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0화 등잔 밑이 어둡다 (6)
서수현의 너튜브에 이번 문화가 있는 날 행사 영상이 올라왔다.
제목은 [길거리에 피아노를 발견했는데 그림 그리는 아이가 나타났다!]였다.
아주 긴 제목.
구독자들은 서수현이 나오지 않아서 의아했지만 궁금해서 영상을 지켜보기로 했다.
처음 등장하는 작은 키의 아이.
빵모자를 쓰고 가방을 들고 있는데 피아노를 발견한다.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카메라가 저 멀리 있는 피아노에 줌인한다.
예쁘게 그려져 있는 피아노 두 대.
마치 왜 이 피아노는 꾸며져 있지 않은지에 대한 대조가 일어나고 있다.
다시 화면이 바뀌고 아이가 피아노 옆에 털썩 앉는다.
그리고 붓을 들고 그리는 신묘한 그림.
그 순간 화면이 반으로 쪼개지더니 왼쪽에는 서수현이 나타나 있고 오른쪽에는 이시하가 나타났다.
서수현의 화면은 피아노 건반과 연주자 얼굴에 포커스가 가서 그림이 조금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대로 피아노를 치며 시하가 그리는 그림에 배경음이 되어준다.
[쇼팽-환상 즉흥곡]
자막이 나온다.
정말 그림과 어울리는 선곡이었다.
시하가 그리는 그림이 마치 즉흥이라는 말과 같았으니까.
붓이 움직이면서 그림을 빠르게 그려낸다.
물론 영상을 빨리 지나가게 한 편집도 한몫했다.
정확히는 서수현이 치는 피아노곡이 끝날 때까지 맞춰두었다.
등잔이 많이 그려지고 호롱불이 하나둘 켜진다.
구경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비췄는데 대단하다는 듯이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어렴풋이 보이는 받침대]
빛에 의해 마지막에 받침대를 그리는 것으로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서수현의 피아노도 어느새 캐논 변주곡으로 바뀌어 있었고 말이다.
아이가 마무리를 위해 왼쪽 면으로 돌아가자 피아노에 몸이 가려졌다.
오로지 서수현이 피아노 치는 것만 집중이 될 뿐이었다.
영상을 보는 사람들은 의문이 들었다.
왜 화면이 안 바뀌고 저기 왼쪽 면은 보여주지 않는 걸까?
서수현을 비추는 카메라는 왼쪽에 있어서 똑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건 알 수 있었다.
화면 구석에 등잔 그림이 하나 보였으니까.
[그림을 다 그리고 떠나가는 아이.]
아이가 도구를 챙기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다.
그와 동시에 서수현의 피아노도 끝을 고했다.
아주 부드럽게 건반을 치며 마무리.
화면이 다시 하나로 나오며 피아노의 그림의 전체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른쪽, 뒤쪽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오지 않았던 왼쪽 그림.
왼쪽 면의 그림은 별다른 특별한 점은 없었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윗줄에 여백을 주며 아래에서부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규칙적이면서도 불규칙한 등잔 배열 밑에 계속 한 줄씩 여백을 둔다는 것이다.
저것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사람들은 알 수 없었다.
[문화가 있는 날.]
마지막 자막으로 끝이었다.
굉장히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잘 만든 영상이었다.
사람들의 댓글이 달렸다.
-그림 너무 따뜻해요~
-이게 뭔데 불 다 켜지는 동안 보고 있지?
-와... 아니 완전 애기 같은데 저렇게 잘 그린다고?
-나는 저 나이 때 뭐했지?
-얼굴 어디서 본 거 같은데...
-ㄱㅇㅇ...
-근데 저 그림 뭘 뜻하는 건지 해석 좀 해주면 안 되나? 궁금한데?
그때 장문의 댓글러가 등장했다.
바로 시하페페 채널에 매번 장문의 댓글을 다는 [해석가]였다.
[ㅉㅉ. 이렇게 힌트가 넘쳐나는데 아직도 눈치채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말해주지.
처음에 왜 환상 즉흥곡을 쳤겠어?
저 그림은 환상 즉흥곡의 악보야. 잘 봐. 등잔이 불규칙한 배열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악보에 따른 것이야.
받침대가 두 종류가 있지? 들 수 있는 받침대랑 땅에 세울 수 있는 받침대. 등잔과 이어지는 받침대가 마치 음표로 보이지 않아?
실제로 오선지에 그려진 제대로 된 악보라고 할 수 없겠지만 굉장히 유사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
눈치 못 챈 것도 당연해.
그 아이는 오른손 악보만 그려놨거든.
심지어 저 공백은 왼손 악보의 자리야. 일부러 그리지 않은 것 같아.
하지만 피아노 왼쪽 면에는 왼손 악보가 그려져 있지.]
[이건 대체 뭘 뜻하는지 궁금하지?
왼쪽에는 왼쪽 손 악보가 있다.
처음 왼쪽 손이 아니라 악보가 지나가면서 마지막 악보가 나와 있어.
왼쪽과 오른쪽. 왼손과 오른손. 일부러 그렇게 맞춘 거야.
갑자기 이런 말이 생각나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라.’
그래서 피아노 뒷면에는 오른손의 악보를 그린 거야.
오른손은 많은 일을 했지만 왼손은 모르지.
아이가 그림을 그렸지만 이미 그림이 그려진 피아노에 앉은 연주자는 모르지.
그래서 연주자는 ‘왼쪽’ 카메라가 비추고 있는 거야.
어때? 이제야 아이의 의도를 알겠어?
이건 진짜 미친 거야! 저 나이에 저런 의도로 그림을 그리다니!]
댓글에 답글이 많이 달렸다.
-저건 너무 과한 생각 아닐까?
-과한 생각이라기에는 너무 맞아떨어지는걸? 진짜 환상 즉흥곡 악보랑 흡사하긴 해.
-아니. 잠깐만. 첫 줄에 등잔을 안 그리고 빈 곳을 만든 건 온쉼표라서 쉬어야 해서 그런 거 아니야?!
-맞네ㄷㄷㄷ
-빛으로 두 가지 받침대를 비춘 연출은 대체 어디서 생각해낸 걸까? 진짜 즉흥임?
-보통 피아노에서 즉흥곡은 즉석에서 만든 게 아니라 자유로운 형식으로 만드는 걸 말하는 거니까 그냥 자유롭게 그린 게 아닐까 싶다.
-이거네ㄷㄷㄷ
-애초에 미술 가방 들고 길거리에서 피아노 만난다고 그림 그리는 것 자체가 ㅋㅋㅋ 설정된 거 아니냐ㅋㅋㅋ
-ㄹㅇ ㅋㅋㅋ
이때 서수현이 해석가 댓글을 고정했다.
사람들이 거기에 대해서 댓글이 달렸다.
-이걸 고정하네ㅋㅋㅋㅋ
-이게 맞다는??
-엌ㅋㅋㅋ
***
서수현이 영상 조회수를 보았다.
벌써 1만은 훌쩍 넘었다.
그래도 좀 본 것 같으니 라이브 방송을 켰다.
“안녕하세요.”
-ㅎㅇㅎㅇ
-언니 너무 예뻐요ㅠㅠㅠ
-ㅎㅇㅎㅇㅎㅇ
“오늘 올린 영상은 재밌게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오늘 영상 퀄리티 미쳤던데요???
-좋았어요ㅠㅠ
“나중에 개인 피아노 치는 장면도 올릴 생각이에요. 다른 재밌는 영상도 있고요.”
-저 아이 누군지 궁금해요!
-맞아요!
“아. 저 아이는 개인적으로 아는 아이인데 엄청 귀엽고 재능도 넘치는 아이예요.”
-그림 뜻이 고정한 댓글이 맞나요?
“아. 맞다. 그거 말해주려고 켰어요. 일단 댓글처럼 곡 악보가 맞고요. 왼손, 오른손 악보도 일부러 그린 게 맞아요. 그림 보시면 진짜로 그렇게 그렸잖아요.”
-그건 그럼ㅋㅋㅋ
-와 이게 의도해서 그린 거라니. 진짜 저 아이가 생각한 거임?
“네. 진짜 아이가 생각한 거예요. 아마 음악이랑 배운 것도 있을 거예요. 그리고 등잔은 등잔 밑이 어둡다는 걸 배워서 그린 거였나? 학교에서 속담 배운 거 써먹은 거라고.”
-아ㅋㅋㅋ
-이유가 귀여워ㅋㅋㅋㅋ
-이래서 학교 공부가 중요합니닼ㅋㅋㅋ
“우리는 많은 문화를 즐길 기회가 가까이 있는데 문화가 있는 날처럼 모르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등잔을 그린 게 아닐까.”
-방금 생각한 거죠?
-언니. 진짜 아이가 그렇게 생각했어요?
“제가 생각했습니다.”
-어엌ㅋㅋㅋ
-왜 의미 부여 하냐고ㅋㅋㅋㅋ
-해석을 더하넼ㅋㅋㅋㅋ
-근데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은 모르게 해라도 노린 건가요?
서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쪽 카메라, 왼쪽 카메라. 세팅이 서로 다른 카메라로 찍히는 것.
사실 저 부분은 우연에 불과했다.
삼촌이 먼저 설치했길래 치우는 동안 서수현도 자신의 카메라를 반대편에 설치한 것뿐이니까.
그렇게 찍힌 건 우연이였지만 세상은 우연 역시 의도가 된 거로 되는 법이다.
편집하면서 의도가 생각나서 가미된 것도 맞고.
영상 올리기 전에 생각 난 거니 노린 거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자. 그럼 오늘 한 곡만 하고 가겠습니다. 오늘은 이거 말해 주려고 켠 거거든요. 사람들도 꽤 모였겠다.”
-안 돼...
-좀만 더 불러주시고 가요...
-한 곡뿐이라니...
“다음에요. 헤헤.”
-아, 근데 저 아이 예전에 일개미에 나왔던 시하 아님?
굉장히 예리한 시청자들도 있었다.
서수현은 그걸 못 본 척 넘어갔다.
아니. 그걸 알아본다고? 그때가 언젠데.
하긴 얼굴이 막 그렇게 달라지지 않기는 했지만.
“그럼 노래 부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래 본 시청자들은 이미 그 내용에 의문이 생겨버렸다.
일단 노래를 들으면서 업로드된 영상에 열심히 댓글을 달아버린다.
저 아이 이시하 아니냐고.
영상의 화제가 조용히 불씨를 틔웠다.
나중에 서수현이 그 댓글들을 보고 기겁했다.
‘나 사고 친 거 아니지? 나 아무 말도 안 했어!’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댓글이 우후죽순으로 달리고 있었다.
***
한편 시하는 초등학교에서 문화가 있는 날에 무엇을 했는지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들 그 자리에 같이 있었지만 그 추억을 공유하며 이야기하는 건 특별했다.
원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는 법이다.
물론 평일에 시간이 안 되는 아이들은 저 이야기에 끼어들 수는 없었다.
그래도 듣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였다.
무언가 보기만 한 게 아니라 직접 참여한 이야기였으니까.
“시하가 그림을 팍 그리는데 사람들이 놀라서 눈을 똥그랗게 튀어나오는 거야.”
승준이가 이야기해 준다.
MSG를 팍팍 친다.
“너무 튀어나온 걸 알았는지 손으로 눈을 가려서 다시 넣었다니까.”
“우와. 진짜 대단하다.”
“너희도 시하가 그린 그림 봤어야 했는데. 아마 오늘도 있을 거니까 혹시 보고 싶으면 가서 봐. 주말에도 있으려나?”
그때 종수가 나섰다.
“나 직캠 있는데.”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종수가 영상을 보여주었다.
카페 안에서 지켜보며 찍은 걸 보여주었다.
아이들이 종수 쪽으로 옹기종기 모였다.
“야. 이시하. 너는 왜 보려고 오는데! 너는 솔직히 비켜줘야지.”
“하지만 나는 직캠 못 봤는데.”
“넌 네가 그렸으니까 안 봐도 되잖아.”
“나는 저 멀리서 지켜보지 않았잖아.”
“네가 그렸으니까 당연히 못 지켜보지.”
“그러니까 봐야지.”
“너 근데 삼촌이 영상 찍던데 그거 보지 않았어?”
“폰으로 찍은 건 못 봤어.”
“아니. 너희 형도 막 찍던데?”
“그건 형이 찍은 거니까. 종수는 여기 피아노 뒤쪽에서 찍었잖아. 달라.”
“다른 건가?”
크게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시하는 기어코 아이들 사이에 끼어서 영상을 봤다.
작은 폰으로 모두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우와. 대단하다.”
“진짜 잘 그린다. 이게 시하야?”
“대박!”
한 아이는 보이지도 않으면 대박을 외치고 있다.
시하는 뿌듯한 얼굴로 슬슬 뒤로 피해서 비켜줬다.
순식간에 빈자리가 채워진다.
아이들이 직접 가서 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영상으로나마 보게 되었다.
“우와. 하나가 노래를 부르네!”
“윤동이 춤을 이렇게 잘 췄어?!”
“와. 은우 랩 대박.”
다들 거기에는 없었지만 충분히 영상만으로 즐길 수 있었다.
“시하랑 전부 이제 유명해지는 거야?”
“연주도 유명한데 다른 애들도 엄청 유명해지겠다.”
시하가 말했다.
“형아는 더 유명해! 다른 나라에서도 알아.”
실제로 외국에서 화제가 꽤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좀 시들해져서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
“여러분 뭐 하나요?”
담임이 들어왔다.
다들 삐약이처럼 쫑알쫑알 있었던 일을 떠든다.
선생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와. 문화에 참여도 하고. 정말 잘했네요.”
시하가 그림일기를 꺼냈다.
“선생님. 저 그림일기도 다 그렸어요.”
“벌써?”
“네!”
선생님이 그림일기를 펼쳤다.
“응?”
“왜요? 이상해요?”
“이상하다고 해야 할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
세상 처음 보는 고퀄리티 그림일기가 여기 있었다.
그리고 쓴 것도 금방 읽었는데 이야기가 조금 이상했다. 아니, 많이 이상했다.
일기가 아니라 소설을 써놨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