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3화 토크 온 퀴즈 (2)
방송에 나가기 위해 옷을 이리저리 고른다.
시하의 옷은 문화가 있는 날에 입었던 옷을 골랐다.
멜빵바지에 빵모자 패션. 거기에 크로스백을 멨다.
나는 정장을 입을까 생각했지만 형제로 같이 나오는 건데 한쪽만 차려입는 건 이상해서 편한 복장을 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멜빵 바지는 할 수 없으니 무난하게 캐주얼한 옷을 픽했다.
옷만 문제가 아니다.
머리도 열심히 세팅해야 한다.
시하야 모자를 쓰니까 큰 세팅이 필요 없긴 했다.
“이제 갈까?”
“응.”
우리는 집에서 출발해 방송국 세트장에 도착했다.
시하와 나는 신기하다는 듯이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박민하 작가가 웃으면서 생수를 건넨다.
“오늘 잘 부탁드려요.”
“네. 잘 부탁드립니다.”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편하게 이야기 나누시면 돼요. 편집은 저희가 알아서 할 거니까요. 뭐, 자주 사람들 앞에 섰으니 긴장은 안 되죠?”
“하하. 저는 좀 되는데요. 제 이야기를 하는 자리니까.”
통역사를 하면서 전달해 주는 입장이 주이다 보니까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는 건 어색하긴 했다.
그게 방송에 나가는 거니까.
시하는 긴장을 하고 있을까?
나와 같은 의문을 박민하 작가가 가졌는지 시하에게 물었다.
“시하야 긴장했어?”
“아니요. 형아 있어서 괜찮아요.”
“어머. 정말?”
“네! 삼촌이 개인기도 준비하라고 해서 가르쳐줘서 또 괜찮아요.”
“어머. 삼촌이?!”
박민하 작가가 눈을 반짝였다.
나도 저 눈을 보니 직감이 왔다. 아, 이거 방송 분량에 넣을 만한 게 알아서 굴러왔구나 하는 표정이다.
고동수 감독님과 배우들과 함께 인터뷰나 방송에 함께 나가봐서 안다.
미국이든 영국이든 한국이든 작가들이 분량에 꼭 넣어야겠네? 하는 표정은 어딜 가나 만국 공통인가 보다.
시하야. 개인기 꼭 해야겠니?
“편집 좀.”
“시혁 씨. 아직 찍지도 않았는데 무슨 편집이에요. 그리고 편집은 제가 하는 게 아닌데요.”
“말 좀 대신해 주세요.”
“네. 제가 잘 말해 볼게요.”
표정을 보니 재밌게 편집해 드린다는 얼굴이었다.
시작부터 된통 걸린 것 같다.
“형아. 같이하면 재밌겠다. 맞지?”
“응. 엄청 재밌겠네.”
시하는 그저 나랑 같이 방송을 찍으면 만만세인가 보다.
하긴 방송에 대해서 뭘 알겠냐마는.
생각해 보니 이런 예능은 우리는 처음 아닌가.
이게 바로 예능 데뷔인가?
토크쇼 같은 곳은 함께 나온 적이 있긴 한데 거기는 미국이니까.
우리가 포커스인 주가 아니기도 했고.
“시간 되면 스태프가 나오라고 말해줄 거예요. 안내에 따라 나오면 돼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하가 나를 따라 대답한다.
박민하 작가가 시하가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웃음을 보인다.
시하가 좀 귀엽긴 해.
특히 날 따라 하는 모습이 미소를 짓게 만든다.
다른 아이들도 엄마나 아빠 따라 하지 않나.
다들 참 어린 시절의 귀여운 모습이다.
박민하 작가가 인사를 하며 떠나갔다.
시하는 의자에 앉아서 생수 뚜껑을 낑낑거리며 돌린다.
나는 살며시 잡아서 따주었다.
“형아. 힘세다.”
“시하 손이 미끄러워서 못 딴 거야.”
“아니야. 형아는 힘세.”
“백동 형아만큼?”
“아니. 백동 형아는 세상에서 제일 세. 지구도 뿌셔.”
지구 부실 정도로 세면 이미 인간이라고 취급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뭐 평소에도 인간 취급을 한 건 아니었지만.
오히려 초인에 가까웠지.
근육질에 몸집도 크고 통뼈라서 더 두꺼워 보이기도 하고.
늘 생각하는데 백동환을 보고 성우라는 직업을 떠올릴 수가 없다.
“이제 나오면 됩니다.”
“네.”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을 보니까 두 명의 MC가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오늘의 손님. 나와주세요.”
나는 시하의 손을 잡고 세트장으로 들어왔다.
짝짝짝.
두 MC가 박수를 보내며 우리를 반긴다.
굉장히 놀란 표정을 짓는데 미리 듣지 못한 것인지 연기인지 모르겠다.
큐카드가 있으니까 미리 듣지 않았을까 싶다.
메인 MC가 말했다.
“와. 이시혁 씨랑 이시하 씨. 정말 오랜만이네요.”
옆에 있던 보조 MC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
“어? 혹시 뭐 프로그램 같이한 적 있으세요?”
“아니. 오늘 처음 뵙는데?”
“근데 왜 오랜만이라고 하세요?”
“일개미랑 너튜브에서 많이 봤다. 왜?”
시하가 메인 MC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보조 MC가 또 의문 어린 눈을 했다.
“이시하 어린이는 혹시 여기 본 적 있어요? 뭐 사인을 받았다던가?”
“아니요. 티비에서 많이 봤어요. 삼촌이 맨날 예능 보는데 맨날 이 김유한 아저씨 나오는데요.”
“스읍.”
보조 MC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김유한을 보았다.
메인 MC랑 똑같은 말에 당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혹시 저는 몰라요? 예능 많이 보면 이 프로그램도 봤을 것 같은데.”
“몰라요.”
“아니 왜! 이 프로그램 안 봤어요.”
“봤어요.”
“근데 왜 모른다는 거야. 나만 편집당했나?”
“여기 나오는 애들이 다들 모른다고 말하던데요.”
김유한 MC가 그 말에 푸하하 웃었다.
이 프로그램에 나온 어린이들이 하나같이 보조 MC를 모른다고 대답했으니까.
이시하가 그걸 꼬집어서 대답한 거라는 의미였다.
솔직한 말로 감탄했다.
“와. 시하 말을 너무 잘하는데요. 오늘 토크가 장난 아니에요. 오히려 형 쪽이 토크가 아예 안 되는데요?”
“아. 저는 밸런스를 잡아주기 위해서 조용히 하고 있습니다.”
“아아. 푸하하.”
시작이 굉장히 좋다.
시하 덕분에 벌써 방송 재미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이어서 근황 토크가 이어졌다.
“사실 일개미가 상을 많이 받았잖아요. 이제 시혁 씨도 시상식이나 인터뷰 같은 것도 굉장히 통역을 많이 했고.”
“네. 그렇죠.”
“인기도 굉장했어요. 거의 뭐 명언도 만들어지며 너튜브에 생산이 많이 될 정도로.”
“그렇게까지 생산이 많이 될 정도는 아니었는데 쪼끔 되었죠.”
“네. 쪼끔.”
내가 검지와 엄지를 붙여서 행동하자 김유한이 웃으며 따라 했다.
이런 세세한 것도 잡아주며 만들어주는 모습을 보며 역시 남다르구나 싶었다.
“통역사가 통역 잘하는 게 왜 이렇게 난리가 나는지 잘 모르겠다는 명언.”
“아하하.”
그때를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사실 한국에서도 방송 출연 제안이 꽤 들어왔을 것 같은데.”
“네. 들어오기는 했죠. 근데 거절했어요.”
“왜요?”
“그때 시하가 어리기도 했고 너무 많은 관심이 좀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나는 그냥 통역사인 일반인이고 운 좋게 일개미에 통번역사로 일하게 되면서 인기가 생기게 된 건데.”
“네. 그렇죠.”
“사실 그렇잖아요. 나는 그냥 내 일을 했을 뿐인데 마치 너튜버처럼 인기가 생겨서 많이 당황스러웠죠. 그래서 사그라들기를 기다렸던 거 같아요.”
“이야. 20대잖아요.”
“네. 20대죠.”
“젊을 때 인기를 얻으면 그러기 참 쉽지 않았을 건데. 보통 물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는 말도 있죠.”
“네. 근데 제가 물살에 휩쓸려 버리면 안 되잖아요. 그 시기가 딱 휩쓸리기 좋은 시기인 거 같아서 다시 항해를 하기 위해 바다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크으.”
김유한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나는 뭔가 싶어서 두리번거렸다.
“이야. 다시 항해를 하기 위해 바다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 뭔가 엄청 시인 같았어요.”
“하하하. 아니에요.”
진짜 별거 아닌 말이었는데 이렇게 띄워주는 걸 보면 방송 각을 잘 만드는 것 같다.
이 부분은 편집되지 않고 그대로 방송되겠군.
이게 바로 명MC의 자질인가.
“어? 뭐 해?”
김유한이 보조 MC를 보고 말한다.
“아. 필기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저도 이 말 써먹으려고.”
그때 시하가 말했다.
“아저씨는 잠잠하기 기다리지 않아도 되지 않아요?”
“크흠.”
“계속 조용하시던데요.”
“끄응.”
김유한이 시하의 말에 빵 터져서 물개 박수를 했다.
펙폭 시하가 나왔다.
너무 사실을 말해서 상처를 입을 정도였다.
“김유한 아저씨만 계속 이야기하고.”
“아니야. 나도 딱 치고 들어가고 하는 역할이 있거든. 잘 봐. 내가 앞으로 어떻게 치고 들어가는지.”
“네~”
의외로 두 사람의 티키타카도 좋은 것 같다.
시하가 빤히 쳐다보자 보조 MC가 가까스로 내게 질문을 던졌다.
“여기에 삼촌이 안 나오셨는데. 삼촌에게 해주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갑자기요?”
“아, 네.”
“여기 형제랑 남매 프로그램인데 안 나오는 게 당연한데.”
“네. 뭐. 그래도 삼촌에게 해줄 말이 있지도 않겠습니까?”
김유한이 옆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정말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삼촌에게 한마디를 해주었다.
“어. 삼촌. 우리 여기 잘 나오고 있어. 같이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끝나고 맛있는 거라도 먹자.”
“혹시. 시하 어린이도 한마디 해 줄 수 있어요?”
“삼촌. 나 티비 나왔어. 이제 티비에서까지 나 봐서 좋겠네.”
김유한이 시하의 말에 빵 터졌다.
생각지도 못한 말이라는 듯이 말이다. 나 역시도 시하의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저 말을 들은 삼촌의 표정이 어떨까 싶어서.
나중에 방영하면 삼촌의 얼굴을 꼭 찍어야 할 것 같았다.
“다음 질문 넘어갈게요.”
이제는 시하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시하 어린이가 일개미를 찍을 때는 힘들지 않았어요?”
“형아가 있어서 괜찮았어요. 금방 찍었어요.”
“그래요~”
간단히 일개미 이야기를 하고 본격적으로 최근 근황까지 넘어갔다.
“최근에 시하 어린이가 굉장히 화제가 되었잖아요. 문화가 있는 날에 피아노에 그림을 엄청 잘 그렸더라고요.”
“네.”
“제가 봐도 이야~ 감탄이 나올 정도로 굉장히 잘 그렸던데 혹시 이걸 그리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아니지. 이유가 있어요?”
“그냥 제가 배웠던 거 그린 건데요.”
“등잔 그리는 걸 배웠어요?”
“아니요.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을 배웠는데요.”
“아. 속담을. 그런데 악보로 그리셨던데.”
“아. 그거는 학교에서 음악 시간에 이게 악보라고 보여준 건데 제가 그거 기억하고 있어서 합쳤어요.”
김유한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악보 읽을 줄 아세요?”
“아니요. 그냥 그림으로 기억했는데.”
“이야. 천재네. 이거 그 능력 아니에요? 포토그래픽 메모리. 사진기억력.”
“아닌데요.”
“아, 아니에요?”
내가 봤을 때는 그거 맞는 거 같은데 일단 아니라고 하는 시하였다.
김유한이 당황한 듯했지만 침착하게 다음 질문을 이어 나갔다.
“혹시 미술 학원 같은 곳에서 배운 거예요?”
“그냥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렸는데 초등학생 되기 전에 미술 선생님 만나서 배웠어요.”
“오. 학원은 아니고요.”
“네. 미술 선생님 집에서 배우는데 막 색깔 여러 개 만들어서 무슨 색 나오는지 배워요.”
“아~ 색을 만들어요?”
“네!”
“내가 아는 미술 배우는 거랑 좀 다르네요. 연필로 막 벽돌이나 사과 그리라고 하고 데생하고 그럴 거 같은데.”
“연필도 써봤고 모래 같은 것도 써봤고 그래요. 근데 선생님이 뭐 그리라고는 안 했는데. 그냥 이게 무슨 색이 나오고 무슨 색이랑 어울리면 이렇게 보이는 거 알려주셨는데.”
“오. 신기하네요.”
그다음은 어린이들에게 자주 던지는 질문이 나왔다.
“그럼 혹시 시하 어린이는 되고 싶은 게 있어요? 화가라던가.”
시하가 아주 자신 있게 말한다.
“저는 형아요!”
“푸하하. 아. 통번역사 되고 싶어요?”
“아니요. 형아요.”
“???”
“저는 형아처럼 다 잘하는 형아가 되고 싶어요.”
옆에 있던 보조 MC가 초를 친다.
“그럼 동생이 있어야 하는데.”
“아저씨. 형아처럼 다 잘하고 싶다고 했지 동생 갖고 싶다고 안 했어요.”
“아. 그랬지. 미안합니다.”
김유한이 아빠 미소를 짓는다.
원래 이렇게 웃음이 많으신가 보다.
“내가 이상한 질문 해서 그만 좀 하라고 하려 했는데 시하 어린이가 딱 잘라서 대신해 주네요.”
“아, 맞다!”
“응?”
시하가 뭔가 기억났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되고 싶은 거 하니까 제 친구 방송에서 말해달라고 했는데.”
“아, 그래요?”
“네!”
“그럼 친구들 소개 좀 해주세요.”
“승준이는 사커 선수가 되고 싶고, 하나는 아이돌이 되고 싶고, 종수는 공부 잘하고, 재휘는 옷 만들고 싶다고 했고, 연주는 멋진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고, 윤동은 춤 잘 추고 춤 만드는 사람 되고 싶다고 했고, 은우는 래퍼 되고 싶다고 했어요.”
“랩은 시하가 하고 있는데요?”
“형아도 랩 잘해요.”
“???”
뜬금없는 시하의 화법에 김유한이 순간 뇌 정지가 왔다.
그때 옆에 보조 MC가 손을 들었다.
“근데 왜 종수만 공부 잘하는 게 끝인가요? 다들 뭔가 되고 싶은 직업이 있던데.”
“종수는 반장이에요.”
“아니. 종수의 꿈은 모르시냐고요.”
“종수는 똑똑해요.”
정신 차린 김유한이 아직 꿈이 없을 수도 있지~ 하며 보조 MC를 타박했다.
“아, 맞다.”
“오. 또 왜요? 또 말할 거 생각났어요?”
“여기 나간다고 하니까 삼촌한테 개인기 배웠는데.”
“정말요?”
그거 진짜 할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