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아, 나 귀엽지 외전-31화 (456/500)

외전 31화 내가 다 눈치챘어!

또다시 바쁜 아침이 찾아왔다.

베란다에 가는데 차가운 공기가 나를 반긴다. 정신이 번쩍 드는 공기다.

가스버너를 꺼내서 불을 켜는데 불똥의 틱틱, 하는 소리가 마지막 기상 알람이다.

약불로 해놓는데 너무 약불이라 꺼져버린다.

“아.”

불똥이 튄다고 해서 계속 타오르는 불이 되는 건 아니었다.

장작을 계속 넣어주듯이 가스가 열심히 넣어져야 한다.

큰 프라이팬을 올리고 고등어를 굽는다.

집 안에서 구우면 냄새가 배기 때문에 너무 냄새나는 걸 할 때면 이렇게 베란다에서 가스버너를 사용한다.

다시 주방으로 들어올 때 냄새가 침투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이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형아 어디써?”

아침부터 나를 찾는 시하의 소리다.

엄마가 있었으면 엄마를 찾았겠지.

“시혁이 베란다에 있다.”

삼촌의 저 말이 ‘엄마 베란다에 있다~’ 하는 아버지의 대사로 들린다.

시하의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벌컥 열면서 나를 본다.

“형아. 뭐 해?”

“고등어 구우려고. 냄새나니까 문 닫자.”

“나는 냄새나도 여기 있을래.”

“그럼 들어와.”

시하가 슬리퍼를 신고 들어오며 문을 닫는다.

나는 고등어를 올린다.

치이익.

“고등어가 맛있어지고 있어?”

“응. 고등어가 맛있어지고 있지.”

“고등어는 갈색이 맛있는데.”

“하핳.”

고등어의 흰 속살도 좋아하지만 구울 때 안에 갈색 부분도 시하는 좋아하나 보다.

어쩐지 그 부분을 참 잘 먹더라.

“그게 또 별미지.”

“별미가 뭐야?”

“특별하게 좋은 맛?”

“아~ 별 세 개 그려진 맛이구나.”

별 세 개 그려진 맛이라니. 뭐 중요한 부분에 별표 쳐주는 거니까 어찌 보면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는 고등어를 뒤집어주었다.

치이익.

“아. 맞다. 시하야. 너 너튜브에 영상 올라왔더라.”

“정말?”

“응. 보여줄까?”

“응!”

나는 너튜브를 켜서 보여주었다.

솔직히 편집을 잘했다.

서수현이 함께 나오게 한 부분이 좋았다. 설마 화면을 둘로 쪼개서 그 피아노곡을 배경으로 쓸 줄이야.

일부러 시선을 분산시킨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아. 댓글에 두 번 본대. 그림에 한 번 보고 혀니 누나도 한 번 보고.”

“응?”

본의 아니게 두 번 보게 하는 고도의 수법이었나?

빠르게 그려지는 그림과 빠른 템포로 치는 피아노는 시선을 끄는 매력이 있으니까.

심지어 그림은 피아노 속도에 맞춰서 빨라지고 있으니.

“댓글은 악플이 있을 수 있으니까 자세히 보지 말자.”

“아니야. 좋은 말만 있어. 빵모자 존나 귀엽다는데?”

“보지 말자!”

악플은 아니지만 바른 표현은 아니다.

물론 나중에 애들이 다 쓰게 되어있다는 걸 알지만 일상생활에서 말로 튀어나오게 되는 건 다른 법이다.

“형아가 보지 말랬으니까 안 봐야지~”

“그래. 그래. 좋은 말도 계속 보면 나쁘게 될 수 있어.”

“왜?”

“너무 잘할 줄 아는 게 성장을 방해할 수도 있거든.”

“아! 이미 완벽한 줄 알고 공부 안 해?”

“응. 그렇지.”

“알아도 복습해야 한대. 학교에서 배웠어.”

“그렇지. 그렇지.”

이래서 학교를 보내는 건가?

시하는 아주 잘 배우고 있다.

“근데 형아. 나는 복습하기 싫은데.”

그건 대부분의 부모님도 어렸을 때 다 그랬단다.

“고등어 다 구워졌으니까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응!”

고등어를 접시에 담고 식탁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상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삼촌. 왜 밥상 안 차리고 있었어요?”

“엉?”

“밥상 차리라고 했잖아요.”

“아. 맞다! 까먹었어.”

삼촌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걸 본 시하가 한숨을 쉬었다.

“어휴. 삼촌. 공부하기 싫어도 복습 좀 해. 그래야 안 까먹어.”

“너나 해라.”

“나는 안 까먹어서 괜찮아. 다 아니까.”

“웃기시네.”

오늘도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

영상이 막 100만 조회수를 찍거나 그러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아는 사람들에게 연락이 왔다.

대체 어떻게 이걸 찾아본 거지?

알고리즘이라는 건 꽤 무서운 걸 수도 있다.

아니면 서수현의 채널을 구독했을 수도 있고.

서로 다 아는 사이이기도 하니까.

「제가 이거 뒷모습 보자마자 시하인 거 알았다니까요!」

오랜만에 듣는 백동환의 목소리였다.

성우한다는 애가 목 좀 아껴야지, 왜 이렇게 목소리가 큰 거지? 아니, 발성이 좋은 건가?

“뭐 그렇게 됐다.”

「형님이 허락하실 줄 몰랐습니다.」

“내가 뭐 이런 거 반대하고 그러는 사람은 아니야.”

「그래도 어린 나이에 주목받는 건 싫어하셨잖습니까.」

“그거야 시하가 진짜 어리니까.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시하가 하고 싶어 하는 걸 막고 싶지는 않아.”

「하긴 일개미 때도 나왔으니 이제 와서 너튜브 정도는.」

“그건 짧게 나왔는데 그렇게 화제가 될 줄 몰랐어.”

예전 영화 때도 화제가 될 줄 몰랐지.

누가 황금종려상을 받을 줄 예상했겠나. 그건 감독님도 예상 못 했다.

「그 자리에 제가 있어야 했는데.」

“잘나가는 성우님은 일해야지.”

백동환도 상당히 어린 나이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경력이 꽤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경력이 점점 쌓이게 되니까.

특히 처음에 했던 오디오북.

이게 성우들에게 꽤 많은 일감을 주고 있다고 한다.

백동환 역시도 그런 일감을 잘 받아오고 있다. 몸의 위압감에 비해 인맥도 잘 형성되어 있어 일은 줄어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요새 많이 바쁘지?”

「아니요. 안 바쁩니다.」

“안 바쁘긴.”

이제는 회사를 나와서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으니 자유로워 보이겠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나와 백동환은 자기관리가 필수였다.

나야 시하가 있어 아침 일찍 일어나 일하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백동환은 혼자니 잘 짜놓은 스케줄대로 움직여야 할 것이다.

「그럼 이제 너튜브를 계속 찍으시는 겁니까?」

“음. 딱히 그런 생각은 없던데? 영상도 수현이 채널에 올린 거고.”

「아. 하긴. 이미 운영하고 있었죠.」

“그건 그렇지.”

얼굴은 안 나오고 그림만 나오는 거긴 하지만 말이다.

이번에는 그냥 자기 얼굴이 나와도 상관없다고 하기에 영상을 그렇게 찍은 것뿐이다.

시하페페 채널에 올릴 일은 없었다.

그런데 시하랑 시하페페의 이름이 같은데 둘이 동일인물이 아닌지에 대해서 말이 나오는 건 아닐까?

너무 비약이겠지만.

피아노에 그려진 그림이랑 패드에 그려진 그림이랑은 좀 느낌이 다르니.

“야. 그래도 아는 사람만 눈치챘어. 일개미에 나온 시하인 거 사람들 잘 모를걸?”

「댓글 보니까 가물가물한 사람도 있던데요.」

“그때의 시하랑 지금의 시하랑은 다르지. 키도 얼마나 컸는데. 눈치 못 채. 응.”

「키 별로 안 컸…….」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거의 2배는 돼!”

「그건 너무 과장이…….」

왜 다들 안 컸다고 하는 거지?

엄청 자랐다! 이제 내 키도 뛰어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더 커서 농구선수 하고 싶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컸어.”

「아니. 안 컸다는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너희가 매일 안 봐서 모르겠지만 진짜 매일 자란다고.”

「???」

“왜?”

「보통 매일 보는 사람이 모르는 거 아닙니까?」

“네가 뭘 알겠니.”

눈썰미 좋은 나는 알 수 있다.

시하는 매일 0.001mm씩 큰다는 걸.

물론 사람들이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일 것 같아 정확한 수치를 입에 담지 않은 것뿐이다.

“키 크는 영양제도 주문했어.”

「사실 많이 안 컸다는 거 아시고 계시죠?」

“아니거든. 진짜 크고 있거든.”

시하가 대기만성형이라서 그래.

그러니 사람들 눈에는 키 크는지 잘 안 보이는 거지. 암!

「시하는 작아서 귀여워요.」

“시하는 큰 사람이야. 너 피아노에 그림 그릴 때 그 아우라 안 봤어?”

「작은 거인.」

“큰 거인이거든?”

우리는 별거 아닌 거로 티격태격하며 전화를 끝냈다.

오늘도 한 사람에게 시하가 크고 있다고 설득을 시켰다.

사람이 믿음이 있어야지.

어찌 안 컸다고 말하는 게 삼촌이랑 똑같은지 모르겠다.

“이제 일해 볼까?”

키보드에 손을 올리려는 순간.

또 연락이 왔다.

너무 자주 오는데?

이번에는 고 감독님이었다.

“어. 감독님 어쩐 일이세요?”

「어. 오랜만이야.」

“네. 한 10년 만인 거 같아요.”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우리 안 지 20년이 넘었는데.」

“???”

나보다 한술 더 뜨는 감독님이었다.

저 말을 들으니 아직도 여전한 것 같다.

“다음 작품은 잘 준비되고 있으세요.”

「그럼. 아! 나 영상 잘 봤어. 아니, 시하가 그런 엄청난 능력이 있다면 말해줬어야 할 것 아니야. 뒷모습 보고 딱 누군지 알겠는데 정말 놀랐어.」

“옆모습 보고 눈치챌 줄 알았는데.”

「뒷모습 보고 눈치 못 채면 감독 접어야지. 내가 찍은 아이인데.」

“그때보다 3배는 더 컸는데.”

「그건 아니다.」

한술 더 뜨는 감독님. 이번에는 왜 10배라고 안 해주는지 모르겠다.

“네. 그래요. 2배 정도 컸죠.”

「아니던데? 별로 안 컸…….」

시하 찍었다는 감독님 눈썰미가 저래서야 원. 아무래도 감독 접어야겠다는 말을 이행해야 할 듯했다.

“이거 이야기하려고 전화하셨구나.”

「그렇지. 내가 딱 눈치챘잖아.」

“역시.”

시하를 바로 알아보는 건 칭찬하고 싶다.

「이제 시하를 세상에 드러내는구나. 싶더라고.」

“예?”

「그래서 아, 이거 지원 사격해줘야겠다고 생각해서 우리 배우들에게 다 알렸지. 나도 트윗에 올렸다.」

“예?”

「많이 놀랐어? 하하! 눈치 있게 딱 잘했지? 서프라이즈도 되고.」

눈치요? 저는 이렇게 화제 되는 걸 원치 않았는데요?

불씨를 키우려고 왜 장작을 집어넣으셨습니까? 예? 시키지도 않은 짓을??

지금 시청자들이 시하인가 아닌가 가물가물하는데 거기에 확인사살을 하셨는데요?

「뭐 그렇게 고마워 안 해도 돼.」

내 머릿속에 감독님이 검지로 코밑을 스윽 문지르는 장면이 떠오른다.

정말 때리고 싶군요. 감독님. 너무 고마워서요. 감사빵을 때려도 될까요?

“안 고마운데요.”

「하핳. 쑥스러워하는 모습이 그려지는구만.」

미치겠네. 진짜 안 고마워하는 건데요?

***

일개미를 찍을 때는 배우들을 별로 보지 못했지만 시상식이나 인터뷰 때는 시하를 가끔 데리고 다녀야 해서 배우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정말 많이 귀여워해 줬고 과자도 시하에게 많이 안겨 주었다.

그런 추억이 있어서일까?

SNS에 일개미 배우들이 시하가 정말 많이 컸다고 올려줬다.

이 부분에서 나는 역시 배우들은 시하가 큰 걸 아는구나 싶었다.

또 배우분들이 하나의 말을 덧붙였다. 이런 재능이 있는지 몰랐는데 정말 놀랐다고.

영상 링크와 함께 걸어줘서 조회수는 가파르게 치솟았다.

이분들 일 안 하시나?

갑자기 한 번에 저런 거 올리면 사람들이 호기심이 생겨버리지 않는가.

“오, 오빠. 조회수가. 조, 조회수가.”

서수현이 너무 놀라서 내 팔을 탁탁 친다.

“나도 보고 있어.”

“이거 왜 이렇게 된 거예요? 오빠, 아세요? 아! 댓글 보니까 시하를 알아보는데? 이제 다 들켰나? 확신까지 하는데요?”

댓글들 반응이 좋긴 했다.

-일개미에 나온 시하였구나

-진짜 많이 컸다.

-와 시하ㅠㅠ 이제 아역으로 안 나오나 했는데 이런 ㅁㅊ 재능이 있어서였네.

-저기 고정된 영어 댓글 해석했는데 그림 해석 미쳤는데???

-진짜 시하 천재다ㅠㅠㅠ

-정말 잘 컸다ㅠㅠ

역시 백동환과 감독님이 이상한 거였다. 다들 잘 컸다잖아. 많이 컸다고도 하고.

“와. 우리나라 사람들 진짜 대단하다. 이걸.”

“시하라고 확신해서 오른 게 아니라 배우분들이 링크를 걸어줘서 오른 거야.”

“네? 누구요?”

“일개미 때 배우분들.”

“그분들이 대체 왜…….”

그거야 감독님이 뭔 눈치를 다 챘다고 동네방네 소문냈기 때문이지.

내가 그 사실을 알려주자 서수현이 깔깔 웃는다.

그게 이렇게 재밌나?

“오빠. 이것도 그냥 오는 기회가 아니에요. 누구는 광고 하나 하는데 억씩 드는데.”

“그거야 뭐.”

마케팅 비용이 장난 아니긴 하지.

시하가 배우를 한다고 하면 인기가 도움 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글쎄.

근데 이거 어떻게 보면 화가로서 유명세를 처음 탄 거기도 할 것 같다.

생각해 보니 화가로서 중요한 게 실력도 실력이지만 유명세도 꽤 한몫한다.

그림이 경매에 가격이 측정될 때 그 부분 역시 절대 무시하지 못하니까.

어찌 되었든 시하가 커서 뭐가 되든 좋은 길이 열려 있는 건 틀림없다.

“오빠. 진짜 대박이에요. 이 조회 수면 소고기 사 먹을 수 있겠어요.”

나는 서수현이 아이같이 좋아하는 모습에 피식 웃음을 보였다.

한 손으로 턱을 받치며 물었다.

“누구랑?”

“네? 아. 그. 오빠랑…….”

그렇게 말하다가 부끄러웠는지 뒤에 ‘시하랑’도 붙였다.

그렇게 뭔가 말하려고 할 때 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토크 온 퀴즈 작가 박민하입니다.」

갑작스러운 방송 섭외 전화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