그리고 머리에 당이 들어가니 뭔가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아! 형아. 나 엄청 바쁜데. 삼촌이 놀려서 깜빡했어.”

“응? 뭐가 바빠?”

“나 다음 주 월요일에 학습 평가 있대.”

“학습 평가?”

“응! 그래서 나 공부해야 해. 엄청 열심히 할 거야.”

벌써 시험 공부 모드라니.

어쩌면 우리 시하는 공부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닐까? 나중에 하버드생이 되어서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하고 말하는 거 아닐까?

이렇게 어릴 때부터 자발적으로 열심히 하려고 하다니. 세상에 이런 초등학생 1학년이 어딨을까 싶다.

“시하야. 엄청 좋은 점수 받고 싶구나?”

“응! 좋은 점수 받아서 형아 기쁘게 할 거야.”

“크흑.”

나 기쁘게 하려고 공부하는 거야?

그 마음이 참 기특하다.

“근데 시하야. 원래 그런 평가는 내가 기쁜 거지, 형아가 기쁜 게 아니야.”

“응? 형아 시하가 좋은 점수 받으면 안 기뻐?”

“아니. 기쁘긴 하지.”

아마 시하 백 점 맞았다고 모두에게 자랑하고 있지 않을까?

“그럼 백 점 맞을래!”

“꼭 백 점 안 맞아도 그 마음만으로 기뻐.”

“정말?”

“응. 정말. 아. 진짜 귀엽다니까.”

나는 시하를 안아서 얼굴을 비볐다.

말랑말랑.

아직도 어려서 볼살이 말랑했다.

그런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삼촌이 찬물을 부었다.

“아주 똥 싸고 있네~”

가끔 한 번씩 의심이 든다.

삼촌은 외국인이 맞는 거겠지?

시하가 내 품에서 빠져나와 삼촌에게 말했다.

“삼촌은 백 점 맞은 적 있어?”

“당연하지. 나는 최고 엘리트거든.”

“???”

시하가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삼촌. 맨날 집에서 소파에 누워 있고 티비만 보는 게 엘리트야?”

“…….”

이번에는 내가 시하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삼촌을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멈춰!

시하야. 팩력배 모드 멈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