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4화 토크 온 퀴즈 (3)
김유한 MC는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시하의 개인기가 아주 기대된다는 듯이 웃음을 보냈다.
“한번 볼 수 있을까요?”
“네! 이거 이제 성대모사인데. 만화에 나오는 애가 한 말이에요.”
“오오.”
시하가 삼촌에게 배운 개인기를 써먹었다.
“헛소리 하지 마. 임망!”
그렇게 하고 나서 어색한지 보조 MC를 바라보았다.
하필 그 타이밍에 김유한 MC가 빵 터졌다.
보조 MC는 나? 하면서 자신을 가리켰다.
“왜 갑자기 나를 보는 거야. 난 헛소리 안 했어.”
“그냥 어색해서 봤는데요.”
“아니. 왜 하필 그 타이밍에?”
어쩔 수 없는 우연에 옆에 있던 나도 웃음이 나왔다.
아니. 하필 저쪽을 바라볼 게 뭐란 말인가.
김유한이 배를 잡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뭐, 삼촌이 가르친 개인기가 잘 통했으니 다행이다.
“끄하하. 아 웃겨. 한 번만 더 해줄 수 있어요?”
“헛소리 하지 마. 임망?”
“와. 똑같네. 아기 목소리라서 똑같은 건가?”
“근데 아저씨. 저 삼촌에게 하나 더 배웠어요. 그 뭐지? 모창. 모창이요.”
“또? 삼촌이 많이 가르쳐줬네요.”
“짧아요.”
“좋아요. 오늘 하고 싶은 거 다 해.”
시하가 목을 가다듬었다.
뭐 엄청난 노래를 부른다는 듯이 말이다.
진짜 아주 짧은데 저럴 필요가 있나 싶다.
“너는 뭥청히~”
“으하하하.”
김유한이 아빠 미소를 보인다.
보조 MC는 또 저한테 한 소리는 아니죠? 하고 되묻는다.
오늘은 이렇게 또 당하는 역할을 자처하는 듯했다.
원래 이런 캐릭터이긴 했지만 말이다.
“아. 웃겨라. 정말 잘하네요.”
“정말요?”
“네. 정말 재밌었어요.”
“감사합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질문할게요. 이건 어린이들에게 꼭 공통으로 좀 물어보는 질문이거든요.”
“어떤 거요?”
“혹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요? 아니면 지금처럼 어린이로 지내고 싶어요?”
시하가 고민을 한다.
사실 나도 이 질문의 대답이 궁금하긴 했다.
과연 시하는 뭐라고 답할까?
“어린이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어린이도 많다.
어른이 되면 공부도 적게 하고 마음껏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린이도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아이 눈에는 어른이 더 자유스럽다고 보일지도 모른다.
시하는 왜 어린이로 지내고 싶다고 답했을까?
“오! 어린이요? 왜요?”
“어른 되면 일도 해야 하고 바쁘니까 형아랑 노는 시간이 없어져요.”
“아~ 어른 되면 바쁘니까.”
그 말에 나는 괜히 미안해졌다.
나는 많이 놀아주고 있던 거 같은데 어린 시하에게는 내가 바쁘게 보였던 것 같다.
하긴 이래저래 바쁘게 일하긴 했지.
그래도 시하랑 놀 때는 최대한 일을 안 하고 있다.
아무래도 내 모습에서 시하는 어른이 되면 일하느라 바쁘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시하에게 어른이란 일 하면서 바쁜 사람.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면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니까.
김유한 MC가 물었다.
“형아랑 많이 놀고 싶어요? 형아가 안 놀아주는 건 아니죠?”
“형아랑 많이 놀아요. 근데 더 많이 놀았으면 좋겠어요.”
“얼마나 많이?”
“학교도 같이 가서 공부도 다 하고 태권도도 같이 다니고. 종일이요.”
그건 좀 그렇지 않니?
1학년 교실에 앉아 8살 아이랑 같이 받아쓰기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흠. 쉽게 자리해 있을 자신이 없다.
함께 태권도장에 가서 정권을 찌르며 ‘때! 껀! 도!’를 외친다.
이건 더 부끄럽다.
나는 역시 어린이보다는 어른이 좋은 것 같다.
“크읍. 이야. 그러면 형아가 일 못 하는데? 돈도 못 벌어와서 뭐 먹고 살아요.”
“괜찮아요. 삼촌이 일해서 먹고 살면 돼요.”
“하하하. 삼촌이?”
“네. 아니면 제가 벌면 돼요.”
“으하하.”
시하의 대답이 귀여운지 무슨 대답을 해도 환한 웃음을 터뜨려준다.
이것 참 감사한 일이다.
김유한 MC가 진행을 다음으로 넘겼다.
“네. 그럼 퀴즈 시간인데요. 이걸 맞추면 상금 100만 원을 줍니다. 퀴즈 맞힐 자신 있어요?”
“네!”
“100만 원 가지면 뭐 살 거예요?”
“형아 줄 거예요! 그러면 100만 원만큼 일 안 해도 되니까 시하랑 종일 놀아줘야 해요.”
“크흡. 천잰데?”
100만 원치 시간을 사는 건가.
돈을 좀 쓸 줄 아는 시하였다. 그냥은 안 주는구나.
시하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는다.
“저 학교에서 퀴즈 연습했어요.”
“오! 그래요?”
“네. 속담 맞추기.”
“그래서 맞췄어요?”
“아니요. 다 틀렸어요.”
옆에서 보조 MC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러면 왜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어?”
“틀려도 자신만만하면 안 돼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자신감이 중요한 거지 맞추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암!
어찌 되었든 퀴즈가 시작됐다.
“도둑질을 계속하면 더 큰 것을 훔친다는 뜻을 가진 속담이 있습니다. 바늘 도둑이 이것 도둑 된다는 속담인데. 이것은 뭘까요?”
“실!”
“실 맞습니까?”
“바늘 훔쳤으니까 실도 많이 훔쳐요. 뭉탱이. 바늘 도둑이 실 도둑 된다.”
그…. 실뭉치가 바늘보다 크긴 한데. 물론 바늘만 가지고 옷을 못 꿰매니까 실도 필요한 거 맞긴 하지.
근데 정답은 아니다.
이런 퀴즈의 답을 말했을 때 웃으면 안 되는데 김유한 MC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웃음을 참고 있나 보다.
“정답은~ 소입니다.”
“아~ 소였어요? 실 아니에요?”
“네. 소였어요. 더 큰 걸 훔치게 된다는 뜻이니까. 아니지. 더 비싼 걸 훔치게 된다는 뜻이에요.”
“한 번만 더 내주면 안 돼요?”
시하가 검지를 들고 부탁했다.
김유한이 그런 시하가 귀여운지 웃음을 머금었지만 규칙은 규칙이다.
“아쉽게도 안 돼요.”
“힝.”
“대신! 선물 캡슐에서 좋은 거 뽑을 수 있어요. 여기 뭐 티비도 있고 노트북도 있고 게임기도 있어요.”
“정말요?”
“그럼요. 물론 여러 가지 쿠션이 많긴 하지만.”
세트장에 캡슐 가방이 들어왔다.
캡슐이 엄청 많았는데 딱 봐도 쿠션 상품이 대다수다.
뭐 그래도 뽑기 게임보다는 확률이 높지 않겠는가.
“자. 이제 뽑아주세요.”
시하가 가방에 손을 넣었다.
빨간색 캡슐을 뽑자 옆에 있는 보조 MC가 그걸 열어주었다.
“아니!”
“뭐예요?”
“노트북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러고 보니 시하는 금손이었지. 역시 시하다. 100만 원보다 더 좋은 걸 뽑았다.
김유한이 물었다.
“그럼 노트북은 형아 줄 거예요?”
“아니요!”
“네? 안 줄 거예요?”
100만 원은 주면서 노트북은 안 준다고? 어째서?
“네. 형아는 노트북으로 일하니까 이거 주면 일 많이 하게 돼요. 그래서 안 줄 거예요.”
그런 기특한 생각이라면 안 줘도 상관없다.
김유한이 그런 시하를 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생각이 너무 귀엽지 않은가.
“그럼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촬영이 종료됐다.
제대로 잘 나왔는지 모르겠다.
“작가님. 저희 잘 나왔어요?”
작가님은 말없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아무래도 분량은 충분히 뽑혔나 보다.
방송에 나오는 모습이 기대된다.
원본 영상이랑 편집본 영상이랑 줄 수 있냐고 물어봐야겠다.
이건 꼭 소장해야지.
***
집으로 돌아오자 삼촌이 우리를 반겼다.
수고했다고 어깨를 쳐주는데 왜 이러나 싶었다.
“삼촌 우리에게 뭐 잘못했어요?”
“아니! 아무 잘못 없는데?”
“근데 왜 평소랑 다르지?”
“다르긴 뭘 달라. 오면 반겨주고 인사는 늘 해줬잖아.”
“어깨는 안 두드려줬던 거 같은데.”
“오늘은 예능 데뷔의 날이니까 어깨를 좀 친 거지. 뭘 그런 거 갖고 호들갑이야.”
“호들갑이 아니라 의심인데요.”
“어허. 의심은 접어둬. 접어둬.”
나는 긴가민가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삼촌이 그렇다면 뭐 그런 거겠지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하도 당한 시하는 아니었나 보다.
“삼촌. 지금 말하면 용서해 줄게. 빨리 말해.”
“아무것도 없다니까. 그리고 있다 해도 그걸 말해 주는 바보가 어딨어?”
“지금 이야기하면 정상참자 해 주께.”
“정상참작이겠지. 뜻은 알고 말하냐?”
그렇게 투덕거리다가 뭔가 알아낸 게 없는지 시하는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삼촌. 오늘 삼촌이 가르쳐준 개인기 다 했어. 엄청 좋아했어.”
“그치? 다들 좋아한다니까. 내가 예능 경력이 얼만데.”
“삼촌 예능 안 했잖아.”
“예능 본 경력이 얼마냐는 거지. 이거 무조건 먹힌다고 했잖아.”
삼촌이 아주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한 건 했다는 얼굴이다.
시하가 해서 재밌었던 거지 어른이 했으면 재미없었을 수도 있다.
뭐라고 할까? 어린이가 해서 귀여운 맛과 왜 또 잘하는데? 하는 맛이 공존했다고 할까?
암튼 그런 재미가 있었다.
“시혁아. 너도 했지?”
삼촌이 은근 기대하는 표정이지만 나는 그런 거 하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전 안 했어요. 거기서 꽤 진지한 캐릭터로 중심을 잡아줬어야 했으니까.”
“아. 그런 역할이 또 필요하지.”
삼촌이 고개를 끄덕인다.
뭘 알고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나 오늘 너무 많이 말했어. 물 마셔야겠다.”
시하가 싱크대로 가서 컵에 손을 뻗는다.
나는 물을 따라주러 시하에게로 갔다.
삼촌이 피식 웃으며 말한다.
“뭘 또 얼마나 말했다고. 거기 물 안 줬어?”
“물 줬어.”
“엄청 적게 줬구만.”
“아니야. 많이 줬어. 어? 근데 삼촌. 이거 컵 바뀌었는데?”
“뭔 소리 하는 거야. 거기 쓰던 컵 맞잖아.”
“아니야.”
시하가 컵을 돌려서 바닥을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가격표가 적혀져 있었다.
“어?”
“응?”
삼촌과 나는 당황했다.
물론 서로 뜻은 달랐겠지만 말이다.
내가 ‘저기에 왜 가격표가?’라는 의문이었다면 삼촌은 ‘내가 저걸 안 뗐어?’ 하는 표정이었다.
“삼촌 혹시 컵 깼어요?”
“하하하. 손이 미끄러져서 그만. 하하하.”
일반쓰레기통을 보니 신문지에 바리바리 싸져 있는 물체가 보였다.
저기에 깨진 컵을 담아서 버린 게 틀림없다.
어쩐지 오늘 과장되게 어깨를 두드려주더니. 잘못한 게 있어서 그랬구만.
컵이야 깰 수 있지.
하지만 시하는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삼촌. 왜 깼어!”
“아. 미안. 미안.”
“그거 형아가 사준 건데! 이건 다른 거잖아.”
“아니야. 그것도 같은 거야.”
“형아가 사준 게 아니잖아.”
흠. 마음적인 측면에서는 다른 게 맞다.
같은 컵이지만 말이다.
나는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실 설거지 계속하다 보면 조만간 깨질 거였어.”
“정말?”
“응. 정말.”
가끔 설거지하다가 유리그릇이나 컵이 깨질 때도 있는 법이다.
누구나 다 한 번쯤 경험하는 일이다.
“이번 컵은 삼촌이 사과의 표시로 사줬으니까 잘 쓰자.”
“근데 삼촌은 안 깨뜨린 척해서 산 건데 사과의 표시야?”
“그건.”
나는 삼촌을 째려보았다.
거. 솔직하게 말하면 될 걸 왜 컵을 깼다고 말을 못 했나.
이러면 사과의 표시로 포장할 수도 없잖나.
요즘 시하가 초등학교 들어갔다고 똑똑해져서 이런 게 안 통한다.
“삼촌이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운 나쁘게 시하가 눈치채 버렸네? 그쵸? 삼촌?”
“어? 어. 그랬지. 너무 당황해서 말이 자꾸 헛나오네. 흠흠. 시하야. 미안해.”
시하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알았어. 내가 용서해 줄게. 다음에 컵 깨면 안 돼. 알았지?”
“응. 절대 안 깨고 조심할게.”
“그럼 삼촌이 오늘 방송할 때 개인기도 잘 가르쳐주고 해줬으니까 봐줄게. 아! 나 노트북 탔는데 삼촌 줄게.”
“어? 이야. 시하. 너. 아주 큰 사람이었구나.”
삼촌이 감동한 표정이다.
삼촌은 소중한 컵을 깼는데 시하는 용서를 해줄 뿐만 아니라 선물까지 안겨준다.
마음의 그릇이 크다.
“시혁아. 나 노트북 받았어. 네가 아니라 나를 챙겨준 거야. 하하하.”
삼촌이 아주 기뻐 보였다.
그런데 삼촌. 제가 초 쳐도 되겠습니까?
그 노트북 제가 일 많이 할까 봐 저 안 준 겁니다.
물론 저렇게 나를 이겼다고 기뻐하는 삼촌을 보며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형아한테는 더 좋은 거 줄 건데?”
“에라이!”
초를 치는 건 시하였다.
음. 모든 게 다 삼촌의 업보다.
그래도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걸 보니 시하의 선물이 마음에 드나 보다.
행복하면 됐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토크 온 퀴즈의 방영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