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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 나 귀엽지 외전-26화 (451/500)

외전 26화 등잔 밑이 어둡다 (2)

카페 안.

1층과 2층에는 피아노가 놓여 있다.

1층은 보통 라이브 카페를 할 때 가끔 쓰지만 2층 피아노는 잘 쓰지 않고 있다.

2층 피아노가 좀 오래되기도 했고 작기도 해서 그렇다.

서수현은 1층에 있는 피아노도 좋아하지만 2층에 있는 작은 피아노도 좋아한다.

늘 작은 디저트를 만들다 보니 88 건반이 있는 피아노보다 몸집이 좀 작은 피아노가 귀여워 보인다.

“문화가 있는 날 행사요?”

서수현은 눈을 깜빡거렸다.

2층 피아노를 문화가 있는 날 행사 때 밖에 내놓는 건 어떨지 물어보고 있다.

“우리 피아노 말고도 캠페인에서 몇 대 놓을 거라던데. 그냥 같이 참가하면 어떨지 물어봐서 말이야.”

“괜찮은 거 같은데요.”

“너도 연주하고.”

“네? 제가요?”

“응. 이런 날 너튜브 찍을 거리도 되고 홍보도 되고 좋잖아.”

“그건 그런데 나 없으면 일은 누가 하고요.”

“너 없어도 일은 잘 돌아간다. 그리고 종일 피아노 칠 거니?”

“그건 아니지만요.”

아는 언니와 하는 카페는 장사가 잘되기 때문에 손 쉴 틈이 없다.

특히 점심과 저녁뿐만 아니라 오후에도 꽤 오는 편이다.

오후에는 학생들이 많이 들리는 편이라 제일 여유로운 건 오전 시간이었다.

“흐음.”

“왜? 치기 싫어?”

“아니요. 전 괜찮은데 괜히 잘 치는 사람들하고 비교되는 건 좀.”

“하긴. 넌 피아노보다 기타를 더 많이 치니까.”

“못 치는 건 아니거든요!”

“요새 피아노보다 폰을 더 많이 두드리던데. 실력 죽은 거 아니야?”

“아니거든요. 제가 폰을 얼마나 본다고.”

“누구누구 씨 톡만 알림이 다르던데? 누굴까나?”

“누, 누굴까요. 그게.”

서수현이 고개를 돌리며 손으로 부채질했다.

아는 언니는 히죽 웃으며 서수현을 계속 놀려먹었다.

아직도 저런 거로 부끄러워하는 걸 보니 둘 사이는 한참 멀었겠구나 싶었다.

보는 맛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어느 정도 진전이 있는 모습도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왜 눈을 그렇게 봐요?”

“내가 뭘?”

“진짜. 왜 다들 나 놀려먹으려는지 모르겠어.”

“반응이 좋잖아.”

서수현이 살며시 흘겨보았다.

“근데 저 2층 피아노는 겉을 좀 고쳐야 하지 않아요? 소리야 잘 나는 것 같던데.”

“언제 한번 점검해 봤나 보네?”

“제가 가끔 쳐보긴 해요.”

“잘했어. 근데 저대로 그냥 밖에 내보내기는 좀 그렇지? 역시 문화가 있는 날이니까 뭔가 꾸미긴 해야 하는데. 차라리 캠페인 하는 곳에 같이 맡길까? 비용은 얼마나 들려나?”

“그런 곳은 좀 떼먹지 않을까요?”

“우리야 모르지.”

“조금만 더 고민을 해 보죠.”

“그러는 게 좋겠다.”

언니가 고개를 돌리며 일하는 곳으로 가다가 멈췄다.

“아! 그냥 물어보는 건데 진도는 얼마나 나갔어?”

“언니!”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근데 키스는?”

“아 쫌!”

***

시하는 서수현이 하는 말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카페에 피아노가 있거든.”

“응.”

“그 피아노를 도색해서 예쁘게 꾸미고 싶은데 돈이 너무 많이 들 것 같단 말이지.”

“왜?”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고 싶은데 그런 전문가들은 페이가 좀 비싸잖아. 예쁘게 그려주는 사람일수록.”

“그러면 내가 그려주까?”

“응? 시하가?”

“응! 나 잘 그려. 피아노에 그림 그리는 거 재밌을 것 같아.”

서수현이 눈을 깜빡거렸다.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요? 시하가 잘 그릴 거라고 생각해요?”

“시하 그림 실력 봤잖아?”

“그건 패드에 그린 거고요. 실제로 저기는 페인트칠하고 붓도 쓰고 그래야 하는데요?”

“시하 미술 과외받아서 잘해.”

“아. 미술 과외받지 참. 근데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았잖아요?”

“시하는 천재니까 괜찮아.”

“괜찮구나.”

나는 살며시 웃음을 보였다.

오늘 데이트 날이지만 잠시 시하랑 점심식사를 같이했다.

오후에는 미술 과외받을 거니까 맡기면 되고 그 시간 동안 서수현과 데이트를 즐길 것이다.

“그럼 진짜 시하에게 맡겨볼까요?”

“뭐, 그것도 문화 중 하나 아니겠어? 나이 불문하고 즐긴다는 뜻도 되고 말이야.”

“아, 진짜 그럴까?”

아무래도 서수현이 혹하는 모습이었다.

요즘 여러 캔버스를 경험하는 시하에게는 호재가 아닐까?

검은 도화지, 벽. 이런 곳에 그리도록 하는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한쪽 벽지를 완전히 뜯긴 걸 봤을 때는 상당히 놀랐다.

뭐 자기 집이라서 연습할 수 있는 거겠지만 말이다.

어디서 저런 과외를 받아보겠나.

이런 파격적인 과외이니까 시하가 더 재밌어하는지도 모른다.

진짜 석고상 보고 그림 그리라고 하는 거였으면 어린 애들은 재미없다고 나갔을지도 모르겠다.

뭐 그게 나쁜 건 아니겠지만 재미라는 점에서 떨어지는 건 사실이니까.

어릴 때는 기술적 발전보다는 순수한 재미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형아. 다 먹었어.”

“이야. 잘 먹네.”

“근데 형아처럼 많이 못 먹어. 아직 멀었어. 형아는 국밥에 공깃밥 두 개야.”

“하하…….”

거기까지 따라잡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먹을 수 있을 만큼 먹으면 되지.

노력의 방향이 이상하다.

미술 계통은 이미 나를 뛰어넘고도 남았는데 말이다.

“혀니 누나.”

“응?”

“혀니 누나는 공깃밥 몇 개 먹어?”

“반 개밖에 안 먹는데.”

“왜?”

“어? 으음. 다이어트?”

“든든하게 먹어야 힘을 쓰지~”

“그런 말은 또 누구한테 배웠대?”

“삼촌이 알려줬어.”

이런 건 늘 삼촌이지.

그래도 사실이기는 하다.

“근데 삼촌은 왜 밥 먹고 또 계속 뭐 먹어. 과자도 먹고 요거트도 먹고. 뭘 자꾸 먹어. 근데 살은 안 쪄.”

“엄청 축복받은 몸이네. 부럽다.”

“배 많이 긁어서 살도 긁어지나 봐.”

“푸흡.”

그런 엄청난 다이어트가 있으면 모든 사람이 운동을 안 했을 거다.

서수현이 물었다.

“시하는 살 안 쪄?”

“나는 태권도 하니까 안 쪄. 그리고 쪄도 키로 간다고 형아가 그랬어.”

성장기 때는 다 키로 가는 법.

사실은 다 키로 가지 않는다. 이건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태권도가 그렇게 다이어트에 좋은지 몰랐네.”

“혀니 누나도 나한테 태권도 배웠잖아. 그거면 살 안 쪄.”

“정말?”

“응.”

“그럼 형아도 태권도 배워서 살 안 찌겠네.”

“형아는 아무것도 안 해도 살 안 쪄. 형아는 멋있어서. 나랑 씻을 때 봤는데 몸도 좋아.”

서수현이 중얼거렸다.

“부럽다.”

“어?”

“아앗. 아무것도 아니야.”

뒤에 서수현이 뭐라고 했는지 제대로 못 들었다.

“흐응. 몸이 좋구나.”

서수현이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았다.

왜? 뭐?

갑자기 내 발을 콕콕 차며 장난을 친다.

나 역시도 그 장난을 받아주었다.

다리가 엇갈리기도 하고 발을 못 움직이게 잡기도 한다.

식탁 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시하는 모르고 있다.

“형아 엄청 좋아. 나도 태권도 하니까 배에 근육 만들 거야. 삼촌도 있던데.”

시하야. 이제 신체적인 이야기는 그만해 주지 않을래? 괜히 부끄럽거든?

“이제 일어나자. 밥도 다 먹었고.”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말 끊는 데 자리 옮기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이제 시하를 데려다주기도 해야 하고 말이다.

“그럼 갈까?”

“응!”

서수현과 함께 시하를 데려다주었다.

오늘도 두 사람이 친해지길 바란다.

“형아. 다 끝나면 빨리 와야 해.”

“응. 알았어.”

손을 흔들어주고 시하를 배웅한다.

대충 3시간이면 되겠지.

“그럼 우리도 데이트하러 갈까? 어디 갈래?”

서수현이 잠시 머뭇거렸다.

왜 그러는 걸까?

“편하게 말해도 돼. 가고 싶은 곳 가자.”

“나 꼭 하고 싶은 거 있긴 한데요.”

“어떤 거?”

“집에서 영화 보는 거요.”

“우리 집 갈까?”

“아니! 아니! 오빠 집은 삼촌 있잖아요.”

“아…….”

그렇다면 가야 할 곳은 서수현의 집밖에 없었다.

단둘이서 가도 되는 곳인가?

나는 서수현의 빨개진 얼굴을 보았다.

괜히 놀리고 싶어진다.

“이거, 이거. 엉큼하네.”

“내가 뭐요! 내가 뭐 영화 좀 보러 가자는 건데. 뭐가 엉큼해요.”

“그냥 말했는데 왜 이렇게 발끈해.”

“이 오빠가 진짜. 맨날 놀려.”

“가자.”

나는 서수현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발을 맞춰 걸었다.

살며시 서수현의 옆모습을 보며.

“근데 진짜 어디까지 생각했어?”

“너와 결혼까지 생각했다! 왜!”

“푸핫.”

“같은 집 같은 방에서! 어!”

“방에서?”

“어어?! 그. 뭐냐. 뭐냐.”

서수현이 너무 당황해서 오히려 내가 긴장이 풀렸다.

“아, 그만 놀려야겠다.”

“진짜 못됐어.”

“무슨 영화 볼까? 공포 영화? 액션? 드라마?”

“로코로.”

“오케이.”

진짜 서수현의 집에 왔다.

“커피 탈게요.”

“어. 고마워. 근데 영화 보는데 팝콘이라도 살 걸 그랬다.”

“괜찮아요. 저는 라떼 먹을 건데요.”

“어? 그럼 나도.”

나는 서수현이 커피를 타는 동안 영화를 선정했다.

요즘 순위별로 잘 나와 있으니 상위권을 보면 되겠지.

“이거 튼다?”

“네~”

우리는 커피를 마시면서 영화를 보았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네.

그런데 정말 이런 거로 괜찮을까?

물론 오늘 둘만의 데이트하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선택권이 적긴 했지만 말이다.

이 영화 한 편 보면 다 끝인데 서수현은 정말 이걸로 괜찮을까?

언제나 미안해지는 부분이 있고 배려받는 부분이 있었다.

“저. 오빠.”

“응?”

“사실 저 하고 싶은 게 하나 더 있었는데요.”

“뭔데?”

“잠시 일어나봐요.”

“일어나기까지 해야 해?”

“네. 빨리.”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벽에 서 봐요.”

“뭘 하려고 하길래 영화보다 말고 위치까지 지정해.”

“재밌는 거 알려줄 테니까 서봐요.”

일단 시키는 대로 따랐다.

“자. 봐요. 양손에 깍지를 끼고.”

“깍지를 끼고?”

“이렇게 한쪽 손을 펴봐요.”

두 손 모아서 기도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이거 뭐 하는 의식인 걸까?

“에잇!”

서수현이 한쪽 펼쳐진 손에 깍지를 껴버렸다.

두 손이 묶이게 된 채 빠지지 않았다.

팔이 들려지더니 벽에 쿵 박혔다.

이런 걸 박력이라고 하던가. 대체 어디서 보고 따라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보통 이건 남녀 반대로가 아닌가?

쪽.

“응?”

“이, 이런 박력 있는 거 해보고 싶었어요.”

자기가 했으면서 빨개지는 서수현이었다.

표정을 보니 알겠다.

이게 왜 이렇게 된 거지? 왜 내가 이걸 하고 있지?

이런 말이 얼굴에 쓰여 있다.

“수현아.”

“네?”

나는 두 손을 잡은 서수현의 한 손을 꽉 잡았다.

휘리릭.

우리 둘은 서로의 위치가 반대로 되었고 서수현은 한 손이 들린 채였다.

사실 아까 서수현의 행동은 깍지 끼면 알아채 줄줄 알았나 보다.

자기가 당하고 싶다는 걸 표현한 거겠지.

이런 건 보지 않아서 눈치를 못 챘다.

“앗!”

갑작스러운 상황에 서수현이 당황했다.

내 두 손은 벽에 붙여진 채 고개만 살짝 숙여서 얼굴을 가까이 다가갔다.

숨결이 맞닿을 거리.

“좋아해.”

그대로 키스했다.

티비에는 영화 소리가 들렸지만 뭐라고 하는지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온기가 전해지는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다.

***

서수현은 시혁을 따라 시하를 데리러 갔다.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었으니까.

“헤헤헤.”

서수현은 오늘 하고 싶은 것도 해서 기분이 좋았다.

요즘 유행하는 키스 영상이라서 이 행동을 해봤는데 시혁이 그 영상을 보지 않아서 모르는 눈치였다.

어쩌다 보니 당황해서 자신이 키스하게 되어버렸는데 그래도 나중에는 더 괜찮은 상황이 되지 않았나 싶었다.

“뭐 좋은 일 있어?”

“그냥 전부 좋아서요.”

“큰일이네.”

“왜요?”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

“그럼 저 기대해도 돼요?”

“어. 기대해. 근데 참고로 뭘 기대하는데?”

시혁의 놀리는 말에 수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오늘 피아노 이야기했잖아요.”

“어? 같이 피아노 치자고? 나 잘 못 치는데. 연습해야 하나?”

“아니. 같이 치는 게 아니라.”

“그럼?”

“그. 피아노 위에서. 그, 그거. 오늘. 그거.”

서수현이 손으로 얼굴을 부채질했다.

시혁이 말한다.

“이거, 이거. 아주 엉큼하네.”

“아, 아니거든요! 다들 판타지 정도는 있잖아요!”

누구나 등잔 밑에 판타지 정도는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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