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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 나 귀엽지 외전-40화 (465/500)

외전 40화 학부모 공개 수업 (1)

시하에게 편지를 받았다.

어버이날 편지를 말이다. 엄마, 아빠에게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도 있었다.

이제는 마냥 어리지 않아서 엄마, 아빠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엄마,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도 말이다.

삼촌은 삼촌이라는 말에 뭔가 웃음이 나왔지만 그래도 좀 씁쓸한 기분이었다.

커간다는 건 왜 이리 쓴맛이 포함되는지 모르겠다.

단맛만 났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형아. 바바. 내가 영어로 말해줄게.”

“그래. 그래.”

시하가 삼촌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다.

“삼촌! 삼촌도 들어!”

삼촌이 귀찮다는 얼굴로 배를 벅벅 긁으며 걸어 나왔다.

“뭘 또 한다고. 아니. 어버이날이면 어버이가 왕 아니야? 무슨 자기가 왕이야. 왕.”

“나는 왕자야. 형아는 왕.”

“그럼 나는?”

“삼촌은 내시?”

“야!”

“옆에 내시 있는 거 아니야?”

“너. 내시가 뭔지 알고 말하냐?”

“나 알아. 사극에 나오는 사람이잖아. 왕의 말 들어.”

“딱 그 정도만 알 줄 알았다.”

“???”

뭐 본의 아니게 내시라고 했지만 욕은 아닐 것이다.

아니지. 욕이 맞나?

“자. 빨리 여기 앉아.”

“어휴.”

시하가 영어로 자기가 적은 걸 열심히 말했다.

다시 들어도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오는 편지였다.

만약 이 글을 신춘문예에 낸다면 대상을 받을 정도.

시로 내도 좋을 것 같았다.

이 얼마나 애절하고 감동이 스며든…….

“나는 왜 삼촌이고 시혁이는 왜 엄마, 아빠야? 굳이 따지자면 내가 아빠지.”

삼촌이 산통을 다 깬다.

역시 저 부분을 걸고넘어진다.

사실 저렇게 반응할 줄 알았다.

근데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삼촌은 삼촌이지.

“삼촌은 삼촌인데 왜 삼촌이 아니라고 하면 삼촌이 삼촌이라서.”

“아! 나도 알거든. 그래도 내가 아빠 역할은 하지 않아?”

“아니. 삼촌이 아빠라면 돈 벌어야 되고 집에 와서 나랑 많이 놀아줘야 하고 티비도 그렇게 많이 안 봐야 돼.”

“좋아. 근데 드라마 많이 보니까 엄마는 내 역할 아니야?”

“삼촌이 엄마라면 밥도 해야 하고 청소랑 빨래도 해야 해.”

“밥은 모르겠는데 청소랑 빨래는 내가 하잖아.”

“근데 형아가 다 개잖아.”

“그건 시혁이가 나한테 이상하게 갠다고 해서 뺏기니까 그렇지. 그래도 양말은 잘 갠다.”

“양말은 나도 개는데?”

“그래. 나는 삼촌이다!”

의외로 논리적인 말에 다 격파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뭔가 보이는 포지션이 역할을 맡았기에 애매하기는 하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로 잘 나눌 수 있다는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엄마, 아빠의 이야기가 조심스러웠다면 지금은 시간이 흘러서 그런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언젠가 엄마는 이런 사람이었고 아빠는 이런 사람이었다고 추억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친아버지에 대해서는 좀 더 개선이 많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미술 선생님으로서는 그래도 좀 친해진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 맞다. 형아. 이거 받았어.”

“응?”

시하가 책가방에서 프린트를 꺼냈다.

[공지사항- 스승의 날 휴교]

[스승의 날에 작은 선물이나 음식 같은 것을 주시는 분들이 많았으며 잡음도 있었기에 저희 강인 초등학교는 매년 스승의 날에 휴교를 합니다.]

음. 이런 게 있는 줄 몰랐다.

하긴 학생들이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초등학교는 어머니들이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하니까.

‘그래도 태권도는 쉬지 않겠지?’

뭐 학교를 쉬면 아이들이야 좋겠지만 부모로서는 곤란한 심정일 게 틀림없다.

근데 이런 공지사항을 기분 좋고 감동적인 어버이날에 넣어두다니.

충격이 덜하게 만드는 노림수인 것 같았다.

뭐, 처음 입학 설명회 때 이 내용도 있었던 것 같지만.

“형아. 뭐 적혀 있어?”

“스승의 날에 학교 안 와도 된대.”

“아싸! 그럼 형아랑 아침부터 논다!”

“그러게.”

프리랜서라서 기본적으로 일이 조율되긴 하지만.

아무래도 번역 일을 빨리 서둘러야겠다.

그날 일을 미리 해둬야겠다.

“근데 또 있네.”

프린트물은 이게 하나가 아니었다.

[학부모 공개 수업]

[학부모 참관은 2교시만 볼 수 있으며 수업 중 촬영은 금지입니다.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세요.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밑에 동의를 체크해서 가져와 주세요.]

공개 수업이라. 초등학생 때는 이런 것도 있었지. 그런데 나중에 크면 기억 안 나기는 할 것 같았다.

사실 아이가 어떻게 학교에서 공부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니까.

태권도 심사 보러 가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근데 왜 난 가지도 않았는데 알 것 같지?

특히 강인 어린이집 출신 애들이 있으니 교실 풍경이 충분히 그려진다고 할까?

“형아. 그건 또 뭐야?”

“학부모 공개 수업이라고 올지 말지 물어보는데. 형아는 안 가도 되지?”

“아니. 와야 해.”

“꼭?”

“응. 꼭 와야 해.”

“형아한테 매일 학교 이야기 잘 말하잖아.”

“그거로 안 돼. 봐야 해.”

“아. 형아가 꼭 시하 어떻게 수업받는지 봐야 해?”

“아니. 내가 형아를 봐야 해.”

아. 그렇구나.

학부모 참관하는 건데 오히려 네가 학부모를 보고 있어야 하는 거니?

시하 잘 보고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야 하나 보다.

이게 원래 그런 취지에서 하는 건가?

“형아랑 같이 학교 다니고 수업 듣는다!”

아무래도 나랑 같이 학교 다니고 수업 듣는 게 좋은가 보다.

괜히 저 기분에 찬물을 끼얹어야 해서 미안하다.

“시하야. 2교시만 보는 건데?”

“왜?”

시하가 충격받은 표정을 짓는다.

원래 그런데 왜라고 물어보면 곤란하거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너무 오래 있으면 선생님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이제 친구들도 다른 엄마, 아빠도 있으니까 부담스럽기도 하겠지.”

“아니야. 안 부담스러워 내 친구들 다 형아 알아.”

그래. 네가 하도 자랑해서 다들 날 알겠지!

그렇다고 편하다고 하면 아닐 것이다. 아, 물론 승준이나 하나, 종수 이런 애들은 다르긴 하겠지만 말이다.

“선생님이 많이 부담스러우실 거야.”

“아니야. 선생님도 형아 이야기 많이 들었어.”

너 대체 나를 왜 이렇게 퍼뜨리고 다니는 거야?!

오히려 저러니까 내가 부담스럽다. 가기 싫어지는데?

“흠흠. 아무튼, 형아는 2교시만 보고 갈게. 학교에서 정한 거니까 지켜야지.”

“알았어. 근데 형아.”

“응?”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이 정하잖아.”

“???”

“교장 선생님한테 내가 형아만 들으라고 몰래 말해 볼까?”

그렇게까지 할 일이야?

나중에 학생회장이 된다면 다 뜯어고쳐야 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뭐, 그렇게는 안 되겠지만.

“그래도 안 돼요.”

그렇게 말하고 있을 때 삼촌이 끼어들었다.

“시하야. 삼촌은 안 가도 되냐?”

“응.”

무슨 대답을 기대했을까?

삼촌이 저런 대답을 들을 줄 알 것인데.

“야. 삼촌이 카메라도 들고 갈 건데?”

“삼촌. 삼촌은 안 돼. 삼촌은 친구들한테 비밀이야.”

“너…. 삼촌이 부끄럽냐?”

어딜 내놔도 부끄러운 삼촌인 건가.

근데 음. 저렇게 시하 놀리는 면을 남에게 보여주기에는 좀 부끄럽기도?

그런데 의외로 시하가 부정했다.

“아니. 안 부끄러운데.”

“그럼 왜!”

“삼촌이 추리닝 차림으로 오면 좀 그렇잖아.”

“추리닝 차림으로 올까 봐 거절한 거야?”

“응.”

“그게 부끄러운 거잖아. 안 되겠다. 나는 특히 추리닝 입고 가겠어! 시혁아. 선생님에게 나도 간다고 연락 넣어.”

“아! 아! 안 돼!”

그…. 삼촌. 슬리퍼 딸딸 신고 추리닝 입은 외국인 아저씨랑 같이 학교로 가는 건 저도 부끄럽거든요?

학부모 공개 수업 무사히 끝날 수 있겠지?

벌써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

“오빠. 나왔어요!”

서수현이 차에 탔다.

카페 마감 시간에 맞춰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자주 이러고 싶은데.

나한테 우선순위가 시하이다 보니 서수현이 뒤로 밀리는 게 미안했다.

“많이 기다렸어요?”

“아니. 별로 안 기다렸어.”

“이왕이면 많이 기다렸다고 해주세요.”

“사실 어젯밤부터 잠복하고 있었는데.”

내 별거 아닌 말에 서수현이 꺄르륵 웃었다.

이게 그렇게 웃긴 말도 아닐 텐데 말이다.

“아. 혹시 이거 볼래?”

나는 시하가 내게 써준 편지를 건넸다.

“응? 어? 이거 뭐예요? 혹시 나한테 주는 편지?”

“아니. 시하가 나한테 주는 편지.”

“아, 뭐야. 엄청 설렜잖아요.”

다음에 편지라도 써줘야겠다.

예쁜 편지지를 찾아서 써주면 마음에 들어 하겠지?

의외로 이런 감성을 좋아하나 보다.

“어디 보자.”

서수현이 시하의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뭔가 울컥한 모습도 보이고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도 보이고 상냥하게 웃는 모습도 보인다.

한 얼굴에 어떻게 저런 다양한 모습이 나타날 수 있지?

언제나 보는 거지만 신기하다.

“시하가 벌써 이만큼 자란 것 같아.”

“그러게요. 언제 이렇게 자랐지?”

서수현이 또 읽는지 편지를 바라보았다.

“너무 편지만 보는 거 아니야?”

“???”

“같이 있는 시간 얼마 안 되는데.”

“?!?!”

서수현이 편지를 고이고이 접어서 봉투에 넣는다.

그리고 폰을 꺼낸다.

“와. 오빠. 편지에 질투하는 거 기록해 둬야지.”

“푸흡. 무슨 기록까지 해.”

“왜요. 이거 아주 드물다고요. 오빠가 질투할 일이 어디 많아야죠.”

“왜? 나도 질투하는데.”

“언제요? 말해 보세요.”

“아마. 카페에서 누가 너한테 번호 물어봤다고 하면 질투심이 솟을걸?”

“오늘 100명이 물어봤어요!”

“푸핫!”

“아, 왜 웃어요! 질투한다면서!”

“아무리 그래도 100명은 너무하잖아!”

하루에 100명이 번호 물어볼 정도면 장사가 제대로 될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저 카페는 디저트 때문에 인기 있는 편인데 일이 바쁘다.

그걸 무시하고 하루에 100명이 번호 물어보다니. 얼마나 민폐인가.

그래서 질투심보다는 웃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차라리 오늘 한 명이 번호 물었다고 하지.

“그럼 50명?”

서수현이 손가락 다섯 개를 펼치는데 너무 웃겼다.

왜 진지한 얼굴로 말하냐고.

“야. 50명도 너무 많아. 아 진짜.”

서수현의 이런 엉뚱함이 오늘 하루에 활력이 되는 것 같다.

좋은 기운이 나눠진다.

내가 많이 웃겨야 하는데. 내가 많이 줘야 하는데.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고마워.”

“뭐가요?”

“그냥 전부.”

“맨날 전부 고맙대.”

서수현이 입술을 삐죽였다.

나는 그런 서수현의 입술 가까이에 다가갔다.

쪽.

“?!”

“왜? 이거 아니야?”

“어? 아니. 이거 아닌데.”

“나는 그건 줄 알았는데.”

“아니요. 쪽이 아니라…….”

“크흠. 이거, 이거.”

“크흠흠. 왜요! 나만 좋나?”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긴 하다.

개구리의 반격이 오늘은 좀 강력하네.

“출발해야겠다.”

“앗!”

나는 차를 출발시켰다.

“여기 계속 있을 수 없잖아.”

“그래도 답은 해줘야죠.”

“50명이나 번호 물어보다니. 그 자식들 누구야. 내가 당장!”

“아니. 그 답 말고! 조금 전에 있잖아요! 그 중요한 거.”

“그냥 내 상황 다 이해해 줘서 고맙다는 거지.”

“오빠. 일부러 부끄러워서 피하시는 거죠? 아니지. 또 놀리려고 그러네.”

뭐 서수현 반응이 너무 재밌어서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부끄러운 건 아닌데 다른 이유도 있었다.

만약 서수현이 바랬던 걸 했다면 이 차가 언제 출발할지 모르게 됐을 거니까.

“벌써 집이네요.”

서수현이 아쉽다는 듯이 차에서 내렸다.

뭐 가까운데 사니까 어쩔 수 없다.

나도 차에서 내렸다.

“오빠는 왜 내려요? 빨리 집에 가요. 벌써 시간 늦었다. 내일 일찍 일어나서 시하 밥 차려야 하잖아요.”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까 못 했던 답 하려고.”

“?!”

“눈 감아.”

사람의 온기는 왜 이리 따뜻한 걸까?

왜 누군가와 닿는 부분이 이리도 뜨거운 걸까?

끌어안는 무게감이 이리도 안정감을 준다.

떨어지기 싫을 정도로.

나는 서수현과 얼굴을 떨어뜨렸다.

“내가 더 좋아해.”

‘나만 좋나?’의 답.

이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서수현은 귀가 빨개진 채 가만히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우리는 그렇게 가만히 한동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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