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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 나 귀엽지 외전-36화 (461/500)

외전 36화 태권도 심사 (1)

방송이 끝나고 나서 짤막하게 시하의 짤이 돌아다녔다.

개인기 ‘헛소리 하지망. 임망.’부터 시작해서 모창인 ‘너는 뭥청히~’까지.

사람들이 귀엽게 본 장면이었다.

그리고 삼촌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인지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명언이 탄생했다.

[100만 원만큼 일 안 해도 되니까 시하랑 하루 종일 놀아줘야 해요.]

100만 원으로 형아의 시간을 사려는 모습에, 방송에 후원 기능이 있었으면 바로 보냈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만큼 시하의 어린 마음이 귀여웠던 것이다.

[바늘 도둑이 실 도둑 된다!]

이것 역시 어떻게 보면 정답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정답은 아닌데 맞는 말.

이런 반응들을 보였다.

그 외에도.

[한 번만 더 내주면 안 돼요?]

[형아는 노트북으로 일하니까 이거 주면 일 많이 하게 돼요. 그래서 안 줄 거예요.]

이런 귀엽고 기특한 말들이 미소를 짓게 했다.

전체적으로 버릴 부분이 거의 없었는지 대부분 방송에 나갔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제일 크게 충격받은 건 역시 시하의 그림 실력이었다.

이미 너튜브에서 공개된 영상이었지만 안 본 사람도 많아서 완성본이 정말 시하가 한 거야? 하는 반응들이 대다수였다.

천재라는 말도 곧잘 나왔다.

아무튼, 이런 부분이 화제가 되었는데 친구들의 관심은 시하의 그런 면이 아니었다.

“시하야. 진짜 내 이름 말해줬구나! 다들 나 사커 선수 되는 거 알겠어.”

“응. 내가 말했다고 했잖아.”

“알고는 있었는데 사커 선수 될 거라는 거 말할 줄은 몰랐지. 그냥 사커 좋아한다고 할 줄 알았지.”

“나중에 유명해져서 이거 결국 나왔다고 하면 재밌겠다.”

“오! 진짜 재밌겠다.”

옆에 있는 하나도 신나서 말했다.

“나도 아이돌 되면 이거 자료로 나갈지도 모르겠어.”

“하나는 열심히 하니까 무조건 되지.”

“히히! 시하 최고다. 이제 다들 방송국에 섭외됐으면 좋겠다.”

“같이 가서 또 찍으면 재밌겠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원래 이런 상상은 한 번쯤 해보는 법이다.

연주는 옆에서 하나의 손을 잡았다.

“하나야. 빨리 아이돌 돼.”

“응. 열심히 할게. 하나는 근데 아직 너무 작아서 빨리 못 돼. 배우는 아역 배우 있는데 아이돌은 아역 아이돌 없잖아.”

“그건 그래. 나중에 아이돌 돼도 나랑 같이 드라마 찍으면 좋겠다.”

“와. 진짜 좋겠다!”

그때 종수가 시하에게 다가왔다.

“야. 이시하!”

“???”

“너. 너. 너 왜 내 꿈을 모르냐. 어?! 왜 나만.”

“종수야. 종수는 공부 잘하니까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거지. 꿈을 모르는 게 아니야.”

“그런 거지?”

“근데 꿈이 뭐야?”

“야! 모르는 거 맞잖아!”

종수는 시하의 말에 부들부들 떨었다.

설마 자신의 꿈을 모를 줄이야. 다른 친구들은 다 알면서 왜 자신은 모른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자기가 꿈을 이야기해 줬는지 안 해 줬는지도 헷갈렸다.

“그래서 종수는 꿈이 뭐야?”

“나는 당연히 선생님이지. 아니면 아빠처럼 교수가 되고 싶어.”

“응. 알았어. 다음에 방송 나가게 되면 꼭 말해 줄게.”

“이미 늦었어!”

“그래도 종수 이야기 제일 많이 했는데.”

“그건. 음. 고맙다.”

시하가 저렇게 말하니 종수는 할 말이 없었다.

실제 방송에서도 자기를 가장 많이 언급했으니까.

사실 그것보다도 시하가 자신의 꿈을 몰랐다는 것에 발끈한 거지만 종수는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시하가 노린 건 아니었지만 말이 교묘하게 핀트가 엇나가게 되었다.

“시하야.”

은우가 시하를 불렀다.

“랩은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응?”

“다음에 더 잘했으면 좋겠어.”

“나 랩 안 했는데?”

“아, 그래? 푸하하. 너무 빨리 말해서 랩이라고 하길래. 하긴 시하가 랩을 안 했구나. 미안. 그럼 다음에 랩으로 열심히 소개하는 것도 만들자. 푸하하.”

“???”

이야기는 뜬금없는 랩으로 끝이 났다.

***

아이들의 화제는 수시로 바뀐다.

학교에서 시하의 방송으로 한참 떠들다가 태권도장에 올 때쯤에 시들시들해진다.

그렇지만 언제나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법이다.

방송이 시하만의 이야기였다면 모두가 겪는 거대한 이벤트가 찾아왔다.

“시하야. 너 연습 많이 했어?”

승준의 말에 시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연습을 말하는지 감을 잡지 못했다.

“형아 연습?”

“그건 무슨 연습인데?”

시하는 혹시나 형아처럼 다 잘해지는 연습을 말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노란 띠로 가는 승급 시험 말이야.”

“아! 태권도 노란 띠!”

태권도 승급 심사.

아직 흰 띠인 애들이 노란 띠로 승급하기 위해 지금까지 배워왔던 걸 해야 한다.

시하가 이제 기억났다는 모습에 승준이 궁금증이 생겼다.

“혹시 형아한테 말 안 했어?”

“까먹었어. 관장님이 프린트도 줬는데 형아한테 알림장만 보여줬어. 숙제도 뭐 있다고 보여주고.”

“까먹을 수 있지. 우리 숙제 엄청 많았잖아.”

참고로 숙제가 수학익힘책 2페이지 풀기였다.

두 페이지라도 많아 보일 것 같은데 문제 개수를 봤을 때 전혀 많지 않았다.

아무리 늦는 아이라도 30분이면 다 풀 수 있었다.

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숙제 많았지.”

초등학교 오기 전까지 숙제가 자주 없었던 아이들에게는 많은 편이기는 했다.

상대적으로 비교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럼 시혁이 형아는 모르겠네? 이거 보러 와야 하는데.”

“맞아. 형아가 보러오면 잘해야 하는데.”

“???”

승준의 질문과 시하의 대답이 어긋났다.

시하의 생각으로는 형아가 무조건 올 거니 잘 보여야 한다는 대답이 튀어나온 것이다.

시하의 생략 화법.

머리와 꼬리가 잘린다는 점에서 가끔 말이 어긋나기도 한다.

하지만 승준은 이미 그 화법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우리 오늘 열심히 연습하자.”

“그래. 근데 시하는 다 외웠지? 나는 다 외웠는데.”

“나도 다 외웠어.”

아직 학교는 시험이 없는데 태권도는 시험이 있었다.

두 개의 시험 중 차이점이 있다면 학교는 점수로 등수가 새겨진다면 태권도는 기준점만 통과하면 노란 띠를 받는다.

남들과의 경쟁이냐, 나와의 경쟁이냐의 차이가 있다.

띠가 바뀌니 아이들에게 좋은 동기부여도 된다.

시하가 자신의 흰 띠를 보았다.

“빨리 빨간 띠 되고 싶다.”

시하는 다양한 색들을 좋아하지만 그중 빨간색이 가장 멋지다고 생각했다.

“나는 흰 띠도 좋은데 검은 띠 따고 싶어!”

“그러면 검은 띠만 매겠네?”

“아니. 흰 띠랑 검은 띠랑 두 개 다 맬 거야. 그러면 사커공이잖아. 푸하하.”

“근데 도복이 하얀색이니까 검은 띠만 매도 사커공 색깔인데?”

“!!!”

시하의 지적에 승준이 거대한 깨달음을 얻은 얼굴이 되었다.

“시하 넌 천재야!”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하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오빠는 대체 왜 사커 바보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커를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모든 걸 사커로 연관시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나는 노란 띠 좋다고 했지?”

“응. 노란색 상큼하잖아. 레몬색이야.”

“근데 레몬보다는 개나리색 같은데.”

“개나리도 예뻐서 좋아.”

아이들이 그렇게 떠들고 있을 때 관장님이 나타났다.

이제 충분히 애들이 떠들고 놀았으니 태권도를 할 시간이다.

“모두 제자리로!”

아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자기 자리를 찾았다.

이제는 태권도장에 익숙해져서 해야 할 때를 알았다.

이 시간에는 딱 자리를 잡기.

“자. 이제 심사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혹시 보러 오실 부모님들이 계시면 와도 된다고 전해 주세요. 알았죠?”

“네!”

“오늘은 심사 때 할 격파 연습을 하겠습니다.”

“격파요?”

“네. 여기 송판을 격파하는 겁니다.”

아주 얇은 송판.

아이들이 이런 것도 좋아하지만 어머니들도 좋아한다.

멋있게 격파하면 박수가 나오는 것이다.

물론 타이밍에 맞게 나무판을 관장님과 사범님이 손으로 부러뜨리는 경우도 있다.

진짜 솜방망이 주먹이 아니라면 이 나무판은 부러질 수밖에 없었다.

“정확한 자세. 그리고 주먹을 뻗어야 부서집니다. 그리고 다치지 않아요.”

꼭 그렇지는 않지만 관장님은 애들 상대로 주의를 시켰다.

언제나 이상하게 하다가 다치는 사람이 나오는 법이다.

그런 경우는 지금까지 살면서 없긴 했지만 말이다.

그때 시하가 손을 들었다.

“그래. 시하야.”

“제대로 안 맞으면 안 부서지는지 궁금해요.”

“그래. 이걸 봐야 믿지.”

관장님이 송판을 들고 비스듬하게 주먹으로 때렸다.

약간 흘러내리도록 할 생각이었다.

빠각.

하지만 의도와는 다르게 송판이 격파됐다.

시하가 말했다.

“격파됐다!”

한 손으로 잡아서 비스듬하게 흘려 쳤는데 격파될 줄 생각도 못 했다.

관장님은 굉장히 당황했지만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관장님은 힘이 너무 세서 이거 하나면 쉽게 부러진단다.”

관장님 자신이 말했지만 툭 하고 쳤더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허풍같이 들렸다.

하지만 순수한 아이들은 그대로 받아들였다.

“우와! 관장님 진짜 세다!”

“잘못 쳤는데도 부서졌어.”

“관장님에게 맞으면 몸 다 부서지겠다.”

반응이 생각보다 뜨거워지자 관장님이 괜히 쑥스러워졌다.

“하하. 태권도를 나중에 제대로 배우면 발차기로 나무도 쓰러뜨릴 수 있어.”

괜히 허풍이 더 나왔다.

그때 시하가 말했다.

“관장님 나무 죽였어요?”

“아앗.”

시하의 말에 순식간에 나쁜 사람이 된 관장이었다.

나무를 죽이다니.

“시하야. 관장님은 나무를 죽인 게 아니야. 이미 죽은 나무를. 아니. 이것도 아니지. 나무 각목을 부순 거야.”

관장님이 죽은 나무를 부쉈다고 했으면 더 나쁜 놈이 되었을 것이다.

그걸 알고 급하게 틀었다.

“아하. 그렇구나. 다행이다. 관장님이 나무 안 죽여서.”

“그럼. 태권도는 자기 몸을 수양하기 위해 배우는 거지 남을 헤치기 위해서는 아니야.”

관장님의 등에 식은땀이 살짝 났다.

이래서 애들 앞에서 말을 조심해야 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보통 나무도 쓰러뜨린다고 하면 다들 우와~ 했는데 저 시하라는 아이는 불쌍하다고 해버리니 갑자기 상황이 바뀌었다.

설마 일부러 멕이는 건 아니겠지?

그런 의심으로 시하를 쳐다보니 초롱초롱한 눈으로 관장을 보고 있었다.

“관장님.”

관장은 시하가 또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제는 두려웠다.

“그래. 왜 그러니?”

“관장님이 세요? 아니면 백동 형아가 세요?”

“백동 형아가 누군데? 흠흠. 누군지 모르지만 내가 세지 않겠니.”

“팔씨름도 관장님이 이겨요?”

“그럼. 내가 어! 정권을 이렇게 열심히 연습하면 팔 근육이 막 생긴단다.”

“우와! 백동 형아 엄청 큰데. 관장님보다 커요.”

“하하. 관장님도 크단다. 키가 183이거든.”

“백동 형아는 100미터인데.”

그거 사람 맞니? 사람 아닌 거 같은데? 100 미터 인간이 있다면 한국은 난리 났을 것이다.

“근육도 엄청 커요. 거의 차만 해요.”

관장은 시하가 자신보다 허풍이 심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면 나도 못 이기지.

팔씨름하면 인간이 이쑤시개를 부러뜨리는 것처럼 손쉽게 부러져버릴 것이다.

“근데 사실 그 정도로 안 커요.”

“그렇지? 그럴 줄 알고 있었어.”

“근데 관장님보다 커요. 2미터라고 했는데.”

관장님은 백동 형아라는 분이 진짜 커서 깜짝 놀랐다.

그 정도면 인정이었다.

옆에 있던 승준이 시하의 말을 거들었다.

“헬스도 열심히 해서 근육이 이따만 한데. 통뼈라고 하던데요.”

“오오.”

“시하야. 그래도 관장님이 이기겠지? 나무 각목도 발차기로 쓰러뜨리니까.”

“응. 근데 백동 형아도 진짜 대단한데.”

관장님은 생각했다.

팔씨름은 아마 못 이기지 않을까?

싸움도 직접 붙기 전에는 모를 일이었다.

“크흠. 얘들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심사가 중요하지. 자. 이제 배운 거 복습하자.”

“누가 강한지가 제일 재밌는데.”

승준이 어깨를 으쓱이며 일어났다.

시하도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더 강한가.

이건 어른들도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들을 가지고 곧 잘 싸우는 주제였다.

축구 선수 중 누가 더 뛰어나냐고 싸우기도 했다.

애나 어른이나 누가 더 강한지 줄 세우기는 여전히 재밌는 이야깃거리였다.

당사자가 된 관장님은 전혀 재밌지 않았지만 말이다.

먼저 허세를 떨어버린 업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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