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7화 등잔 밑이 어둡다 (3)
초등학교 국어 시간.
오늘은 이야기를 읽는 것에서 시작한다.
한글을 읽고 말할 줄 아는 건 중요하다. 문제는 아이들의 흥미이다.
그래서 책처럼 이야기가 있는 것이 좋다.
“그럼 오늘은 누가 읽어볼까요?”
“제가 읽겠습니다!”
종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반장이 되고 나서 부쩍 먼저 하는 일이 많아졌다.
원래도 먼저 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마음가짐이 달랐다.
예전에는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자랑하려고 먼저 손을 들었다면 이제는 1반의 대표로서 손을 드는 것이다.
“그럼 종수가 여기 감사합니다, 까지만 읽어볼래?”
“네!”
종수가 또박또박 글을 읽기 시작했다.
“기와집에서 선비가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밤이라서 호롱불에 의지해 붓을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부엌으로 가서 하녀에게 요깃거리를 만들라고 시켰습니다.”
“하녀는 떡을 준비했습니다.”
“어머니는 그걸 들고 아들에게 직접 가져다주었습니다.”
“아들아. 이거 먹고 하렴.”
“어머니.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종수에게 잘했다고 칭찬을 했다.
그런 다음 뒷사람을 지목했다.
재휘가 화들짝 놀라더니 벌벌 떨며 일어섰다.
“아, 그. 어머니 감사합니다.”
이미 한 번 했던 걸 다시 복습하게 해주는 재휘였다.
긴장해서 한 번 더 말해버린 것이다.
“선비는 다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공부가 조금 되었을 때 배가 고파져서 떡을 먹었습니다.”
“음. 맛있다. 쫀득쫀득하네.”
“선비는 하나를 먹으니 더 먹고 싶어져서 또 하나를 입에 넣었습니다.”
“이제 접시 위에 하나의 떡만 남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읽고 다음은 하나 차례로 넘어갔다.
하나가 자신 있게 불렀다.
“흐음~ 검은색 떡 남았다~ 예~에.”
이야기에 갑자기 멜로디를 붙인다.
“더 먹고 싶~ 은데. 이제. 하나. 밖에 없어서. 아까워. 서.”
“아껴먹어야. 되네~”
마음대로 부르는데 그게 또 나쁘지 않았다.
선생님은 딱히 그런 걸 막지 않았다.
언제나 아이들이 공부에 흥미가 간다면 뭐든 좋다고 생각했으니까.
잘 안 듣는 아이들도 책을 보면서 웃는다.
“조심스레~ 손이 다가간다. 조오금씩~ 떡을 들었다가 놨다가. 안절. 부절. 못하고~ 떨어뜨린다~”
가끔 뭔가 추가되는 말도 있었고 생략되는 말도 있었다.
선생님은 하나가 음악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알았지만 설마 이렇게 멜로디를 만들어서 이야기를 부를 줄은 몰랐다.
인제 그만 읽게(?) 하고 옆에 사람이 하자고 했다.
하필이면 분단이 지나면서 은우가 앉아있었다.
“렛츠 기릿!”
“은우야. 국어 시간에는 한글만 쓰자.”
“우리 그거 사자.”
“해석해서 말하라는 게 아니라 여기 있는 내용을 읽으라는 거예요.”
“푸하하! 네~”
은우가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선비가 찾았네. 까만 떡을 찾았네. 이런 개떡 같은 일이 있나? 아무 데도 보이질 않네.”
“공부도 끝이 보이질 않아. 어두워서 보이질 않아. 걷은 이불 안 속처럼.”
대충 검은 떡을 찾으면서 이불도 들춰봤다는 내용을 저렇게 랩을 하기 시작한다.
공부의 끝이 안 보인다는 건 경험담일까?
“어두워. 어두워. 더더더. 어디써?”
“어두워. 어두워. 더더더. 여기써?”
훅까지 넣는 은우.
“공부는 뒷전. 찾다가 아침! 소리가 들리네~ 꼬끼오오로로로로.”
닭 울음소리로 마무리하고 은우는 그대로 앉았다.
선생님은 이걸 어찌해야 하나 싶었지만 그냥 이대로 진행해 보기로 했다.
마지막은 은우의 뒷사람이었는데 거기에는 시하가 있었다.
제대로 하겠지?
“방이 환해졌어요. 드디어 떡이 보였어요.”
“아. 등잔 밑에 있구나. 여기는 제일 어두워서 보이질 않았어.”
“선비는 떡을 찾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찾느라고 움직였더니 배가 고파서 바로 떡을 먹었습니다. 선비는 떡을 먹어서 아주 만족했습니다.”
“이게 바로 가까이 있는 걸 찾지 못하는 걸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속담입니다. 끝.”
다행히 시하가 또박또박 말을 잘해 주었다.
신기하게도 은우의 랩을 다 알아들었는지 시작하는 점도 정확했다.
“등잔 들고 빛 비추면서 찾아야지. 바보네.”
물론 한마디가 더 많았다.
그런데 그게 또 맞는 말이었다.
어두우니까 등잔 들고 불을 비추면서 찾았으면 금방 떡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근데 선생님.”
“응?”
“왜 까만 떡이에요?”
“어?”
“왜 까만 떡 줘서 안 보이게 만들었어요?”
“안 보이게 하려고 일부러 그렇게 쓴 거 아닐까?”
“하녀가 범인이야!”
“???”
아니. 작가가 일부러 그렇게 쓴 거라고 말한 건데?
하녀가 일부러 쓴 거라고 받아들였나?
선생님이 정정하려고 했지만 연주가 그 말을 받았다.
“맞네! 하녀가 범인이네. 그런데 시하야.”
“응?”
“원래 이건 나한테 좋은 게 있어야 하는 거야. 그러니까 하녀만이 범인이 아니야. 하녀에게 시킨 진짜 범인은 따로 있어.”
“!!!”
연주는 요즘 수사물을 좀 봐서 그런지 눈을 반짝였다.
언제나 드라마에서 이득을 보는 존재가 진짜 범인이었다.
시하가 물었다.
“누구야?”
“바로 어머니야.”
“???”
“새어머니였던 거지.”
“???”
“새어머니에게는 자기가 낳은 자식이 있는데 자기 자식이 더 잘되길 바라서 이런 일을 저지른 거야.”
요즘 막장 드라마도 보고 있는 연주였다.
선생님은 이런 기가 막힌 설정들을 칭찬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연주가 영화나 드라마에 관하면 말이 많아진다.
좋아하는 걸 말할 때면 누구나 그러니까.
시하가 말했다.
“근데 이건 아닌 거 같아.”
의외로 시하가 반대의 의견을 말했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이런 속 이야기는 아니겠지. 시하도 아는구나. 이건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걸.
“왜?”
“동생은 형아를 좋아하니까.”
“???”
선생님도 머리에 물음표가 떴다.
갑자기 형아가 왜 나온다는 말인가?
“연주는 등잔 밑이 어두웠네.”
“아…….”
연주는 뭔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뭐가 뭔지 몰라서 둘을 번갈아 보았다.
“저기. 시하야.”
“네?”
“무슨 말이니?”
“선생님 봐봐요. 새엄마 자식이면 선비 동생이잖아요.”
“그래.”
“동생이 형아를 좋아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그게 왜 당연한??”
“내가 동생이라서 알아요.”
“아, 그래. 그렇다 치고.”
“그러니까 새엄마도 좋아하는 거 아니까 미움받을 짓 안 할 거예요.”
“그렇구나. 시하도 연주도 다 대단하네! 전부 잘했어요!”
짝짝짝.
선생님은 속으로 반박하고 싶은 부분이 많았지만, 손뼉 치는 거로 이 이야기는 끝맺었다.
“혹시 더 질문할 거 있어요? 깊은 질문이든 얕은 질문이든 상관없는데.”
이야기가 어마어마하게 전개되어 버려서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래. 이제 진도 좀 나가자.
“자. 교과서를 봅시다. 선비 이야기와 같은 경험이 있는지 말해 봅시다.”
가까이 있는데 못 찾은 경험을 말하는 거겠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보는 법이다.
승준이 해맑게 웃으며 손을 들었다.
“선생님.”
“응?”
“새엄마 있었던 적이 없는데 어떡해요?”
그 이야기가 아니야!
추가된 이야기를 말하는 게 아니라고!
다른 아이도 질문을 던졌다.
“형아도 없는데 어떡해요?”
“하녀한테 막 시켜서 안 보이게 한 적도 없어요.”
선생님이 미소를 장착하며 말했다.
“여러분. 교과서에는 그런 이야기는 없어요. 그리고 여기 문제는 가까이에 있는데 눈치 못 채서 몰랐던 경험을 말해보는 거예요.”
이래서 국어가 중요하다.
출제자의 의도를 명확하게 알아야지.
시하나 연주처럼 너무 깊게 생각해 버리면 오히려 쉬운 답도 못 찾는 법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는 건 이걸 말하는 것이다.
“삼촌이 리모컨 베개에 깔고 있었는데 못 찾았습니다.”
선생님은 틀렸다.
시하는 의외로 답을 제대로 써 내려가고 있었다.
연주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의 혼란을 일으키고 자기들은 제대로 된 답을 적다니…….
이때쯤이면 정말 궁금한 점이 있다.
강인 어린이집 애들은 대체 거기서 어떤 걸 배웠던 걸까?
담임은 어린이집 선생님을 한 번쯤은 꼭 만나보고 싶었다.
얼굴이나 좀 봤으면!
***
따뜻한 햇볕이 카페에 들어왔다.
그로 인해 생기는 그림자들이 있다. 의자, 책상, 선반 그리고 피아노까지.
검은색으로 도색된 피아노의 아래에 검은 그림자가 진하게 색을 나타내고 있다.
검은색의 농도는 차이가 나서 그림자와 헷갈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만큼 색이 바랬고 다시 한번 도색 작업을 거쳐야 했다.
2층에 배치된 중고 피아노.
서수현이 피아노를 끌고 2층 밖에 두었다.
카페 내부에서 도색 작업을 하기에는 마땅치 않으니까.
업자 차가 오더니 피아노를 들고 갔다.
서수현도 거기에 따라나섰다.
어느새 도착하자 거기에는 시하와 시혁, 그리고 배상현이 함께 있었다.
“피아노가 늙었다.”
시하가 피아노의 표면을 쓸어내렸다.
서수현은 시하의 표현이 재밌다고 생각했다.
중고라서 그런지 어느 정도 써서 늙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데도 소리는 문제없다.
물론 조율을 한번 받아야 하는 건 맞다.
“그 어떤 것이든 도화지를 준비하는 것부터가 그림의 시작이야.”
배상현이 시하를 보며 말했다.
오늘은 시하의 친아버지도 따라나섰다.
도색을 봐준다는 말이었지만 사실은 그저 시하가 잘하나 싶어서 따라온 것이다.
재료 역시 배상현이 준비했다.
“검은 도화지 만들어요?”
“꼭 검은색일 필요가 없지. 흰색도 되고 분홍색도 되고 노란색도 돼.”
“으음.”
“시하가 뭘 그리고 싶을지에 따라서 도화지가 다르겠지. 아무래도 이 도화지 자체가 배경이 될 거니까.”
“아! 그럼 도화지가 아니라 배경을 칠하는 거네요?”
“그럼.”
도화지를 만드는 작업인 동시에 배경을 만드는 작업이다.
시하는 무슨 색을 할지 고민하다가 검은색을 골랐다.
“배운 검은색 할래요.”
“배워서 하는 거니?”
“아니요.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어요.”
“그래. 그럼 도색해 볼까?”
“네!”
“먼저 상처에 퍼티로 메꿀 거야.”
“퍼피? 강아지?”
“아니. 퍼티라고 유리창 틀을 붙이거나 하는 게 있어. 음. 여기 유리창이 있네. 여기 하얀 부분 보이지?”
“네!”
“그게 퍼티야.”
“퍼티 이름이 귀여워.”
배상현이 입을 씰룩였다.
그렇게 말하는 시하가 더 귀여웠으니까.
“이건 빨리 굳기 때문에 빨리빨리 해야 해. 여기 상처에 이렇게.”
상처를 퍼티로 메꾸기 시작했다.
“상처 나면 약 발라주는 것 같아요.”
“그래. 상처 나면 약 발라주듯이.”
시하의 따뜻한 표현에 배상현이 웃음을 보였다.
실제로 하는 작업이 그렇다.
“조그마한 상처까지 다 메꿔줘야 매끈매끈한 피아노가 될 수 있어.”
“퍼티야. 빨리 낫게 해.”
“푸흡.”
시하가 여기저기 상처를 다 찾아내면 배상현이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서수현은 시하가 저렇게 다 찾아내는 것이 신기했다.
진짜 조그마한 상처도 다 찾아내고 있었으니까.
눈이 좋다는 건 저런 것일까?
“이제 외장 부품들을 다 떼야 해. 여기 뚜껑하고 이런 것들.”
저 분리하는 부분은 업자에게 맡겼다.
업자 역시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대체 어느 미술 선생님이 8살 애랑 같이 이런 도색 수업을 한단 말인가.
업자가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굉장히 황당했다.
그리고 더 당황스러운 건 미술 선생님이 피아노 도색 작업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건반도 따로 때서 묶은 때를 없애줘야겠지.”
“씻어요?”
“그럼. 근데 우리는 그건 업자에게 맡길 거야. 우리가 하는 건 도색만 할 거거든.”
배상현은 시하에게 검은색 농도를 선택하게 했다.
그리고 같이 도색 작업을 했다.
피아노가 점점 더 검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이 위에 그려지는 그림의 베이스가 되는 검은 도화지.
혹은 그림이 더 돋보이게 꾸며줄 배경이 되는 검은색.
시하의 친아버지인 배상현이 그걸 도와주고 있었다.
오로지 시혁만이 그걸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